소설리스트

군림단주-100화 (100/232)

100화

[백 리 밖에 한 명씩 배치해 둬서 적들의 접근을 미리 알고서 대응했습니다.

청도문은 약 오백 명 가까운 인원을 동원했고, 도적 떼와 혼구당이란 낭인 무리까지 합하면 팔백여 명이 동시에 들이닥쳤습니다.

외부 식구들이 칠십여 명 모여 주어서……(후략)…….

학림 용연.]

[용연 학림의 정확하고 빈틈없는 지시에 따라서 큰 희생 없이 마무리 지었습니다. 비용에 대한 것은 동동마을 촌장이 과할 정도로 호의적이어서 넉넉히 받았습니다.

외연 대주 남회.]

갸우뚱.

서찰을 읽어 내려가던 진류는 고개를 좌우로 기울였다가 세우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럴 리가 없기 때문이다.

태문검 구안과 십자막도 조일근까지 합세했는데 무사히 임무를 완수했다?

그것도 학림 둘이서?

연락이 오면 곧장 보내 주려고 교림 한 명에게 대기하라는 명령까지 내려 뒀다.

“흐음, 이, 이…… 이놈 뭐지?”

진류는 서찰에 적힌 용연이란 글자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동안의 임무 때와 느낌이 달랐다.

뭐랄까, 이번 임무에서 자신에게 전해지지 않은 내용이 있다고나 할까?

자신이 알고 있는 용연과 적휘의 무위는, 약간의 차이야 있겠지만 조일근과 구안을 상대할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직접 봐야겠다.”

진류는 혼잣말을 마치고는 쪽지 두 개를 적어 각각 다른 방향으로 전서구를 날렸다.

***

용연과 적휘가 주루로 들어섰다.

붙어 다닌 지 벌써 오 일째였다.

진류로부터 임무 완수에 대한 답을 받기 전엔 다른 곳으로 움직일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함께 움직이는 중이었다.

“용 선배, 진 대교님으로부터 답변이 원래 이렇게 늦나요?”

이 층에 자리를 잡자마자 적휘의 질문이 시작됐다.

“몰라.”

“그러지 마시고…….”

“나도 처음이야.”

“아.”

“그런데 전에는 적 학림이 이렇게 말이 많은지 몰랐다. 정말 말 많다.”

“그때는 용 선배와 제가 후임이었잖아요?”

“음? 그거 하고 말 많은 거하고 무슨 상관인데?”

“서로 가진 게 비슷할 때는 서로의 주머니가 궁금하지만 한 사람이 훨씬 많이 가지고 있으면 상대적으로 가벼운 주머니엔 신경 쓰지 않게 되지 않을까요?”

적휘는 용연의 눈치를 보면서도 생각하고 있던 바를 솔직하게 꺼내놓았다.

“뭐?”

“그때는 용 선배나 저나 아무리 시시한 얘기도 주고받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안 나.”

용연은 후임 시절 적휘와 임무에 투입됐을 때를 떠올리며 터지려는 웃음을 참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용 선배, 지금 웃었죠?”

“아니.”

“에이, 웃음 참느라 고개 돌린 거잖아요?”

‘참자, 참자. 여기서 웃으면 안 된다. 참아야 한다.’

용연은 눈을 꾹 감았다가 천천히 뜨며 정색한 얼굴로 적휘를 돌아봤다.

그러자 적휘는 헤벌쭉 웃다가 서서히 안면 근육을 굳히며 고개를 탁자로 내렸다.

‘휘유, 위험했다.’

용연은 그제야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적휘의 말에 십분 공감하지만 앞으로의 임무 수행을 위해서는 참아야 했다.

형도준과 우곤처럼 몇 십 년이 지난 후라면 몰라도 지금은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오면서 했던 얘기들은 어디서 듣는 거야?”

용연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자신과 달리 적휘는 임무와 무관한 강호 곳곳의 사건 사고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주루로 들어서기 전엔 하남성에 있었던 기이한 사건을 실제로 본 것처럼 설명하던 중이었다.

상주 인구가 몇천 명쯤 되는 마을이 단 며칠 만에 사라져 버린 얘기로, 왕래하던 상인들이나 타지 사람들에 의해 귀신들린 마을이라고 소문이 퍼져 나갔다고 한다.

용연은 적휘에게 좀 더 얘기를 듣고 싶어 주루에 들렀다.

“임무 수행을 하러 가는 동안 사람들을 많이 만나잖아요? 오가며 듣는 거죠.”

“적 학림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용연은 적휘의 친화력을 인정하고 있기에 바로 공감할 수 있었다.

“제가 다른 건 용 선배에게…….”

“하루나 이틀 정도 이곳에서 지낸다.”

용연이 얼른 말을 끊자, 적휘는 양손을 가슴에 모으며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저는 용 선배가 밥만 먹고 다시 출발하자고 하는 줄 알고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몰라요.”

“왜?”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이 서쪽 안가잖아요? 역시 용 선배는 후배를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눈치는 하여간.’

피식.

용연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적휘의 말대로 이곳에 들어온 이유 중 하나가 서쪽 안가와 가까워서였기 때문이다.

다른 한 가지는.

힐끗.

용연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지붕 위에 세워진 깃발 하나가 펄럭이고 있었다.

[금룡상단]

이곳이 금룡상단의 지부가 있는 마을인 까닭이다.

“어? 금룡상단 깃발이네? 그러고 보니 용 선배 만나러 갈 때도 금룡상단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주루에 꽤 있었어요. 둘째 아가씨란 인이예 소저가 얼마나 미인이기에 한동안 안 보이다 나타난 것만으로 사람들이 입에 올릴까 궁금하더라고요.”

적휘는 아쉽다는 듯 깃발을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확실한 거야?”

“그럼요. 상단에 이것저것 납품하는 사람이 뭐하러 거짓말을 지어내겠어요? 들어보니, 인 소저가 총관과 무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물건들을 챙기는데, 그 자태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다들 입을 딱 벌린 채 구경하기 바빴다고 하더군요. 음? 다른 얘긴 들은 척도 안 하면서 미인 얘기를 하니까……흐흐흐.”

적휘는 무심한 척하며 되묻는 용연을 보고 한쪽 눈썹을 올리며 음흉하게 웃었다.

‘무척 특이한 무공이었는데 그동안 완성한 걸까?’

용연은 적휘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도 모르고 배에서 만났을 때 펼쳤던 인이예의 무공을 떠올렸다.

묵 노야를 노리던 모용기의 팔을 제압하려 움직인 순간, 전신을 찔러 오던 수십, 수백 개의 예기.

인이예는 특별한 동작을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상승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분간 해야 할 일이 있다더니 무공 수련이었던 모양이다.

―이번엔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피식.

인이예가 떠나기 전에 했던 말을 떠올리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용 선배, 괜찮으세요?”

기분 좋은 기억을 이어 가려는데 그 틈을 적휘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뭐라고?”

용연은 창밖에 두었던 시선을 적휘에게로 돌렸다.

“괜찮으세요? 어딜 보는데 그리 집중을 하시는 겁니까?”

적휘는 일어나 창밖을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이는 것이라곤 길 건너 집들과 오가는 사람들뿐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할 게 있어서. 일단 식사부터 하자.”

용연이 고개를 돌리자 점소이 한 명이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치우고 올라오느라 늦었습니다. 식사는 어떻게 해 드릴까요?”

점소이가 싹싹하게 웃으며 용연과 적휘를 번갈아 쳐다봤다.

“방은 있나?”

“두 분만 묵으실 겁니까?”

“그래.”

“방부터 보고 내려오시겠습니까?”

“며칠 동안 풀만 먹었더니 속이 허하네. 돼지하고 닭 한 마리 삶아 오고 술은…….”

불쑥 끼어들어 주문을 하던 적휘는 용연에게 허락을 구하듯 돌아봤다.

끄덕.

용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죽엽청.”

주문을 마친 적휘는 입맛을 다셨다.

술맛을 아는 모양이다.

그 모습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안가에서 만난 선배들도 그렇고, 담 교림님도 그렇고 술 마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네?’

스무 살이 되도록 술 한 잔 입에 대보지 못한 용연으로서는 부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음식을 기다리며 들뜬 적휘에게서 눈을 떼고 다시 창밖으로 눈을 돌리려 할 때였다.

“겨우 본단에 심어 줬더니 일 년도 안 돼서 이런 곳으로 쫓겨나?”

삼십 대 사내가 계단 아래를 향해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며 올라오고 있었다.

용연의 시선이 무심코 그쪽으로 돌아갔다.

짜증 내던 사내를 따라 올라온 자는 허름한 차림의 삼십 대 사내였다.

“맹 형, 몇 번을 말씀드려요?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이라니까요?”

“좋기는 개뿔. 암튼 나는 없는 말 못 만드니 알아서 잘 보고해. 여기! 술하고 안주 적당히. 대충.”

맹 형이라 불린 사내는 점소이를 불러 주문을 한 후 의자에 앉아 머리를 뒤로 젖혔다.

‘본단에 심어 줬더니 일 년 만에 이곳 지부로 보내졌다? 당사자는 좋은 일이라고 하고, 보고를 받는 쪽은 한심해 하고.’

용연은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열어 놓았다.

본단이란 말 때문인지 신경이 쓰였다.

두 사람이 말하는 본단이 금룡상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다.

뭔가를 꾸미는 중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위치와 상황이라 여길 수 있었다.

“풍 아우, 들어서 알겠지만, 이번 일 제대로 못 하면 너나 나뿐만 아니라 우리 쪽 다 죽어.”

맹 형이라 불린 사내가 양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알아요. 그래서 정말 죽을 각오로 버텼어요. 말로만 하니 잘 모르시죠? 저도 들어가기 전엔 강호삼대세력이 버티기 제일 힘들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다?”

“당연하죠. 강호삼대세력엔 고수들이 바글바글해요. 우리 같은 아랫것들 신경이나 쓸 것 같아요? 여긴 돈 만지는 곳답게 하루 십이시진 내내 모든 사람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요. 그런 사람들을 관리하는 총관이 저를, 수백 명 중에 한 명을 지정해서 이곳으로 보낸 거예요. 엄청난 성과라고요.”

“……것도 그러네?”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맹 형은 걱정하지 말고 가만히 계시면 돼요.”

“그, 아, 에이, 모르겠다.”

맹 형이란 사내가 양손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두 사내의 대화는 거기서 멈췄다.

힐끗.

용연은 주루를 둘러보듯이 안쪽을 돌아보며 사내 둘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일리 있다. 종 노야께서 해 주셨던 말씀과 같은 이치겠지.’

―무인들은 사람보다 자신의 무공을 더 믿고, 돈 다루는 자들은 사람보다 돈을 더 믿는다. 어느 쪽이 더 피를 말리겠느냐?

용연은 풍 아우란 사내의 말에 공감이 돼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적휘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용연의 머릿속을 볼 수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용 선배, 괜찮은 거죠?”

“음? 아! 물론.”

용연은 적휘의 질문을 듣고서야 뒤쪽 두 사내에 관한 생각을 멈출 수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밤엔 저 깃발이 달린 곳을 방문해야 할 것 같았다.

***

식사만 간단히 하려던 용연이 먼저 방으로 올라가려 하자 적휘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며 서둘러 술병을 비우고는 뒤를 따랐다.

방에 들어온 뒤 용연은 창가에 의자를 놓고 벽에다 머리를 댄 후 눈을 감았다.

한 시진 정도 지나자 침상에서 적휘의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벌건 얼굴로 뻗어 있었다.

용연은 적휘의 목과 어깨를 주물렀다.

돌아올 때까지 깨면 안 되기에 술기운이 조금 더 빨리 퍼지도록 도와준 것이다.

자시(子時, 오후 11시―오전 1시 사이)가 되어 갈 때쯤 방 안의 촛불을 끄고 창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지붕 십여 개를 넘어 도착한 금룡상단 지부는 낮처럼 환했다.

밤낮 상관없이 도착하고 떠나는 사람들 때문에 불을 켜 두는 모양이다.

용연은 담을 넘으려다 정문으로 돌아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열린 정문으로 들어가는 순간 짐 부리는 일을 하는 일꾼 둘이 다가오며 용연의 위아래를 훑었다.

“지부장님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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