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림단주-81화 (81/232)

81화

“내보냈다고?”

육초백은 용연이 여자 둘을 내보냈다는 보고에 픽, 웃고 말았다.

아직은 여자를 모를 수도 있고, 잠든 사이 낭수련을 훔쳐 갈까 봐 경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조심스러운 성격이란 건 알아냈다.

“시작이 좋아. 젊은 친구가 시원시원하네. 잘 감시하고 방에서 나오면 바로 보고해.”

육초백은 차를 한 모금 입에 머물고는 자리를 옮겨 탁자에 앉았다.

[낭수련의 모양과 흡사한 물건을 발견했습니다.

물어볼 사람이 없어 직접 문의하는 것이 옳다 여겨 보내오니 답을 바랍니다.

동동 육초백.]

구차하지도 않고 건방지지도 않은 적정한 글이었다.

잘 접어 방 한편에 둔 새장으로 다가가 전서구의 다리에 묶었다.

“젊은 친구를 얼마에 구슬려야 하려나.”

전서구는 낭인들의 제국이라 불리는 사야벌(四野閥)에 달아 놓은 끈에게 갈 것이다.

혼구당(鼲久堂).

이름 그대로 다람쥐들처럼 날랜 자들이 모인 낭인 패거리다. 당주인 안서에겐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공을 들여 놓았다.

사야벌주를 만날 위치는 안 되지만, 사야벌주의 아내 중 한 명이 친척 여동생이기에 귀띔 정도는 할 수 있다.

***

동동마을의 밤은 낮보다 조금 어두운 정도였다.

밖에선 절망에 빠진 통곡 소리와 술 취해 떠드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마을을 떠돌았다.

용연은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다.

낮에 육초백을 따라 들어왔던 골목이 환했다.

외부에서 온 손님을 받았거나 이미 방문한 손님들을 위해 밝혀 둔 모양이다.

마을은 화려한데 딱히 어느 한 군데 눈을 둘 곳이 보이지 않았다.

‘응?’

창문을 닫으려는 순간, 묘한 움직임 하나가 용연의 눈에 들어왔다.

인영 하나가 길 건너편 건물 지붕 위를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칠 장? 조금 더 되려나?

인영은 잠시 사라졌다가 앞 건물 지붕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뒤쪽을 봐도 쫓는 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예닐곱 번을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던 인영은 어느새 용연이 머물고 있는 하탄루 앞 건물까지 왔다.

쉬쉬쉬―.

잠시 사라졌던 인영이 담에서 훌쩍 뛰어올라 용연이 묵고 있는 건물의 지붕으로 올라갔다.

‘어?’

용연은 쫓아가 볼까 하다 인영을 처음 발견한 곳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인영 하나가 또 나타났기 때문이다.

달빛을 피해 슬쩍 벽으로 몸을 기울여 지나간 인영이 어디로 가는지 보려 했다.

‘아! 반대쪽에도 사람이 있었구나.’

둘이었던 인영은 시간이 지나며 열 명으로 늘었고 그들의 움직임은 인시(寅時, 새벽 4시경)까지 계속됐다.

침상에서도 창문을 통해 지나가는 것이 보였기에 알 수 있었다.

‘낮엔 쉬고 밤에만 움직이는 부류가 따로 있는 모양이네. 생각보다 정비가 잘된 마을이야.’

용연은 재미난 마을의 체계에 웃으며 잠들었다.

잠이 깬 것은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방문 앞에 멈췄을 때였다.

“손님, 아침 상 들이겠습니다.”

문이 열리고 다섯 명의 남녀가 차례대로 들어오며 탁자 위에 음식을 차렸다.

“이게 다 뭐죠?”

용연은 놀라서 침상에 앉은 채 가장 먼저 들어온 여인을 쳐다봤다.

“식사예요. 우리 하탄루가 자랑하는 음식입니다. 원하는 음식이 따로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성심성의껏 마련해 대접하겠습니다.”

비녀로 보이는 여인은 사뿐, 무릎을 살짝 굽히며 상냥하게 대답했다.

“아침부터 양이 너무 많은데요?”

“원하는 만큼만 드십시오.”

“제가 안 먹으면 이 음식은 버리나요?”

“당연하지요.”

“아! 그럼 남은 음식은 저들에게 좀 나눠 주는 건 어떨까요?”

용연은 창문을 가리켰다.

그러자 비녀는 먼저 허리를 살짝 숙인 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손님, 저분들은 거지가 아니라, 언제고 하탄루를 방문해 주실 손님들이세요. 저희는 손님께 먹다 남은 음식을 베풀라는 교육을 받지 못했답니다. 양해해 주시겠습니까?”

“…….”

용연은 비녀의 상냥한 대답에 할 말을 잃고 머리를 긁적이기만 했다.

누가 봐도 이곳은 물론이고 다른 도박장에도 갈 형편이 못 되는 사람들인데, 손님이 될 수 있기에 돕지 않겠다는 말은 충격이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 ‘월’이를 찾아 주세요.”

자신을 월이라고 소개한 비녀는 조신한 걸음으로 방을 나가 방문 옆에 섰다.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려는 모양이다.

용연은 낮게 숨을 뱉고는 속을 데울 수 있는 탕과 만두 등을 먹고 옷을 입고 나갔다.

“마을 좀 둘러보고 올게요.”

“식사는 마음에 드셨나요?”

월이는 용연을 빤히 쳐다봤다.

“분에 넘칠 정도였어요. 그럼.”

용연은 월이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서둘러 계단 쪽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어머, 진짜 그냥 가네?

막 계단으로 내려가려할 때 월이의 혼잣말이 들렸다.

‘그냥 가면 안 되는 거였나?’

용연은 멈춰 서서 이어질 월이의 목소리에 귀를 집중했다.

―차림새는 그래도 루주님이 신경 쓰시는 이유가 있을 줄 알았더니 가난뱅이네. 칫.

‘아!’

용연은 그제야 월이가 빤히 쳐다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계단을 내려오며 멋쩍게 웃었다.

아무래도 이곳에선 돈을 좀 써야 할 것 같았다.

‘구 향주님에게 부탁하자.’

긁적긁적.

용연은 이곳을 출입하는 사람들의 예의 같은 것들에 대해 공부할 필요를 느꼈다.

산책은 외연 식구가 용연을 발견하기 편하도록 마을 중심이 아니라 외곽 위주로 돌았다.

삐류류―.

새소리가 난 곳을 힐끗 돌아보니 나무 뒤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용연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남회가 길을 잃은 사람처럼 주위를 몇 번이고 두리번거리며 다가왔다.

“동동마을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넓은 줄 몰랐네요. 향주님께 말씀드려서 이 근처에 일 좀 만들어야겠는데요?”

남회는 동동마을에서 나는 돈 냄새라도 맡은 것처럼 주변을 세세히 눈에 담았다.

“저도 처음이라 많이 놀랐어요. 구 향주님은 멀리 계시나요?”

“용 학림이 향주님을 특정했으면 오셨을 텐데, 수습이 급한 곳이 있어서 그쪽으로 갔습니다. 향주님과 나눠야 할 얘기가 있나요?”

“……돈 얘기를 해야 해서요.”

용연은 망설이다 멋쩍게 입을 열었다.

“얼마나 필요하시죠?”

“학림은 얼마까지 사용할 수 있는지 아세요, 남 백주님?”

“학림?”

남회는 용연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학림, 교림, 선림에 따라 다를 것 같아서 물어본 거예요.”

“아. 제가 알기론 그런 구분은 없습니다. 그러니 원하는 금액이 얼마인지 말씀해 주시면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얼마나 필요한지 몰라서요.”

“예?”

“루주란 사람의 얘길 들어보니, 하룻밤에 은자 한 냥이고 도박을 하려면 은자 열 냥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저는 공짜로 지내라고 하네요.”

“공짜요?”

“예. 제 물건을 탐내고 있거든요.”

용연은 웃으며 양손을 들어 보였다.

“그 팔찌 말입니까?”

“예.”

“간이 큰 자네요. 용 학림의 물건에 눈독을 들이다니요. 식구들을 데려와서 정리할까요?”

“알아볼 것이 있어서 머무는 거라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그럼 며칠이나 머무를 생각이죠? 닷새? 열흘?”

“열흘 정도면 될 것 같아요.”

“하루에 열 냥씩, 은자 백 냥을 준비하겠습니다.”

“아니요. 여기선 은자 몇 냥만 있으면 될 것 같고요. 은자 열 냥은 물건과 함께 제 집에 전해 주셨으면 해요. 가능할까요?”

“얼마 전에 머물렀던 산속의…….”

“예, 거기요.”

“아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거기 사는 분이 필요할 것 같은 물건과 함께 전해 주겠습니다.”

“털보 아저씨가 살고 계신데, 제가 보냈다고 하면 안 받을지도 몰라요.”

“용 학림, 그 부분은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공심회에서 보여 준 용연의 활약만 기억하던 남회이기에 용연의 순수한 모습에 큰형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혼자일 것이다.

산중에서 혼자 지내는 사람에게 누군가의 염려는 생각 이상으로 큰 위로가 된다. 용연은 그런 경험이 없어서 모를 뿐이다.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만 하던 중이었어요. 남 대주님, 부탁할게요.”

용연은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 웃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오늘 같은 대화를 할 필요 없도록 미리 말해 놓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용 학림이 생각하는 은자 백 냥의 가치를 정하고 제게 알려 주세요. 그러면 돈뿐만 아니라 다른 지원을 할 때 이렇게 긴 대화를 할 필요가 없게 될 테니까요.”

‘남 대주님이 이전과 달라졌네?’

용연은 남회의 차분하게 이끄는 대화에 속으로 깜짝 놀라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지원해 주는 쪽은 구선일 것이다. 하지만 용연은 지금처럼 자신과 남회만이 알 수 있는 기준을 정해 놓는 편이 훨씬 좋았다.

“제가 직접 가 볼 생각이니 걱정 말고 이 주머니부터 받으세요.”

남회는 품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 용연에게 건넸다.

받아든 용연은 무게를 가늠하고 놀라서 남회를 쳐다봤다.

“은자 스무 냥과 돌덩이 하나 넣었습니다.”

“돌?”

“보석인데, 혹시 몰라 같이 넣었어요.”

“아…….”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표식 남겨 주시고요. 저는 이만 가겠습니다.”

용연은 숲으로 들어가는 남회의 뒷모습을 보고 멋쩍게 웃으며 주머니를 품에 넣었다.

어쩌면 세 곳의 식구들과 단원들의 관계는 용연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숲에서 나와 외곽 길을 따라 마을을 마저 돈 후 하탄루로 향했다.

‘응?’

미묘한 감각이 사방에서 느껴졌다.

길에선 느끼지 못했는데 건물로 향하자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위협이 될 정도의 기세들은 아니었으나 상당한 숫자를 감지했고, 지금도 더 늘어나는 중이었다.

어젯밤과 다른 점은, 육초백이 있고 없고의 차이뿐이기에 이곳에서 육초백의 영향력을 알 수 있었다.

마을 전체가 육초백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하탄루밖에 못 봐서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분위기로 봐서는 이곳 대부분이 하탄루주와 같은 성씨를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군림단의 교림까지 올라갔던 할아버지가 이런 곳에서 여생을 보내신 이유가 궁금해진 것이다.

용연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좌측과 우측에 있는 건물 위쪽을 올려다봤다.

각 건물 난간에 수십 명의 인영들이 용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싸우려는 것이 아니기에 어깨를 으쓱하곤 다시 하탄루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

“이보게, 젊은이!”

고개를 돌리니 머리가 하얗게 센 육십 대 노인이 이 층 난간에 나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좀 올라오게.”

노인은 할 말만 하고는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주루 입구에 있던 장한 두 명이 용연에게 다가왔다.

“어르신이 물어볼 게 있으시다니 올라가자.”

장한 둘은 대뜸 용연의 팔을 양쪽에서 붙들려 했다.

용연은 뒤로 물러나며 두 장한을 제지하듯 손바닥을 미는 시늉을 하곤 주루로 들어갔다.

두 장한은 계단까지 따라온 뒤 용연이 올라가자 다시 밖으로 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