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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단주-76화 (76/232)

76화

―다 먹어치웠다.

몽외의 표정과 목소리가 펄펄 끓는 물에서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물이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용연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몽외가 들어간 방을 돌아본 뒤 조리를 서둘렀다.

“몽외 선림님, 식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나와서 드시지요.”

용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문이 열리며 몽외가 나왔다.

정자의 식탁에 밥과 돼지고기볶음이 먹음직스럽게 김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크크크. 좋아. 아주 적당한 놈을 잡아왔어. 기다린 보람이 있구나.”

몽외는 따라오는 용연을 힐끗, 돌아보곤 정자로 가는 걸음을 서둘렀다.

방을 나서는 순간 코로 들어온 돼지고기 익은 냄새가 입맛을 돋운 것이다.

자리에 앉은 몽외가 밥공기를 내민 것은 고작 두어 번의 젓가락질 후였다.

“더.”

“예.”

용연이 서둘러 밥과 돼지고기볶음을 채워 놓자 몽외의 젓가락질이 다시 시작됐다.

밥 한 그릇이 거뜬히 들어갈 것 같은 입에 반 그릇의 양을 먼저 넣고 나머지 반을 돼지고기볶음으로 채웠다.

용연도 눈치를 보며 식사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몽외의 격렬한 젓가락질을 구경하느라 손을 멈추게 됐다.

몽외는 무려 다섯 그릇을 비우고 나서야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밤이라 선선하고, 빛은 적고, 안가의 이 냄새까지.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크크크.”

“저도 그랬습니다. 내일 아침은 어떤 걸로 드시겠습니까?”

“말린 면이 있으면 좋겠군.”

“밤에 반죽해서 널어놓으면 아침엔 꾸덕해질 것 같습니다.”

“좋아, 좋아.”

몽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 의자를 뒤로 젖혀 천장에 뚫린 구멍 네 개를 쳐다봤다.

깊은 눈이 한 번, 두 번 감겼다 떠졌다.

“등 교림은 이번 임무에서 죽거나, 평생 단의 무공을 사용하지 못한 채 살아가거나, 둘 중 하나였어야 했다.”

“예?”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되기를 바란 사람들이 있다고 해야겠지. 평생을 단원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그 짓을 강제로 그만두게 하면 그의 전부를 뺏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이후의 삶이 제대로 꾸려질 리가 없을 테니까.”

몽외는 눈동자만 내려 용연을 쳐다봤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무심코 한 호흡 쉬며 혹시 모를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다.

“……누군가는, 말씀대로 뭘 하며 살아야 할지 몰라서 주위사람들과 가족을 괴롭힐 겁니다. 그리고 결국엔 자신도, 가족도 다 잃겠지요.”

용연은 어릴 때 봤지만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할아버지 용잠의 모습과 아버지로부터 들은 얘기를 떠올리며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그러자 몽외는 의외였는지 젖혔던 상체를 세우며 용연을 응시했다.

“가족 중에 단원 출신이 있는 거냐?”

“할아버지께서 교림까지 올라가셨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함자가?”

“외자로 잠 자를 쓰셨습니다.”

‘용잠!’

몽외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몇 달 전에 선림이면서 교림일 때 후배였던 강검이 용잠에 대해 물어본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삼십여 년 전에 교림이었던 용잠이란 분을 기억하느냐고.

―크크크. 강 선림, 내가 오지랖이 그 정도까지 넓지는 않아.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넘겼으나, 몽외는 용잠이란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강검이 기억 못하 는 이유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용잠은 단원이라면 누구나 탐냈을 것 같은 무공을 익힌 것도 아니고, 외부에 알려질 만한 사건의 중심에 있어 본 적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는 스스로 단을 떠났다.

몽외가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매우 특이한 기록 하나 때문이었다.

용잠이 학림부터 교림으로 그만둘 때까지 임무에 실패한 적이 없다는, 혼자서 투입되든 몇몇과 협력하든 결과는 언제나 무사 귀환이었다는.

몽외는 이유가 궁금해 몇몇 교림들을 만나 용잠의 사연에 대해 물었다.

경을 친 교림도 있었으나 용잠을 이해했던 한 교림이 설명을 해 주었다.

―용 교림은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어. 모든 일을 즉흥적으로 벌이는데 희한하게 성공을 해. 위험을 감지하는 특별한 능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잘 피하기도 하고. 그러니 같이 일할 사람이 없지. 누구든 다 똑같아지는 것 같으니.

몽외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말이라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의 함자를 들어 보셨습니까?”

용연은 몽외가 인상을 쓴 채 한동안 말이 없자 조심스럽게 물었다.

“들어 봤다. 함께 임무 수행을 해 본 적은 없지만, 후임 시절에 선임이 교림들과 얘기하는 것을 들어서 기억하고 있다.”

“예에.”

용연은 몽외가 용잠에 대해 안다고 하는 순간 창피해져서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특이했던 분으로 기억한다.”

몽외는 용연의 표정을 봤지만 개의치 않고 자신의 생각을 말해 주었다.

“특이?”

“단 한 번도 임무를 실패한 적이 없는데, 특별한 무기나 무공을 갖거나 익히신 것도 아니었다고 하더구나. 위험을 감지하는 특출한 능력까지 있으셨다니, 함께 활동했던 분들로서는 싫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 몽외 선림님이 말씀하신 분과 제 할아버지는 다른 분일 겁니다.”

용연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몽외의 말을 부정했다.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었다면서 아들에겐 죽을 때까지 갚아야 할 빚을, 며느리에겐 홧병으로 인한 죽음을 안겼단 말인가?

그런 사람이 할아버지일 리가 없는 것이다.

“크크크. 네가 할아버지를 싫어하든 말든 내 알 바는 아니다만, 내 기억을 의심하는 건 넘어갈 수 없구나. 다른 사람이라고?”

몽외는 확장된 동공을 유지한 채 얼굴을 앞으로 내밀었다.

용연은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닫기를 수차례 반복했으나, 결국 말은 꺼내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할아버지에 대해 좋게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 저도 모르게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좋게? 내가 무슨 권리로 선배였던 분에 대해 좋고 싫음을 함부로 말할까. 그분이 네 할아버지라고 해서 기억을 떠올렸을 뿐이다.”

“그분은…….”

“할아버지를 언제 마지막으로 봤느냐?”

몽외는 용연이 용잠에 대해 말을 꺼내려하자 귀찮은 표정으로 말을 끊으며 물었다.

“마지막 모습은 본 적 없고 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신 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보지 못했다?”

“예.”

“……그렇군. 알았다.”

몽외는 용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머릴 젖혀 천장을 올려다봤다.

‘뭐지?’

용연은 개운치 않은 느낌에 미간을 찌푸렸다.

삼제의 수련을 게을리 할 때면 아버지는 항상 할아버지로 인해 벌어진 집안의 화에 대해 말씀하셨다. 물론 그 어떤 것도 직접 확인한 적은 없다.

당연한 것이, 자신을 위해 남은 생을 바친 아버지의 희생을 보면서 어떻게 다른 생각을 한단 말인가?

그런데 몽외의 질문 몇 개로 아버지의 말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든다.

오싹!

용연은 오한이 들며 머릿속이 하얘지고 얼굴은 창백해졌다.

따악!

“컥!”

경쾌한 소리와 함께 머리를 뒤흔드는 충격을 받고 뒤로 자빠졌다.

쿵.

용연은 쓰러진 채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게 얼굴까진 안 올라오는 모양이지? 크크크.”

몽외는 손맛이 괜찮다는 듯 검지를 엄지로 문지르며 웃다가 순식간에 신형을 움직여 자빠진 용연의 옆에 나타났다.

잠시 지켜보던 몽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버지 말을 들을 때는 아버지 말이 옳은 것 같았는데, 내 말을 듣다보니 내 말이 옳은 것 같지? 크크크.”

몽외는 놀리듯 물었다.

“저는…….”

“아버지가 말할 때도, 내가 말한 것도 확인해 볼 생각은 안 들더냐? 네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거야 네 자유다만, 그 때문에 단이 피해를 입어선 안 돼. 앞으로 누가 물을 때는 네가 보고 들은 것이 아니면, 입 닫아. 알겠냐?”

“……예.”

용연의 입에서 멍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머릿속이 복잡했는데 몽외의 말로 깔끔하게 정리가 됐기 때문이다.

고향으로 돌아가 확인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

어쩌면 진즉부터 궁금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의 생각을 애써 부정하고 아버지의 말에 매달렸을 것이다.

그것이 가장 편했을 테니까.

“네 할아버지 얘긴 네가 직접 확인한 뒤에 다시 해 보기로하고. 등 교림의 얘길 좀 더 이어 가 볼까? 네가 고립됐다고 여긴 이유와 등 교림의 한계 극복은 어떤 연관이 있느냐?”

‘최적.’

용연의 머릿속으로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응아린을 벽 속의 두 괴물로 제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해 준 한마디였고, 섣부른 판단이 목숨을 앗아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한마디이기도 했다.

“한계 극복에 대해선 모릅니다.”

“그러면?”

“등 교림님이 제가 주입해 준 잠유기를 받고서 깨달은 바가 있다고는 했습니다.”

“깨달음?”

“최적. 그, 탁목이란 자를 어떻게 하면 죽일 수 있는지 저절로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최적? 크크크. 그런 말을 했다고?”

몽외는 뭐가 그리 재미난 지 눈과 입을 크게 뜨고 벌렸다.

“예.”

“크큭. 크하하.”

몽외는 양손을 교차시켜 자신의 어깨를 꾹꾹 눌러 대며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한참을 웃어 댔다.

“몽외 선림님,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려 주실 수 없으신가요?”

“크흐. 그래, 그랬구나. 네가 왜 고립이란 말에 갇혔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몽외는 용연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등언을 옆에서 지켜보다 용연도 깨닫는 바가 있었는데, 그것을 실현시켜 보려 나름 노력했지만 경험과 능력의 부족으로 실패했던 것이다.

스스로 만든 틀에 갇힌 경우다.

그 정도만 해도 말도 안 되게 훌륭한 공부였으나, 겪어 본 용연의 성격은 칭찬보다 실제적인 조언을 원할 것 같았다.

“알려 주십시오, 몽외 선림님. 제 짧은 지식으론 도저히 해결할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이렇게 간청드립니다.”

용연은 곧장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크크크. 내가 내일 아침으로 뭘 먹겠다고 했지?”

“예? 국수를 드시겠다고.”

“그러려면 지금부터 반죽을 해야 될 것 같은데?”

“아…….”

용연의 입에서 맥 빠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중요한 말이 나올 것 같아 잔뜩 기대했건만 몽외가 국수 얘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아! 면은 밀가루가 중요할까, 물이 중요할까, 육수가 중요할까? 어디 너는 뭘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지 보자. 크크크.”

몽외는 툭, 던지듯 말을 꺼내고는 웃으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밀가루? 물? 육수?”

홀로 남은 용연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몽외가 남긴 숙제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어느 한 가지도 소홀하면 맛이 나질 않는 국수에 뭐가 중요하냐는 질문은 뭐란 말인가?

어쩌면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엉뚱한 말을 화두처럼 던진 것일 수도 있다.

***

용연은 새벽같이 일어나 불을 지폈고 말린 고기가 우러나도록 육수를 냈다.

힐끗.

몽외가 언제 나올지 몰라 방을 돌아본 것이다.

진즉에 육수가 끓고 있는 것을 알 텐데 아직 나오지 않고 있었다.

면은, 손가락 두 마디 넓이에 팔뚝 정도의 길이로 꾸덕하게 말라 있었다.

만졌을 때 손가락이 달라붙었다 떨어지는 것을 보니 숙성도 잘된 것 같았다.

이제 몽외만 나오면 된다.

이런 용연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끄아, 음.”

몽외가 방문을 열고 나오며 기지개를 켰다.

양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니 안 그래도 큰 키가 배는 더 크게 보였다.

“음?”

불가에 앉아 있는 용연이 의외이기라도 한 듯 놀란 눈을 하곤 행동을 멈추라는 듯 손바닥을 펴 내밀었다.

“몽외 선림님, 일어나셨습니까?”

용연은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아직 안 넣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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