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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단주-75화 (75/232)

75화

몽외는 용연이 옷 안에 아무거도 입고 있지 않자 재미난 것을 발견한 표정으로 다가오라는 손짓을 했다.

쉬익―.

용연의 발이 땅에서 떨어지며 빠른 속도로 몽외의 앞까지 빨려들 듯이 이동했다.

“정말이군. 그럼 조금 전에 내 손이 느꼈던 감촉은 뭐지?”

“……제 등을 때리신 것 같습니다.”

“등?”

빙글.

용연의 몸이 반 바퀴 돌고 멈췄다.

턱.

몽외의 손이 등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 말랑해.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응아린!’

용연의 시선이 손목으로 향했다.

“거짓말을 한 거냐?”

용연이 고개를 숙이자 몽외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난폭해질 것처럼 일그러졌다.

“아닙니다. 등이 아니라면 이 녀석이 한 짓 같습니다. 응아린이라고 우연히 얻게 된 팔찌입니다.”

용연은 돌아서며 양손을 들어 올려 응아린이 보이도록 했다.

“짓? 그런 것 같다고?”

“확신은 있지만, 조금 전처럼 하라고 하시면 할 수 없기에 그리 말씀드린 것입니다.”

용연은 말을 마치고 마른침을 삼켰다.

“크크. 그 팔찌가 위험을 감지할 뿐만 아니라 막아 주기까지 한다?”

몽외는 광대를 높게 들어 올리며 위아래 맞물린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위험해.’

용연은 몽외의 기괴한 표정을 보자 저절로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얼굴과 달리 주변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반짝.

긴장한 표정으로 몽외를 보느라 용연은 자신의 손에서 순간적으로 뿜어 나온 금빛을 보지 못했다.

“호오, 좋은 물건을 차고 있구나.”

“예?”

“그 물건이 반응을 했어. 내 의도를 주인보다 먼저 느끼고 반응하는 물건이라. 재미있군. 크크크.”

몽외는 용연에게 듣고 싶었던 대답 중 한 가지를 미리 들은 것 같았다.

저 물건 덕분에 등언을 도울 수 있었던 모양이다.

흥미가 담긴 눈으로 용연을 쳐다봤다.

‘물어볼까?’

용연은 몽외와 눈이 마주치자 며칠 동안 해 온 고민을 털어놓고 충고를 받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몽외라면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다.

꿀꺽.

용기를 내려니 입이 말라 왔다.

학림 시험 때 손가락 하나로 자신의 몸을 접고 구기던 분이라면.

앞으로는 지하 석실에서 삼 일 동안 의식을 잃는 일 따윈 겪기 싫었다.

“크으, 역시 네놈은 재미있어.”

몽외는 광대를 한껏 끌어 올리며 웃었다.

자신을 빤히 쳐다본 상태로 다른 생각을 한다?

단 한 번도 그런 후배 단원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선림 한둘과 삼정을 제외하면 벌써 반쯤 죽여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눈앞의 애송이 학림은 그렇게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듣고 싶었다.

“말해 봐, 무슨 생각을 했기에 그런 눈빛인 게냐?”

“예?”

“방금 한 생각. 질문이든 뭐든, 듣고 싶어졌다.”

몽외는 다그치지 않았다.

혼내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용연은 그제야 용기를 낼 수 있게 됐다.

“궁금한 것이 있는데, 어떻게 여쭤 봐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거. 뭐냐?”

“혹시 몽외 선림께선 갖고 계신 것들, 그러니까, 무기나 무공이나 상이한 내공 같은 것들로 인해…… 고립된 것 같은 기분이 든 적이 있으십니까?”

용연은 자신의 상태를 표현할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감정으로 대신했다.

용연의 질문이 끝나는 순간, 몽외의 동공 깊숙한 곳에서 이채가 일어났다 사라졌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용연은 지켜보고 있었기에 그 변화를 봤다.

‘있다!’

용연은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봤다.

며칠째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매던 미로에서 이제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눈까지 반짝였다.

그러나 몽외는 용연의 기대와 달리 바로 대답하지 않고 턱을 매만지다 천천히 구부렸던 몸을 일으켰다.

용연의 고개가 따라 들렸다.

“이런 질문은 하면 안 되는 것입니까?”

“음? 전혀. 단원 중에 네가 말한 고민에 빠져 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거다. 단지.”

몽외는 말을 멈추고 용연을 내려다봤다.

휘스스―.

안가 내부의 공기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그때였다.

정자를 중심으로 바람이 일어났다.

흔들.

용연의 머리칼이 좌에서 우로 날렸다.

‘단지. 그다음은 뭡니까, 몽외 선림님?’

용연의 눈엔 급한 마음이 담긴 채 몽외의 입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뚝.

한순간 갑자기 몽외의 몸에서 시작된 와류가 사라지며 흔들리던 용연의 머리칼이 가라앉았다.

슥.

바로 앞에 있던 거대한 몽외의 신형이 거짓말처럼 눈앞에서 사라졌다.

‘어? 헉!’

용연은 기겁을 하며 상체를 뒤로 뺐다.

몽외의 커다란 얼굴과 무서운 눈이 바로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왜 학림이 그런 고민을 하느냐는 거다.”

“……예?”

“네가 그런 걸 고민할 정도로 많이 가졌느냐?”

“아아…….”

용연은 일단 숨을 내쉬었다.

머릿속의 수차, 응아린, 단전에 몰아넣은 두 괴물.

현재의 용연에겐 차고 넘칠 정도로 많은 것들이다.

“묻잖느냐, 질문이 어려우면 좀 더 쉽게 말해 줄까?”

“아, 아닙니다. 며칠 동안 혼자서 수련을 하다 떠오른 생각인데, 즉흥적으로 꺼낸 까닭에 정리가 안 됐던 모양입니다. 기분을 언짢게 해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몽외 선림님.”

“죄송? 크크크. 가진 게 많으냐고 물었더니 사과로 대신한다고?”

몽외는 용연의 대답에 치아를 모두 드러내며 크게 웃었다.

“제가 가진 것은…….”

용연은 소매로 이마를 훔치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기본삼공으로 쌓은 진기와 그 손목에 찬 팔찌의 기가 운기를 할 때마다 충돌했을 테고. 조절하려 했지만 말을 들어먹질 않아 며칠째 손 놓고 있었다? 이 정도가 내게 설명하려던 것 아니냐?”

“……!”

용연은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말았다.

몽외가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간 것처럼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 용연을 몽외는 집요하게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예, 예! 맞습니다. 그겁니다.”

용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속으로 대답했다.

“맞다고? 크크크. 정말이지 상상 이상으로 빠른 녀석이구나. 그렇지, 고민되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몽외 선림께서도요?”

“그래.”

“어떻게 해결을 하셨습니까?”

기대가 커진 용연의 눈이 동그래졌다.

“큭. 내 방법은 도움이 안 될 텐데?”

“알고 싶습니다!”

용연은 기대에 찬 눈을 반짝이며 몽외를 쳐다봤다.

“나는, 싹 다 먹어치웠다.”

“……예?”

오싹!

용연은 몽외의 말을 듣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저절로 몸이 떨려왔다.

“말 그대로다. 다, 전부 다, 먹어치웠다. 침묵을 강요하는 빛과 어둠까지 싹! 그러고 나니 이런 몸이 됐지. 크크크.”

몽외의 웃음소리가 낮게 깔리며 안가 내부를 떠돌며 메아리를 만들었다.

부릅.

용연은 눈에 힘을 주고 버텼다.

몽외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고, 조언일 것이다.

이어질 말을 기다려야 한다.

“여기, 이 머릿속으로 만들어 낸 또 다른 나를 꺼내서 풀어 놓았더니 알아서 먹어치우더구나. 나는 나고, 또 다른 나 역시 나지만, 음, 음과 양이라고 해야 하려나? 아무튼 그 둘을 인정하고 나니 아주 편해졌다.”

몽외는 손가락 하나를 자신의 머리에 댔다.

‘또 다른 나? 응아린과 괴물들 역시 나일 수 있다는…… 건가?’

흔들.

용연은 시간이 흐를수록 숨이 가빠지고 눈이 침침해져 오는 걸 느끼자, 재빨리 눈을 감고 거칠게 숨을 토해 냈다.

‘음?’

몽외는 용연의 행동에 이채를 띠었다.

자신이 한 말에서 뭔가를 알아냈다고?

스윽―.

몽외의 양쪽 입꼬리가 올라가자 윗니와 아랫니가 모두 드러났다.

용연의 반응에 모든 호기심이 쏠렸다.

“……몽외 선림님?”

용연은 호흡을 고른 후 정면을 쳐다보다 깜짝 놀라 몽외를 찾았다.

바로 앞에 있던 거대한 인영이 사라졌다.

오싹!

용연이 급히 어깨를 움츠리며 옆을 돌아봤다.

“힉!”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그대로 굳고 말았다.

“크크크. 돼지고기에 말린 채소를 잘 불려서 함께 볶으면 그만한 음식이 없지. 방에 들어가 있을 테니 다 되면 불러라.”

“……!”

용연의 얼굴만 한 웃음이 말을 남기로 멀어지더니 빈방 문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

생각이란 건 이럴 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용연은 무작정 밖으로 내달렸다.

돼지를 잡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

몽외는 방으로 들어와 탁자에 앉았다.

방 안을 둘러보니 아주 오래전에 잠시 머물렀던 기억이 났다.

탁탁.

벽을 손바닥으로 두드려봤다.

하루 빨리 교림에 올라가려 안간힘을 쓰던 때였던가?

몇 번인가 부상을 입었을 때 치료 때문이었던가?

아무튼 오래전 어느 때였다.

“내가 가진 것에 고립된 적이 있느냐고? 그걸 벌써 느낀다는 거냐? 크크크.”

몽외는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치아를 맞물린 채 웃었다.

하루, 어쩌면 그 이상 이곳에 머물지도 모르겠다.

말도 안 되는 선문답을 해 버리고 말았다.

학림 수준에선 상상 자체가 안 되는 경지에 대한 문답이었기 때문이다.

용연이 고립이라 표현한 감각의 정체는 교림들이 한계, 혹은 벽이라 부르는 정체된 성장의 다른 말이다.

“어제 남겨 놓은 모래사장의 네 발자국을 오늘 찾으라고 하면 십중팔구는 못 찾지. 어느 위치에 얼마나 깊이 찍혔는지 보려고만 할 테니까. 눈이 아닌 감각의 확장을 통해야 하는데, 거기서부터는 생각만 하는 사람과 직접 실현시킬 수 있는 사람으로 나뉘게 된다. 너는.”

몽외는 혼잣말을 멈추고 방문을 돌아봤다.

이어질 자신의 말을 용연이 들어선 안 되기에 어디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바쁘게 움직이는 기척과 함께 용연의 위치가 느껴졌다.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좀 더 빨리.”

몽외의 입꼬리가 이번에는 한쪽만 올라갔다.

자신도 용연의 나이 대에는 해 보지 못한 고민이라 묘한 기분이 든 까닭이다.

안가로 들어오기 전에 떠올렸던 담영호의 말이 다시 생각났다.

지금 속도로 군림단이 주는 자양분을 먹어치우며 성장한다면 몇 년 후엔 어떤 경지에 올라 있을지 예상이 되질 않는다.

꾹!

저절로 양손을 쥐었다.

기분 좋은 흥분이 머리털까지 쭈뼛 서게 만들었다.

“크크크.”

광대는 한껏 하늘로 올라가고 입에선 특유의 기괴한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용연 같은 놈을 기다렸다.

삼정이 만들어 놓은 체계에 적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정도가 아니라, 체계와 상관없이 스스로 성장하는 놈을.

***

힐끗.

용연은 부산하게 움직이다 무의식적으로 몽외가 들어간 방을 돌아봤다.

방문은 닫혀 있었다.

갸웃.

몽외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아닌 모양이다.

솥에서 김이 피어나고 있었다.

다듬은 채소를 한 움큼 쥐고 솥뚜껑을 열었다.

“윽!”

용연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다 먹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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