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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단주-73화 (73/232)

73화

“대주님은 가셨지?”

덕일과 함께 안가로 들어갔던 사내가 겁먹은 표정으로 동료를 돌아봤다.

“향주님께 보고드려야 하잖아.”

“자네도 봤지?”

“봤다기보다는, 느꼈다고 해야 하지 않나? 귀신이 나를 쏘아보고 있는 것 같았다니까?”

“그러니까, 그거. 아우 씨, 그 귀신이랑 눈 마주칠까 두려워서 볼 수가 없다.”

“뒤를 보지 말고 나처럼 앞만 봐.”

“안 그래도 그렇게 하고 있어.”

사내는 툴툴대면서도 뭔가 찜찜한지 슬쩍 일어나 뒤쪽에 있는 안가를 돌아봤다.

“어?”

사내가 뭘 봤는지 이상한 소릴 냈다.

동료는 사내가 자신을 속이려고 그러는 줄 알고 장난스럽게 곁눈질로 쳐다봤다.

그러나 사내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안가를 보고 있었다.

“뭔데?”

“이, 이리 와서 저걸 봐.”

“에이, 안 속아.”

“지, 진동이 안 느껴져?”

사내는 주춤 뒤로 물러나며 손까지 들어 올렸다.

“진…….”

드드드―.

멀리서 땅이 진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동료도 벌떡 일어나 뒤를 돌아봤다.

“아…….”

동료의 입에서도 신음 같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안가가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 가서 알리자.”

“나 먼저 간다.”

동료가 먼저 튀고 사내는 그 뒤를 쫓아갔다.

***

덕일은 향주에게 보고를 하고 돌아오자마자 안가를 지켜보라고 했던 두 식구의 닦달에 못 이겨 아침 일찍 길을 나서야 했다.

“너희 둘, 가서 안가 근처에 지진 난 흔적이 안 보이면 아주 죽을 줄 알아. 근신 정도로 끝나지 않을 테니 각오 단단히 해.”

덕일이 뒤를 돌아보자, 보고한 두 사내는 움츠러들며 구시렁댔다.

“언제는 작은 일도 보고하라면서.”

“내 말이.”

두 사내가 입을 삐죽이며 덕일의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에 추가로 차출된 네 명의 장한들이 두 사내를 힐끔거리며 투덜댔다.

“뭐야, 뭐가 있기는 한 거야?”

“아, 형님들, 괜히 반나절 날리게 하지 말고 이실직고해서 광명을 찾으세요.”

“우리 고람도 사람 뽑는 기준을 새로 만들어야 해. 겁 많은 사람 뽑으면 얼마나 귀찮은데.”

“에헤이, 다 들려요.”

네 장한들이 귀찮은 티를 팍팍 내자, 덕일에게 보고한 두 사내가 인상을 쓰며 돌아봤다.

“그쪽 조원들, 안가에 가서도 주둥이 나불대나 우리가 지켜볼 거야.”

두 사내 중 한 명이 눈을 부라리며 네 장한들을 노려봤다.

“싸울 기운도 있고. 좋네, 좋아. 이런 것들을 식구라고 챙기는 내가 바보지. 에휴.”

덕일은 뒤를 돌아봤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며 속도를 냈다.

뒤에서 여섯 명의 아우성이 들려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덕일은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았다.

“어?”

덕일이 갑자기 손을 들었다 내리며 식구들을 멈춰 세웠다.

“왜요, 대주? 뭐가 보여요?”

장한 한 명이 소매로 땀을 훔치며 다가왔다.

“어어?”

덕일은 장한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손을 흔들어 자신에게 보고한 두 사내를 불렀다.

“느낌이 다르죠, 대주?”

사내는 덕일이 이런 반응을 보일 줄 알았다는 듯이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다가갔다.

딱!

“느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지진 난 곳이 이러냐?”

덕일은 다가온 사내의 이마를 한 대 후려치곤 다시 걸음을 옮겼다.

‘며칠 전과 다르긴 한데, 지진은 아니야. 뭐지? 어라? 새들이 날아다니네?’

몇 걸음 움직이던 덕일이 갑자기 멈춰 서며 안가 주위를 빙 둘러봤다.

“뭔가 이상하죠, 대주? 저……어라?”

지진 얘길 꺼냈던 사내가 덕일 옆으로 바짝 다가가 한마디 건네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손으로 안가 옆쪽 숲을 가리켰다.

“멧돼지?”

“그러네? 대주, 저거 잡아다 구워먹죠?”

고람 식구들이 신나서 한마디씩 꺼냈다.

덕일은 식구들의 말을 무시하고 서둘러 안가로 걸음을 옮겼다.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앞쪽 벽을 올려다봤다.

며칠 전에 자신을 겁먹게 만들었던 이상한 형상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안 보이는 것 같네요, 대주.”

“기분 때문인가? 그때는 해가 있었는데도 엄청 어두웠던 것 같은데.”

사내 둘이 한마디씩 건네며 덕일의 옆에 섰다.

덕일은 두 사람이 말한 것과 똑같이 느꼈으나, 이미 벽에서 시선을 거두고 안가 내부를 훑고 있었다.

이 정도 소리가 났는데도 용연이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용연 학림! 고람 식구들이 왔어요! 용연 학림!”

덕일이 큰소리로 외치자, 그제야 고람 식구들의 표정이 굳어지며 빠르게 좌우로 나뉘어 안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웅웅웅―.

이명(耳鳴)이 머릿속을 파고들자 용연의 눈이 번쩍 떠졌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약간 푸르스름한 빛을 사방으로 산란시키는 야광석이다.

지하 석실에서 의식을 잃은 건가?

―용연 학림.

위에서 누군가 자신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손을 쥐락 펴락 해 보고 목도 좌우로 돌려보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그 충돌 이후의 기억을 떠올리려 할 때, 이번에는 여러 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웅웅웅―.

또다시 이명이 일어났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안가 내부의 벽과 부딪치며 아래를 받치고 있는 기둥까지 전달된 모양이다.

일단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내려오든지 해야 할 것 같았다.

지하 석실 입구를 밀고 나가니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좌우로 퍼져 용연을 찾고 있었다.

‘덕일 대주님?’

도망치듯 안가를 떠나던 뒷모습이라 쉽게 기억하고 있었다.

“덕일 대주님, 저 여기 있습니다.”

용연은 지하 석실 문을 닫고 안쪽으로 걸어가며 손을 들어보였다.

“용연 학림? 괜찮으세요? 무사한가요?”

덕일은 뒤로 돌자마자 놀란 눈이 돼서 달려왔다.

“그럼요. 안가에만 있었…… 왜요, 무슨 일이 있었어야 하나요?”

용연은 가볍게 대답하려다 다가온 덕일이 정색을 하고 있자 얼른 말을 삼키며 되물었다.

“아, 다행이네요. 내부도 그렇고 지진이 안가를 피해 간 모양이네요.”

“지진요?”

“이놈들이 이곳에 지진이 났다고 해서 부랴부랴 달려왔거든요.”

덕일이 사내 둘을 가리키며 돌아봤다.

그러자 용연도 그들을 쳐다봤다.

“대주님, 그 소리를 직접 들었어야 해요. 땅이 막 흔들리고 난리도 아니었다니까요? 오죽하면 거리도 제법 되는데 냅다 달려갔겠어요?”

“거리?”

용연은 두 사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되물었다.

“표식을 해 둔 곳요. 용연 학림이 또 필요한 것을 적어 놨을지도 모르니 가 보라고 시켰거든요.”

덕일이 사내 대신 대답하며 소매로 이마를 훔쳤다.

사내들 입에서 거리를 두고 안가를 지켜봤다는 말이 나올까 봐 나선 것이다.

‘표식이 있는 곳에서 진동을 느끼고 지진이라 여겼다고? 설마 그때의…….’

용연은 생각에 빠져 덕일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사내들이 말하는 진동의 원인이 지하 석실에서 시작됐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 덕일 대주님?”

용연은 생각에서 깨어나며 덕일을 쳐다봤다.

덕일이 잔뜩 긴장해서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예.”

“창고에 넣을 식재료를 갖다 주신 것이 언제였죠?”

“삼 일 전이죠.”

‘삼 일!’

용연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의식을 잃고 삼 일이나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식재료에 무슨 문제라도…….”

용연의 반응이 식재료와 관계있다고 여긴 덕일은 불안한 눈으로 용연과 뒤쪽 창고를 번갈아 쳐다봤다.

“아니요. 식재료엔 아무 문제없어요.”

“예?”

“안가에 온 지 삼 일이나 됐는데 한 일이 없네요.”

“아…….”

덕일은 안도의 숨을 내쉬는 한 편, 삼 일 만에 뭔가를 하려 했다는 용연의 진지한 태도에 입맛이 썼다.

군림단원의 삼 일과 자신의 삼 일이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덕일 대주님?”

“예?”

“안에는 별 이상이 없어 보이는데, 바깥은 살펴보신 건가요?”

“일단…… 아! 마음이 급해서 제 생각만 했네요. 바깥을 살펴보고 이상이 있으면 향주님께 보고드려서 조치를 취할 테니, 수련에 매진하세요, 용연 학림.”

“그래주시겠어요? 감사해요, 덕일 대주님.”

“모두 들었지? 바깥만 확인하고 돌아간다.”

덕일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고람 식구들은 바로 안가를 나섰다.

용연이 입구까지 마중 나가려 하자 덕일이 만류하며 식구들만 데리고 떠났다.

삼 일 동안 몸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아내고 싶은 마음이 커서, 용연은 인사만 건네고 곧장 묵고 있는 방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자리를 잡고 가부좌를 튼 뒤, 머릿속의 수차를 천천히 돌렸다. 몸을 관찰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기에 기대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머릿속에서 수차로 끌어 올리겠다는 의지를 전신으로 내보냈을 때였다.

후끈!

‘어?’

용연은 갑자기 아랫배가 뜨거워지며 열기가 장기들 사이로 퍼지자 깜짝 놀라 눈을 뜰 뻔했다.

이 정도의 의지에 즉각 반응할 정도로 단전에 몰려 있었던 건가?

의아한 생각은 나중으로 미뤄 뒀다.

일단은 응아린이든 괴물이든 자신의 의지에 반응을 해 주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급해졌다.

몸의 변화만 살피고자 했던 생각이 달라졌다.

의지로 모인 단전의 진기로 창천비와 악조궁을 펼치면 어떨지 궁금해졌다.

그렇게 단전에만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찌르르―.

‘헉!’

심장이 열리며 칼날 섞인 피를 내보내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아려 왔다.

아랫배의 뜨거움은 여전히 느껴졌으나, 조금 전처럼 장기들의 활발한 기능까진 떠올리지 못했다. 모든 신경이 심장 부위와 가슴으로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 들리는 이상한 소리.

차라― 차라락―.

손목에 차고 있는 응아린이 길이를 늘였다 줄이는 소리다.

‘순서가 잘못된 거 아냐? 왜 위에서 아래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지?’

눈감은 채 용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는 까닭이다.

그래도 전혀 소득이 없지는 않았다.

왜인지는 몰라도 응아린은 가슴에 똬리를 틀었고, 두 괴물은 단전에 자리를 잡았다.

머릿속의 수차로 만들어 낸 진기가 너무 작아서 순서가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의문은 곧장 실천으로 이어졌다.

머릿속의 수차를 최대한 빠르게 돌려 높이 끌어 올린 후, 바닥과 충돌시킨, 진기라고 부르기엔 이상한 ‘의지’를 전신으로 퍼뜨린 것이다.

이번에도 단전이 먼저 반응했다.

화악!

‘뜨거!’

아랫배가 폭발할 것처럼 뜨거워졌다.

그러자 응아린도 빠르게 길이를 늘이며 어깨를 지나 가슴을 금빛으로 감쌌다.

촤르르― 탁!

몸통을 이분한 것처럼 가슴은 갑갑하긴 하지만 온도 변화를 전혀 느낄 수 없는 반면, 그 아래쪽은 엄청난 열기로 인해 장기가 타 버릴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이, 이대로 더 버티다간 또 정신을 잃을 것 같아.’

응아린이 갑옷으로 변하며 숨통을 조여 왔는지 호흡이 이어지질 않고 있었다.

조금 더 버텨 보려 했지만, 이내 앉은 채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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