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무묵이 좌측을 돌아보며 혼잣말을 꺼냈다.
“누가……. 어, 언제 저런 일이!”
공석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가 기함을 하며 입을 닫았다.
자량이 봤던 그 광경을 이제야 본 까닭이다.
“구 향주, 식구들 데리고 떠나시오!”
그 순간 무묵의 외침이 장내를 들썩여 놓았다.
“구 향주?”
공석이 무묵을 돌아봤다.
“예의?”
무묵은 자량과 시언이 있는 곳을 곤으로 가리키며 썩은 웃음을 짓다 몸을 돌려세웠다.
“어딜.”
공석은 무묵이 밖으로 달아날 줄 알았다가 안쪽에 쓰러져 있는 용연을 향해 움직이자 멈춰 섰다.
‘뭐지?’
공석은 무묵의 행동이 이상해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이내 두 회주와 합류했다.
“괜찮냐, 용 학림? 담 교림님이 오셨다.”
무묵은 용연을 똑바로 뉘며 잠유기를 주입하기 위해 등에다 손을 대려 했다.
슷.
“무 학림, 물러나.”
담영호가 특유의 담담한 표정과 말투로 무묵을 물러나게 만들며 모습을 드러냈다.
위에 있던 공석은 담영호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담을 내려다봤고, 자량과 시언도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자신들이 담영호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서.
“죽은 자에게 신경 쓸 여유가 있으면 곤란해지는 사람이 여기 셋이나 있다네.”
자량은 도를 등 뒤로 세우며 말부터 건넸다.
묵 노야가 했던 말이 있기에 일단은 살피는 것이 먼저였다.
“무 학림, 내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나?”
담영호는 자량의 말을 무시하고 용연의 미간 사이와 배를 만지며 무묵에게 물었다.
“계속 근방을 들썩이게 만들던 자가 있었는데, 그자가 자신이 도망치기 위해 저 셋을 원래보다 빨리 불러들였습니다.”
“무 학림이 허락한 일인가?”
“용 학림의 판단을 믿고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군.”
담영호는 입가를 씰룩였다.
무묵의 저 한마디 안에 많은 말들이 담겨 있음이 느껴진다.
그 정도로 용연이 무묵을 납득시킬 만한 활약을 했을 것이다.
“너희들은 사천 땅에서 학림을 유인하고 죽이려 했다. 인정하느냐?”
담영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멀쩡히 내려다보고 있던 공석이 훌쩍, 신형을 띄워 자량과 시언의 옆으로 내려섰다.
쿠콰콰콰―.
공석이 뛰어내린 직후, 그곳이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뭐하는 짓이지?’
자량은 담영호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자신들을 떨어뜨려 놓기 위해 애를 써도 모자랄 판에 셋을 한자리에 모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불현듯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떠올랐다.
공석을 공격한 이유가 회주 셋을 한 자리에 모아 놓기 위해서라는.
학림 하나가 자신의 손에 죽었는데 다른 학림은 저자의 등장과 함께 아예 싸울 생각도 하지 않는다.
자량의 시선이 담영호에게 고정됐다.
왜 저리 화가 나 있는 걸까?
담영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강자는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지만, 약자는 생존을 위해 상대의 감정을 파악하고 최대한 위험으로부터 멀어지려 노력한다.
자량이 부하들에게 해 주던 말이었다.
‘저자, 강하다!’
보는 순간 알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살피게 됐다.
자량은 그것이 스스로 약자임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미미한 움직임 하나.
“아, 안 죽었다고?”
자량의 눈이 귀신을 본 것처럼 부릅떠졌다.
***
일어나야 하는데 움직여지지 않는다.
눈은 뜬 것 같은데 눈앞이 캄캄했다.
이런 감각, 안가에서 겪었던 그 느낌이다.
돌기들은 다친 부위인 옆구리 쪽에 모여 있을까?
처음이 아니라 그런지 당황스러움보다 돌기들을 빨리 찾고 싶었다.
‘이러면 좀 더 빨리 찾을 수 있겠지?’
용연은 머릿속에 만들어 놓은 수차를 돌렸다.
들썩.
‘어?’
갑자기 작은 선이 벌어지며 빛으로 가득해졌다.
“용 학림, 괜찮냐?”
‘무 선배님 목소리인데.’
“눈은 풀리지 않았고. 용 학림, 내 목소리가 들려?”
“들립니다, 무 선배님.”
용연은 자신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가 귀로 들리자 그제야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안 깨어나면 어떡하나 싶었다. 그걸 맞고도 몸이 멀쩡해서 더 놀랐고. 아무튼 깨어나서 한숨 돌렸다. 담 교림님이 오셨으니 이제부터는 회복하는 데 집중해.”
“담 교림님이 오셨군요.”
“그래, 오셨다.”
무묵의 시선은 앞쪽을 향해 있었다.
담영호와 세 회주의 싸움이 이미 시작됐기 때문이다.
퀴악!
도에서 빠져나온 검기가 모이고 모여 실처럼 두꺼워졌다.
쩡!
담영호는 혼원륜을 내밀어 사기(絲氣)와 부딪치자마자 몸을 회전시키며 왼손을 뿌리듯 휘저었다.
퍼버버벅―.
세 회주의 명령으로 달려들던 무인들의 살과 뼈가 터져 나갔다.
콰우―.
공중에서 굉음이 일어나며 담영호를 향해 시언의 공공비연수 서른여섯 개의 손 그림자가 떨어져 내렸다.
차라락―.
담영호는 혼원륜을 회수한 후, 머리 위로 던져 둥근 띠처럼 만들었다.
콰콰콰콰콰―.
엄청난 굉음이 미친 듯이 일대를 울려 댔다.
“담 교림님!”
턱.
“앉아.”
무묵이 일어나려는 용연의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나 용연은 더 강하게 일어나려 애썼다.
“용 학림, 담 교림님은 아직 시작하지 않으셨다.”
“예?”
용연은 무묵의 말에 행동을 멈추고 돌아봤다.
“저 정도 공격으로는 담 교림의 옷자락 하나 건들지 못해.”
무묵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담영호의 전신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진동음과 함께 장내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드드드드―.
혼원륜을 뚫고 뭔가가 솟구쳤다.
상체만 사람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인영.
담영호가 교림의 신법인 망량을 펼치며 만들어 낸 모습이었다.
공공비연수를 펼친 직후임에도 시언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담영호를 향해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쾅!
담영호는 손바닥으로 시언의 주먹을 받아 낸 후 살짝 아래로 꺾었다가 놓아주며 걷어찼다.
퍽!
“큭!”
시언은 등 뒤쪽 담벼락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척.
담영호가 손을 들자 빛무리가 날아와 감겼다.
그 상태 그대로 자량을 향해 휘둘렀다.
쩡!
후아아악―.
엄청난 풍압이 자량의 전신을 휩쓸고 지나간 뒤,
척.
자량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척. 척. 드드드드드―.
뒤로 내달리듯 도를 든 채 뒷걸음질 치던 자량이 땅에 발을 파묻으며 오 장 가까이 밀려난 것이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공석의 목소리는 이어지지 못했다.
쾁.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
공석은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자신의 머리칼을 쥐고 있는 얼굴을 쳐다봐야 했다.
퓻.
짧은 소리가 목에서 들렸다.
처음 일격을 받아 준 것은, 말 그대로 받아 준 것인가?
가까스로 막았었다고 믿도록 만들었던 것인가?
툭.
공석은 제대로 된 공격 한 번도 성공시키지 못하고 목에서 피를 뿜으며 죽어 갔다.
“어, 엄청나. 교림 한 명이 이 정도라니.”
담벼락에 박혔던 몸을 빼내던 시언이 몸을 떨었다.
“도망가야 해.”
반대편에는 자량이 땅에 묻혔던 발목을 빼내며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멋지다!’
무묵은 담영호의 압도적인 신위를 보자 속에서 무언가가 복받쳐 올라옴을 느꼈다.
진심으로 담영호의 모습에 반한 것이다.
이제 자신과는 급이 다른 존재가 됐다.
“강하시네요, 담영호 교림님도.”
용연은 담영호의 신위에서 학림 시험 때 만났던 교림들을 떠올리며 일어나 양손으로 머리칼을 쥐었다.
“교림이시…… 음? 용 학림, 괜찮아?”
무묵 역시 일어나 동조하다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용연의 옆구리를 내려다봤다.
용연이 양손을 들어 올리고도 멀쩡하게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
“옆구리 말이야.”
“예? 아! 괜찮습니다.”
“정말?”
“학림 시험 때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용연은 멋쩍게 웃었다.
“학림 시험?”
무묵은 용연의 대답이 뜬금없다 여겨 반문했다.
“예. 학림 시험요. 그때, 평생 다칠 걸 다 다치잖습니까? 그때 다쳤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으로 말씀드린 겁니다.”
“기억을 한다고? 그때 얼마나 다쳤는지?”
무묵이 용연을 신기해하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럼요. 세신의 과정 때 세 번, 이후에 세 번. 그렇게 여섯 번이나 몸이 조각났었는데요. 으으으.”
용연은 몸서리를 쳤다.
세신의 과정에 이어, 온몸을 두들겨 맞고, 전신을 베여 봤으며, 그리고 평생 잊을 수 없는 온몸이 접히는 고통까지.
“그걸 견뎌 냈다고 한 거냐? 그 여섯 번의 고통을?”
무묵은 홀린 듯 혼잣말을 하다 급격한 기파를 느끼고 담영호 쪽을 돌아봤다.
마지막 남은 회주가 담영호의 혼원륜에 잘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을까?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바라며 용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용연은 담영호의 엄청난 신위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이미 옆구리의 고통 따위는 잊어버린 듯이 보인다.
멀쩡해지기라도 한 모양이다.
‘선후임이 어쩌면 이렇게 재수 없냐.’
무묵의 머릿속에 저절로 용연과 담영호에 대한 평가가 떠올랐다.
***
공석의 곁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난 자경은 숨죽인 채 공심회의 내부를 지켜보고 있었다.
“저자가 누구기에 혼자서 공석, 자량, 시언을 죽인 거지?”
덜덜덜.
양손을 교차시켜 팔뚝을 압박해 떨리는 몸을 진정시켰다.
지시가 내려온 대로 하긴 했지만, 혹시 몰라 언제든 공석에게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적당히 공석의 비위를 맞춰 주기만 하면 돼. 때가 되면 그 자리는 네 것이 될 거야.
몸도 떨리고 입가도 떨리지만, 몸은 겁나서 떨리는 것이고 입가는 좋아서 떨리는 것이다.
그토록 바라던 일이 곧 자신에게 일어난다.
자량과 시언의 부관들은 저곳에서 죽을 테니, 자경이 몸을 빼낸 적당한 이유만 만들어서 철혈사자맹으로 가면 된다.
“그분은 이런 일이 일어날 것까지 예상했던 건가?”
―공석이 죽으면 공심회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너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어. 누구에게 찾아갈지만 생각해 둬.
“당연히 진천전의 구룡각이지!”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이제 사괴를 만나 칠채석을 챙겨 ‘그분’에게 전한 뒤 철혈사자맹으로 가면 된다.
최대한 은밀히 움직여 나무 뒤의 공간으로 스며들었다.
스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