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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단주-56화 (56/232)

56화

빙―.

용연이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자 뒤쪽 하늘에 떠 있는 매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응? 뭘 발견한 거냐?’

용연의 눈에 이채가 발해졌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외연 식구들에게 부탁해 비상식량인 육포를 양손 가득 뇌물로 던져 준 보람이 나타난 것 같았다.

말을 알아들었다고는 믿기 힘들지만 매에게 육포를 다 던져준 뒤 하늘을 가리켰다.

―도망치는 자가 있으면 알려 줘.

용연의 말을 들은 매가 범위를 좁혀 하늘을 맴돌고 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중앙전각 꼭대기까진 확인해 봐야 한다.

용연이 막 앞으로 달려가려 할 때였다.

“정체를 밝혀라!”

지금까지 덤볐던 위사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게 다가오는 사십 대 사내가 용연 등을 일검에 벨 것처럼 검기를 뿌리며 떨어져 내렸다.

“제가 하겠습니다, 무 선배님.”

쾅!

용연은 사내의 가슴을 노리고 악조궁을 펼친 뒤, 창천비로 빠르게 거리를 좁혀 갔다.

쉭― 후앙―.

용연이 사내를 잡으려 손을 뻗자 사내는 재빨리 검을 휘둘러 간격을 벌리려 했다.

그러나 용연은 살짝 머리를 숙이는 동작만으로 검을 피해 낸 뒤, 다시 손을 뻗었다.

펑!

사내의 몸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큭.”

사내는 신음을 터트리며 뒤를 돌아봤다.

아직 다른 부대주들은 도착하지 않았다.

뒤쪽의 싸움에 다리가 묶인 모양이다.

‘없어. 역시 저 녀석이 발견한 건가?’

용연은 마음이 급해졌다.

일단 구선이 이끄는 식구들을 도와야 한다.

“구 향주님, 가서 식구들을 도와주세요. 시간을 벌려는 것 같은데, 희생을 줄여 주세요.”

“알았소, 용 학림.”

구선은 기다렸다는 듯이 서둘러 몸을 날렸다.

“용 학림, 이 정도는 혼자서 처리할 수 있…… 이런,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쯧.”

무묵은 자신도 모르게 멋쩍은 웃음을 짓고 말았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 그만인데 자신도 모르게 용연의 허락을 구하는 것처럼 말이 나온 까닭이다.

그때였다.

“무 선배님, 부탁드려요. 저는 밖으로 나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용연은 정문 뒤쪽을 돌아보고 있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정말 나 혼자서 여길 막으란 거냐?”

“저 녀석이 그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용연이 정문 뒤쪽 하늘을 가리켰다.

“음? 그?”

“묵 노야 말입니다.”

무묵은 용연의 손끝을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가.”

“감사합니다. 그럼.”

용연은 전력을 다해 창천비를 펼치며 정문 쪽으로 달려갔다.

‘영물이구나. 저런 걸 잘도.’

무묵은 하늘을 맴돌고 있는 매를 보고 있다 입맛을 다셨다.

열심히 먹이를 주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피식.

“될 놈은 되는 거냐!”

빙글―.

무묵은 화풀이 하듯 양손을 휘둘렀다.

쾅!

“끄아악!”

“컥!”

무묵을 처리할 좋은 기회라 여기던 무인들의 비명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얼마 전까지 둘 다 후배였는데…….”

무묵은 덤벼들던 자들을 날려 버린 후, 정문 쪽을 다시 돌아봤다.

용연의 선임이자, 얼마 전까지 학림의 막내였던 담영호를 ‘담영호 교림’이라 불러야 하는 것도 못 마땅한데, 그놈이 데려온 후임이 어쩌면 자신보다 먼저 위 서열로 올라갈 것 같은 더러운 예감이 든다.

“너희들은 그냥, 오늘 운이 없다고 생각해라. 묵 노야, 어디 있느냐!”

갑자기 기분 나쁨이 타올라 버렸다.

무묵의 시선을 받은 공심회 무인들은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

용연은 정문을 나서자마자 하늘에 떠 있는 매를 쫓아 내달렸다.

파― 웅―.

창천비를 전력으로 펼쳐 몇 장씩 건너뛰었다.

‘언제 저기까지 갔지? 설마 땅속으로?’

매가 발견했을 때 이미 저 정도까지 갔다면 그 수밖에는 없다.

용연과 무묵을 도발해 들여놓고 자신은 땅굴을 이용해 도망칠 계획이었던 것이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지?’

용연은 매가 찾은 사람, 아마도 묵 노야라 예상되는 자를 빨리 만나 보고 싶어졌다.

“휴우…….”

묵 노야는 가려져 있던 수풀을 걷어 내고 밖으로 나오며 주위를 살폈다.

이 통로는 초소와 초소 사이가 가장 먼 곳의 중간으로 나오게 만들어져 있었으나, 혹시 몰라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눈과 귀로 기를 집중시켰다.

근방에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

이제 자연스럽게 사라지면 된다.

우드득!

묵 노야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조금씩 구부정했던 등이 펴지며 손 하나 정도는 키가 커졌다.

그 상태로 신법을 펼쳤다.

팟.

힐끗.

용연은 매의 위치를 확인하다 조금 작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자 더욱 속도를 냈다.

일각여를 달리고 다시 위를 올려다봤다.

거리가 줄었을 거란 예상과 달리 매의 모습은 커지지 않았다.

용연이 달리고 있는 곳은 숲이다.

여기선 더 속도를 높일 수 없다.

판단이 선 용연은 곧장 나무 위로 올라가 나무와 나무를 건너뛰며 매를 쫓아갔다.

다시 일각여가 지났을 때였다.

멀리, 웬 노인이 암벽에 등을 기대며 뒤를 살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남 백주를 처음 만났던 곳의 건너편!’

서둘렀다.

쉭―.

방향을 틀어 노인이 볼 수 없는 각도로 길을 건너기 위해서였다.

탁. 탁. 탁.

‘음?’

일정한 보폭으로 달리던 묵 노야가 멈춰 섰다.

어떠한 경우에도 원칙을 벗어나는 행동은 하지 않아야 한다.

규칙은 불특정 변수를 감지하고 주의를 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슷―.

묵 노야의 동공이 좌측으로 움직였다.

자신이 달려온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누군가 쫓아오고 있어.’

꿈틀.

묵 노야는 미간을 찌푸리며 밟고 선 땅을 내려다보다 몇 번 발로 두드려 봤다.

속도를 모르니 언제 이곳까지 올지 모른다.

팟.

용연은 달리던 속도 그래도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잠시 안 보였던 매가 좌측 하늘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경물이 빠르게 지나가고 유난히 낙엽이 많이 깔린 길이라 속도를 내기 힘들었다.

‘나만 조심스러운 건 아니지.’

용연은 퍼뜩, 떠오르는 생각에 나무 위로 올라갔다.

상대도 속도를 늦춘다면 눈으로 확인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역시나 예측이 맞았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묵 노야는 나뭇가지에 올라선 후 뒤를 돌아봤다.

자신이 서 있던 곳을 밟기만 해도 소리가 나도록 장치를 해 뒀는데 여전히 잠잠하다.

뭔가 이상했다.

스윽―.

다시 움직이려 몸을 돌려세운 순간, 그림자가 얼굴을 가렸다가 사라졌다.

묵 노야의 시선이 곧바로 위를 향했다.

“매!”

오싹!

묵 노야는 자신의 머리 위를 맴도는 매를 확인하자마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쫓아오는 자가 설치해 둔 함정에 걸리지 않는 게 당연했다.

몸을 날려 계곡 아래로 향했다.

젖은 나뭇잎들이 소리를 먹었다.

턱.

절벽으로 뛰어내리는 척하며 손에 걸린 나뭇가지를 이용해 매달리다 흔들어서 발가락만 댈 수 있는 틈에 몸을 숨겼다.

“위험해, 위험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촉이 좋지 않다.

“괜찮으세요?”

“……!”

묵 노야는 가라앉은 눈으로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돌아봤다.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고수다.

“이런 곳에서도 약초가 자라는 모양이죠?”

어두워서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무척 젊은 목소리였다.

“어, 어허이! 다, 다가오지 말게. 여긴 약초 같은 게 자라는 곳도 아니고 디딜 곳도 없는 곳이니 어서 돌아가게!”

묵 노야는 기겁을 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영락없는 약초꾼의 목소리와 행동이었다.

“예? 그런데 왜 내려오신 거예요?”

“……!”

알면서도 대뜸 치고 들어오니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상대가 정체를 드러낸 이상 굳이 끌려갈 필요는 없었다.

“……새를 부리는 줄 몰랐으니까. 누구?”

묵 노야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 전에, 여기 계속 있을 건가요? 올라가서 좀 편한 상태로 대화를 나누는 건 어떠세요?”

“혼자서는 힘들 거야.”

묵 노야는 청년의 뒤를 살폈다.

꺾인 곳이라 청년 외에 몇이 있는지 확인은 되지 않았다.

“그래요? 그럼 몇 명 더 부를까요?”

“음? 정말 혼자라고?”

묵 노야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청년의 발아래만 무너뜨리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접었다.

확인도 하지 않고 손을 쓰는 것은 어리석은 짓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학림 용연이라고 해요.”

청년, 용연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얼굴을 보이며 묵 노야를 보며 씨익, 웃었다.

‘하, 학…… 네놈은!’

묵 노야는 용연의 얼굴을 보는 순간, 하마터면 쥐고 있던 나뭇가지를 놓칠 뻔했다.

그 정도로 용연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확장된 동공이 쉽게 수축되지 않았다.

“어어, 조심하세요. 군림단원 처음 보세요? 왜 그리 놀라세요? 그러다 떨어지기라도 하면 쫓아온 보람도 없어지잖아요. 이젠 올라가서 대화할 마음이 생기셨나요?”

“놀랍군.”

묵 노야는 진심으로 지금 상황이 놀라웠다.

명예를 중시하는 군림단원이 거짓말을 할 리 없겠지만, 분명 몇 달 전에 용연을 봤을 때는 후임이었기 때문이다.

군림단의 승급 체계가 얼마나 엄격하고 철저한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자신이다.

어느 집단이든 위로 올라갈수록 벽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군림단의 경우엔 후임에서 학림으로 올라가는 것이 가장 어렵다.

“이 정도 곡예는 학림 시험 볼 때와 비교하면 장난 수준이에요.”

용연은 묵 노야가 자신이 서 있는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인 줄 알고서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자네, 얼마 만에 학림이 됐나?”

‘얼마 만에?’

묵 노야의 묘한 질문에 용연은 표정을 굳혔다.

후임일 때의 자신을 알기라도 한단 말인가?

용연은 묵 노야를 노려보다 빠르게 이전의 눈빛으로 되돌렸다.

“일곱 달인가 여덟 달쯤? 일 년이 채 안 된 것 같네요.”

‘일 년이 안 됐다고!’

묵 노야는 눈이 부릅떠지는 걸 막기 위해 감았다.

그 모습에 용연은 기간만 듣고 저렇게 격렬한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경우를 떠올려 봤다.

단원이거나, 외부 식구들이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니라면 군림단을 오랫동안 조사해 온 곳밖엔 남지 않는다.

“생각보다 단에 대해 잘 아시네요? 아니면 저를 알고 있는 건가요?”

“후후. 현 강호를 삼분하고 있는 강호삼대세력조차 부딪치길 꺼려 하는, 고작 스물아홉 명뿐이면서, 최정예 무력 집단으로 불리는 곳을 모를 수가 없지.”

쿵!

용연의 심장이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처럼 내려앉았다.

최정예 무력 집단.

쿵쿵쿵.

심장박동이 급격히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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