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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단주-51화 (51/232)

51화

완양은 자매에게서 눈을 떼 줄지어 늘어선 수레들을 훑어봤다.

‘맹백과 귀귀 없이 나 혼자 옮길 양이 아니야. 쯧.’

마음 같아선 일대를 몰살시켜 버리고 의뢰받은 물건만 챙겨서 떠나고 싶었으나, 저 둘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다.

이럴 때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사실 종종 손맛을 느끼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덤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면 더더욱.

퍽!

완양의 부채에 머리를 맞은 무인 한 명이 그대로 고꾸라지며 즉사했다.

훌쩍 뛰어올라 수레 위에 올라섰다.

인지예, 인이예 자매가 경계하는 자세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자신 있는 거야?”

인지예는 동생 인이예가 씌워 준 면사 위로 굵고 선명한 눈썹을 역팔자로 만들며 입을 열었다.

마음 같아선 단숨에 죽여 버리고 싶었으나, 인이예가 자신을 믿어 달라며 묘책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언니가 겁먹은 표정을 지을 수 있으면.”

인이예는 인지예의 팔을 붙잡은 채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죽여 버리는 게 낫지 않아?”

“안 된다니까. 저 얼굴 하얀 사람의 무기는 독이야. 조금 전처럼 달려들었다간 무방비 상태로 당할 거야. 언니, 내 말대로 해 주면 안 될까? 응?”

인이예는 인지예가 발끈할까 봐 조바심 내며 슬쩍 잡고 있는 팔을 흔들었다.

“내가 너 때문에 정말. 알았으니 팔 놔.”

꾹.

인지예가 손을 떨쳐 내려 하자, 인이예는 손에 더욱 힘을 주며 버텼다.

“언니가 무서워하는 줄 알아야 내려오……지.”

인이예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쳐다봤다.

그러자 인지예는 낮게 숨을 뱉으며 수레 위를 쳐다봤다.

‘도대체 이렇게 겁이 많은 애가 언제 그런 수를 생각해 놓은 건지…….’

인지예는 수레를 넘자마자 인이예가 바닥에 꽂아 놓은 막대들을 쳐다봤다.

높이도 일정하지 않은 막대들.

인이예는 저 막대들로 진을 짰다고 했다.

―언니, 검기로 저자의 몸을 자를 수 있는 거리가 어느 정도야?

―뭔 소리야?

―빨리.

―삼 장?

―이 장 정도구나.

―뭐? 언니가 삼 장이라고 한 말 못 들었어?

―여, 여유 있게. 언니가 무리하지 않아야 성공할 수 있으니까.

―어떻게?

―저 막대 보이지? 바닥에 진을 설치했어. 얼굴 하얀 자가 독을 뿌리면 저게 빨아들일 거야, 거의 대부분은.

―그때?

―응

인지예는 인이예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수레 위에 서 있는 완양을 노려봤다.

“호위들이 맹백과 귀귀를 상대로 꽤 버티는 걸 보니 단주가 딸들만 보내 놓고 걱정이 됐던 모양이야?”

완양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인지예와 인이예를 눈으로 훑었다.

“당신, 우리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지?”

인지예는 어이없다는 투로 반문했다.

“알지. 금룡상단주.”

“알면서 그런 말을 한 거야? 우리 아버지는 결코 손해 볼 일을 하지 않으셔. 우리만 보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야.”

“딸 둘을 버린 건가?”

완양이 사악하게 웃으며 수레에서 내려서며 곧장 소매를 흔들었다.

파앗―.

백색 분말이 두 자매를 덮쳐 갔다.

그러자 고맙게도 인지예가 검을 떨치며 자신에게로 달려들어 주는 것이 아닌가?

막 부채를 횡으로 그으려 할 때였다.

‘응?’

뒤쪽에서 겁먹은 눈으로 자신과 언니를 쳐다보던 인이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묘한 것이, 인이예의 시선은 자신도 인지예도 아닌 중간 즈음에 닿아 있었다.

부채를 거두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이, 이런 발칙한!”

완양은 앞쪽 바닥을 보고 눈을 크게 치떴다.

자신이 뿌린 독이 그곳에 동그랗게 테를 두르고 있는 까닭이다.

쉬앙―.

“헛!”

아까보다 강력하고 빠른 검기가 무섭게 다가왔다.

다급히 부채를 들어 올려 막았다.

쩡!

“큽!”

완양의 동공이 조금 전보다 더 커졌다.

조금 전에 자신이 막았던 검기가 아니었다.

텅―.

밀려나 수레에 등을 부딪쳤다.

휘릭.

재빨리 몸을 옆으로 굴리며 피하려 했다.

그러나 완양의 동작보다 더 빠른 일검이 날아들었다.

서걱!

“……!”

완양은 허리부근이 불에 덴 것처럼 뜨겁다가 이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휴우…….”

인지예가 검을 거두며 숨을 토해 냈다.

“언니, 방금 그 검…… 명 사부님의 팔비격강(八臂隔罡)을 검기로 펼친 거지?”

“그건 또 어떻게 안 거야?”

“삼 년이 채 안 된 것 같은데 팔 성…… 언니는 정말 천재야.”

인이예는 인지예의 능력에 절로 혀를 내둘렀다.

청안검 명악현의 팔비격강이 얼마나 난해한 검인지 잘 아는 까닭이다.

“너야말로 저런 것까지 하고 대단한데?”

인지예가 앞쪽의 진을 가리켰다.

인이예가 말한 대로 완양이 뿌린 독은 정말로 진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미산법(峨嵋算法) 집(輯). 사부님께 배운 거야.”

인이예는 자랑하듯 말하며 인지예의 팔에 매달렸다.

그때였다.

쾅!

“……!”

“……!”

두 자매의 시선이 동시에 뒤쪽을 향했다.

“먼저 간다.”

인지예가 검을 등 뒤로 세운 후 훌쩍 신형을 띄웠다.

***

“늦었나?”

용연은 멀리 보이는 행렬이 멈춰 있는 광경에 미간을 모았다.

구채구가 공동산 가는 길에서 멀지 않다는 것을 알아내고 전력을 다했건만 피득 일행의 공격을 막지 못한 모양이다.

“벗어날 때를 노릴…….”

구하기는 늦었으니 몇이나 되는지 확인부터 하려고 할 때, 멈춰 선 행렬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쉭―.

용여의 신형이 곧장 허공을 가르며 솟구쳤다.

창천비를 전력으로 펼치자 십여 번 호흡을 내뱉는 동안 오 장 안으로 거릴 좁힐 수 있었다.

먼저 눈에 들어온 자는 단단한 근육을 뽐내듯 드러낸 사내였고, 그 옆에서 쉴 새 없이 비수를 휘두르는 자도 보였다.

쾅!

호위로 보이는 무인이 근육 사내의 힘을 못 이기고 나가떨어졌다.

“찢어 죽인다.”

근육 사내는 호위가 쓰러지자 곧장 달려가 다리를 잡으려 했다.

쉬악―.

근육 사내와 호위 사이로 바람이 끼어들었다.

턱.

용연의 손바닥이 근육 사내의 팔목을 잡았다.

닿았으니 이제 부러뜨릴 곳, 팔꿈치까지 진기를 보내야 한다.

뚝!

“으…….”

근육 사내는 태어나 처음 느끼는 고통에 있는 힘껏 비명을 질렀다. 아니, 지르려 입을 벌렸다. 하지만 소리는 이어지지 않았다.

용연이 팔꿈치를 잡고 원하는 방향으로 던지는 대신 스스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근육 사내, 맹백은 자신의 팔꿈치가 부러진 채 뒤로 굽어지자 비명 지르는 것도 잊은 채 용연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콰직!

용연이 응아린으로 맹백의 광대를 때려 함몰시켜 버렸다.

쐐액―.

용연은 소리가 들린 반대 방향으로 얼굴을 살짝 틀어 비수를 피했다.

그러자 귀귀는 손가락 사이마다 비수를 끼워 전력으로 던지는 동시에 용연에게 달려들었다.

용연이 자신의 비수를 피하는 동안 맹백을 구하려는 것이다.

따다당!

열 개 가까이 날린 비수들이 용연의 손짓에 따라 좌우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흡!”

귀귀는 달려가던 속도를 늦추려 했으나 그때는 이미 마지막 비수까지 용연이 튕겨 낸 후였다.

팅―.

“…….”

“……!”

귀귀는 세 자 정도 거리를 두고 용연의 담담한 눈빛과 마주했다.

턱.

가슴에 무언가 닿았다.

꿀꺽.

“당신 둘 말고 몇이나 더 있는 거지?”

용연은 귀귀의 가슴에 손을 대고 있었다.

힐끗.

귀귀의 눈동자가 무의식적으로 수레 앞쪽을 향했다.

“앞쪽에 더 있군.”

“무, 무슨…….”

귀귀가 용연의 말을 부정하려 고개를 흔들며 입을 연 순간, 발이 땅에서 떨어지며 들썩이다 말 대신 피를 토한 뒤 늘어지고 말았다.

‘어째서 악조궁이…….’

용연은 귀귀의 몸에 대고 있던 자신의 손을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악조궁을 펼치겠다는 마음을 먹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삼제의 두 번째 원리 대신 악조궁이 손끝을 떠난 것이다.

털썩.

진기를 거두니 귀귀가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자 근육 사내 역시 움직임이 없었다.

피득의 동료가 분명한데 왜 이리 약하지?

용연은 싱거울 정도로 빨리 제압된 둘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생각이 이어지진 않았다.

아직 앞쪽에 처리할 적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움직일 수 있나요?”

용연은 숨을 헐떡이며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호위에게 말을 걸었다.

“무, 물론입니다.”

“그럼 다친 사람들 좀 도와주세요. 아! 앞쪽엔 몇 명이나 있죠?”

“이자들을 막느라 앞쪽은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가 보면 알겠.”

용연은 호위에게 말을 건네다 재빨리 손가락 하나를 입에 댔다.

조용히 하라는 신호였다.

“아! 아가씨들이 오시네요.”

호위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가씨들?’

용연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다가오는 인영 둘을 쳐다봤다.

백의에 면사를 쓰고 있는, 인지예와 인이예였다.

‘강하다!’

인지예는 용연이 만든 주위 모습을 보고 호흡이 빨라졌다.

얼굴에 분칠을 한 자와 일당으로 보이는 인영 둘이 바닥에 얼굴을 댄 채 쓰러져 있었다.

꾹.

검을 잡은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이예야, 물러나 있어.”

“언니, 안 호위부터 챙기고.”

인이예는 인지예의 검끝이 용연을 향하기 전에 재빨리 안 호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안 호위?”

“안 호위, 지금 상황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려 줄 수 있겠어요?”

인이예가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안 호위를 쳐다봤다.

“예. 큰 아가씨, 이분은 적이 아니라, 저를 구해 준 분입니다.”

안 호위는 두 자매의 등장에 안심하고 있다가 인이예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외치듯 대답했다.

“금룡상단의 인이예라고 해요. 언니, 도움을 주신 분이라잖아.”

인이예는 먼저 인사를 건네고 나서 인지예의 소매를 당기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오해했어요. 인지예예요.”

“용연입니다.”

또래의 여자와 말을 섞어 본 적 없는 용연이기에 의도와 무관하게 다소 딱딱할 수 있는 말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인지예의 눈썹이 역팔자를 그렸다.

“누가…….”

“언니, 도와주러 오신 거야.”

인이예가 인지예의 말을 조심스럽게 끊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뭐?”

“저분, 가던 길이 아니라 우리를 도와주러 오신 거라고.”

인이예는 눈으로 배시시 웃으며 용연을 돌아봤다.

철렁.

‘뭐, 뭐지?’

용연은 인이예의 면사 위로 드러난 웃는 눈을 보며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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