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조금 전엔 도와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용연은 쓴웃음을 지으며 피득을 쳐다봤다.
“그건 조금 전이고. 마음이 바뀌었다.”
피득의 시선이 응아린을 향했다.
“응아린이 마음에 들었나 보죠?”
“응아린? 이름이야 가진 사람이 부르기 나름이지. 내가 적당한 이름을 다시 찾아보마. 흐흐흐.”
피득은 이미 자신이 응아린의 주인이라도 된 듯 활짝 웃었다.
끄드득!
들어 올린 주먹에 힘을 가했다.
그대로 한 방에 용연의 얼굴을 터트리고 난 후, 용연의 양 손목을 잘라서 응아린을 빼낼 생각을 한 것이다.
“음?”
조금 더 힘을 끌어 올렸으나 어찌 된 일인지 주먹은 들어 올린 상태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줄에 엮여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 같았다.
피득은 인상을 쓰며 당기는 쪽으로 힘을 썼다.
“윽!”
당겨지지도 않았다.
웅웅―.
그때, 응아린이 기음을 토했다.
두근!
피득의 심장이 요동치자 동공이 크게 확장됐고 몸 안에 이식한 기물들이 일제히 반응을 보였다.
“끄아아악!”
피득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왼손은 머리를 부여잡았고 오른손은 무릎 안쪽에다 넣어 뭔가를 잡으려 했다.
‘뭐지?’
피득에게서 눈을 떼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봤다.
응아린의 거무튀튀한 동(銅)색에서 금빛이 발산되고 있었다.
스르―.
용연의 의지와 무관하게 손이 들려졌다.
“어어.”
용연은 당황해서 손을 내리려다 피득의 반응을 보고 내버려 두었다.
비명을 질러대던 피득이 이를 악물며 무릎 사이에 넣었던 손을 꺼내고 있었다.
절레절레.
피득은 연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자의로 하는 행동이 아니란 뜻이다.
“헛!”
“아, 안 돼!”
용연과 피득의 입에서 동시에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떵!
용연의 왼손에 찬 응아린 한 쪽과 피득의 오른손이 자석에 연결이라도 된 것처럼 달라붙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엔 용연의 오른손에 찬 응아린과 피득의 머리가 붙었다.
떵!
조금 전과 엇비슷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어마어마한 열기가 용연의 양손으로 몰려들며 응아린의 빛이 강해진 것이다.
“앗, 뜨!”
용연은 격하게 외치며 손을 떼어내려 했다.
응아린을 통해 몸 안으로 용암이 흘러 들어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래 이어지진 않았다.
응아린이 피득의 손과 머리를 놔준 순간.
쉭―.
“읏!”
피득의 발이 피할 틈도 없이 용연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왔다.
텁!
피득은 기가 찬 표정이 됐다.
응아린이 허공에 뜬 자신의 양발에 붙어 버렸기 때문이다.
“끄으윽!”
용연은 진저리를 치며 자신의 손목을 쳐다봤다.
응아린이 뿜어내는 금색이 강렬해지며 몸 안으로 엄청난 열기가 들어왔다.
스으으―.
양손을 제외한 머리끝과 발끝에서 청량한 기운이 일어나더니 열기를 없애며 양손으로 몰려갔다.
‘뭐, 뭐지?’
기를 운용한 적도 없는데 일어난 반응에 놀라 용연은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쳐다보기만 했다. 이미 피득의 상태 따위는 관심에서 멀어진 뒤였다.
툭.
청량한 기운이 용연의 양손으로 몰려간다고 느끼자마자 피득의 양발이 응아린에서 떨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끄륵, 저, 저거, 내 거, 가, 갖고…….”
피득은 땅에 떨어진 채 손을 들어 올릴 힘도 없는지 어깨를 움찔거리며 응아린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뭐라고 중얼댔다.
그 잠깐 사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이거?”
용연이 응아린을 들어보였다.
“가, 갖고 싶다. 처음부터…… 그, 그런 걸 가졌다면…… 몸을 찢…… 뼈, 뼈를 깎지 아, 않아도…….”
피득의 눈빛이 아련해진다.
용연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왜 응아린을 탐욕스럽게 쳐다보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삶의 말로까지.
“스스로 강해지지 그랬어요. 그런 것들에 의존하지 말고.”
“흐, 으억…… 흐…… 그, 그였…… 그였으면 다, 달라…… 그는, 배, 백…… 처, 천…… 끄륵.”
피득은 자신이 되고 싶어 하던 사람을 떠올렸다.
전신을 은색으로 감싼 자.
필요할 때 원하는 무기를 몸에서 꺼내 사용하는 자.
백병지체(百兵之體) 천울.
그를 만나고 싶었다는 말을 하려고 했으나 결국은 흰자위가 먼저 눈을 까뒤집었다.
“그?”
용연은 낮게 숨을 토해 냈다.
피득이 죽는 순간까지 떠올린 자가 누군지는 몰라도 언제고 만나게 된다면 피득과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반드시 죽여 없애고 싶었다.
이 무슨 허무한 죽음이란 말인가?
부릅뜬 피득의 눈을 감겨 주고 일어났다.
그 순간,
차라락―.
“엇!”
응아린이 갑자기 늘어나며 팔뚝의 반을 감쌌다.
용연은 깜짝 놀라 손으로 더 올라오지 못하게 막으려 했다.
“으아, 뜨!”
늘어난 응아린의 표면은 펄펄 끓는 쇠처럼 뜨거웠다.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다 양손을 땅에다 박았다.
앞쪽의 땅에 시선을 고정시킨 뒤, 악조궁을 펼쳤다.
그러자 땅이 불룩 일어나더니 앞쪽으로 밀려 나갔다.
드드드―.
“아!”
용연은 열기가 손을 통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면서 탄식을 터트렸다.
땅이 밀려 나가는 방향에 피득의 시체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진동은 두어 번 더 일어나고 나서야 멈췄다.
얼른 땅속에서 팔을 빼낸 뒤 피득의 시체를 흙속에서 빼냈다.
응아린은 원래 크기로 돌아가 있었고 뜨거움도 사라진 뒤였다.
생물도 아니고 뭐가 이리 제멋대로인지.
종 노야는 응아린이 이런 놈이란 걸 알고 계셨던 것일까?
조만간 만승서고에 들러야 할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용연은 양손을 늘어뜨린 상태에서 머리끝과 발끝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응아린의 열기를 식혀 주었던 청량한 진기.
몸속에 살고 있는 괴물일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마음대로 일어났다 사라질 수 있는 놈이 하나 더 살고 있잖은가?
학림 시험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한 기억이 있다.
분명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는데 갑자기 손가락 끝이 움직였다든지 하는.
“너는 내 몸을 덮으려고 하고.”
응아린을 내려다봤다.
“너는 막으려고 하고.”
머리끝과 발끝에 신경을 모았다.
“뭐, 지금의 나로서는 너희들을 막을 능력이 없으니 걱정은 하지 않으련다.”
용연은 생각을 떨쳐 냈다.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손끝 앞쪽, 흙속에서 파낸 피득의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이대로 두고 떠날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피득의 소매와 품속을 뒤져 보았다.
서찰 몇 장과 돈 꾸러미가 나왔다.
“피 씨 성을 가진 사람이고. 음?”
용연은 다른 서찰을 읽다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금룡상단(金龍商團), 구채구(九寨溝)를 오시(午時)에 지나갈 것으로 추정. 우리 셋은 칠채석을 피 형에게 드리기로 합의 봤으니 와서 전부 죽이고 가져갑시다.
―완양.]
전부 죽이고?
금룡상단이란 곳의 물건을 자신들 것처럼 가져간다?
이런 자를 묻어 주려 했단 말인가?
용연은 서찰을 쥔 채 일단 공동산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사천 땅을 넘어가지 않았다.
군림단원으로서 모른 척할 수 없는 문제다.
***
열 대의 수레와 마차 두 대, 호위하는 무사들.
말만 서른 마리가 넘어가는 긴 행렬이 이어졌다.
선두에 선 무인은 적당한 시간을 두고 뒤를 돌아본다거나 주변을 살피며 길을 인도했다.
호우―!
뒤쪽에서 누군가 신호를 보냈다.
선두의 무인은 고개만 돌려 소리가 들린 위치를 눈으로 가늠하고 휘파람을 불려고 입을 오므렸다.
그 순간, 아래쪽에서 비수 한 자루가 솟구치며 무사의 목과 입을 뚫고 머리 위에 날을 드러냈다.
“아, 암습이다! 모두 자리를 지키고…….”
쉬익― 퍽!
“수레를 지켜라!”
땅!
선두에 선 무인 한 명이 날아오는 비수를 쳐 내며 크게 소리쳤다.
“적이다!”
“수레를 지켜라!”
중간중간에 있던 무인들이 약속된 경고를 날리며 분주히 앞으로 말을 몰았다.
캉! 따다다다당!
“으악!”
“단주 대행님, 습격입니다!”
무인들은 비명과 함께 적의 위치를 알리며 죽었다.
꽈득!
소리친 무인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퉷. 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퍽!
돌처럼 단단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발이 무인의 머리를 찼다.
무인은 회전하며 수레바퀴까지 날아가 부딪친 뒤 길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맹백, 말할 시간 있으면 서둘러.”
세모꼴 얼굴의 마르고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삼십 대 사내가 비수를 회수하며 수레 위로 올라갔다.
아직도 수십 명이 몰려오고 있었다.
“귀귀, 숫자 좀 줄여 줘라.”
문사 차림에 얼굴에 하얗게 분칠을 한 삼십 대 사내가 부채를 흔들며 얇은 목소리로 말했다.
“완 형, 아직!”
귀귀라 불린 마른 사내는 아래쪽을 향해 신경질을 내더니 바로 수레 위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완 형’이라 불린 사내가 움직인 것은 그때였다.
살랑―.
부채를 흔들었다.
쿵쿵쿵.
사내를 향해 달려들던 무인 서너 명이 눈에 흰자위를 드러내며 정신을 잃더니 그대로 수레에 부딪치는 소리였다.
사내가 부채를 흔들자 허공에 붉은 피가 퍼졌다.
촥.
부채를 펼쳐 피가 얼굴에 튀는 걸 막은 사내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막 발을 뗐을 때, 사내의 시선이 위를 향했다.
“누가 감히 금룡상단의 물건에 손을 대!”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검기가 완양을 노리고 뻗어 왔다.
쉬악―.
완양은 다가오는 검기를 향해 부채를 들어 올렸다.
뻗어 오는 검기의 뒤쪽으로 이목구비가 또렷한 미인이 백의를 펄럭이고 있었다.
쩡!
‘강하다! 금룡상단주의 장녀 인지예의 무공이 장난 아니라더니.’
스으― 스―.
완양의 소매에서 백색 분말이 흘러나오며 인지예를 향해 몰려갔다.
‘됐……. 음?’
백색 분말이 인지예의 얼굴에 닿으려는 순간,
쉬익―.
“언니, 숨 멈춰!”
백의 면사녀가 인지예를 안으며 수레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쯧.”
완양이 혀를 차며 짜증스러운 눈이 됐다.
여인들을 놓친 것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보다는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는 피득에 대한 못마땅함이 더 컸다.
‘피득, 이 개새끼야, 너 때문에 이 무슨 모양 빠지는 일이냐!’
완양은 속으로 욕지기를 뱉으며 두 자매가 내려선 곳을 쳐다봤다.
피한, 피화, 피독의 효용을 가진 돌과 철을 몸에 박은 피득만 있었어도.
자신이 독을 풀어 사람들을 마비시키면, 중독되지 않는 피득이 마비된 자들을 짓이긴 후, 맹백과 귀귀가 일대를 정리하는 것.
실패 따윈 염려할 필요도 없는 작전 같지도 않은 작전인데, 시작이 틀어지니 일이 지저분하고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