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캉! 파층!
검을 막고 비도와 곤을 막아 내는 와중에도 용연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공격이 계속될수록 지쳐 가기는커녕 자신감이 더 커지고 있었다.
응아린을 차고 있지 않았다면 저들의 공격을 피하느라 많은 시간이 소모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피하는 것과 막는 것.
학림 시험 이전까지는, 아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두 가지 방법이 같은 거라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방금 용연은 엄청난 걸 깨닫고 말았다.
두 가지 방법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격차가 있었다.
피하는 것은 그 자체로 끝이지만, 막는다는 것은 공격의 다른 형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카창!
용연은 양손을 들어 각기 다른 방향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막아 내며 눈을 빛냈다.
막는 것의 진짜 의미를 깨달은 것 같아 머릿속이 개운한 느낌이다.
콰쾅!
세 명의 합공도 결국은 점으로 모인다.
용연에겐 상대가 노리는 곳을 감지할 수 있는 몸의 감각을 갖고 있다.
‘어딜 공격할지 알면 달라져야지.’
용연은 눈을 반짝이며 움직임에 변화를 주었다.
휘릭― 턱.
복면인의 검이 노리는 곳에 팔을 대는 척하다 빙글 돌려 팔을 잡았다.
“흡!”
복면인의 눈이 크게 치떠졌다.
용연의 손과 복면인의 팔이 닿았다.
삼제의 원리를 적용할 최적의 순간이다.
툭.
닿았으니 원하는 곳을 눈으로 재고 자르듯 손을 구부렸다.
쨍강!
“큭!”
복면인은 갑자기 자신의 팔뚝이 부러지자 짧은 비명과 함께 검을 떨어뜨렸다.
쉭―.
용연의 손은 이미 다른 무방비상태의 복면인에게로 향했다.
“아, 안…….”
뻑!
충돌과 함께 복면인이 날아갔다.
그러자 다른 복면인이 동료를 받기 위해 몸을 날렸다.
‘좀 더 강하게!’
용연은 복면인이 동료를 부축하는 순간, 머릿속의 장치인 수차를 회전시키며 진기를 증폭시켰다.
쉬악―.
“……!”
동료를 부축한 복면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갑자기 자신의 몸이 용연 쪽으로 당겨지는 것이 아닌가?
중심이 흐트러진 복면인을 보며 용연은 그대로 주먹을 뻗었다.
빡!
복면인 둘이 양쪽으로 흩어지며 바닥에 누웠다.
“……다섯.”
용연은 남은 인원이 다섯인 걸 확인하고 양팔을 십자로 교차시켰다.
머릿속으로 만든 장치인 수차는 여전히 빠르게 회전을 하고 있었고, 그럴 때마다 몸 전체로 진기가 퍼져 나갔다.
씰룩.
담영호는 용연의 싸움을 지켜보다 자신도 모르게 입가를 비틀며 웃었다.
‘종 노야께서 하루 동안 적들을 막아 냈다는 소문이 거짓은 아닌 것 같군.’
시간이 흐를수록 용연의 움직임은 부드러워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동작이 끊기는 느낌이 강했는데, 눈빛이 달라진 후부터는 마치 먹물을 한껏 머금은 붓처럼 유려하게 공간을 누비고 있었다.
저 상태에서 창천비와 악조궁을 마음대로 사용했다면?
담영호는 용연의 싸움을 지켜보다, 상승 무공을 익힌 자들과 종 노야의 싸움이 어땠을지 상상해 봤다.
무수히 쏟아지는 공격을 응아린으로 막아 내고, 그런 후엔 창천비와 악조궁을 사용해 반격하며 버텼을 것이다.
여기까지 상상을 하던 담영호의 표정에 의혹이 깃들었다.
도대체 응아린은 어떤 재질로 만들어졌기에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일까?
방어구라고 들었지만 무기가 아닌 이상 상승 무공을 막아 내기 위해선 막대한 진기가 필요하다.
‘나중에 찾아뵙고 직접 여쭤 봐야겠다. 일단은…….’
담영호는 용연에게서 눈을 떼고 천천히 갈성 등에게로 몸을 돌렸지만, 시선은 갈성 등이 아닌 합하문 진영을 향했다.
정확히는 합하문 진영의 좌우를 둘러봤다는 말이 옳았다.
무묵은 어디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자리를 비웠다는 것은, 누군가를 쫓아갔음을 뜻한다.
‘서두르자.’
과웅―.
둥근 빛무리가 담영호의 손을 감쌌다.
담영호는 담담한 눈빛으로 갈성 등 열한 명을 죽 훑었다.
꿀꺽.
‘이러다 죽는 거 아냐?’
여강은 자신을 협박하던 갈성이 겁먹은 얼굴로 옴짝달싹도 하지 않자 저절로 입이 말라 왔다.
갈성이 데려온 공심회의 고수들도 겁먹은 표정이 역력했다.
“대협,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저자가 협박해서 따라왔을 뿐…… 컵!”
여강은 담영호를 향해 움직이며 뒤쪽에 있는 갈성을 고발하듯 소리쳤으나, 몇 걸음 옮기지 못하고 목과 몸이 분리된 채 쓰러지고 말았다.
“학림? 교림?”
여강의 목을 자른 갈성은 늘어진 채찍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묵 노야에게 군림단에 관한 얘길 들을 때마다, 왜 묵 노야는 군림단을 찬양하지 못해 안달인지 의문이었다.
군림단의 학림 한 명을 죽이기 위해 동원된 인원만 수백 명이라는 둥, 교림을 만나면 몇 명을 데리고 있든 무조건 도망치라는 둥.
지금은 안다.
그래야 자신의 몸값이 올라가기에 일부러 과장시켜 말한다는 것을.
오늘로써 모두 거짓임이 드러나겠지만.
씰룩.
담영호는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담담하게 한마디를 뱉어 냈다.
“교림.”
“그가 말한 것처럼 대단한지 한번 보자.”
갈성은 암암리에 끌어 올린 진기를 채찍으로 보냈다.
콰우― 콰콰―.
채찍이 뱀처럼 요동치며 담영호를 향해 뻗어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찌릿!
“음?”
담영호는 뒤쪽에서 뻗어 오는 예기에 놀라 뒤를 돌아봤다.
그 순간, 갈성의 채찍이 담영호의 심장을 찔렀다.
쩡!
“……!”
갈성은 너무 놀라 입을 쩍 벌린 채 자신의 채찍 끝을 쳐다봤다.
먹이를 물려다 발에 차여 날아가는 뱀처럼 맥없이 튕겨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작 벌레 잡듯 손을 흔든 것만으로 자신의 채찍을 막은 것이다.
***
‘막는 건 응아린이 해 준다고 해도 공격은 여전히 주먹 두 개. 팔꿈치인 주(肘)까지 사용할 수 있으면…….’
일호 등과의 싸움으로 용연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깨닫게 됐다.
꾹.
주먹에 힘을 주어 응아린의 안을 근육으로 빡빡하게 채우며 팔꿈치를 쳐다봤다.
팔꿈치에 응아린 같은 보호구를 차면 지금보다 몇 배는 빠르고 강력하게 저들을 처리했을 것이다.
“후웁.”
용연은 다시 숨을 짧게 들이마셨다.
보완할 부분을 생각해 뒀으니 채우면 된다.
지금은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수차를 더욱 빠르게 회전시켜 주먹에 집중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찌릿!
“윽.”
진기를 양손에 집중시키던 용연의 표정이 굳었다.
쥐고 있던 주먹을 쫙 펴며 그대로 무릎을 꿇은 것이다.
“뭐, 뭐지?”
“놈, 죽어!”
쉬악―.
용연이 무릎을 꿇자마자 곧장 검기가 짓쳐 들었다.
캉!
용연은 부지불식간에 손을 들어 검을 막았다.
묘한 현상이 일어났다.
검과 부딪쳤음에도 이전처럼 밀리거나 하지 않고 손이 그대로 있었다.
쾌랙―.
용연의 의지가 아닌 몸이 저절로 회전하며 달려들던 다른 복면인의 곤을 때렸다.
쾅!
이번에도 덜컥거림 없이 복면인의 곤을 때렸다.
‘내가 하는 게 아니야.’
용연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자신이 몸을 움직인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지?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꽈직!
응아린으로 때린 곤을 든 복면인이 다가오기에 팔꿈치로 찍었다.
“놈!”
곤을 든 복면인이 쓰러지자 허공에서 호통과 함께 검과 하나가 된 일호가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옆으로.’
슥.
용연은 빤히 지켜보다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서서 검끝과 거리를 둔 후, 반보 뒤로 물러났다가 그대로 손을 펴 휘둘렀다.
쩡!
찌웅―.
“……!”
용연은 일호의 검에서 일어난 반탄력에 하마터면 손이 꺾일 뻔했다.
쿡!
드드등―.
일호의 반탄력이 몸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창천비를 펼쳐 땅에다 내보냈다.
역시나 이 응변도 용연의 의지만으로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생각을 하자 몸이 알아서 반응해 줬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일호가 공격에 실패하자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세 명의 복면인이 곧바로 달려들었다.
콰콰콰!
용연은 복면인 셋의 진기가 하나로 모이자 마치 폭풍이 밀려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진정하자.’
검을 먼저 막았다.
쾅!
쉬쉬쉬―.
비도 두 자루가 간격을 둔 채 용연의 사혈을 찔러 왔다.
카캉!
응아린으로 때릴 시간이 없어 일단 막았다.
그러자 이번엔 용연의 양쪽에서 검 두 개가 피하기 힘든 각도로 베어 왔다.
쉬아악―.
‘팔뚝을 내주고 한 명을 친다.’
용연은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다.
왼팔을 내밀어 검에 베이도록 하는 동시에 오른손을 말아 쥐고 휘둘렀다.
과웅―.
빡!
손에 닿는 촉감이 무척 좋았다.
이제 잘리지 않길 바라며 왼팔을 최대한 검과 나란히 만들어야 한다.
카항― 끼릭―.
“어?”
기음에 이어 왼팔에 힘을 주던 용연의 입에서 의아한 말이 튀어나왔다.
검을 막아 낸 팔이 멀쩡했기 때문이다.
“으, 응아린이 길어져?”
용연은 응아린의 변화에 놀라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고 말았다.
그때였다.
고오오―.
엄청난 살기가 용연의 목을 노리는 것이 느껴졌다.
돌아보자, 일호가 용연을 노려보고 있었다.
쉬쉭―.
일호가 공격하기 전에 비도 두 자루가 용연의 목과 겨드랑이를 노리고 날아왔다.
타탕!
‘뒤.’
홱.
용연의 목이 뒤로 젖혀졌다.
빠악!
“컥!”
비도를 던진 복면인이 코를 부여잡고 그대로 주저앉으려 했으나, 그 위에 이미 용연의 주먹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퍽!
용연은 그 상태에서 목을 보호하듯 양손을 교차시키며 돌아섰다.
쾅!
“윽!”
용연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가가가각―!
일호의 검이 땅에 발을 박은 용연의 몸을 밀어붙였으나 이내 먼지에 의해 두 사람 모두 보이지 않게 됐다.
그리고 그 먼지 안에서 비명 하나가 터졌다.
“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