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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단주-36화 (36/232)

36화

퍽!

몽외가 팔을 잡아 오는 것을 보고 용연은 전력을 다해 피하려 했으나, 뭘 해 보기도 전에 어깨가 뒤로 돌아가며 중심을 잃었다.

턱.

돌아가던 어깨가 벽 같은 무형의 힘에 부딪쳤다.

그 순간, 무지막지한 힘이 용연의 다른 쪽 어깨를 무형의 힘으로 당겼다.

홱―.

“흐어…….”

고개를 뒤로 젖힌 용연의 입에서 숨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가 흘러나왔다.

까드득!

양쪽 날갯죽지는 맞닿았고 가슴뼈는 곧이라도 터질 것처럼 휘어져 나왔다.

‘시원해…….’

용연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고통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은 버틸 만했다.

그때, 몽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열셋.”

열세 번째의 죽음이란 뜻이다.

단 한 번도 몽외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을 수 없었다.

몽외의 말대로 적이었다면 열세 번 모두 죽었을 것이다.

이전 교림들의 시험?

그런 일을 겪기는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 정도로 몽외의 손짓은 매번 용연의 머릿속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렸다.

“크크크. 이런 게 가능하단 말이지? 꽤나 훈련을 잘해 온 건 인정해 주마.”

몽외는 마뜩잖은 눈빛으로 용연을 쳐다봤다.

첫 번째 공격 이후 점점 더 세게 손을 써서 조금 전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저놈은 기절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번짼가 네 번짼가 손을 쓰며 깨달았다. 용연을 시험한 교림들이 일부러 살살 한 것이 아니란 것을.

‘또, 또…….’

몽외의 눈에 이채가 발해졌다.

용연의 초점 잃은 눈동자가 다시 색을 되찾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열세 번째 회생하려 한다.

틱.

용연의 미세한 움직임이 소리처럼 몽외에겐 들렸다.

슷.

몽외는 빠르게 움직여 용연의 이마에 손가락 하나를 얹었다.

몸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직접 감지해 보려는 것이다.

‘음?’

몽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황당하게도 용연의 단전이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다시 살아나려고 한다.

세신의 과정을 아무리 잘 받아들였다고 해도 고작 몇 시진이 지났을 뿐이다.

손을 쓴 이후에 약간의 시간을 주긴 했지만 용연이 엄청난 고수도 아니고 어떻게 그사이에 진기를 회복한단 말인가?

도대체 이 텅 빈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하아…….”

용연이 고개를 젖힌 채로 숨을 토해 냈다.

그러나 그런 외적인 변화는 몽외의 안중에 없었다.

“……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용연의 입에서 흘러나왔지만, 몽외의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씰룩.

용연은 미미하게 입가를 움직이곤 그대로 의식을 놓았다.

죽을힘을 다해 깨어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음?”

몽외는 용연의 고개가 갑자기 옆으로 기울어지자 급히 이마에서 손가락을 떼며 얼굴을 받쳤다.

그러나 이미 용연은 의식을 잃은 뒤였다.

잘 참는다 했더니 결국은 여기까지인 모양이다.

“크흐, 물건 하나 들어왔네.”

다물어졌던 몽외의 입이 벌어지며 치아를 고르게 드러냈다.

마음에 든다는 뜻이다.

있으나 마나 한 크기의 진기로 잘도 자신의 공격을 열세 번이나 버텼다.

독종은 독종인데, 아주 자신의 몸에 대해 잘 아는 독종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자신이 나설 이유는 충분했다.

아주 오랜만에 죽도록 괴롭혀 주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놈이 나타났다.

“크크크. 앞으로 자주 보자꾸나.”

몽외는 음침한 다짐과 함께 손바닥을 용연의 백회에 대려 했다.

“이제 그만하는 게 어떻겠소, 몽 교림?”

몽외의 행동을 제지하며 일단의 무리가 바닥에 내려섰다.

“진 대교, 오랜만이군.”

몽외는 귀찮은 표정으로 몸을 세웠다.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자리이니 평대하는 걸 이해해 주시오.”

진류는 오랫동안 선배였던 몽외에게 정중하게 요청하듯 말을 꺼냈다.

“예의는 됐고.”

몽외는 진류의 말을 자르며 눈동자만 돌려 쳐다봤다.

“아직 정식단원도 아닌 후임이오. 이쯤 했으면 충분할 것 같소.”

“……이쯤?”

몽외는 진류의 말에 윗니와 아랫니를 맞물린 채 활짝 웃었다. 마치 진류가 자신의 잘못을 적발한 것처럼 말을 이어 갔기 때문이다.

“험. 기, 기절한 후임에게 줄 게 뭐가 있다고…….”

“진 대교, 내가 이놈을 죽이기라도 할 것 같아서 내려온 거냐?”

“아무래도 학림 시험을 주관하는 입장이다 보니 다른 교림들의 말을 무시할 수 없잖소?”

“다른 교림?”

“등 교림과 곽 교림이 후임의 상황이 안타까웠는지 내게 알려 주었소.”

진류는 자신의 뒤에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등언과 곽집을 돌아봤다.

겁이라도 먹었을 줄 알았는데 등언과 곽집은 몽외를 눈앞에 두고도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제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교림이 된 뒤 처음으로 몽외를 봤을 때,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렇군. 그럼 난 여기서 손을 뗄 테니 저치들이나 진 대교가 이놈 좀 깨우지?”

묵광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몽외는 치아를 가지런히 맞물리며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툭.

걸음을 옮기다 말고 몽외의 시선이 아래쪽을 향했다.

걸친 장포에 뭔가가 걸렸다.

‘이놈…….’

몽외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어처구니없게도 쓰러진 용연의 손가락에 자신의 장포 끝자락이 잡혀 있었다.

머릿속으로 빠르게 시간을 돌리며 용연이 언제 자신의 장포자락을 잡았는지 찾았다.

‘아, 기절하기 직전!’

몽외는 용연이 왜 정신을 놓았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놈은 자신을 상대로 승부를 걸었던 것이다.

“크하! 크하하하!”

몽외의 입에서 갑자기 커다란 웃음이 연속해서 터져 나왔다.

“읏.”

“큭.”

등언과 곽집은 용연에게 다가가다 기함을 하며 귀를 막았다.

그 모습에 진류는 재빨리 나서며 옷소매로 허공을 두어 번 그은 후 양손을 펼쳐 몽외의 웃음에 실린 경력을 막아 주었다.

“몽 교림,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단원입니다.”

진류는 몽외의 정면에 서서 처음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쳐다봤다.

“이게 보이나, 진 대교?”

몽외는 여전히 웃는 표정으로 손가락 하나를 들어 아래쪽을 가리켰다.

“……?”

“이놈이 내 옷자락을 잡았다.”

“……보니까, 그런 것 같기는 하오.”

진류는 그것이 어쨌다는 거냐는 눈으로 몽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크크크. 너희, 어이, 교림 둘?”

팟!

몽외의 몸에 붙어 있던 어둠이 시선과 함께 등언과 곽집에게로 향하는 것 같았다.

“예? 예…….”

“과, 곽집입니다.”

등언은 다급히 대답을 했고, 곽집은 자신을 소개하며 진땀을 흘렸다.

몽외가 시선과 함께 보낸 어둠은 예기가 되어 두 사람의 전신을 찔러 왔기 때문이다.

꿀꺽.

두 사람의 목젖이 울럭였다.

‘이번에는 나도 어쩔 수 없다. 미안하다.’

진류는 몽외의 시선이 등언과 곽집을 향하자 본능적으로 몸을 반보 정도 비켜 세웠다.

몽외가 일으킨 기운이 용화기이기에 피한 것이다.

용화기를 운용한 몽외를 막는다?

한판 붙자는 뜻으로 전해질 수밖에 없다.

“세신의 과정을 제대로 전했더구나. 앞으로 열심히 수련해서 서열 많이 올려라. 그리고, 너희들은 등신들이 아니다. 알겠냐?”

“…….”

“…….”

등언과 곽집은 갑작스러운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희한한 몽외의 말에 어리둥절해져서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몽 교림, 너무 당연한 말을 덕담처럼 해 주니 두 교림이 당황하잖소? 등 교림, 곽 교림, 내가 몽 교림에 대해서는 두 교림보다 조금 더 잘 안다고 자부한다. 내가 장담하건대 몽 교림이 지금 한 말은, 칭찬이다.”

진류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두 교림에게 몽외의 의도가 모두 진실임을 알려 주었다. 그러고 나서야 몽외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하하. 이거, 너무 오랜만에 봐서 예전에 내가 알고 있던 그 몽 교림이 맞소? 그 옷자락과 지금의 덕담이 연관이 있는 것 같소만…….”

“있지. 약속을 했거든, 이놈과.”

“……?”

진류는 몽외가 쓰러져 있는 용연을 내려다보자 놀라서 눈이 커졌다.

용연이 무슨 수로 몽외가 등언과 곽집에게 덕담을 하도록 만들었단 말인가?

“이놈 선임이 담 임주의 아들이라면서?”

몽외는 자신이 학림일 때 이미 선림으로 모든 단원의 선망이었던 한 사람을 떠올렸다.

담묵.

단단함의 끝이라고 표현해도 하나 이상할 것 없는 사람이었다.

“담영호 학림이오.”

“그 녀석에게 앞으로 후임을 몇 놈 더 뽑으라고 할 수 있나?”

“불가하오.”

진류는 고개를 내저었다.

학림이 후임을 여러 명 뽑는 경우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걸 모를까. 그 정도로 괜찮은 후임을 뽑았다는 뜻이다.”

몽외는 말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툭.

용연이 쥐고 있던 옷자락을 빼냈다.

“이놈이 깨어나면 방금 내가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 말해 주고.”

“몽 교림…….”

진류로서는 무슨 일인지 자세히 듣고 싶기에 조금 더 말을 이어 가려 했으나, 몽외의 덤덤한 시선과 함께 주변이 검게 물들어가자 이내 입을 다물었다.

몽외와 진류 사이에 고요가 흘렀다.

“……내가 직접 전해 주겠소.”

“또 보자, 진 대교.”

몽외는 진류의 대답을 듣자마자 공간을 검게 물들이던 기운을 갈무리하며 검은 선을 잔영처럼 만들며 자리에서 사라졌다.

‘지금 몽 교림이 떠나기 전에 후임을 보고 웃은 건가? 이곳에서 둘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진류는 몽외가 만들어 낸 흔적들을 주욱 훑어보다 용연에게로 시선을 내렸다.

등언과 곽집은 이미 용연에게 다가가 몸 상태를 살펴보는 중이다.

“등 교림, 곽 교림, 후임의 상태는 어때?”

“음…….”

“그렇게 당했는데도…….”

등언은 심각한 표정으로 침음을 뱉었고, 곽집은 놀란 표정으로 연신 용연의 맥과 등을 매만졌다.

“비켜 봐.”

진류는 등언과 곽집의 반응에 직접 용연의 맥을 짚어 봤다.

“음?”

용연의 손목을 잡자마자 진류는 놀라고 말았다.

기절한 상태임에도 용연의 맥이 생각보다 잘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교, 자고 있는 것이 맞습니까?”

등언은 자신이 진맥한 것이 맞는지 물었다.

그러자 진류는 미간을 살짝 모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는 무지막지하게 당하고 있다 여겼는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후후후. 내가 뭐라고 했나, 몽 교림한테 맡겨 놓으면 된다고 했잖은가?”

“예?”

“대교께서 말입니까?”

곽집과 등언은 진류의 말에 놀라 동시에 되물었다.

“역시 내 예상대로였어. 그나저나 시간이 좀 남기는 했는데…….”

진류는 스스로 한 말에 흡족해하며 누군가를 찾듯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때, 진류의 뒤쪽에서 인영 하나가 반듯한 자세로 걸어 나왔다.

“대교, 몽외 선배님이 나서셨습니다. 굳이 더 시험을 해 볼 필요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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