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어둡다.
용연은 눈을 뜬 채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미약한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온다.
‘뭐지? 여긴 어디야?’
소리는 들리는데 왜 머릿속이 웅웅대는 건지 모르겠다. 소리의 방향을 찾아 고개를 돌려도 사방은 까맣기만 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숨을 두어 번쯤 들이마셨다가 내쉰 것 같다.
다시 눈을 떴다.
‘어?’
여전히 눈앞은 캄캄했다.
눈을 감으나 뜨나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뭐지? 초점이 잡히지 않아서 그런가?’
눈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있어야 초점을 맞출 것 아닌가?
사방이 온통 암흑뿐이다.
이번엔 눈을 가늘게 떠 봤다.
역시나 마찬가지다.
‘도대체 여긴 어디지?’
용연은 이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벽에서 손을 떼기 위해 창천비를 펼치다 쓰러진 것까진 기억이 났다.
그것이 끝이다.
머리를 힘껏 흔들고 눈을 몇 번이나 끔뻑였다.
틱.
‘혹시 이 소리를 쫓아가면…….’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머릿속을 울리는 소리를 따라가 봤다.
티딕.
무언가 찢기는 것 같기도 하고 딱딱한 것이 부러지는 소리 같기도 하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때, 신기한 형태가 보였다.
혀다.
식도와 연결된 긴 혀가 보인다.
‘혀가 왜 보이는 거지?’
의문을 해결하기도 전에 식도를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일정한 소리와 함께 진동이 느껴진다.
심장박동이다.
옆을 돌아보지 뭔가가 커졌다가 줄어들길 반복한다.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다.
‘기도?’
보이는 것만 갖고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은 그곳뿐이었다.
걷는 감각도 없는데 더 내려갔다.
그러자 형태와 무관한 움직임이 보였다.
티딕, 티딕―.
‘저기다!’
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움직임.
‘저게 뭐야?’
팟!
‘윽!’
움직임에 의문을 갖는 순간, 눈앞이 환해지며 색이 입혀졌다.
붉은 근육과 누런 힘줄들이다.
‘좀 더 자세히…….’
생각만 했을 뿐인데 갑자기 근육과 힘줄이 확대되며 이어진 끝이 어딘지 확인해 주었다.
발끝이다.
티딕― 티딕―.
소리가 다시 이어지자 용연은 근육 쪽에 집중했다.
그러자 붉은 근육 아래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모두 보였다.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다.
붉은 액체에 잠긴 형체들이 근육을 잘라 내고 연결하길 계속해서 반복 중이었다.
형체들은 할 일을 마치면 사라졌고 다른 곳에 돌기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숫자는 한두 개가 아니라 수백에서 수천에 이를 정도였다.
‘지금 뭘……. 길? 길을 만드는 건가?’
돌기들은 근육에 달라붙었다가 떨어지길 반복하며 일종의 길을 만들고 있었다.
왜?
용연으로선 당연히 드는 의문이다.
알아보기 위해 시간을 두고 지켜봤다.
꼼지락대던 돌기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면서 울퉁불퉁하던 길이 평평해졌다.
‘가만, 가만 설마 이곳이…… 내 몸?’
사방을 둘러봐도 용연은 없고 소리만 귀가 아닌 머릿속을 울려 댄다.
이런 것이 가능하려면 한 가지 경우 외엔 없다.
용연은 지금 자신의 몸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생각만으로 혀와 기도를 보고, 자세히 보고 싶다는 생각에 근육이 확대된다.
눈으로 보고 있다 느낀 모든 것이 사실은 감각이었던 것이다.
황당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었다.
가정이 맞는다면 용연의 몸이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뜻이 된다.
‘내 몸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집중력을 높이려 할 때였다.
또렷하게 보이던 모든 것들이 아득해지며 저 위로부터 무언가가 당기는 것을 느꼈다.
움찔.
눈꺼풀이 올라가며 눈이 떠졌다.
“헉!”
용연은 온몸을 떨며 좌우를 쉴 새 없이 둘러보다 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허름한 천장과 자신을 기절하게 만든 벽이 보인다.
얼른 일어나 가슴과 허벅지를 만져 봤다.
“괜찮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연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쳐다봤다.
담영호가 뚱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서, 선임?”
“그래, 나다.”
“선임!”
“…….”
“선…….”
빡!
“윽!”
용연은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아프냐?”
“그렇게 세게 때리면…… 괘, 괜찮습니다, 선임.”
용연은 불평을 하려다 담영호의 손이 다시 올라가는 것을 보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들렸던 담영호의 손이 엇갈려 접히며 팔짱으로 변했다.
그제야 안도한 용연은 슬며시 손을 내려 자신의 몸을 매만져 봤다.
큰 이상은 느껴지지 않았다.
“선임, 그런데 여긴 어디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구나.”
담영호가 팔짱을 풀었다.
“아아, 기억납니다! 제가…… 음, 그러니까…… 벽? 아! 맞다, 저 벽! 선임, 제가 저 벽 때문에 기절을 했습니다.”
용연은 손으로 벽을 가리키며 큰소리로 외쳤다.
“벽?”
“예, 저 벽입니다.”
“저 벽이 뭐?”
담영호는 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되물었다.
용연이 변명을 하고 있다 여긴 까닭이다.
“저 벽이 저를 기절시켰습니다. 빨리 학림이 돼서 왜 모옥을 다 이렇게 지었는지 알아내겠다고 다짐하며 벽에다 화를 푸는데…… 아니, 화를 푼 게 아니고 그러니까…….”
용연은 다급히 말을 돌리며 담영호의 눈치를 봤다.
팔짱은 풀었으나 아직은 말을 들어 줄 것 같았다.
다행이란 생각에 목소리를 더 키워 말을 이어 갔다.
“지, 진기! 화가 아니라 진기를 여기다 퍼붓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손을 떼려고 하니까 벽에 박히기라도 한 것처럼 꼼짝도 안 하는 겁니다. 너무 놀라서 발버둥 치다 눈을 뜨니…… 그, 그, 아무튼…… 그렇게 된 일입니다.”
용연은 몇 번이나 눈알을 굴렸는지 몰랐다.
그것 외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담영호는 특유의 담담한 표정을 유지한 채 용연이 설명을 이어 가길 기다려주었다.
그러나 용연은 더 이상 설명할 것이 없다는 듯 눈을 말똥거리며 뜨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용연과 담영호의 이상한 눈싸움이 벌어졌다.
할 말 다한 자와 아무것도 듣지 못한 자.
결과는 시작부터 정해지긴 했다.
“서, 선임?”
용연은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끝이냐?”
제대로 된 설명을 해야 할 것이다.
담영호는 눈빛으로 자신의 뜻을 전했다.
“그, 그게…… 예. 제가 정신을 잃은 뒤의 일은 꿈이라서 말씀드리기가 뭣합니다.”
“네 말을 정리해 보마. 저 벽을 있는 힘껏 밀다가 내가 들어올 때 진기가 고갈돼서 기절했다?”
“……예.”
아니다.
단순히 진기의 고갈이 아니라, 벽이 토해 낸 진기를 자신이 제대로 해소시키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하면 어떻게 될지 예상되기에 이쯤에서 넘어가 주길 기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였던 것 같은데. 맞냐?”
담영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절하기 전에 용연이 서 있던 위치로 갔다.
기마자세를 취했고 벽에다 손을 댔다.
“맞습니다, 선임.”
탁. 탁.
담영호는 두어 번 벽을 손바닥으로 두드려 보았다.
“여기에 양손을 이렇게 대고 밀었는데 벽이 네 손을 잡고서 놔주지 않았다는 거지?”
“아니…… 예.”
용연은 벽을 밀었다는 담영호의 표현을 바꿔 주고 싶었으나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백 마디 말보다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담영호는 용연이 말을 꾸며낼 리가 없다 믿고 양손에 진기를 모았다.
츠르―.
용연이 전력을 다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진기를 집중시켰다.
꾹.
하체를 단단하게 고정시킨 상태에서 호흡을 유지하며 밀어냈다.
서너 번의 호흡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조금 더 힘을 쓸까?
절레절레.
용연이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낸다고 해도 지금보다 더 세게 밀기는 힘들 것 같았다.
담영호는 이내 벽에서 손을 뗐다.
툭.
혹시나 하는 생각을 아주 잠깐 가졌다.
용연의 말처럼 손이 벽에 붙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씰룩.
쓴웃음이 지어졌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도 기상천외한 일을 해냈던 용연이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이다.
이곳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분지다.
분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암벽인 셈이다.
당연히 벽이 밀리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일 대 군림단주의 거처와 동일한 구조라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담영호는 무심한 표정으로 용연을 돌아봤다.
“선임, 벽은…….”
용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담영호는 미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용연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자신의 진기는 솜처럼 집어삼키던 벽이 왜 담영호의 진기에는 반응을 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방을 써라.”
담영호가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배려였다.
“서, 선임, 정말 아무것도…….”
“봤잖느냐?”
“그럼 왜 제 손은 놔주지 않았던 거죠?”
“…….”
“선임, 제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이 두 손을 저 벽이 놔주지 않았다니까요?”
용연은 억울하다는 듯 자신의 손과 벽을 번갈아 쳐다보며 곧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담영호는 고민이 되는지 벽을 다시 한번 돌아봤다.
잠유기를 주입해 살펴본 용연의 몸은 이상이 없었다.
그래서 직접 벽 앞에 서기까지 했다.
“네가 혼절했을 때 몸을 살펴봤다.”
“몸? 아, 맞다!”
용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양손을 가슴에 댔다.
깨어나기 전에 붉은 근육과 힘줄들을 찢고 자르던 돌기들을 떠올린 것이다.
“떠오른 것이 있느냐?”
“예, 있습니다. 제 몸에 이상한 짓을 하던 것들을 봤습니다.”
“이상한 짓을 하던 것들?”
“몸속에 그, 오돌토돌 솟는 거 있잖습니까?”
“오돌토돌?”
“돌기! 그거요. 그것들이 제 근육을 멋대로 찢어서 길을…… 만들었습니다.”
확신을 갖고 설명을 시작했던 용연은 말이 길어질수록 담영호의 표정이 미미하게 일그러지는 것 같아 슬며시 말끝을 흐렸다.
“꿈에서?”
담영호는 가차 없이 핵심을 찍어 냈다.
“……예.”
“실제로 벌어진 일인 것 같고?”
“……예.”
두 번째 대답을 하며 용연은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
담영호는 가타부타 말을 꺼내지 않았다.
꿈과 현실을 혼동하고 있는 녀석이다.
생각보다 용연의 상태가 심각할 수도 있다.
‘아, 답답하다.’
용연은 꿈 얘길 괜히 했다 여겼다.
꿈이 아무리 생생했다고 해도 직접 본 것은 아니잖은가?
“쉬고 나서 다시 얘기하자.”
“…….”
용연은 담영호의 저 한마디에 많은 것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