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림단주-19화 (19/232)

19화

언제 쥐었는지 담영호가 돌멩이를 날려 용연의 이마에 혹을 만들었다.

“이번 임무만 마치면 정식 단원이 될 시험을 치르게 될 거다. 코 닦아.”

‘정식 단원? 시험?’

용연은 돌멩이를 맞았을 때보다 더욱 정신이 번쩍 들며 담영호를 멀뚱히 쳐다보다 슥, 소매로 코를 닦았다.

“가서 소매 빨고 와.”

“……예.”

“드런 놈.”

아주 오래전, 방적이란 학림이 담영호란 후임을 가르칠 때 자주 사용했던 말이다.

***

탁― 탁―.

용연이 몇 번의 도약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담영호는 적당히 거리가 벌어지면 한 번씩 도약해서 거의 비슷하게 움직였다.

힐끗.

용연은 담영호의 눈치를 봤다.

평소대로 거리를 훌쩍 벌려서 쫓아가게 하면 좋겠는데 계속 따라오기만 하니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니다.

“선임, 이 방향이…….”

말이라도 붙여 볼까 싶어 옆을 돌아봤다.

“맞아.”

“……아, 예.”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한다.

왜 이러는 걸까?

어제 몇 번이나 때린 것이 미안해서?

생각과 동시에 용연은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었다.

담영호는 그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씩 담영호의 머릿속을 들어가서 언제 자신을 괴롭힐 생각인지 알아내고 싶을 때가 있었다.

“이번 임무는…….”

흠칫.

용연은 담영호가 말을 꺼내기 무섭게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담영호는 말을 멈추고 용연을 쳐다봤다.

“드, 듣고 있었습니다, 선임.”

“…….”

“……정말입니다. 맹세를 하라면 맹세라도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임무는 다른 학림과 연계해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담영호는 용연의 노력이 가상했는지 모른 척 넘어가 주었다.

“피해? 다른 지역의 세력이 쳐들어온 건가요?”

용연은 언제 움츠렸냐는 듯 눈을 반짝이며 반문했다.

“여긴 사천 땅이다. 그런 세력이 있다면 들어오는 순간 알고서 조치를 취했을 거다.”

“그럼…….”

“사천에 기반을 둔 두 문파의 싸움이라고 한다. 피해가 작아야 재정비하는 시간을 줄일 것 아니냐.”

“예? 그럴 거면 싸우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선임?”

용연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되물었다.

“거기까진 알려 줄 수 없으니 네가 학림이 돼서 직접 알아봐.”

“정식 단원만 알아야 하는 문제인가요?”

“……귀찮게 할래?”

담영호는 덤덤한 눈으로 용연을 돌아봤다.

용연의 시선이 자동적으로 앞쪽을 향했다.

몇 달간의 경험으로 이럴 때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란 것을 이젠 알기 때문이다.

역시나 이번에도 대답 듣길 포기하려 할 때, 담영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파끼리 싸운다는 건, 교류하고 있다는 증거다. 지금이야 서로의 영역을 조금이라도 넓히려고 아득바득 싸우지만, 두 문파와 상관없는 자들이 침범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끌어들이려 할 것 같은데요, 선임?”

“내 경험상, 두 문파가 연계해서 침범한 자들을 자신들의 영역 밖으로 내친다.”

“연계요? 영역 때문에 싸우는 문파들이요?”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니까. 먹더라도, 부하들을 잃어 본 자신들이 먹겠다는 거지.”

“음…….”

“그래서 두 문파도 우리를 찾는 거다. 중재 좀 해 달라고. 우린 기꺼운 마음으로 달려가 돕고.”

“그들이야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단은 왜 기꺼운 마음으로 달려가는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선임.”

“그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다지는 거니까.”

‘그것과 군림단이 기꺼이 달려가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지…….’

용연은 더욱 의아한 표정으로 담영호를 돌아봤다.

“이해가 안 되지?”

“예.”

“그럴 땐 스스로 부딪치며 깨달을 수밖에 없다.”

담영호는 용연이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 알고 있다.

자신 역시도 비슷한 질문을 방적에게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방 선배와는 다르게 가르치겠다고 다짐했건만…….’

시간이 지날수록 용연을 대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방적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 같았다.

힐끗.

용연은 그새 생각에 빠진 모양이다.

툭.

담영호는 나란히 달리다 용연의 어깨를 가볍게 건드렸다.

“예? 죄송합니다, 선임.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용연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담영호를 돌아봤다.

“괜찮아. 어떻게 맨날 확 트인 공간만 달리겠냐?”

“무, 물론 그렇겠죠?”

“그럼. 그러니 매 순간 조심해야지. 조심해.”

“예?”

퍽!

“으어!”

용연은 갑자기 나타난 나무에 부딪치곤 데굴데굴 굴렀다.

“앞을 안 보면 아무리 주의를 줘도 보이지 않는 건 당연한 거다. 쯧.”

담영호는 멈춰 서서 용연을 향해 혀를 두어 번 차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서, 선임! 이렇게 하면 재미있습니까? 이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 어?”

용연은 담영호의 뒤에 대고 마구 소리를 지르다 서서히 입을 다물었다.

모르고 부딪친 것치고는 너무 멀쩡했기 때문이다.

‘아!’

창천비를 펼치면 힘이 넘치기에 일부러 미약하게나마 진기를 발산시키던 중이었다.

습관화시키면 언제고 담영호처럼 앞쪽 공기를 뾰족하게 만들 수 있게 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 덕을 본 것이다.

‘선임이 알게 해 주려고 일부러…… 했을 리는 없지.’

용연은 분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씩씩댔다.

그러나 오래가진 않았다.

어느새 담영호의 모습이 지평선을 넘어서고 있었다.

“선임, 같이 가요!”

분하지만 곧 만나게 될 다른 후임을 생각하자 저절로 발걸음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

카캉!

적휘는 허리춤에서 다른 도에 비해 길이가 반밖에 안 되는, 하나는 검고 하나는 하얀 도 두 개를 꺼내 들어 막았다.

“선임!”

적휘는 무인 둘을 튕겨 낸 뒤 무묵을 찾았으나, 이미 무묵의 신형은 저 너머로 사라진 뒤였다.

―싸우지 말고 내가 어떻게 처리하는지 잘 지켜보기나 해.

무묵이 이곳에 도착한 뒤 해 준 말이다.

캉! 텅―.

적휘는 공격한 자의 검을 막는 동시에 걷어찼다.

한눈에 봐도 무복은 두 가지다.

그런데 서로에겐 신경도 쓰지 않고 오직 적휘를 향해 다가온다.

‘흑백이반도(黑白二半刀)를 펼치면 몸은 피할 수 있을 것도 같지만…….’

적휘는 미간을 찌푸리며 인상을 썼다.

무묵의 얘기를 이미 들은 뒤라, 이들을 죽여선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주춤.

적휘가 뒤로 물어나자 좁혀 오던 무인들의 눈이 달라졌다.

꾹.

쌍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때, 다가오는 무인의 머리를 뛰어넘으며 그림자 두 개가 적휘를 덮쳤다.

카카캉!

“마, 막아?”

그림자를 만든 둘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경고합니다. 더 이상 다가오면 여러분들이 크게 다칠 수 있습니다.”

적휘는 쌍도를 털어 덮쳤던 무인 둘을 떼어 내며 다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혼자 왔니?”

갑자기 허공에서 이죽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적휘는 재빨리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쉬악―.

뭔가 날아온다.

적휘는 쌍도를 열십자로 교차시키며 힘을 집중했다.

쾅!

“큭!”

적휘의 입에서 신음이 터지며 서너 걸음 가까이 물러났다.

고개를 돌려 바닥에 박힌 물건을 쳐다봤다.

철립이었다.

“선임을 졸졸 따라다니더니 실력 좀 늘었네? 쿡쿡.”

철립이 박힌 곳으로 걸어가는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조소를 뱉으며 적휘를 돌아봤다.

“……!”

적휘는 사내가 자신과 무묵의 관계를 알고 있자 놀라서 쳐다봤다.

“지금이야 선임 뒤에 숨어서 학림이 되고 싶은 생각뿐이겠지. 오늘 살아나면 몇 년 뒤에 다시 보자꾸나. 너 혼자 있을 때, 내 동료 몇몇과. 쿡쿡.”

‘무슨 뜻이지?’

적휘는 의아한 표정으로 사내를 쳐다봤다.

“이런,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구나? 그럼 일단 살고 봐야겠네?”

철립을 든 사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꾹.

적휘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사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진 못했으나 그걸 아는 것보다는 일단 이 자리에서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었다.

***

“선임, 여긴 도대체…….”

용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 가지 무복을 입은 무인들이 서로 뒤엉켜 있는 장내를 내려다봤다.

“…….”

담영호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대답 없이 내공을 눈에 집중시켜 빠르게 장내를 훑었다.

뭔가 잘못됐다.

먼저 도착했다는 무묵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음?’

시야를 좀 더 넓힐 때, 수상한 움직임 두 개가 담영호의 눈에 들어왔다.

안력을 돋우자, 나무를 뛰어넘으며 달아나는 인영과 그 뒤를 물고기처럼 유영하며 쫓는 인영 둘이 보였다.

‘망량?’

뒤쪽 인영의 움직임은 군림단원만이 펼칠 수 있는 망량이다.

“움직이지 말고 자리 지켜.”

“어딜 가시…….”

용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담영호의 신형이 장내가 아닌 바깥쪽을 향해 움직였다.

용연은 재빨리 담영호가 향하는 방향을 먼저 눈으로 훑었다.

그러나 그곳 어디에도 싸움이나 숨어 있는 무리는 보이지 않았다.

담영호는 순식간에 계곡을 벗어나 용연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혼자 남겨진 용연은 장내를 훑어보며 적휘를 찾았다.

“저들과 섞여 있을 리는 없고. 어디 있으려나…….”

용연은 적휘가 숨어 있을 만한 적당한 곳을 찾으며 주위를 빙 둘러볼 때, 한 곳에 유난히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곳에서 잘 들리지 않지만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며 자세히 쳐다봤다.

“어? 적휘?”

무묵과 떨어져 있다면 자신처럼 적당한 곳에 숨어 있어야지, 왜 무인들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거지?

용연은 일단 달렸다.

***

쉬악!

철립이 목을 노리고 수평으로 뻗어왔다.

카캉!

“읏!”

적휘는 철립에 부딪치자마자 쌍도가 튕겨지며 가슴이 비고 말았다.

“쿡쿡.”

사내가 조소를 터트렸다.

훙―.

파공음과 함께 경력이 실린 주먹이 적휘의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

“어?”

당연히 적휘의 가슴에 꽂힐 줄 알았던 사내의 주먹이 옆쪽 공간을 때렸기 때문이다.

팡!

“……!”

사내의 표정이 사나워지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적휘는 사내가 허공을 때리자 의아했으나 생각을 이어 갈 여유는 없었다.

재빨리 옆으로 몸을 굴린 후 일어났다.

“다쳤어?”

“어? 요, 용연!”

적휘는 손을 건네는 용연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혼자서 저 사람과 싸우고 있는 거야? 선임은 어딜 가셨어?”

“그게…… 일단 눈앞의 일부터 처리하고 얘기하자.”

적휘는 뭔가를 얘기하려다 사내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며 자세를 잡았다.

용연도 더는 묻지 않았다.

그때, 사내가 갑자기 나타난 용연의 위아래를 훑으며 쳐다봤다.

“네가 한 짓이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