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림단주-18화 (18/232)

18화

쉬쉬쉬―.

힐끔.

담영호가 뒤를 돌아본다.

“선…….”

쉬악―.

용연이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담영호의 신형이 쭉 늘어지며 거리를 벌렸다.

다탁― 다탁―.

용연은 더 속도를 내 쫓아갔으나, 시간이 갈수록 둘 사이의 거리는 더 멀어졌다.

그렇게 반나절 가까이 달렸을 때, 용연의 동작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탁―.

한 번의 도약에 두 번의 소리가 나던 이전과 달리 한 번만 났다.

‘어? 한 발로도 되네?’

용연은 당연히 안 될 거라 여겼던 한 발 도약이 가능하자 깜짝 놀라 잠시 집중력이 흐트러졌으나 재빨리 왼발에 힘을 싣자 다시 떠올랐다.

탁― 탁― 탁―.

이전까진 왼발이 도움닫기 같은 역할을 해 줬는데 이제는 달리기하듯 삼사 장을 건너뛰고 있었다.

‘힘이 넘쳐!’

새로운 방식을 적용했음에도 진기의 소모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고개를 들자 담영호가 눈에 들어왔다.

‘해 볼까?’

한 발 도약이 가능해진 것은 시선 때문이다.

닿을 위치를 눈에 담으면 발이 알아서 보내 주는, 삼제의 원리로 펼치는 악조궁이 신법으로 바뀐 것 같은 느낌?

지금의 느낌으로 담영호를 보며 달리면 거리가 약간은 줄어들 것 같다.

쉬이―.

용연의 속도가 빨라지며 도약 거리 또한 늘어났다.

그러면서도 얼굴엔 생기가 더욱 강렬해진다.

힐끗.

“음?”

담영호는 반나절 동안 조절했던 용연과의 거리를 염두에 두고 뒤를 돌아봤다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열심히 달려오는 용연의 모습이 무려 손가락 하나 정도의 크기였기 때문이다.

“이 녀석 봐라? 그 거리만 잘 유지하며 따라왔으면 잠시 쉬게 하려 했는데…… 감히 내게 도전을 해?”

용연이 자신의 생각보다 더 빨리 쫓아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담영호는 앞쪽을 보며 방향을 가늠했다.

대교 진류가 일러 준 지역은 자공(自貢)이다.

지금과 같은 속도를 유지하면 이틀, 좀 더 느리면 삼 일을 잡아야 하는 거리다.

“어디 하루 반나절 안에 도착해 볼까?”

씰룩.

담영호 특유의 웃음이 입가에 걸렸다.

텅!

쉬아악―.

담영호의 신형이 무지막지한 탄력으로 땅을 밀어내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서, 선임…….”

용연은 눈으로 확인될 정도로 거리를 좁히자 신이 나서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멈춰 서는 것 같던 담영호가 엄청난 높이로 포물선을 그리며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자, 더 달리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고 말았다. 아니, 쫓아갈 대상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턱.

용연은 멈춰 섰다.

“후우, 후우…….”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담영호가 사라진 방향을 아쉬운 눈으로 쳐다봤다.

시간을 조금만 더 주었다면…….

반나절 내내 쫓는 것에만 집중하다 한 발 도약에 익숙해지며 생각지도 못했던 여러 가지를 깨닫던 중이었다.

한 발 도약 후에 폭발적으로 늘어난 힘을 느끼자, 이어서 대상에만 집중됐던 신경이 주위로 확산됐다.

여기까지도 놀랍지만, 용연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악조궁의 역할이다.

몇 십 장 떨어진 대상을 향해 기를 발출해 봐야 닿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진기가 모일 때마다 손을 뻗었다.

―너는 몸으로 바람을 모두 이겨 내야 하지만, 나는 기를 운용해서 한 자 앞의 공간을 뾰족하게 만들거든. 바람이 내 몸에 닿을 일이 없어.

담영호의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악조궁을 이용해 알게 됐다.

짝!

용연은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때렸다.

“내 진기가 닿는 거리는 세 걸음이야. 굳이 선임을 대상으로 악조궁을 사용하지 않아도 돼. 다시 시작해 보자.”

호흡을 고른 용연의 신형이 땅을 박찼다.

탁.

앞쪽을 보고 있다가 눈에 들어오는 사물이 있으면 곧바로 손을 뻗었다.

쉬우우―.

훨씬 속도가 빨라졌다.

탁.

왼발로 땅을 박찼을 때, 용연이 미미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내가 달리는 동안 공기의 저항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악조궁을 사용하지 않고도 앞쪽 공기가 뾰족해질 무언가.

용연은 그 생각에 몰두하며 진기가 모일 때마다 손을 뻗으며 속도를 냈다.

“악조궁을 속도를 높이는 데에 사용한다?”

담영호는 멈춰 서서 용연이 달려오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창천비만 주야장천 펼쳐선 속도를 높일 수 없다는 조언을 해 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미 저 녀석은 스스로 깨우친 것이다.

달리는 와중에 빨라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를 한 모양이다.

‘저런 방식으로는 오랫동안 같은 속도를 유지하기 힘들지만, 배운 지 얼마 안 된 악조궁을 허공에 대고 펼쳤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꾹.

지켜보던 담영호는 양손으로 자신의 팔뚝을 눌렀다.

자꾸만 웃음이 나와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길가에 핀 들꽃을 뿌리째 쥐고 있다 뜰 앞 아무 곳에나 던져 두고 물 몇 번 준 적이 있었다.

생각도 하지 않고 지내다 어느 날 문득 집을 나서다 말고 돌아봤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름다운 꽃을 보게 됐다.

담영호는 용연을 그때 본 꽃처럼 보고 있다.

해 준 것도 없는데 지나치게 잘 자라 버린 들꽃.

양손을 포개 머리에 댔다.

“그놈 참…….”

***

용연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두 걸음 앞에 선 담영호를 쳐다보다 손을 내밀었다.

팍―.

순간, 담영호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사라지며 수건 털 때와 같은 소리가 났다.

“여기다.”

“……!”

용연이 깜짝 놀라 옆을 돌아보니 담영호가 한 손을 들고 있었다.

퍽! 붕―.

그다지 강한 충격은 느껴지지 않았으나 몸이 떠오른 채 뒤로 날아갔다.

턱.

용연은 발이 땅에 닿자마자 두어 걸음 물러서다 멈췄다.

“다시.”

담영호는 용연과 두 걸음 떨어진 곳으로 다가간 후 공격하라는 손짓을 했다.

벌써 여러 번 반복되고 있는 과정이다.

용연은 공격하고 담영호는 받아 주며 밀어내고.

‘아무리 힘을 써도 닿지 않아. 달리는 동안 저항을 없애고 싶다고 질문을 한 것뿐인데 무조건 덤비라고만 하니…….’

그냥 알려 주면 좋을 텐데 담영호는 용연의 몸에 새겨 주기라도 할 것처럼 말없이 공격만 받아줄 뿐이다.

용연은 오기가 발동해 첫 공격부터 지금까지 담영호가 어떤 식으로 자신의 공격을 피했는지 떠올리며 심호흡을 했다.

‘어?’

갑자기 용연의 눈에 이채가 번득였다.

뭔가를 발견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앞이 아니라 옆이었어?’

반복되는 규칙이 있었다.

담영호는 용연의 악조궁을 피한 후 오른쪽에서 공격을 가했다.

‘윽. 알아냈어도 악조궁을 선임에게 성공시킨다는 보장은 없잖아?’

용연은 희미하게 웃음을 머금었으나,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담영호가 나타날 위치는 알고 있다고 해도 거리는 무슨 수로 좁힌단 말인가?

방향, 거리.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선임의 위치를 기준으로 원을 그리자.’

용연은 심호흡을 하는 척하며 뒤로 돌아서서 반경을 눈에 새겼다. 그러고는 머릿속으로 빙그르 원을 그렸다.

‘선임이 동서남북 네 방향 모두에 서 있다고 가정하면, 눈으로는 선임을 담고 악조궁은 오른쪽으로 이동했을 때의 선임에게 사용해야 한다.’

창천비를 펼치며 악조궁을 사용했다면 그 반대도 가능할 것이다.

용연은 눈앞의 담영호를 향해 악조궁을 운용했다.

손을 들어 기를 발출하자마자 곧장 방향을 틀어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멈추자마자 손을 뻗었다.

악조궁을 두 번 연속 펼치려는 것이다.

그러나 막 기를 발출하려는 순간, 당황해서 모든 동작을 멈추고 말았다.

당연히 있어야 할 위치에 담영호가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여기다.”

‘이 방법도 안 되네.’

용연은 담영호의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양손을 교차하며 돌아섰다.

퍼억! 부웅―.

이전보다 강한 충격이 용연을 때린 후 훨씬 멀리 날려 버렸다.

잔꾀를 부린 걸 들켰으니 벌받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화가 나 있을 거란 용연의 생각과 달리 담영호는 헛웃음을 짓고 있었다.

‘미치겠군.’

용연이 조금만 느리게 움직였다면 담영호는 옷자락을 내줘야 했을지도 모른다. 담영호의 속도를 본능적으로 느끼고 그에 맞춰 손을 쓴 것이다.

저 어처구니없는 녀석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른 채 분한 얼굴로 일어나고 있다.

용연은 악조궁을 두 번 연속 펼쳤다.

위력이야 언제고 내공이 상승의 경지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강해진다.

그러나 조금 전에 보인 용연의 응변은 아무리 내공이 높아도 모르면 펼칠 수 없는 것이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학림 시험을 보게 해 주고 싶었다.

심사를 하는 교림들이 판단하기에 도전자가 학림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면 바로 제신유기(提身兪氣)의 단계에 올라갈 수 있도록 몸을 만들어 준다.

그렇게 되면, 어그러진 몸의 균형이 잡히고 몸속에 심어둔 잠유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즉, 몸으로 묻고 기로써 답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는 셈이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거쳐야 얻어지는 것을, 저 얼토당토 않는 후임 녀석은 교림들의 도움도 없이 그 단계로 가는 단초를 깨달아 버린 것이 아닌가?

담영호로선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왜 후임일 때는 제신유기의 단계로 올려 주지 않습니까?

담영호가 선임이었던 방적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아찔한 충격과 욕이 동시에 안겨졌다.

―재능이 있어야 제신유기를 만들어 주든 훔쳐다 주든 할 거 아냐! 주고 싶어도 줬다가 죽어 버리면? 교림들께서 너희들이 언제 오나 기다릴 만큼 한가한 분 같으냐?

‘이번 임무가 끝나면 바로 대교께 말씀드려야겠다.’

담영호는 마음이 급해졌다.

용연의 재능은, 자신은 물론이고 선배들에게 들었던 그 어떤 뛰어난 단원의 얘기와도 비교 불가다.

잠유기를 빠르게 받아들인 일이야 그럴 수 있다.

창천비?

신법에 특출한 재능이 있으면 그 또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악조궁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악조궁은 대성하는 무공이 아니라 학림이 됐을 때 선택하게 될 군림단의 무공들과 그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그런 악조궁을 불과 이십여 일 만에, 그것도 대상이 움직이는 상황에서 연속으로 펼쳐 낸 것이다.

재능만 놓고 말한다면, 가히 군림단 사상 최고라 해도 모자람이 없을 거라 담영호는 단언할 수 있었다.

“잠시 쉬었다가 이동하자. 이리 와 앉아.”

담영호는 우물쭈물하며 자신의 눈치를 보는 용연에게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죄송합니다, 선임. 며칠 내로 꼭…….”

다가온 용연은 담영호가 혼내기 전에 스스로 잘못을 인정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

용연의 눈이 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동그래졌다.

이 무슨 청천벽력과 같은 말인가?

울컥.

용연은 눈물을 글썽였다.

‘좋아하는군. 나라도 그랬겠다.’

담영호는 용연을 보며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울어도 좋다는 뜻이다.

“으허엉…….”

“아직…….”

“제가 그토록 재능이 없습니까? 더 노력하겠습니다, 더 하고, 더 하겠습니다. 흐엉…….”

용연이 담영호의 옷자락이라도 잡으려 손을 뻗었다.

‘코…… 더러운 놈.’

슥.

담영호는 용연이 다가온 만큼만 딱 물러난 후 오해라고 말해 주려 했다.

그러나 용연은 담영호에게 그럴 여유를 주지 않고 다시 달려들었다.

“으허엉…….”

딱!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