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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단주-17화 (17/232)

17화

담영호가 잠자리에 대해 말을 건네는 걸 보니 드디어 내일은 편한 곳에서 잠을 잘 수 있는 모양이다.

몸을 웅크리고 눈을 감았다.

기분 좋은 상상을 해서 그런지 잠이 솔솔 왔다.

적당히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한쪽에는 잘 차려진 음식들 냄새가 서로 용연의 코로 달려든다. 옆을 돌아보니 손만 뻗으면 잡힐 것처럼 탐스러운 과일들이 놓여 있다.

슥.

용연이 손을 뻗었다.

‘윽!’

단지 욕조 밖으로 손을 뻗었을 뿐인데 숨이 막히고 몸이 둔해졌다.

‘뭐, 뭐지?’

용연은 재빨리 숨을 멈추며 주위를 돌아봤다.

그러나 뿌옇게 보일 뿐 제대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물? 설마 지금 물에 빠진…… 선임!’

양손을 허우적대며 눈을 부릅뜨고 고갤 들었다.

빛이 반사되는 수면이 보인다.

일단 위로 올라가야 한다.

몸을 좌우로 흔들고 양발을 힘껏 번갈아 차며 올라갔다.

다 왔다.

이제 힘껏 솟구쳐 숨을 쉬면 된다.

용연이 안도하며 막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려 할 때였다.

텁.

‘응?’

누군가 용연의 머리를 눌렀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재빨리 아래로 내려가 위를 올려다봤다.

담영호가 용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역시…….’

용연은 그제야 자신이 왜 물속에 있는지 깨달았다.

씻게 하려는 의미인 것이다.

‘응?’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용연의 눈에 담영호의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기회다 싶어 빛의 속도로 뛰쳐나가 바위 위에 대자로 뻗은 채 숨을 헐떡였다.

“헉, 헉, 헉…….”

숨을 쉰다는 것이 이토록 소중한 것인지 태어나 처음 느껴 보는 용연이었다.

힐끗.

담영호는 위를 올려다본 후 속도를 더 냈다.

새가 갑자기 방향을 틀며 시야에서 벗어나려 한다.

쉬쉬쉭―.

직선으로 달리던 담영호의 신형이 아름드리나무를 구십 도로 돌며 속도를 유지했다.

십여 장을 이동한 후 다시 위를 올려다본다.

나무에 가려 새가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로 내려간 것이다.

담영호의 하체가 쭈욱 늘어나는 것 같더니 붓으로 두껍게 눌러서 그은 선처럼 움직였다.

쉬쉬쉬―.

땅 위를 날듯이 움직이는 신법, 망량(魍魎)이다.

“망량이 완전 무르익었는걸? 이래서 다들 담 학림, 담 학림 하는 거겠지만. 흐흐흐.”

사십 대 후반에 머리는 상투를 틀었고 눈과 코는 살짝 안으로 몰렸으며 하관은 유난히 각이 져 있다.

“형도준 교림?”

담영호는 중년인을 한눈에 알아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에 선배를 봤으면 웃기라도 해라. 대교께서 전해 주란다.”

형도준은 쥐고 있던 서찰을 날렸다.

둥실―.

서찰은 줄이라도 달린 것처럼 담영호에게 날아왔다.

턱.

담영호는 서찰을 잡자마자 소매 속에 갈무리했다.

“내가 내용을 봤는지 안 궁금해?”

“형 선배께서 이것 때문에 오셨을 리 없으니까요.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까?”

“음? 네가?”

형도준은 담영호의 대답이 의외였는지 이채를 발하더니 알 듯 모를 듯 장난기 담긴 웃음을 지었다.

“말씀하시면…….”

“지금은 없고. 교림으로 올라오면 무진장 많을 것 같다. 요즘 교림들은 죄다 이기적이야. 도통 싸우려 들질 않아. 그런데 네가 올라오면 달라질 것도 같은데?”

“…….”

얼른 교림이 돼서 자신과 함께 싸우자는 소리다.

담영호는 가만히 듣기만 했다.

“쫀 거 아니지?”

히죽, 웃으며 형도준은 놀리듯 한마디를 더 건넸다.

학림 담영호에겐 해 줄 말이 없다는 뜻이었다.

“하실 말씀 끝나셨으면 이만 가 보겠습니다.”

담영호는 바로 알아듣고 돌아서려 했다.

“아아! 서쪽 안가(安家)에서 학림들을 만났는데 담 학림 얘길 많이 하던데?”

“……?”

“네 후임. 너만큼이나 별종이라며?”

형도준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아닙니다.”

“에이, 겸손은.”

“겸손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녀석은 저보다 더 별종이거든요. 어제 악조궁을 실전에서 사용하는 걸 봤습니다.”

“……!”

형도준의 웃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내공만 뒷받침되면 창천비를 망량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같습니다.”

“호오…….”

형도준은 자신도 모르게 담영호의 말에 호응하며 동공을 확장시켰다.

“잠유기 주입은 열흘 동안 했습니다. 창천비를 알려 주고 열흘을 기다렸고, 달리는 걸 앞에서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악조궁은 보름 동안 떨어져 지냈다가 만났을 때 발현까지 해내더군요.”

“에이…….”

형도준은 장난치지 말라는 눈으로 담영호를 쳐다봤으나, 표정에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거기까지 고작 세 달 걸렸습니다.”

“다른 학림들이 말한 것처럼 예비 기간 없이?”

형도준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예, 들으신 그대롭니다. 예비 기간 없이 곧 네 달이 됩니다.”

“이거, 이거…… 그 말이 과장이 아니었단 말이지? 방 선배는 현승 선배의 기록을 깨긴 텄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담 학림과 저 별종 후임뿐인가?”

형도준은 혼잣말을 하다 말고 소름이 돋는지 양팔을 마구 문질렀다.

그런 형도준을 보며 담영호는 미미하게 웃었다.

군림단에서 가장 바쁜 축에 드는 사람이 형도준이다.

사십 대 후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왕성한 호기심 해결을 위해 천지사방을 뛰어다닌다.

특이한 것은, 그렇게나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형도준이 관여한 사건은 해결이 됐다는 점이다.

‘대교를 찾아갔는데 마침 내가 보낸 서찰이 도착했던 것이려나.’

담영호의 머릿속에 대교와 형도준이 마주 보고 앉은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 어디…… 아니지, 처음에만 반짝하는 재능일 수도 있잖아? 그렇지? 안 보는 게 좋아. 당장 할 일도 있고 몇 가지 무공도 손 좀 봐야 하는데…….”

형도준은 혼잣말을 멈추지 않고 중얼대다 이내 두 눈을 질끈 감고 손으로 귀를 막으며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호기심을 누르기 위한 나름의 방법인 모양이다.

“다녀오십시오. 조만간 안가에서 뵐 때 정식으로 인사드리게 하겠습니다.”

“안가?”

형도준의 표정이 다시 살아났다.

자신이 맡은 임무를 처리하고 여기서 가장 가까운 안가까지 가려면 적어도 오 일 정도는 걸릴 것이다.

“대교께서 주신 임무를 마치고나면 인수(仁壽) 안가에 며칠 묵을 것 같습니다. 시간 되면 뵙도록 하겠습니다, 형 교림님.”

“됐고. 내가 갈 때까지 안가에서 기다려.”

형도준은 담영호의 말에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하늘을 올려다봤다.

마음이 급해져서 시간을 가늠하는 것이다.

곧장 신형을 솟구치며 한마디 더하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안 기다리면 죽는다!

“……예, 형 교림님.”

담영호는 용연에게 돌아가려다 허공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답하며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몇 걸음 움직이다 멈춰 서서 대교 진류가 보낸 서찰을 꺼내 읽었다.

[내가 바쁘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 아주 귀찮게 해. 일일이 기억 못 할 정도로 양이 많아져서 연락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놓지 않으면 까먹기도 한다네.

내 근황이 그렇다는 것일세. 내 근황이.

하지만 그 바쁜 와중에도 담 학림의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을 것 같은 부탁은 특별히 시간을 내서 찾아봤네.

용잠.

삼십여 년 전 교림 목록에 올라계셨던 분이야.

칠절연파도(七節延波刀)란 무공을 독문무공으로 사용하셨고…….]

‘도?’

담영호는 자신이 제대로 읽었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으나 틀림없이 도법을 익혔다고 적혀 있었다.

“후우…….”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특이한 이력이 한 가지 있는데, 유난히 일대 단주님의 무공에 관심을 가지셨더군.

시기적으로 선림 몇 분과 같이 활동을 하신 것 같아 일단 연락은 드려 봤네. 선림들께서 답을 주면 그것도 보내도록 하지.

혹시 몰라 하는 말이지만, 위에 쓴 농담에 겁먹어서 할 말 못 하거나 하진 말라고.

아!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겠지?

일 하나 해 줘야겠네.]

“끙…….”

담영호는 저 말이 안 나와서 이상하다 싶었다.

[무 학림에게 시킨 일이 있는데 예상보다 일이 커질 것 같아. 오 년 전에 한 번 겪어 봤으니 두 번은 없어야 하지 않겠나?

장소는…….

대교 진류.]

꿈틀.

“오 년 전…….”

담영호는 마지막 글을 읽다 미간을 찌푸렸다.

재차 확인해도 제대로 읽은 것이 맞았다.

군림단원들에게 ‘오 년 전’이란 말은 금기시되는 말이다.

사천성 내에서 임무 수행 중이던 학림 다섯 명이 며칠 간격으로 살해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 선배가 움직이신 건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함부로 넘겨짚진 않았다. 어차피 가 보면 알게 된다.

담영호는 오 년 전 일을 떠올리자 분노가 들끓었다.

그러나 분노한다고 지금 당장 뭘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며 서찰 앞부분으로 시선을 옮겼다.

“교림까지 올라간 분이 일대 단주님의 무공에 관심이 많았다고?”

처음에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으나, 다시 보니 더욱 의아해지는 말이었다.

교림은 새로운 무공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익힌 무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하는 위치다.

그런 위치에서 일대 군림단주의 무공에 관심을 둔다?

추측을 해 봐야 할 부분이다.

‘용잠 선배님은 자신이 익힌 무공에 한계를 느끼고 일대 단주님의 무공을 모았어. 그리고 모은 정보를 기반으로 무공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용연이 익힌 삼제다? 이건 아니지 않나? 새로운 무공을 창안할 정도의 능력을 가진 분이 왜 칠절연파도의 벽에 부딪친 거지?’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칠절연파도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군림단엔 그보다 뛰어난 무공들이 많았다.

‘오히려 다행인가?’

담영호는 이 상황에서 용연을 떠올렸다.

용잠의 칠절연파도가 아닌 삼제라는 무공을 익혔으니 그 어떤 제약에도 걸리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선…….”

용연은 나름 억울함을 토로하려 다가오는 담영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가 얼른 말을 삼켰다.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자세가 꽤나 심각했다.

용연이 옆으로 슬그머니 비켜서자 담영호는 바위에 앉았다.

“다 씻었냐?”

“예? 예!”

용연은 재빨리 대답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제대로 씻은 것이 아니기에 찔리기도 하고 다시 물에 빠지고 싶지도 않았다.

“임무를 받았다. 바로 움직여야 할 것 같다. 그런데…….”

“……?”

용연은 아직 할 말을 끝내지 않은 것 같은데 담영호가 말을 흐리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담영호의 입이 다시 열렸다.

“……이번 임무는 생각보다 위험할 수도 있다. 내가 너를 못 챙길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담영호는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을 말해 주었다.

긁적긁적.

“선임, 저는 선임을 따라나선 이후 단 한순간도 위험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사실…… 선임과 함께 있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이 있기는 한지 궁금합니다.”

용연은 머쓱한 표정으로 웃었다.

씰룩.

담영호는 용연의 반응을 보고 입가의 근육을 비틀었다. 실소가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기 때문이다.

“다행이네, 잘 알고 있어서.”

씰룩이던 담영호의 입가에 웃음이 그려졌다.

‘음? 웃으셨어? 이거 위험한데…….’

용연은 담영호의 웃음을 보자마자 왠지 오싹해지는 기분에 몸을 움츠렸다.

고오오―.

담영호의 전신에서 일어난 기세가 용연에게로 향했다.

용연은 숨도 쉬기 힘들었으나, 그렇게 말한다고 봐줄 사람이 아님을 알기에 재빨리 양손을 들어 삼제의 원리를 운용하려 했다.

그러나 용연의 팔이 올라가기도 전에 묵직한 충격이 복부를 때렸다.

퍽!

“컥!”

용연은 나가떨어지면서도 담영호의 다음 공격이 이어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목을 들었다.

다행히 담영호는 더 이상 손쓸 생각이 없는지 제자리에 서 있었다.

‘아프다…….’

뒤늦게 전해지는 고통에 용연은 눈물이 찔끔 났다.

풍덩―.

먹은 것도 없는데 물로 배나 채우고 나가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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