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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단주-14화 (14/232)

14화

두근.

오른 손바닥을 쫙 편 상태로 들어 올렸다.

그때까지 오직 창문의 한 점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제 기를 운용하기만 하면 된다.

스으―.

단전에서 뜨거운 기운이 솟구친다.

‘지금!’

용연은 집중하고 있던 한 점을 노려본 채 손가락을 쫙 폈다.

츳.

‘뭐, 뭔가 빠져나갔…… 헉!’

퍽!

용연은 입을 쩍 벌린 채 나무 창살 두어 개에 난 자국을 쳐다봤다.

일보.

기가 닿은 거리다.

신체의 일부가 사물이나 사람에 닿지 않았음에도 창문을 부러뜨렸다.

덜덜덜―.

떨림이 멈추질 않는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신기(神技)가 자신의 손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용연은 부러진 곳을 만져 보고 물러섰다가 다시 가서 손을 대 봤다.

거리. 간격.

너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원리가 있다.

바로 원하는 만큼 자르는 제(制)의 원리다.

일보 정도는 제의 원리를 적용시킬 수 있는 모양이다.

이전에는 손이나 발이 사람이나 사물에 닿아야 다음 순서인 자르는 제의 원리를 적용할 수 있었는데, 이젠 시선으로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꿈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십 보, 백 보까지도 닿을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아버지…….’

눈물 때문에 앞이 뿌옇다.

악조궁을 성공시켰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까지 체술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던 삼제의 원리가 생각보다 엄청난 원리이며,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여 익히게 해 준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흐읍…….”

이를 악물었는데도 숨이 토해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용연의 무릎은 이미 바닥에 닿아 있었고 상체는 엎드린 채 양손으로 이마를 받치고 있었다.

덜커덕―.

퀭한 평야의 바람이 부러진 창문을 건드리고 지나간다.

다음 날.

객점에서 봤을 때는 그리 멀지 않을 것 같던 탕문평야는 아무리 달려도 모습을 드러내 주지 않았다.

용연은 꼬박 하루를 더 달린 후 노숙하기 위해 바람 피할 장소를 찾아 불을 지폈다.

낙타나 말의 말린 똥을 주워 피우는데 연기가 꽤 많이 났다.

“내일이구나.”

용연은 밤의 추위나 황량한 어둠은 개의치 않았다.

머릿속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밖엔 없다.

담영호를 만나 어젯밤에 성공했던 그 감각, 눈에 들어온 창문을 부러뜨린 그 감각이 맞는 건지 확인받고 싶었다.

휘이이―.

“읍…….”

바람 때문에 연기가 얼굴을 덮쳤다.

손으로 연기를 흩트리며 누웠다.

그나마 얕은 턱을 등지고 있어서 그런지 온기가 몸을 감싸자 저절로 눈이 감겼다.

고단했던 모양이다.

***

“이것 참…….”

구선은 불빛이 흔들리는 곳을 보다 목을 긁적였다.

무려 열흘 넘게 지켜봤는데 초반 며칠 외엔 용연이 수련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나 지루해하는 구선과 달리, 담영호는 용연이 피운 불빛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갈수록 놀라게 하네요, 저 녀석.”

담영호의 목소리에 진심이 담겼다.

“허허. 뭐, 저 정도도 놀랍기는 하지요. 하지만 이번엔 담 단원의 판단이 틀린…….”

“구 향주, 저 녀석을 보름 가까이 지켜봤으면서 모르겠어요?”

“……?”

“오 일 정도까지는 구 향주가 아무리 재미없는 얘길 해도 전부 들었으나, 육 일째부터는 몇 번인가 못 들었어요. 그 뒤로 횟수는 더 빈번해졌고. 그리고 어제오늘을 생각해 봐요. 우리가…….”

“대화! 그러고 보니 담 단원과 말을 섞은 기억이 거의 없…… 그 정도로 신법을 펼치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거요, 담 단원?”

구선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다.

용연이 악조궁을 펼칠 수 있느냐 없느냐만 지켜봤지, 다른 것엔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녀석, 어쩌면 깨닫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뭐, 뭘 말이오?”

“내가 십 년 가까이 수련한 후에야 알게 된 것을요.”

“그, 그게 뭐죠, 담 단원?”

“내일이면…….”

담영호는 말끝을 흐리며 구선에게 눈을 돌렸다.

“내일…… 아! 미안하오, 담 단원. 너무 궁금해서 실수를 했소.”

담영호와 눈이 마주친 구선은 퍼뜩 정신이 들며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사과했다.

그러자 담영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선을 아래쪽에 두었다.

잠유기, 창천비, 악조궁.

담영호는 왜 군림단에서 세 가지 무공을 학림들에게 익히라고 하는지 얼마 전에야 알게 됐다.

저 세 가지 무공은 원래 하나에서 파생된 지류 무공이다.

십 년.

완전한 숙련의 단계에 들어서서야 담영호도 알게 됐다.

그런데 용연은 불과 한 달 만에 내공만 모자란 자신처럼 창천비를 펼치고 있었다.

악조궁에 담긴 오의를 파악하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담영호이기에 알 수 있는 것이다.

‘저 녀석, 어쩌면 악조궁도 펼칠 수 있을지 몰라.’

추측이다.

경험상 창천비의 숙련도와 악조궁의 위력이 비례함을 알기 때문이다.

며칠 전부터 직접 물어보고 싶었으나, 구선과 함께 있기에 참고 참았다.

“담 단원, 내일이면 용 소형제에 대한 모든 것을 알게 되오. 얼마 남지 않았소.”

구선은 그 말 외엔 달리 건넬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일.

군림단원의 요구를 원하는 시일 내에 해결해 주는 역할.

외연이 할 일이다.

내일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용연에 대한 신상 조사 내용을 전해 줘야 한다.

***

다다다다―.

‘응? 뭐지?’

용연은 눈을 뜨기 전에 밀려오는 것처럼 들리는 불규칙한 발소리에 귀를 쫑긋댔다.

다다다―.

발소리가 점점 커졌다.

벌떡.

몸을 일으켜 구덩이 옆으로 고갤 내밀었다.

‘힉!’

용연은 뜨악한 표정으로 달려오는 엄청난 인원을 쳐다봤다.

힐끗.

달리던 장한 한 명이 인상을 쓴 채로 용연을 지나치며 노려봤다.

용연은 그제야 날이 밝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선임!’

마음이 급해졌다.

재빨리 자리를 흙으로 덮은 후 사람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뭐야!”

뒤쪽에서 누군가가 고함을 질렀다.

돌아보니 털북숭이 삼십 대 사내와 얼굴에 긴 검상은 있지만 나름 말끔해 보이는 삼십 대 사내가 말을 타고 다가오는 중이었다.

“거기서 뭐하냐고!”

털북숭이 사내가 고함을 질렀다.

“자, 잤습니다.”

용연은 얼결에 사실을 말했다.

그러자 털북숭이 사내는 콧김을 뿜어내며 콧구멍을 몇 번이나 넓혔다 좁히더니 씩씩거리며 다가왔다.

푸르륵―.

용연 옆에 선 말이 코를 벌름거린다.

‘힘들겠다.’

용연은 털북숭이 사내의 덩치를 보고 말의 심정이 어떨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왜 여기서 자빠져 자느냐고!”

“윽.”

용연은 사내의 고함에 어깨를 움츠리며 귀를 막았다.

“왜! 이딴 곳에서! 쳐 자느냐고!”

윙― 윙― 윙―.

“…….”

이젠 귀가 다 얼얼할 정도다.

자신이 할 말을 마치곤 용연을 노려봤다.

따각. 따각.

털북숭이 사내 옆으로 검상이 난 사내가 말을 멈췄다.

“좀 말랐구나. 어때, 우리 아한문(牙閒門)에 들어오는 건?”

검상 사내가 느긋한 말투로 물었다.

“…….”

용연은 양손으로 귀를 막은 상태로 검상 사내를 멀뚱히 쳐다봤다.

슥슥.

검상 사내가 귀에서 손을 떼란 시늉을 했다.

용연은 얼른 손을 뗐다.

“아한문에 들어오라고 했다.”

“아! 죄송해서 어쩌죠? 제겐 사문이 따로 있어서 힘들겠네요.”

나름 정중한 거절이었으나, 듣고 있던 털북숭이 사내에겐 분노할 일인 모양이다.

“야 이 거지 같은 새꺄! 문주님께서 직접 거둬 주시겠다는데, 뭐? 사문이 따로 있어? 사문이 있어도 아한문에 들어와! 알았어?”

“…….”

“대답 안 해! 이걸 콱!”

털북숭이 사내는 곧장 말에서 내리려 엉덩이를 들었다.

“벽삼 부문주, 우리가 마적이냐? 언제쯤 그 지랄 맞은 성격 좀 누를래?”

검상 사내, 덕건은 벽삼을 보는 것도 부끄럽다는 듯이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나섰다.

“스물? 스물하나?”

덕건은 바로 용연에게 물었다.

“열여덟입니다.”

“괜찮네. 사문은 어디?”

긁적긁적.

용연은 군림단이 사문임을 말할 수 없어 머리만 긁었다.

“그렇겠지. 내일까지 이곳에 있을 테니 생각 바뀌면 찾아와.”

덕건은 용연이 말하기 부끄러워서 입을 다물었다 생각했는지 말 옆구리를 차며 지나쳤다.

“정신을 닭대가리와 바꿔서 사냐? 지금 대아한문주께서 직접…….”

“와라, 벽삼 부문주야.”

“예, 문주님!”

벽삼은 언제 욕을 했나 싶을 정도로 말 머리를 홱 돌려 지나갔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

용연은 볼이 흔들릴 정도로 머릴 흔든 후,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 올려 뒤로 묶었다.

날이 밝았다.

이제 곧 담영호를 만나게 된다.

씰룩.

담영호는 은근히 용연이 덕건이나 벽삼과 싸우길 기대했다.

탁추 등을 상대했을 때보다 강해졌을 텐데도 잘 참는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얼마나 잘 싸우나 볼 줄 알았건만.”

구선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참는 거 하난 나보다 낫네.”

“음? 담 단원, 지금 후임 편든 거요?”

구선은 담영호의 말에 한쪽 눈썹을 올리며 쳐다봤다.

“도착했나요?”

담영호는 아무런 표정도 담지 않은 얼굴로 구선에게 물었다.

“그게…….”

구선의 입이 쏙 들어갔다.

담영호가 원하는 용연의 신상 정보를 손에 쥐지 못했기 때문이다.

힐끗.

담영호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날이 밝은 지 언젠데 아직도 기다려야 하느냐는 침묵의 강요였다.

“허허, 요즘 애들은 이래서 일을 시킬 수가 없지 뭐요? 일 시킨 지가 언젠데…… 잠시만 기다리시오, 담 단원.”

구선은 담영호의 대답도 듣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이제 알게 되겠지.’

담영호의 시선은 자고 난 자리를 정리하는 용연을 향해 있었다.

구선은 일다경도 안 돼서 돌아왔다.

“담 단원, 이래서 늦었다네요.”

구선이 건넨 것은 종이 두 장이 전부였다.

“이게 전부라고요?”

“아무리 찾아봐도 그 이상은 못 찾겠다고…….”

“…….”

담영호는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용연.

태어난 뒤 얼마 후 할아버지의 노름빚으로 집안이 거덜 났음.

두 살 때,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심.

할아버지가 남긴 빚 때문에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일만 해야 했음.

……(중략)……

무공.

용연의 집안에서 무공을 익힌 사람은 노름꾼 할아버지뿐임.

기루와 도박장에서 종종 싸움을 했다고는 하는데, 왈패들 수준으로는 용연의 할아버지가 어떤 무공을 사용했는지 알 수준들이 아니라 확인하지 못했음.

추적 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 지역 사람들은 용연의 할아버지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음.

그리고…….]

‘음?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담영호는 유독 그 말이 눈에 걸렸다.

[……용연의 할아버지 이름은 용잠. 삼십 년 전, 군림단 교림 중 한 명이었음.

군림단 내부의 정보는 추적할 수 없기에 서둘러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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