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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단주-12화 (12/232)

12화

다다다.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기 바쁘던 점소이들이 일제히 멈춰 서서 장한에게로 달려왔다.

“죄송합니다, 손님! 보시다시피 바빠도 너무 바빠서 잠시 착오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자리가 어딘지 알려 주시면 제가 바로 갖다드리겠습니다.”

가장 가까웠던 점소이가 연신 허리를 굽실거리며 응대했다.

“저기 보여? 야! 얼굴 안 들어? 저기 혼자 계신 분 보이지? 거기에 소면 세 그릇에 돼지고기 수육, 야채 볶음, 두부탕. 숫자 세고 있을 테니 늦는 만큼 마빡에 불 좀 나자. 알았냐?”

“당장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점소이가 다급히 외치며 주방으로 달려갔다.

장한은 그제야 씨익, 웃었다.

‘무공 서적 같은 걸 볼 수 있는 곳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용연은 장한의 호의가 고마웠으나 덕분에 점소이와 얘기할 기회가 사라지자 아쉬웠다.

아무래도 뒷간은 나중에 가야 할 듯하다.

‘어?’

용연은 담영호가 앉아 있는 자리로 돌아가다 한 사람이 더 있는 것을 보고 멈춰 섰다.

조금 전에 자신 대신 음식을 주문해 준 장한이 담영호와 마주앉아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 왔나, 소형제?”

장한은 용연을 알은체하며 손을 들었다.

멍한 표정으로 장한을 보던 용연은 상황이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닫고 다가갔다.

“외…….”

“어허이, 그건…….”

장한이 너털웃음과 함께 손가락을 입에 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외연이란 이름을 꺼내면 안 된다는 뜻이다.

“구선 향주, 제 후임입니다.”

“담 단원의 후임이라고 해서 담 단원을 닮았을 줄 알았는데 좀 전에 보고 안심했지 뭡니까?”

“안심?”

“착한 것 같다는 뜻입니다.”

“…….”

“담 단원보다 더…… 후임이니까…….”

구선은 담영호가 시선을 거둘 때까지 최대한 느리게 말을 끌었다.

“됐고. 일 얘기나 하시죠?”

“아이구, 당연히 그래야지요. 그런데…….”

구선이 슬쩍 말을 흘렸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주문하신…….”

점소이가 요리 두 개와 소면 세 그릇을 양손에 올린 채 다가와 빠르게 올려놓았다.

“이거지!”

구선은 점소이가 소면 마지막 그릇을 내려놓자마자 엄지를 척 들어 보이며 웃었다.

그러자 점소이는 넙죽 허릴 굽히고는 주방으로 다시 달려갔다.

“일단 식사부터 하는 게 어떨까요, 담 단원?”

구선이 음식을 가리키자 담영호가 용연을 돌아봤다.

“선임, 조금 전에 주방 앞에서 저 대신 주문을 해 주셨습니다.”

“제 것 하나 추가했습니다.”

구선은 젓가락을 소면 그릇에 담그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선임 앞에서 저런 여유라니…….’

용연은 구선의 너스레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소형…… 아니지, 이젠 용 단원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구선이 소면을 입에 넣다말고 담영호를 돌아봤다.

“단원은 무슨.”

담영호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아직? 난 또 여길 데려와서 정해진 줄 알았지 뭐요, 담 단원?”

“걸러 들어. 네가 나중에 정식 단원이 되면 자길 지정하라고 친한 척하는 거야.”

담영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용연을 돌아봤다.

“지정요?”

“정식 단원이 되면 정보를 전달해 줄 사람을 선택해야 하거든. 향주들에겐 누가 더 많은 단원의 전달자 역할을 하느냐가 중요하고. 결국은 돈이지만.”

“에헤이, 담 단원, 잘 나가다가 왜 거기서 그 말이 나와요? 돈도 물론 중요하지만, 단에 도움이 된다는 긍지에는 비할 바가 못 되죠.”

구선은 담영호가 자신에게 불리한 얘기를 가감 없이 꺼내자 다급해져서 나섰다.

“그렇단다.”

담영호는 구선의 반응이 익숙한지 시큰둥한 표정을 유지했다.

“돈…….”

용연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파하하! 담 단원, 십 년이 지났으면 이제 잊어버릴 때도 지나지 않았소?”

구선은 결국 꺼내고 싶지 않은 말을 꺼냈다.

“용연아, 십 년 전에 이분이 방 선배, 그러니까, 당시 내 선임이었던 방적 교림과 짜고서 나를 사지에 몰아넣은 적이 있다. 그걸 말하는 거야. 나는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두 사람은 엄청 웃었다고 하더라. 후후후.”

힐끗.

말을 마친 담영호가 구선을 돌아봤다.

구선은 담영호가 자신을 볼 줄 알았다는 듯이 이미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한두 번 나눈 대화가 아닌 모양이다.

이럴 때는 일단 배부터 채우는 것이 최선이다.

후루룩― 우걱우걱―.

일부러 소리까지 내며 음식을 마구 입에 넣었다.

“……약간 설명을 보태면, 담 단원은 다음 달에 학림 시험을 치르기로 정해져 있었고, 전력을 다해야 할 상대도 없는 백여 명이 다였잖소? 더구나 실제로 싸운 인원은 겨우 일곱이었소. 그런 싸움이라 방 교림께서 일부러…… 어?”

구선은 당시의 상황을 얘기하다 갑자기 용연을 돌아봤다.

용연은 열심히 음식을 흡입하는 데 바빴다.

구선의 시선이 다시 담영호에게로 향했다.

씰룩.

담영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오호라.’

구선은 그제야 왜 담영호가 그때 그 일을 화제로 삼았는지 감이 왔다.

씨익.

구선은 윗니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이런 재미있는 일에 자신이 빠지는 건 말이 되질 않는다.

‘가만, 담 단원이 저렇게 얘길 한다는 것은, 저 어리바리한 용 소형제가 당시의 담 단원 못지않은 실력을 갖고 있다는 뜻인가?’

웃음 짓던 구선의 표정이 굳었다.

아무리 봐도 용연에겐 당시의 담영호와 같은 실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흥미가 당겼다.

“구 향주님과 할 얘기가 있으니 나가서 시간 좀 보내다 와.”

담영호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용연에게 말을 건넸다.

“예, 선임.”

용연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됐다!’

절로 쾌재가 외쳐지는 것을 억지로 참아 냈다.

안 그래도 점소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무공을 구할 수 있는 곳을 물어볼 참이었다.

뒤를 돌아보면 다시 부를까 봐 주루를 나올 때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창을 통해 확인해 둔 곳이 있어서 바로 찾아갔다.

지필묵연(紙筆墨硯)을 파는 곳이다.

“할아버지, 근처에 책방은 없나요?”

용연은 바로 목적을 밝혔다.

“책방? 찾는 책이라도 있나?”

허연 수염을 가슴까지 늘어뜨린 노인이 눈을 흘끔 올려다보며 반문했다.

“구경 좀 하려고요.”

“흠…….”

노인은 찬찬히 용연의 위아래를 훑어봤다.

이곳에 올 행색이 아니었다.

“할아버지?”

“뒷골목에 <간서>라고, 아무 책이나 받아 놓는 곳이 있기는 해. 중간중간 찢긴 책들이 많아서 읽는 건 쉽지 않…….”

노인은 피식거리며 놀리듯 말을 하다 멈췄다.

이미 용연이 밖으로 나갔기 때문이다.

간서(看書).

책을 눈으로 보라는 뜻이다.

용연은 곧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고서점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세상에…….”

어마어마한 양의 책이 두 눈 가득 들어왔다.

빠르게 책 제목을 훑었다.

얼핏 보기에도 대부분이 무공과는 상관없는 신변잡기에 관한 책들이었다.

삼제의 원리를 적용시킬 만한 무공.

어떤 형태인지, 내공구결이 있어야 하는지, 특별한 조건 여부가 중요한지.

기준도 없이 무작정 고르고 골랐다.

눈으로 책 제목을 읽고 손으로는 책을 옮겼다.

일각 넘게 같은 동작을 반복하자 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문고결?’

앞 글자는 몇 자인지 알 수 없게 찢어져 있었고 내용도 뒤쪽이 잘려져 나가 종잇조각이나 마찬가지인 책이었다.

“사려고?”

가래 끓는 노인의 목소리가 안쪽에서 들려왔다.

“그 녀석 참…….”

창가를 보던 담영호는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꺼냈다.

“마음은 정한 거요, 담 단원?”

구선은 담영호를 보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십 년 전의 담영호와 눈앞의 담영호가 같은 사람이란 것이 믿기지 않기 때문이다.

냉정하기가 잘 벼린 날 같았고, 얼마 뒤에 교림 심사를 앞둔 방적조차 두 손, 두 발 다 들게 만들 정도로 영리하기까지 했다.

그런 담영호의 시선이 용연의 뒤를 계속해서 좇고 있었다.

‘방 교림이 담 학림을 후임으로 받았을 때가 생각나는군. 성장시키는 것과는 무관하게 무조건 담 학림이 못할 일들만 챙겼지.’

쿡.

구선은 소리 없이 웃었다.

방적은 담영호를 예비 기간에도 잡아먹을 것처럼 볶아 댔다. 당연히 예비 기간이 끝난 뒤에는 ‘저런 걸 시켜도 되나’ 싶을 정도의 임무까지 가져왔다.

왜?

구선은 십 년 전, 방적에게 이유를 물은 적이 있었다.

―저 애늙은이 같은 놈이 학림 시험을 치르기 전에 반드시! 더러워서 못해 먹겠다는 말을 듣고 말아야겠소, 구 향주.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해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 선임에 그 후임이라…….’

구선으로선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럴 때는 선임의 편에서 정보를 가져와야 한다.

“적당한 임무가 있기는 한데…… 용 소형제가 아직 정식 단원이 아니라 해당 사항은 없을 것 같구려, 담 단원.”

툭, 미끼만 던지면 된다.

“어디죠?”

담영호의 눈이 반짝였다.

흠칫.

구선은 십 년 전, 방적이 얼굴만 바꿔서 앉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대교(對校)께서 향주들에게 보내신 서찰이오.”

구선이 품에서 서찰 한 통을 건넸다.

[탕문평야에서 아한문과 장위벌 예하 조직인 구벽아가 충돌했다. 행로가 가까운 학림들은 가서 도와주길 바란다.

―대교 진류.]

고아를 맡아서 기르는 사람을 대부라 칭하듯, 학림을 맡고 있는 위치의 교림을 대교라 부른다.

학림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작은 싸움부터 두 학림 이상과 학림 전체를 불러야 하는 싸움까지.

모두 대교의 명령이 있어야 한다.

‘재미있겠네.’

담영호는 서찰을 읽자마자 입꼬리를 씰룩였다.

이전의 후임들이었다면 뒤치다꺼리할 생각에 모른 척했을 일이지만, 용연이 창천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봤다.

‘악조궁(握爪弓)은 얼마 만에 익히려나?’

군림단원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잠유기, 창천비, 악조궁을 익혀야 한다.

선임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였다.

터덜터덜.

반 시진 정도 지나자 용연이 힘 빠진 걸음으로 돌아왔다.

“용 소형제, 어딜 갔었나?”

구선이 먼저 물었다.

“그냥…… 책 좀 보고 싶어서요.”

용연은 머리를 긁적이며 담영호의 눈치를 봤다.

“무슨 책 말이오?”

구선이 눈치도 없이 재차 질문을 건넸다.

“고서점 같은 곳엘 가면 제가 필요한 책들이 있을 것 같아서…….”

“책 제목이 뭔가? 우리 애들을 풀면 웬만한 책은 몇 시진 안에 구해 올 수 있네.”

“아…….”

용연은 구선이 꼬치꼬치 캐묻자 당황한 표정으로 담영호를 몇 번이나 돌아봤다.

“무기를 사용하는 무공 서적이겠지. 달릴 만하니 손이 심심해진 거야. 아니야?”

담영호는 확신에 찬 눈으로 용연을 쳐다봤다.

‘귀신…….’

정확하진 않지만 의도는 제대로 꿰고 있었다.

용연은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했다.

“걸어올 때 왜 그리 맥 빠진 표정이었는지 이제야 알겠네.”

담영호는 덤덤히 말을 하곤 품에서 얇은 책자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집어넣어.”

‘악조궁?’

반짝.

용연은 얼른 책자를 품에 넣었다.

“나중에 주려고 했던 거다. 잠유기, 창천비, 악조궁. 제대로 펼칠 수 있으면 사천성에선 네가 군림단원이란 걸 모두 알아볼 거야.”

“감사합니다, 선임!”

용연은 담영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개를 숙였다.

고서점에선 한 초식이라도 온전히 적힌 책 몇 권을 발견하긴 했지만, 전부 삼제의 원리를 적용시킬 수 없었다.

낙담한 이유였다.

그럴 때, 담영호가 메마른 땅에 단비처럼 악조궁을 전해 준 것이다.

“험. 담 단원, 내가 끼어들 상황은 아니지만, 용 소형제 혼자서 익혀야 하잖소?”

구선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담영호를 쳐다봤다.

그러자 담영호는 용연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창천비도 혼자 익힌 녀석이에요. 걱정할 것 없습니다. 시범만 보여 줄 테니 가면서 익혀.”

‘헛!’

구선은 속으로 기함을 지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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