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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단주-8화 (8/232)

8화

동굴 안이 일순 조용해졌다.

적휘를 향한 이서, 등표, 강섭의 사나운 시선이 공기를 팽팽하게 만들었다.

움찔.

용연은 네 사람이 뿜어 대는 기를 느끼며 몸을 떨었다.

겁나서가 아니다.

자신과 같은 꿈을 꿔 온 사람이 넷이나 더 있다는 사실에 일종의 안도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들 넷 중 자신보다 약한 사람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탁추, 기과, 무부보다 강해 보이는 사람도 없었다.

그들 셋과 싸워 보지 않았다면 기에 눌려 허리도 펴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 어떻게 해야 되는데?”

용연이 용기를 내 적휘에게 물었다.

“뭐?”

“군림단주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용연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자 적휘는 의외라는 듯 용연을 쳐다봤다.

‘저놈 지금 웃고 있는 거야?’

‘한 대 치면 질질 짤 것 같은 녀석이 의왼데?’

‘담 학림께서 오다 주운 게 아닌가?’

아닌 척하고 있었지만 이서, 등표, 강섭 역시 용연의 반문에 이채를 발했다.

조금 전까지 넷의 경쟁이었다면, 용연의 반문으로 다섯이 된 것이다.

“담 학림, 전에 봤던 애는 어쩌고?”

양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죽었어요.”

담영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어쩌다?”

“단 이름을 팔더군요.”

“쯧. 그래도 한 몇 달 데리고 다녔는데…….”

“양 선배, 그건 아니죠. 그런 정신머리 가진 놈은 몇 년을 데리고 있어도 소용없다고요.”

양안의 말에 옆에 있던 무묵이 침을 뱉으며 끼어들었다.

담영호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무묵의 말이 옳다는 뜻이다.

그러자 곽충과 치류도 말을 아꼈다.

“오죽하면 그러겠냐? 할 일은 산더미인데 얼마나 더 애 딸린 홀아비처럼 지내야 하는 건지…….”

양안이 끼어든 무묵을 향해 눈을 흘기곤 바닥에 있는 풀을 뜯어 입에 물었다.

“바로 시작하면 되죠.”

담영호는 별것 아니란 듯 대답했다.

“죽었다며?”

양안은 의아한 눈으로 담영호를 쳐다봤다.

“새로 데려왔잖아요.”

“그러니까.”

“이십 일 좀 넘었어요. 오다 탁추, 기과, 무부 셋과 싸우게 했는데 크게 다친 곳 없이 잘 따라오더라구요.”

“……!”

양안의 눈이 커졌다.

탁추 등 셋에 대해선 그도 잘 알기 때문이다.

“뭘 가르쳤는데 이십여 일 만에 그들을 상대해?”

무묵이 다시 끼어들었다.

“……잠유기만 주입했어요.”

담영호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러자 네 명의 선배들이 일그러진 얼굴로 담영호를 쳐다봤다.

지금 한 말이 사실이냐는 표정들이었다.

“이십 일? 담 학림을 따라다닌 지 고작 이십 일 됐다고?”

적휘가 황당한 표정으로 확인하듯 되물었다.

“자, 잠깐, 그 전에. 탁추, 기과, 무부? 그 가운장을 하룻밤에 없애 버린 그 셋?”

강섭이 다급히 몸을 돌리며 물었다.

“그들을 한 명씩 상대했다면…… 이십 일 만에 삼 전을 치렀다는 거야?”

이서도 끼어들었다.

“똑바로 말해라. 담 선임이 내공을 주입해 주셨느냐?”

등표 역시 용연에게로 몸을 돌리고 있었다.

“…….”

용연은 적휘와 나눈 대화에 모두들 관심을 갖자 어리둥절해져서 세 청년을 쳐다봤다.

왜 갑자기 이리들 적극적인 거지?

이십 일이란 날짜 때문인가? 아니면 탁추 등과 싸워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오히려 용연이 왜 그런 질문들을 하는지 되묻고 싶어졌다.

“그런 게 중요해? 나는 오직 그들의 일수를 막은 게 전부야. 마지막 상대였던 무부란 자만 운 좋게 팽개칠 수 있었지만, 그 싸움 역시 선임이 끝을 냈어. 그리고…… 나는 세 살 때부터 목표였어.”

“뭐가 목표였는데?”

적휘는 용연이 갑자기 어릴 때 얘길 꺼내자 의아해져 되물었다.

“군, 림, 단.”

용연은 한 글자씩 또박또박 발음했다.

군림단원의 자격에 대해 몰랐을 때 세운 목표다.

이제는 달라지겠지만.

“……한 손으로 바닥에 처박았어요.”

담영호는 용연과 무부의 싸움을 아주 간략하게 설명을 했다.

그러자 네 사람은 입을 꾹 다물었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군림단 사상 가장 빨리 학림에 오른 담 학림보다 더 빠른 성장을 할지도 모르는 놈이란 건데…… 허!’

양안은 속으로 혀를 찼다.

학림이란 정식 군림단원에게 주는 신분이다.

군림단의 체계는 매우 간단하다.

스무 번째부터 스물아홉 번째까지를 군림단에선 배워야 하는 단계라 해서 학림(學林)이라 부른다.

그 위의 단계는 학림을 가르치는 교림(敎林)으로, 열 번째부터 열아홉 번째까지다.

네 번째부터 아홉 번째까지는 선림(先林)이라 불린다.

웬만한 일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다음 대 군림단의 운영자 중 한 명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군림단의 운영자들.

삼정(三頂)이라 부른다.

내부에선 선의의 경쟁을, 밖에선 군림단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조율하고 결정하는 위치다.

그런 삼정도 부러워하는 것이 있다.

군림단의 단계별 기록이다.

학림, 교림, 선림에 도달하는 최단기간.

현재 학림 최단기간 기록은 담영호가 갖고 있다.

팔 개월.

그 이전의 기록은 차기 군림단주 도전자의 자격에 가장 가까운 선림 현승으로, 학림이 되는 데 일 년 반이 걸렸다.

현승은 학림 외에도 교림 사 년과 선림 십육 년의 기록도 갖고 있다.

“예상 기간은?”

양안은 담영호에게 데려온 후임이 학림 시험을 치르는데 걸리는 시간을 물었다.

앞뒤 말을 생략했지만 담영호는 알아들었는지 바로 입을 열었다.

“빠르면 세 달, 늦어도 네 달이면 될 것 같습니다.”

담영호의 말이 끝나자 침묵이 흘렀다.

양안이 고갤 돌려 무묵을 돌아봤다.

무묵의 후임은 어느 정도 예상하느냐는 질문이 담긴 눈빛이었다.

“적휘 놈은 여덟 달 예상하고 있어요. 담 학림을 목표로 해서 그런 건데…….”

무묵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열었다.

“강섭은 일곱 달.”

치류가 말을 받았다.

“등표도 일곱 달.”

곽충이 인상을 쓰며 이었다.

“허어, 다들 왜들 그러나? 일 년 잡고 있던 이서 녀석 곤란하게.”

양안이 볼멘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담영호는 선배들의 푸념 섞인 앓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선배들이 아직 자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 더 할 말 있어, 담 학림?”

양안은 담영호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말을 다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저는 예비 기간까지 합친 시간입니다.”

“……컹.”

무묵이 콧물 먹는 소리를 내며 놀랐다.

그 정도로 담영호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예비 기간은 일종의 수습 기간으로 선임을 맡은 사람이 후임의 무공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려 주는 기간을 뜻한다.

그런데 담영호는 그 예비 기간까지 합쳐서 서너 달 안에 용연이 학림에 오른다는 것이다.

“그, 그게 말이 돼? 저 녀석이 현승 선림님이나 담 학림보다 더…….”

치류는 부정하듯 소리를 높이다 말을 흐렸다.

다들 예비 기간을 일 년에서 이 년 가까이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후임도 있는데, 예비 기간까지 합쳐서 서너 달?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담영호는 치류를 제외한 세 선배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쳤다.

모두 치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긁적긁적.

손가락으로 볼을 두어 번 긁고는 입을 열었다.

“저도 처음엔 선배들과 같은 생각을 가졌어요. 저도 그렇게 컸으니까요. 그런데 몇 달 동안 가르친 놈들이 임무에만 투입시키면 도망을 가질 않나, 오줌을 싸며 손가락 하나 꼼짝 못 하질 않나, 군림단 이름을 팔아서라도 살려고 하질 않나…….”

절레절레.

담영호는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니까 더…….”

“그래서 바로 투입시켰죠.”

치류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나서려 하는 순간, 담영호가 치류의 말을 자르며 자신의 말을 이어 갔다.

치류는 자신의 말을 끊고 들어오는 담영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지금은 그런 것쯤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고개를 끄덕여 말을 이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용연을 뽑은 건, 전 후임이 죽은 직후였어요. 전 후임을 죽인 탁추에게 덤벼들다가 가슴뼈 함몰, 근육 파열 등을 입고 기절했지요. 기특한 마음에 치료는 해 줬으나, 후임으로 뽑을 생각은 없었어요. 철혈사자맹에서 내쫓기 전까지는요. 쫓겨나서 오갈 데 없어 보여서 거뒀고 잠유기를 열흘 동안 주입했습니다. 몇 달 가르친 놈들에게 했던 시험을 했는데 통과하더라고요. 그래서 실전에 투입시켰어요. 나머진 이미 설명 드렸던 그대롭니다.”

담영호는 얘기가 끝나기 전에 다른 선배들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길게 설명했다.

“그래도…….”

양안이 찜찜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용연에게 만각이란 별호가 생겼어요.”

담영호가 잊었다는 듯이 한마디를 곁들였다.

“만각?”

“무부와 싸울 때 생겼어요. 저 녀석, 신법을 아직 모르거든요.”

“……컹.”

안 봐도 저 소리의 주인은 무묵이다.

말을 꺼냈던 양안과 치류, 곽충도 놀라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저 녀석, 용연요, 군림단원이 되기 위해 태어난 놈 같아요.”

‘저, 저 잘난 놈이 지금 다른 사람을, 그것도 자신이 거둔 후임을 칭찬하고 있는 건가?’

양안뿐만이 아니라 치류, 곽충, 무묵이 동시에 떠올린 생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담영호의 실력이 이미 자신들을 넘어서 있음을 아는 까닭이다.

짝! 짝! 짝!

동굴이 울리도록 적휘는 크게 손뼉을 쳤다.

“멋지다!”

적휘의 진심이 목소리에 담겼다.

용연은 역시나 어리둥절해져서 적휘를 쳐다봤다.

담영호의 이전 후임인 안명과 탁추의 싸움에 끼어들어 기절한 일과 기과, 무부가 모인 장소로 가서 백여 명이 보는 앞에서 싸운 일까지.

조금의 가감도 없이 지난 이십여 일의 일을 말했을 뿐인데 적휘가 저런 반응을 한 것이다.

‘어?’

용연은 당연히 한 소리 할 줄 알았던 강섭과 이서, 등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눈빛이 누그러져 있었다.

“예비 기간도 없이 투입시키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강섭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자 꺼낸 말이 아니라 납득이 안 돼서 하는 말이었다.

슥.

등표가 강섭을 지나 앞으로 나오더니 대뜸 용연의 손목을 잡았다.

“담 학림이…… 진기도 주입해 주지 않았네.”

등표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용연을 쳐다봤다.

“지, 진기? 그런 것도 받아?”

“안 받지. 바로 투입시켰다고 해서 확인해 본 거다. 이건 무모하다.”

등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한 발 뒤로 물러나며 앉았다.

“예비 기간, 진기 주입, 임무 투입. 이젠 대충 너도 감을 잡았겠지? 듣고 난 소감이 어떻지?”

이서가 냉정한 어투로 용연에게 질문을 건네며 다가왔다.

“어떠냐고? 글쎄…….”

용연은 다가온 이서의 잘생긴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런 것들이 중요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 하기 때문이다.

철혈사자맹의 지원조에서 보낸 오 일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지원조에선 조장이 돼야 보호구를 갖게 되는데, 그것은 조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기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하루가 지나기 전에 용연은 왜 그토록 조장들이 보호구에 집착했는지, 정확히는 조장이 되고자 했는지 알게 됐다.

조원이 될 자들은 많으니 그들의 희생으로 좀 더 잘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지옥을 오 일이나 겪은 용연에게 예비 기간? 진기 주입? 그런 건 사치였다.

“싸우라고 하셔서 싸웠고, 실력이 안 돼서 밀렸고, 이곳으로 오셔서 따라온 것뿐이야. 예비 기간이나 진기 주입을 받아야만 군림단원의 자격이 생기는 거야?”

용연은 담담하게 말하다 오히려 되물었다.

그러자 질문을 받은 등표와 이서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하하하! 이거 물건이네? 그렇지! 그런 건 모자란 놈들에게 채우라고 주는 거지. 그런 너를 나보다 약하게 봤다. 사과하마.”

줄곧 호의적이던 적휘의 반응이 처음으로 격해졌다.

척.

단단한 눈으로 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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