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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단주-6화 (6/232)

6화

―……죄를 묻겠다.

그 죄를 자신이 물으라는 뜻인가?

용연이 담영호를 돌아보자, 등을 담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있다. 마치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듯이.

‘내가, 아직 정식 단원이 된 것도 아닌 내가, 군림단의 이름으로 죄를 물어도 되는 건가?’

기분 좋은 소름이 뒷목을 타고 올라오다 양쪽 볼로 번진다.

기과에게 당한 왼쪽 어깨의 통증은 이미 느껴지지도 않았다.

“후…….”

용연은 눈을 감았다 뜨며 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된다면, 자신이 군림단원으로서 사명감 같은 걸 가져도 되는 주제라면, 반드시 갖고 싶다.

용연의 눈빛이 달라졌다.

‘호오?’

담영호는 기대고 있던 담에서 등을 뗐다.

기과를 자신이 처리했다고 해도 아직 무부와 수십 명의 무리들이 남아 있다.

그런 곳으로 가라고 하는데, 그 짧은 새에 마음을 다잡았다고?

그것도 한쪽 어깨도 성치 않은 몸으로?

더구나 도움 따윈 필요 없다는 듯 완전히 자신에게서 등을 돌렸다.

‘어떻게 할 생각이냐? 안명처럼 군림단원이라고 떠벌릴 거냐? 아니면 교흥이란 놈처럼 덜덜 떨다 오줌이나 지릴 거냐…….’

담영호는 이전의 두 후임들 외엔 더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들 둘보다 못하면 못했지, 원하던 모습을 보인 놈들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놈, 용연이란 놈은 왠지 기대를 하게 만든다.

두근.

평소보다 약간, 아주 약간 심장이 요동친다.

꾹.

용연은 한 발을 내디디며 땅을 찍었다.

찍어서 누른 땅에 발가락 다섯 개가 모두 달라붙는 것이 느껴진다.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

팍!

용연의 다리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땅을 박찼다.

“아…….”

담영호가 보호하고 있던 가운장 식솔 중 두어 명이 거의 동시에 안타까운 탄식을 터트렸다.

그 소리에 미미하지만 담영호의 미간에 핏줄이 일어났다.

‘차라리 걷지.’

담영호의 진심이었다.

이 좋은 분위기를, 걷기만 해도 아무런 방해 없이 무부와 마주설 수 있었는데, 하필 모양 빠지게 뛸 건 뭐란 말인가?

어쩔 수 없이 한 번 더 나서야 할 것 같다.

쿵!

담영호는 발을 굴러 용연을 향해 움직이려는 수십 명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렸다.

절레절레.

꿈도 꾸지 말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도망치다 죽느니…….’

무부의 눈에 독기가 어렸다.

담영호가 기과의 머리부터 가슴까지 일 초에 날려 버린 장면이 아직도 머릿속에 또렷하다.

이대로 도망치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

달려오는 용연을 노려봤다.

씰룩.

무부는 입가를 비틀며 웃었다.

저놈이다.

탁추가 담영호의 이전 후임을 죽였다고 했던가?

이제 겨우 보름도 지나지 않았다.

군림단원은 여러 명의 후임을 데리고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는 것은, 훈련을 시켰어도 고작 보름 남짓이란 거지. 저 애송이를 죽이고 일제히 덤비면…….’

스스스―.

손가락을 쫙 폈다가 오므리자 붉은 머리칼이 거꾸로 서기 시작했다.

광풍타수를 운용한 것이다.

무부도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다 이내 용연이 사정권 안에 들어오자 땅을 박찼다.

팟.

무부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졌음에도 용연은 달려오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뭐야, 저놈은?’

무부는 용연의 무반응에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속도를 내건 내지 않건 전혀 개의치 않겠다는 뜻인가?

피식.

절로 웃음이 나온다.

기과의 주먹을 어깨로 받아 내고도 살아나니 자신의 손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최대한 빨리 죽여 버리고 그 기세를 몰아 부하들과 함께 담영호까지 칠 것이다.

콰욱!

진기를 머금은 양손이 용연을 향해 휘둘러졌다.

‘온다!’

용연은 무부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떴다.

한 번만 더 땅을 차면 코앞이 된다.

‘아직.’

참았다.

무부가 땅을 차는 순간, 자신도 삼제를 만들어야 한다.

‘음? 이번엔 거리를 두고 움직이네?’

담영호는 용연의 반응이 궁금해 무의식적으로 눈에 힘을 주었다.

탁추와 기과를 상대할 때는 붙더니, 이번엔 무부가 다가오기도 전에 몸을 비틀고 있었다.

내공도 미미하고 신법도 펼칠 줄 모르는 놈이 거리를 두고 싸우려 한다?

담영호는 용연을 벼랑에서 떨어뜨린 뒤 지켜보던 그 심정이 됐다.

쾁!

달리던 용연은 왼발 뒤꿈치를 힘껏 땅에 박으며 몸을 회전시켰다.

삼제는 상대가 있어야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땅에서도, 나무를 이용해서도, 물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휘릭―.

왼발을 축으로 회전한 용연의 오른발이 무부를 향했다.

사람이든 땅이든, 닿으면 삼제를 만들 수 있다.

쾅!

“……!”

용연의 발을 때린 무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정도 힘이라면 자신에게 뒤돌아 차기 따위를 펼치는 애송이의 다리를 자를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러나 자르긴커녕 오히려 자신의 손이 튕겨져 허공에서 중심을 잃게 됐다.

쾁!

그사이, 용연의 오른발이 땅에 꽂혔다.

홱― 홱―.

네모난 종이를 반으로 접듯이 용연의 양발이 교차하며 무부와의 거릴 좁혔다.

그리고 내밀어지는 팔꿈치.

퍽!

무부의 옆구리에 박혔다.

“놈!”

무부는 다급히 붉은 머리칼을 붓처럼 휘둘러 용연의 목을 감으려 했다.

그러나 용연은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한쪽 팔꿈치를 무부의 옆구리에 댄 채 양발을 교차하며 무부의 정면으로 돌아섰다.

“헛!”

무부는 다급히 헛바람을 삼켰다.

용연이 이토록 정교한 움직임을 보일 줄 예상 못한 까닭이다.

“후우…….”

용연은 심호흡을 내뱉었다.

이제 마지막 흐름을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용연은 당황하는 무부의 목 뒤로 한 손을 옮긴 후 아직 옆구리에 닿아 있는 팔꿈치를 밀었다.

옆구리는 앞으로 밀리고 목은 반대편으로 당긴 것이다.

“이이…….”

무부는 왜 이런 황당한 체술에 자신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뒤로 넘어갔다.

쿵.

기어코 땅바닥에 등이 닿았다.

“하아, 하아…….”

용연은 쓰러진 무부를 보며 어깨를 들썩였다.

쩌릿!

‘윽!’

갑자기 어깨로 엄청난 고통이 몰려왔다.

기과에게 당했던 부위였다.

휘적―.

“아으…….”

용연은 팔을 들어 올리다 말고 신음을 흘렸다.

그러나 눈은 무부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땅에 닿는 것을 시작으로 만들어 낸 삼제를, 그것도 무부와 같은 고수를 상대로 실전에서 처음으로 성공시켰기 때문이다.

얼마나 짜릿한지 몸이 다 떨린다.

그때였다.

쿵! 들썩―.

용연의 눈앞에서 무부가 떠올랐다.

꽈득!

촤아―.

용연의 얼굴로 뜨거운 액체가 튀었다.

무부의 몸이 허공에 뜬 채로 입과 등에서 피를 쏟아 내며 떨어졌다.

털썩.

땅에 떨어진 무부의 시체 뒤로 담영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억해라. 이들은 군림단의 영역에 함부로 들어와 멋대로 살육을 펼치고 도망친 악인들이다. 군림단원은 악인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냉정하다는 표현이 모자랄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였다.

담영호가 막대를 접으며 용연을 쳐다봤다.

핏물을 뒤집어쓴 용연은 멍한 표정으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힐끗.

담영호의 시선이 좌우로 돌아갔다.

아직 남아 있던 무리들이 눈치를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다시 그가 용연에게로 눈을 돌렸다.

“잘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맡으마.”

담영호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탁추에게 덤볐다가 일격도 견디지 못하고 기절했던 녀석이, 악명으로는 탁추 못지않던 기과의 일격을 받아 냈다.

그래서 다친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무부도 상대해 보라고 떠밀었다.

못한다고 해도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용연은 당당히 나섰을 뿐만 아니라, 황당하게도 무부를 땅에다 패대기치는 기염까지 토했다.

칭찬만으로는 부족한 녀석이다.

“하아, 하아…….”

용연은 어깨까지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툭. 툭.

담영호는 한손으로 용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며 다른 한손으로는 명문혈에 댔다.

그러자 가쁘게 숨을 몰아쉬던 용연의 호흡이 순식간에 가벼워졌다.

“잠유기를 익혀야 하는 이유다.”

‘아!’

용연은 순식간에 호흡이 고르게 돌아오는 것이 느껴지자, 담영호를 동그래진 눈으로 쳐다봤다.

그 잠깐 사이, 거짓말처럼 진기를 채워 준 모양이다.

탁. 탁. 탁.

‘음?’

앞으로 나서던 담영호의 시선이 옆을 향했다.

용연이 갑자기 사람들을 헤치며 내달리고 있었다.

픽.

담영호는 용연이 달리는 방향을 보고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가운장 식솔들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데려가도 되겠다. 어차피 다른 선배들이 맡은 후임들도 아직 학림에 도전하지 않은 상태니…….’

군림단원들 간의 정기적인 모임이 곧 다가온다.

일종의 확인 절차 같은 것인데, 후임을 정한 선임들이 한자리에 모여 친목을 다지는 모임이다.

모인 선임들끼리 싸우거나, 후임으로 정해진 녀석들끼리 싸우지만 않는다면 그렇다.

적어도 담영호가 참여했던 모임에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무사히 헤어진 경우는 없었다.

선의의 경쟁.

선임들이 말하는 모임의 용도이기도 하다.

‘뼈도 부러져 보고, 근육도 찢어져 보고, 눈앞에서 피를 뒤집어써 보기도 한 놈이니 괜찮겠지.’

담영호는 용연을 그 모임에 데려가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콰콰콰!

용연이 가운장 식솔들을 지키고 있어 주니 양손을 모두 사용할 수 있어서 너무 편했다.

당연히 그 양손을 막아야 하는 무리들에겐 지옥이 펼쳐졌다.

“끄아악”

“도, 도망…….”

“살려 주…… 컥!”

***

“예, 예, 갑니다, 가요!”

어깨에 땀내 가득한 수건 한 장 걸친 채 계단을 오르내리는 점소이의 얼굴에는 땀이 그득했다.

왁자지껄.

아무리 열심히 뛰어다녀도 밀려드는 손님들로 점소이는 쉴 틈이 없었다.

“먹어.”

담영호는 점소이가 내려놓은 소면 그릇을 들며 눈으로 돼지고기 볶음을 가리켰다.

“맛있게 먹겠습니다.”

용연은 담영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젓가락을 들어 소면을 먼저 입에 넣고 바로 돼지고기 서너 점을 집어 함께 씹었다.

우적우적.

두어 번 씹은 것 같더니 다시 소면과 돼지고기를 입에 넣었다.

담영호는 그 모습에 슬며시 손을 들어 점소이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손님?”

“밥 좀…….”

“뎌는 듀 개, 듀 개 먹듭니다…….”

용연이 음식으로 입을 채운 채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먹고 싶은 양을 강력하게 내보였다.

“넉넉히 가져와.”

“감사합니다!”

점소이가 허리를 숙이고 내려가려 돌아설 때였다.

“여긴 뭐가 유명해서 사람들이 이리 많아?”

담영호가 점소이를 붙잡고 물었다.

“에에? 이곳 처음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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