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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단주-5화 (5/232)

5화

기과는 가운장 사람들을 전부 끌고 온 것이다.

“역시 기 형이오.”

무부는 끌려 나오는 가운장의 식솔들을 보며 활짝 웃었다.

“내 몸이 아무리 커도 저것들을 두르고 있으면 담영호라고 해도 함부로 손을 쓸 수는 없겠지요. 크크크.”

‘큽!’

기과가 웃느라 몸을 열자 엄청난 악취가 코로 들어왔다.

기과의 무공인, 여자들의 피로 익히는 나찰사혈공(羅刹娑血功)의 완성이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다.

‘그깟 무공 대성하더라도 내 광풍타수(狂風打手)에 제대로 걸리기만 하면 뼈도 못 추릴 주제에…… 응?’

무부의 시선이 뒤쪽을 향해 있었다.

뒷짐 진 손을 쥐락펴락 하며 기과를 비웃던 상황이라 의아함이 얼굴 가득 묻어났다.

양손이 묶인 가운장 식솔들이 갑자기 한쪽으로 줄지어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무 형, 어딜 보는…….”

무부의 시선을 좇아 뒤를 돌아보던 기과의 얼굴이 성난 맹수처럼 변했다.

무부 앞에서 자신의 허락도 없이 움직이다니, 창피도 이런 창피가 없었다.

“너! 맨 앞에 너!”

기과가 성큼 앞으로 움직이며 줄을 잡아끄는 청년을 멈춰 세우려 했다.

그러나 청년은 기과의 호통에도 개의치 않고 걸음을 옮겼다.

“이이…….”

기과의 눈알이 빨갛게 변하며 사방으로 엄청난 악취가 퍼져 나갔다.

“큭!”

“커헉!”

“우웩!”

일대에 진풍경이 일어났다.

대부분이 코를 부여잡은 채 주저앉았고, 그보다 심한 경우는 구토를 하며 땅을 기었다.

힐끔.

막 기과가 달려가려 할 때, 처음으로 맨 앞줄의 청년이 뒤를 돌아봤다.

용연이었다.

얼굴엔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고 이마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헤헤, 헤…… 읍!”

해실거리며 웃던 용연은 다급히 숨을 들이마시며 잡고 있던 줄을 힘껏 끌어당겼다.

그러자 사람들이 용연 쪽으로 기울어지며 쓰러지듯 휘청거렸다.

“선임, 이 사람들 부탁합니다!”

용연은 휘청거리는 사람들을 도울 정신이 없었다.

일단 도움을 청한 뒤, 달려오고 있는 기과를 쳐다봤다.

하라고 했으니, 하긴 한다.

혼자서 해야 한다니 그것도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나 빠르게 다가오는 기과를 보자, 임무고 뭐고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찼다.

‘피, 피해야 해. 저 주먹에 맞으면 죽을 수도 있어.’

다다다―.

용연은 전력을 다해 기과가 달려오는 방향 옆으로 몸을 날렸다.

훙―.

“크헙!”

무언가 다가온다 싶은 순간, 코를 마비시키는 썩은 내가 진동을 했다.

퍽!

“컥!”

용연의 어깨에 무지막지한 고통이 전해졌다.

스륵―.

용연은 본능적으로 어깨를 틀어 힘을 흘리려 했으나, 이미 어깨에 닿은 기과의 주먹은 냄새만큼이나 충격적인 힘을 싣고 있었다.

들썩.

진동을 하듯 몸이 떨리더니 붕, 허공으로 떠오르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 날아가면 안 돼!’

용연은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애썼다.

저 주먹과 떨어지는 순간, 경력을 몸 전체로 받아 내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역시 무리였나?’

담영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가운장 식솔들을 묶고 있는 밧줄을 풀어 주었다.

그때였다.

“죽어!”

담장 위에서 사내 한 명이 뛰어내리며 담영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슷.

‘어?’

사내는 검을 휘두른 자신의 손을 쳐다봤다.

분명 검날이 담영호의 몸에 닿는 것을 본 것 같은데, 손에 아무런 느낌도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허공을 벤 것 같았다.

놀란 눈이 된 사내는 이미 사라진 담영호를 찾아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그 순간, 사라졌던 담영호가 그 자리에 나타나며 아직 허공에 떠 있는 사내의 머리를 손으로 받쳤다.

턱.

“헉!”

사내는 다급한 비명을 터트리며 담영호의 손에서 벗어나려 했다.

꾸득!

담영호는 시선을 앞으로 둔 채 사내의 코와 어깨가 나란해지도록 구겨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자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굳고 말았다.

저 손에 구겨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담영호의 시선은 오직 용연을 향해 있었다.

언제 나가떨어질지를 기다리는 중이다.

“음?”

갑자기 담영호의 눈이 커지더니 몸을 움직였다.

“이 무슨…….”

기과는 자신의 주먹이 닿은 곳을 보다 눈가에 잔경련을 일으켰다.

원하던 상황이 아니었다.

자신의 주먹이 살짝 미끄러진 느낌?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어야 하는 놈이 자리를 지킨 채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손을 바꿔 한 번 더 때려야 할 모양이다.

용연을 때린 손을 거두고 다른 손으로 내지르려 할 때였다.

‘음?’

용연의 어깨에 닿아 있던 주먹이 떨어지지 않았다.

진득한 액체가 감싼 것 같은 느낌이다.

뚝!

“윽!”

기과의 오른쪽 팔목에서 난 소리였다.

뭐가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이 되질 않는다.

기과가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목을 쳐다보는 사이, 용연이 바닥을 구르며 물러났다.

“…….”

기과로선 황당하기만 한 상황이다.

“사, 살았어. 생각대로 됐어!”

용연은 탈골된 어깨를 잡은 채 활짝 웃었다.

자신의 어깨만 탈골된 것이 아니라 기과의 손목 역시 탈골시켰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펼쳐 본 적 없는 역삼제를 성공시켰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것이다.

손을 상대의 몸에 닿게 할 수 없다면, 상대가 자신의 몸에 닿게 하면 된다.

이 말도 안 되는 발상이 기적의 시작이었다.

어깨를 통해 밀려 들어오는 기과의 힘에 반발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몸을 아래로 늘어뜨렸고,

퉁―.

한 호흡 늦게 반발하며 몸을 세우자 몸 안에 들어와 있던 기과의 힘이 고스란히 되돌아갔다.

뚝.

용연은 기과의 손목이 탈골되는 소리를 들으며 몸을 빼낼 수 있었다.

‘됐다!’

어깨가 빠진 고통도 잊고 용연은 눈을 반짝였다.

“이이…….”

기과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엄청난 땀이 얼굴을 뒤덮었다.

순간, 엄청난 악취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뚝.

기과의 땀 한 방울이 바닥에 닿았다.

치이이!

땅이 녹으며 구멍이 만들어졌다.

그동안 흡수했던 피가 기과의 내공과 섞이며 독이 된 것이다.

텁.

“흡!”

용연의 입과 코가 순식간에 막혔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려 하자, 낯익은 목소리가 귀속을 파고들었다.

“숨 멈춰.”

담영호였다.

용연은 바로 숨을 멈췄다.

“……네가 구한 사람들이다. 가서 챙겨.”

담영호가 눈짓으로 뒤를 가리키자, 용연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쉭―.

담영호에 의해 용연의 몸이 순식간에 가운장 식솔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서, 선임!”

날아가던 용연은 다급히 담영호를 부르며 손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그러자 담영호가 뒤를 돌아봤다. 아니, 막 뒤를 돌아본 순간.

쾅!

폭음이 담영호를 덮쳤다.

“선임!”

용연은 담영호를 부르며 허공에서 손과 발을 허우적댔다.

탁.

발이 땅에 닿자마자 바로 담영호에게 달려가려 했으나, 실천으로 옮겨지진 않았다.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담영호와 그 앞에 기를 쓰며 서 있는 기과가 한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치이이―.

담영호를 들이받는 자세로 멈춰 선 기과의 주변에 혈산(血酸)으로 인한 연기가 피어올랐고 악취가 진동을 했다.

“이이…….”

기과는 입으로는 연신 믿기지 않는 신음을 뱉어 냈고 표정에는 황당함이 가득했다.

이럴 리가 없었다.

충돌과 동시에 혈산이 담영호를 덮쳤어야 하는데 오히려 자신이 뒤집어쓴 꼴이 됐기 때문이다.

슥.

담영호의 몸이 돌아섰다.

‘힉!’

기과는 사색이 되어 동공을 확장시켰다.

힐끗.

당연히 기과를 볼 줄 알았던 담영호의 시선은 안쪽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붉은 머리칼의 무부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무부의 눈이 커지며 언제든 도망칠 것처럼 자세를 낮추고 엉덩이를 뒤로 뺐다.

그런 무부를 보며 담영호의 손이 올라갔다.

척.

“지금부터 사천성 가운장의 혈겁을 주도했던 죄를 물을 것이다. 허락할 테니, 살고 싶다면 셋 셀 동안 자리를 피해라.”

담영호의 손가락 하나가 접혔다.

그때까지도 기과는 담영호를 들이받던 자세를 펴지 못했다.

‘우, 움직일 수가 없어.’

기과는 연신 마른침을 삼켜 댔다.

담영호의 시선은 무부를 향해 있지만 기세가 기과의 전신을 옭아매고 있는 까닭이다.

눈알만 굴려 가운장 식솔들이 모인 곳을 쳐다봤다.

자신의 손목을 탈골시켰던 애송이가 긴장한 얼굴로 지키고 있었다.

저 애송이만 아니었어도.

한순간 피가 거꾸로 돌아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무부 이 난장이 똥자루 새끼야! 어서 공격해서 나를 풀어 줘야지 뭐해!’

기과는 입을 움직일 수 없어 속으로만 온갖 욕을 퍼부으며 눈치 보고 있을 무부를 불렀다.

슥.

“지금까지 남아 있는 자들은 가운장 혈겁에 가담했다는 것을 자인한 것으로 간주, 모두…… 죄를 묻겠다.”

담영호는 내린 손으로 뒷짐을 지며 옆을 돌아봤다.

퀴류류―.

뒷짐 진 담영호의 손에서 소리가 일어났다.

언제 꺼냈는지 반은 파랗고 반은 붉은, 한 자 정도 되는 막대를 회전시키고 있었다.

처음엔 한 자였지만 순식간에 담영호의 머리 위까지 늘어났다.

파랗고 붉은 팔각 모양의 륜, 혼원륜이다.

‘아…… 썅!’

기과는 륜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 이내 자신의 운명을 욕 한마디 내뱉지 못한 채 끝내야 했다.

팍!

혼원륜이 기과의 가슴과 얼굴을 반으로 자르며 지나갔기 때문이다.

“힉!”

지켜보고 있던 무부는 기과가 손도 쓰지 못하고 죽자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저런 무위를 보인 이상 덤벼들 부하들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응?”

막 자리를 뜨려던 무부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담영호가 가운장 식솔들이 모인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뭐 해?”

담영호는 용연에게 다가오며 한마디 건네고는 고갤 옆으로 돌렸다.

“……?”

용연으로선 당연히 담영호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뭐 하냐니?

용연은 의아한 눈으로 담영호를 쳐다봤다.

“…….”

담영호는 말을 끝냈는데도 용연이 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을 않자 빤히 쳐다봤다.

“선임, 혹시 저보고 싸우라는…….”

끄덕.

담영호는 용연의 말을 자르며 머리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아…….”

용연은 탄식과 함께 무부를 돌아봤다.

딱 봐도 기과 못지않은 자다.

조금 전에 담영호가 했던 마지막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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