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자, 여기서 질문. 군림단 스물아홉 명 중 몇 명이 고수일까?”
“……전부 아닌가요?”
“전부라.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소문엔 군림단 막내 단원 한 명이면 우리 철혈사자맹 지원조 전원을 상대할 수 있다고 했거든. 아무튼 그런 군림단이 몇 년 전에 숫자가 팍 줄었어. 스물……넷? 다섯인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거든. 고로, 쟤는 후임이야.”
“후임요?”
“후임. 진짜 단원들은 저렇게 요란 떨지 않거든. 스물네 명 중 한 명이었으면 벌써…… 윽!”
사내는 턱짓으로 안명을 가리키다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으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안명의 죽음을 볼 것 같은 것이다.
용연은 사내의 시선을 좇아가다 눈을 크게 치떴다.
안명이 탁추의 방패를 날렸으나 여전히 앞만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험…….”
꾹.
사내가 다급한 표정으로 용연의 어깨를 쥐었다.
“어이, 우린 철혈사자맹이지 군림단이 아니야. 왜 그리 흥분해?”
“우릴 도우러 온 분이잖습니까?”
“도와? 우릴? 누가?”
“예?”
“설마 저 군림단원이라고 떠들던 자가 우릴 도우러 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
“어어, 그런 거 아니다. 저 떠벌이는 아마 선임인 학림의 명령을 수행 중일 거야.”
“수행요? 그럼 도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아…….”
사내는 용연의 진지한 얼굴에 맥이 풀리는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설명이 길어질 것 같다.
“며칠 됐어?”
“예?”
“지원조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냐고.”
“……오 일쨉니다.”
“오, 오 일?”
강호초출이란 건 예상했지만 고작 오 일이라니.
사내는 황당한 표정으로 용연을 쳐다보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잘 들어. 군림단의 임무 수행은, 일종의 시험 같은 거야. 저자의 선임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스물다섯 번째 군림단원이 되려고 나선 걸 거다.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그러니 저들은 저들끼리 알아서 치고받게 내버려…… 어라? 어디 가?”
사내는 긴 설명을 끝내려는 순간, 용연이 쏜살같이 튀어나가자 허공에다 손을 휘적댔다.
‘이건 기회야.’
용연은 군림단에 대해 철혈사자맹의 흔하디흔한 무인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놀랐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사파의 횡포를 막기 위해 나섰다는 철혈사자맹의 일곱 개 지원조가 왜 저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팍!
용연은 땅을 힘차게 박찼다.
뒤쪽에서 자칭 선배라고 하던 사내의 욕설이 들려왔지만 무시하고 더 속도를 냈다.
구릉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서자 탁추가 안명의 목숨을 끊기 위해 방패를 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팍!
최대한 힘을 실어 몸을 띄웠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기에 겁나서 그런다.
이 모든 것이 군림단이란 이름 때문이다.
―아빠, 나도 돈 벌래.
다섯 살짜리의 울먹이는 애원이었다.
―연아, 이건 아비가 해야 하는 거야. 너는 삼제를 익혀서 군림단에 들어갈 생각만 해. 그래서 할아버지 대신 높은 서열까지 올라라.
덥다며 동상 걸린 손으로 땀을 훔치던 아버지의 소원이었다.
군림단 입단.
어쩌면 꿈에 그리던 그 기회가 지금일 수도 있다.
닿아야 한다, 이 손이 탁추의 몸 어디든 닿기만 하면…….
휘릭―.
탁추가 거짓말처럼 돌아서며 용연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쾅!
덜컥.
“……!”
뭐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눈앞이 흔들리고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
***
타닥―.
나뭇가지 겉면이 순식간에 타오르며 일어나다 ‘팍’ 하고 재가 되어 사라진다.
모닥불 앞.
단정한 무복과 흐트러짐 없는 말끔한 인상의 사십 대 중년인이 바닥에 누워 있는 용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귀찮군.”
건조한 말투가 중년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용연을 데려오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썼다.
‘안명, 너는 그동안 너를 가르쳐 온 나, 혼원륜 담영호를 부끄럽게 만들었어.’
군림단의 이름은 오직 영광스러운 순간 외엔 입에 담아선 안 된다.
이것이 군림단원의 자격 일 순위다.
그걸 안명은 어긴 것이다.
담영호는 아직 깨어나지 못한 용연을 내려다봤다.
***
혼원륜 담영호가 떠난 장내.
백 수십 명에 달하는 철혈사자맹의 무인들과 사파 쪽 무인들이 흩어지고 있었다.
멍―.
움직이는 무인들의 표정은 다른 표현이 불가능했다.
그들은 마치 못 볼 걸 본 사람들처럼 반쯤 정신이 나간 채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담영호…….”
유일하게 침착함을 유지하던 이규의 입에서 한 사람 이름이 흘러나왔다.
멀어서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탁추가 누군가를 주먹으로 날려 버리는 순간, 갑자기 희끄무레한 형체가 탁추의 앞에 나타나더니 빛이 번쩍였다.
조원의 보고를 들으니 탁추의 몸이 세로로 갈라졌다고 한다.
혼원륜 담영호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담영호라 추측되는 인영은 나타났을 때보다 더 빨리 장내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 뒤로 반 시진 가까이 지났건만, 다들 그 광경에 넋이 나가 싸울 의지를 잃게 됐다.
이규는 새삼 군림단이란 이름이 갖는 엄청난 존재감을 느껴야 했다.
“아! 그 청년은…….”
두칠과 오건을 상대했던 청년의 얼굴이 갑자기 떠올랐다.
이름도 모르고 몇 조 소속인지도 묻지 않았다.
그때, 이규의 눈으로 용연이 달려가던 곳에 있던 사내가 들어왔다.
“거기, 너!”
이규가 눈치를 살피며 자리를 떠나던 사내를 불렀다.
그러나 사내는 모른 척 몇 걸음 더 움직였다.
턱.
사내의 걸음을 멈춰 세운 것은 이규의 손이었다.
“그 조원, 지금 어디 있느냐?”
“예? 누, 누굴 찾으시는지…….”
“너를 도우러 갔던 조원 말이다.”
이규가 미간을 찌푸리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러자 사내의 눈동자가 옆으로 미끄러졌다.
이규는 사내의 눈동자를 좇아 고갤 뒤로 돌렸다.
“저긴…….”
“막판에 탁추에게 덤볐다가 죽은 놈을 찾으시는 겁니까?”
“……!”
이규는 잡고 있던 사내의 뒷덜미를 놓아주었다.
“그럼 저는…….”
“몇 조냐?”
“치, 칠 조 대광이라고 합니다.”
“칠 조. 알았다.”
이규는 곧장 대광이 알려 준 곳으로 신형을 날렸다.
가슴이 함몰돼 죽은 안명과 반으로 갈라져 죽은 탁추의 시체 외엔 보이지 않았다.
검을 사용했다고 해도 믿겨질 만큼 잘린 단면이 깔끔했다.
‘음?’
이규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탁추의 시체 뒤로 길게 이어지다 좁아진 선이 보였기 때문이다.
저런 흔적은 검으로 남길 수 없다.
‘혼원륜!’
이규의 머릿속으로 담영호가 혼원륜을 던지고 수거해 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곳 어디에도 용연의 시체는 없다.
설마 담영호가 데려간 것인가?
***
용연은 십팔 년 동안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밥 먹는 시간조차 삼제를 구현해 내는 데에 썼다.
목표를 위해서다.
군림단원.
철혈사자맹에 지원하게 된 이유 역시 명성을 얻어 군림단원의 자격을 얻기 위함이다.
그런데 죽음이 이토록 빨리 올 줄이야.
온몸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니 시작도 하기 전에 죽은 모양이다.
“……죄송해요, 아버지…….”
응?
“아아, 아아아…….”
말을 할 수 있다고?
번쩍.
용연은 재빨리 눈을 떴다.
“깼냐?”
“힉!”
용연은 눈앞에 있는 삼십 대 무인을 보자마자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런 용연을 무인은 담담하게 쳐다보기만 했다.
무인은 눈이 살짝 아래로 처져서 웃는 상이지만 코와 입가에 주름이 없었다.
감정 표현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모습이다.
“강호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으려면 앞으론 무모하게 나서지 마라.”
무인의 목소리는 용연의 예상대로 무미건조했다.
“저, 저는 용연이라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아버님과 둘이 지내며…….”
“닥쳐.”
“…….”
“말 많은 놈 질색이다. 움직일 만하면 가라.”
“자, 잠…… 윽!”
용연은 무인을 부르려 몸을 일으키다 어깨부터 시작된 통증이 가슴까지 이어지자 그대로 엎어지고 말았다.
이미 무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터덜터덜.
용연은 몸을 잔뜩 웅크리고 팔짱을 낀 채 지원조 임시 거처로 들어섰다.
눈을 뜨니 해가 밝았고 이곳까지 오는 도중에 중천이 됐다.
꼬르륵―.
음식 냄새를 맡자 위장이 요동을 친다.
“어이! 살았어? 마, 맞지? 어제 그 어리바리 맞지?”
조원들과 모여서 잡담을 늘어놓던 대광이 벌떡 일어나며 용연을 향해 소리쳤다.
용연은 소리가 난 곳을 올려다보며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응?’
대광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 모두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대광이야 어제 군림단에 관해 설명을 해 줬으니 알은척할 수 있다 치지만, 다른 사람들은 말 한 번 섞은 적도 없었다.
“총괄 조장님이 찾던 사람이 자네였어?”
“세상에, 이렇게 어렸던 거야?”
“대광이 말 들으니 탁추에게 덤볐다며? 뭔 깡이야? 미친 거 아니지?”
사람들이 일제히 알아듣기도 힘든 질문을 해 대기 시작했다.
용연은 멍한 표정으로 대광을 쳐다봤다.
“헤헤헤. 내가 자네 무용담을 쫙 늘어놨지. 총괄 조장님이 자넬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가자고, 내가…… 잉?”
대광은 용연의 손을 잡아끌려다 재빨리 손을 놓았다.
꾸르륵―.
용연의 위장이 엄청난 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어, 어제 이후 아무것도 못 먹어서…… 배가 너무 고파요…….”
“아! 난 또 똥 싼 줄 알…… 헤헤, 가자고, 일단 밥부터 먹자.”
대광은 멈칫했던 손을 다시 내밀어 용연의 팔을 잡고서 이끌었다.
총괄 조장 이규는 하루 만에 돌아온 용연을 빤히 쳐다봤다.
무슨 말로 시작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된 까닭이다.
어제, 칠 조장을 찾아가 용연에 대해 물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칠 조장은 난감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원조는 철혈사자맹의 말단 중에 말단이잖습니까? 언제 죽어도 하나 이상할 것 없는데 따로 이름 같은 걸 적어 놓았을 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규도 본진에 있을 때는 지원조란 곳이 있는 줄 몰랐으니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일회성으로 사용하기에는 적당한.
지원조를 이보다 잘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두칠과 오건을 쓰러뜨린 용연의 재능을 보고 도움이 되고자 찾으려 했지만, 막상 현실을 새삼 깨닫고 나니 오지랖이라 여겨졌다.
출신 내력의 뒷받침 없이는 시간이 흘러도 용연은 소모품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구대문파나 오대세가 출신이 아니더라도 유명 무관이나 장원의 자식이 아니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