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록-146화 (146/158)

생과 사 生과 死 10

응....?

못볼 것을 본 것처럼 찡그려지는 군자명의 눈에 당풍호와 가종덕이 의아한 눈길로 등뒤를 돌아보고....

언제 나타난 것인지 흐릿한 안개 같은 것 속으로 보이는 노인 하나.

현실인듯 아닌듯 분간하기도 힘든 기괴한 장면 속으로 한 명의 노인이 나타난다.

대낮의 태양이 작열하는 산속에서 안개 같은 것이 떠다니고 그 속으로 등이 굽은 곱추노인 한명의 모습이 세 사람의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아난타....! 여기 있었구나...."

신경을 건드리는 거북한 음성과 함께 노인의 입에서 듣기 싫은 말소리가 들리고 옅어지는 안개와 함께 곱추노인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린다.

"돌아버리겠네...."

마치 신기루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노인의 모습에 당풍호의 입에서 기가 막히다는 것처럼 돌아버리겠다는 말이  나온다.

그와 함께....

부스럭....! 부스럭....!

산길의 옆으로 이어진 숲의 낙엽을 헤치며 땅바닥을 뚫고 올라오는 앙상한 손.

듬성듬성 붙어있는 몇 조각의 살점과 골격의 구조가 사람의 손이라는 것을 짐작케 해주는 앙상한 손이 하나 올라온다.

그리고 뒤이어 그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딘가 거북한 존재.

얼굴의 반쪽은 이미 썩어 살이 보이지않고 나머지 반쪽도 살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할만큼 부패가 진행되는 보기싫은 살덩이가 덜렁거린다.

"강시....?"

땅을 뚫고 일어서는 강시의 모습에 얼이빠진 것처럼 군자명이 중얼거리고....

한 구의 강시가 일어난 것을 시작으로 주위로 수많은 강시들이 바닥을 헤치며 일어선다.

아니.... 제련된 강시가 아니라 정확히는 썩어가고 있는 시체라고 해야하나?

얼굴의 반면이 썩고 눈동자조차 보이지않는 수많은 시체가 낙엽더미 밑의  대지를 뚫으며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시체의 뒤로 그림자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는 자들.

얼굴에 귀신의 형상을 한 귀면탈을 쓰고 양손에는 갈고리처럼 세갈래로 갈라진 날이 달린 괴상한 무기를 끼고 있는 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귀면....?"

강시를 대동한 귀면탈의 모습에 가종덕이 낮은 신음을 토해내고 당풍호가 재빨리 주위를 둘러봤다.

혈왕궁의 귀면 鬼面.

일부는 강시를 제련해서 탈을 씌우고 일부는 실혼인들로 이루어진 혈왕궁의 마졸들.

천 년전 혈마가 혈영을 세상에 내보낼 때 혈영과 함께했던 혈왕궁의 무기.

공포도 두려움도 없이 상대와 동귀어진까지도 불사하던 귀면탈이 있다면 반드시 그들을 이끄는 혈영도 근처에 있을 것이다.

재빠르게 주위를 살피는 당풍호의 눈에 귀면의 뒤로 보여야 할 혈영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건 또 뭔가....?

왠지 혈영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불안하다.

그리고....

점점 더 그 숫자가 불어나는 강시와 귀면의 무리.

숲뒷쪽의 산으로부터는 사자보의 무인들이 자신들을 쫒고....

지금 눈앞으로는 귀면탈과 강시들이 자신들을 기다린다.

미치겠네....!

퍼엉....!

눈앞으로 닥친 긴박한 상황에 어떻게 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당풍호의 귀에 갑자기 커다란 폭죽소리가 들린다.

"뭐야....?"

가종덕의 손에서 올라가는 한개의 폭죽.

하늘 높이 올라가 터지는 폭죽에 당풍호가 깜짝 놀라 가종덕을 돌아보고....

"뭐긴 뭐야! 폭죽이지. 제발 우리 노망난 방주가 저 폭죽을 보고 빨리 와 주기만을 바랄 수 밖에...."

"너희들의 방주가....?"

"그래. 어차피 혈왕궁이 우리들의 앞을 가로막는다면 이제는 우리위치가 노출되건 말건 저 폭죽을 보고 우리 방주나 아니면 닥른 누구라도 와주기를 바랄 수 밖에 없잖아?"

망할놈....!

그런게 있었으면 진즉에 좀 쓰지....

당풍호가 궁시렁거리며 전신의 공력을 끌어모으고 군자명이 손안의 검을 힘껏 움켜쥔다.

그리고....

후웁....!

깊은 숨을 몰아쉬며 두다리에 공력을 집어넣는 가종덕.

"시작해볼까?"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것 같은 가종덕의 말과 함께 군자명의 몸이 번개처럼 강시들을 향해 튕겨나가고....

당풍호의 주위로 바닥의 먼지가 솟구쳐 오른다.

크르르....!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와 함께 자신들의 속으로 뛰어들어오는 군자명을 둘러싸는 강시들과....

자신을 둘러싸는 강시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가는 군자명의 검.

피윳! 피윳!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군자명의 검이 지나간 자리에 서있던 강시들의 몸이 둘로 잘라져 나간다.

투웅....!

그리고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가종덕이 바닥을 차며 빛살처럼 강시들을 향하고....

쉬웅....! 쉬웅....!

몸을 날리는 가종덕을 향해 몰려오는 강시들의 이마에 작은 돌조각들이 먼저 날아와 부딪친다.

퍽! 퍽!

여름날 수박깨는 소리와 함께 돌조각에 맞은 강시들의 머리가 터져나가고....

머리가 터져 쓰러지는 강시들의 사이를 헤치며 가종덕의 몸이 귀면탈을 쓴 자들의 앞으로 내려선다.

동시에....

휘리릭....!

야릇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내려선 가종덕의 몸이 다시 떠오르고....

쉬익!

귀면탈의 손에 끼어진 수많은 갈퀴손이 가종덕의 몸을 향한다.

하지만....

마치 물속에서 유영하는 잉어처럼 자신을 향하는 한개의 갈퀴손에 달린 날을 밟은 가종덕의 다른 발이 갈퀴손의 임자를 향한다.

퍽! 퍽!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갈퀴손을 낀 자의 머리가 터지고....

그 탄력으로 다시 뻗어내는 발길질에 또다른 귀면탈의 머리가 터져나간다.

그렇게 갈퀴손 사이에서 유영하듯 움직이는 가종덕의 두발이 번갈아가며 갈퀴손을 밟고 다른 발로는 귀면탈의 머리를 차고 가슴을 때리기 시작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가종덕의 두 다리와 함께 주위에 몰려있던 귀면탈의 머리가 터지고 가슴이 함몰된다.

"아닌가....?"

자신의 선풍각에 가슴이 함몰돼 쓰러지는 귀면탈을 둘러보며 가종덕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옆쪽에 몰려있는 또다른 귀면탈을 향해 몸을 날린다.

그리고....

퍽! 퍽! 퍽!

빠르게 움직이는 가종덕의 선풍각과 함께 또다시 가슴이 함몰되고 머리가 터져 쓰러지는 귀면탈.

"당풍호! 이쪽은 아니다!"

"기다려!"

가종덕의 외침에 발밑의 돌을 허공으로 뛰우며 수많은 강시들을 향해 돌을 날리던 당풍호가 소리쳤다.

그리고 강시들의 뒤로 꾸역꾸역 몰려오는 귀면탈의 무리를 살피는 당풍호.

천 년도 더된 그 긴세월동안 끊임없이 천하를 위협했던 혈영과 귀면탈.

세상에 그 모습을 보일때마다 악몽 같은 혈겁을 일으켰던 그들을 막기위해 개방과 열두가문은 부단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그 결과 혈영은 몰라도 의식이 없는 귀면탈을 상대하는 방법은 찾아냈다.

바로 귀면탈을 조종하는 자.

귀면탈에게 직접 명령을 내리는 의식있는 자 하나를 찾아내서 제거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열두가문중 제갈가문에서 찾아낸 방법.

지시를 내리는 의식있는 귀면탈을 제거하면 나머지 귀면탈은 모든 동작을 멈추게 된다.

말 그대로 의식이 없는 실혼인이나 시체가 되서 움직임을 멈추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당풍호는 멀리서 귀면탈의 움직임을 살피며 그중에서 지시를 내리는 자를 찾고있고 의심이 가는 곳으로 가종덕이 뛰어든다.

하지만....

빌어먹을....!

너무 많은 수의 귀면탈이 있어서인가?

당풍호는 쉽게 의식이 있는 귀면탈을 찾을 수가 없어서 당혹스럽기만 하다.

"가종덕! 왼쪽!"

당풍호의 외침속에 가종덕이 자신들을 향해 몰려오는 귀면탈중 왼쪽의 무리들을 향해 몸을 날리고 수많은 돌조각이 가종덕의 앞을 막아서는 강시들의 머리위로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서걱! 서걱!

한번씩 움직이는 검의 움직임에 맞춰 강시들의 가슴이 베어지며 두조각으로 갈라지고 어떤 강시는 머리가 떨어져 내린다.

뻬곡히 산길을 채우며 몰려오는 강시들과 귀면탈의 무리들 속에서 마치 자신의 존재이유가 이들을 자르는 것 뿐이라는 듯 군자명의 검이 움직인다.

달려드는 강싱의 몸을 반으로 가르고 돌아오는 검의 궤적뒤로 또다른 강시의 손이 따라오고....

서걱!

가슴 앞으로 돌아오지도 못한 검이 다시 앞으로 나가며 반원을 그려내고 강시의 몸이 반으로 갈라진다.

그리고 다시 잘려나가는 시체위로 또다른 강시의 손길이....

이래서는....!

최소한의 힘으로 공력을 아끼며 몰려오는 강시들을 베고 있지만 이 엄청난 숫자 앞에 기가 질려버린다.

두려움도 어떤 감정도 없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자신을 향해 몰려오는 강시들이기에 실제로도 그저 베는것 외에는 다른 어떤 방법도 없다.

쓸쩍 고개를  돌려 당풍호와 가종덕을 쳐다봐도 자신과 별로 다를게 없다.

귀면탈의 무리속에서 불길속의 메뚜기처럼 이리뛰고 저리뛰며 저혼자 발작을 하는 것 같은 가종덕과 잠시도 쉬지 못하며 신녀의 앞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던져내는 당풍호.

이렇게 가다가는 아무리 힘을 아낀다고해도 자신들이 먼저 지쳐버릴 것 같다.

그리고 이곳에서 발이 묶인 동안 자신들을 뒤따르고 있을 사자보마저 온다면....?

그렇다고 지친 몸으로 저 넓은 지역을 향해 중검을 펼칠 수도 없다.

저많은 상대를 한번에 다 제압할 수도 없을 뿐더러 이 넓은 범위를 모두 장악 할만한 공력도 자신에게는 없다.

그저 지금처럼 뽀족한 방법도 없이 하나하나 베어가는 수 밖에는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강시와 귀면탈의 무리속에 뒤섞여있는 세사람의 뒤로 신녀의 눈길이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바쁘게 움직인다.

하지만 온산을 가득 채운 것 같은 귀면탈외에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노인의 모습.

분명히 그 실체가 보였었는데....?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던 그 눈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분명히 그 노인이 혈뇌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 혈뇌가 직접 혈왕궁을 벗어나 자신을 찾아왔다.

이 고비가 마지막일까?

아니면 또다른 혈왕궁의 숨겨둔 수가 남아있어 결국 혈뇌의 손을 피하지 못하고 그의 손에 잡힐 것인가?

하찮은 자신의 욕심때문에....

할머니와 아버지의 한을 풀어주고 싶은 그 어줍잖은 욕심때문에....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혈뇌를 찾지 못하고 전면을 주시하던 신녀의 눈길에 강시들과 귀면탈의 사이에 뒤섞여 움직이는 군자명과 가종덕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몇 장앞에서 쉬지않고 무언가를 던지고 있는 당풍호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결국 저들도 자신의 욕심때문에 이 혈로를 걷는 것이고....

조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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