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과사 生과死2
움직여지지도 않는 다리를 끌고 몸을 옮기는 것이 죽을만큼 힘들다.
그냥 이대로 주저앉아 아무 생각없이 눕고만 싶다.
아니.... 이 높은 산에서 움직이자니 터질 것만 같은 심장이 더 괴롭다.
한 번씩 숨을 내쉴때마다....
그리고 내쉰 숨을 다시 들이마실때도 이 빌어먹을 심장이 터져버리는 것만 같다.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극한의 경지라는 발경의 경지.
그 발경의 경지에 다다른 초일의 주먹을 세번이나 맞고도 살아있다는 것이 사실은 기적이다.
아무리 천지음양천과 공청석유의 효능이 무적의 몸을 지켜준다고 해도....
흔들리고 부서진 전신의 뼈와 끊어진 세맥이 지금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마치 전신에 금이간 도자기와 같은 무적의 상태.
단 한 번의 충격만 더해진다면 산산이 부서져도 이상하지않을 그런 끔찍한 몸을 끌고 무적이 다시 다리를 움직인다.
헉....! 헉....!
억지로 다리를 떼고 멎을 것만 같은 심장의 격한 숨을 몰아쉬자 이번에는 온몸의 뼈마디와 근육이 아우성친다.
부서지고 끊어진 것처럼 고통에 몸부람치는 전신의 근육과 뼈마디.
정신이 아늑할 정도로 고통스럽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무적의 눈에 갑자기 군자명의 몸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검을 쥐며 몸을 날리는 군자명의 모습과 함께 걸음을 멈추는 신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단순히 신녀의 곁으로 가야한다는 본능과 함께 무적의 발이 앞으로 한 걸음 나간다.
긔리고....
스윽....!
가벼운 옷깃 스치는 소리와 함께 마치 처음부터 그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신녀의 곁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무적과....
끼잉....?
신녀의 곁에서 깡총거리며 걷던 새끼호랑이가 놀란듯 무적을 보고 신녀의 눈에서 야릇한 빛이 반짝인다.
이형환위 移形換位....?
파앗....!
빠르게 몸을 날린 군자명이 열 명의 검객을 향하고....
스윽.....!
열 명의 검객이 약간은 부자연스러운 움직임과 함께 군자명을 둘러싼다.
그리고....
피윳....!
언제 뽑아든 건지 보지도 못한 열 자루의 검이 군자명의 몸을 향해 그 이빨을 드러낸다.
이 깊은 산길에서 자신들을 기다리는 검객이 좋은 뜻을 가지고 왔을 턱은 없다.
분명히 자신들을 기다리는 자들.
신녀를 기다리던 무적을 기다리던....
아니면 자신을 기다리는 마도육문의 겸객이든....
지금은 앞을 막아서는 자들이라면 누구라도 베어낼 수 밖에 없다.
십방 十方의 방위에서 자신을 향하는 검광이 보이고....
핏....!
열 자루의 검 중에 한 자루의 검과 자신이 검이 서로 엇갈려 지나간다.
퍼억....!
상대의 검과 엇갈려 뻗어나가는 자신의 검과 함께 둔탁하게 살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고....
빠르게 돌아나오는 검과 함께 자신의 가슴을 노리는 상대의 검이 멈추지 않고 따라나온다.
뭐야....?
깜짝 놀란 군자명이 자신의 검에 찔린 상대를 보고....
아....?
앵속?
분명히 자신의 검에 목이 찔린 상대의 얼굴에서 아무런 고통도 어떤 감정도 느낄 수가 없다.
몽롱한 눈빛과 함께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에서도 동작을 멈추지 못하고 단지 기계적으로 자신을 향해 검을 뻗어내는 상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군자명은 금군의 교두이기 이전에 군부의 무장이다.
당연히 군부에서 전투중 수많은 적에게 포위되거나 상대하기 벅찬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 쓰야만하는 극단적인 병법도 알고있다.
포위망을 뚫기위해.... 그리고 적과 함께 죽기위해 돌격해야하는 선봉대를 어떻게 다루는지 군자명도 분명히 알고있다.
독한 한잔의 술과 앵속.
죽음을 마주해야하는 공포속에서 한잔의 독한 술과 정신이 혼미해지는 앵속을 복용하고....
그 몽혼의 상태에서 조직을 위해.... 또 국가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라는 광기와 같은 신념을 주입시켜 스스로 적과 함께 동귀어진하게 하는 잔혹한 병법.
동료를 소모품처럼 희생시켜 목적을 달성하는 비인간적이지만 또 어떤면에서는 가장 효율적일 수 밖에 없는 방법.
누군가?
도대체 누가 있어 이들에게 이런 짓을....?
하지만 놀라는 것도 잠시 군자명이 당기던 검을 다시 빠르게 밀어 넣으며 상대의 가슴을 찌르고....
퍽....!
둔탁한 파육음과 함께 자신에게로 검을 찔러넣던 상대가 뒤로 쓰러진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의 틈을 노리고 등을 노리는 또 다른 상대의 검이 느껴지고....
그 검이 날아오는 길을 따라 다시 자신의 검을 찔러넣는다.
핏....!
검이 나가고....
다시 자신의 검이 몸앞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울리는 파공성과 함께....
퍼억....!
상대의 살과 뼈과 갈라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피익....!
목과 가슴이 갈라지면서도 여전히 자신을 향하는 상대의 검에 군자명의 옆구리로 한줄기 선혈이 튀고....
자신의 전신을 노리는 여덟 자루의 검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날카로운 여덟 줄기의 인광속에서 팽이처럼 빠르게 회전하는 군자명의 몸과 함께 자신을 둘러싼 검객들을 향해 날카로운 검광이 반짝이고....
핏....! 핏....!
공기를 가르는 몇 줄기의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빠르게 돌아가던 군자명의 몸이 멈춘다.
그리고....
퍽....! 퍼억....!
어느새 자신의 앞으로 돌아온 군자명의 검과 함께 둔탁한 파육음이 산속을 울리고 마치 굳어버린 석상처럼 군자명을 향해 검을 뻗은 채 멈춰선 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짧은 순간동안이지만 시간이 정지해버린 것 같은 정적이 산속을 흐른다.
푸악....!
찰나간의 정적을 깨는 야릇한 소리와 함께 멈춰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고 사람의 생살이 갈라지는 소라속에서 목으로부터 피를 뿜어내며 쓰러지는 여덟 명의 검객이 눈에 들어오자 군자명이 살짝 미간을 찌푸린다.
빌어먹을....!
상대가 누군지....
누구를 기다리는 것인지 확인도 하지않은 채 상대의 목에 검을 찔러넣는 자신의 모습에 약간의 자괴감도 든다.
하지만 상대는 이미 의식을 놓은 채 자신을 향해 동귀어진의 수법으로 몸을 날렸고....
그 짧은 순간의 흔적이 지금 자신의 온몸에 선혈과 함께 자상이라는 모습으로 남아있다.
자신들의 죽음도 모른 채 앵속에 취한 상대의 검이 자신의 몸을 스치고 지나간 흔적.
이게 정말 옳은 것인지....
아니 과연 자신들이 상대를 뚫고 이 산을 무사히 넘을 수 있을지....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돌리는 눈길에 무적과 신녀의 모습이 들어오고....
응....?
저 인간....?
자신이 몸을 날리고 상대의 목에 검을 찔러넣은 시간은 눈깜박할 정도 밖에 되지않았다.
그런데 저 인간이 도대체 언제 신녀의 곁에 와 있다는 것인가?
마치 처음부터 신녀의 곁에 있었다고 주장하는것 같은 무적의 모습에 군자명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고....
자신의 등뒤로 차가운 눈길을 주는 무적의 모습에 군자명이 뒤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또....?
대략 십 장은 될 것 같은 거리에서 다시 모습을 보이는 열 명의 검객.
또 다시 황색의 옷을 입은 열 명의 검객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가....?
역시 우리를 기다리는 자들인가?
옆길이 있어 피할 수도 돌아갈 수도 없다.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외나무다리 같은 이 험난한 산길에서 차례로 죽기위해 자산들을 기다리는 열 명의 검객.
앞으로 얼마나 많은 자들이 나타나던 오로지 막아서면 부수고 통과해야만 한다.
천천히 몸을 돌린 군자명이 빠르게 열 명의 검객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 *
"뭐라고 했느냐?"
"주모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귀영공을 익힌 후 단 한 번도 그 본래의 모습을 보이지않았던 귀영이 지금 혈뇌의 앞에 그 모습을 보이고있다.
흐릿한 안개 같은 모습이 사라지고 초로의 흰머리와 자잘한 주름이 온얼굴을 덮고있는 모습.
그 촌부 같은 모습의 귀영이 잔뜩 붉어진 얼굴로 혈뇌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고 혈뇌의 두눈이 튀어나오기라도 할 것처럼 부릎떠져있다.
자신의 아내가 죽었다!
분명히 귀영의 입에서 나온 말인데도 불구하고....
왜 귀영의 한 마디가 믿기지않는 것인가?
아니.... 믿기 싫은 것인가?
높디 높은 천산의 하늘속에서 대자재천의 광휘에 산산히 부서져 사라지던 마안멸의 마기.
그렇게 소멸돼 사라지던 마안의 마기와 함께 자신의 아내가 죽었다고....?
치켜뜬 두 눈으로 한참동안 귀령을 내려다보던 혈뇌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천막밖으로 나왔다.
따갑게 눈을 자극하는 태양빛과 함께 마기가 사라지고 없는 맑은 천산의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부인....!
참혹하게 죽어가던 선친의 죽음을 뒤로한 채 대륙을 가로질러 홀홀단신 청해로 향했던 그 해의 여름이었던가?
자신이 주술을 익히고 혈뇌의 길로 들어섰을때 자신의 앞에 나타났던 여인.
자신과 함께 혈뇌와 마안으로 혈마를 보필해야할 마안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던 화려한 용모의 여인이 떠오른다.
여인에 대한 아무런 감정도....
그리고 그 화려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한점 생기지않던 욕정을 내색하지도 않은 채 그렇게 자신은 마안과 부부의 연을 맺었다.
단지 가슴속에 품고있던 그 지독한 복수의 염원.
그리고 대를 이어줄 자식을 낳기위한 작은 욕심.
그렇게 세상을 향한 복수와 대를 잇기위한 수단으로 아내를 선택했고....
부부간의 정도 없는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긴 세월을 함께하며 홍두를 얻고 서로 부대끼며 살다보니 어느듯 없던 정도 생겼다.
그런데....
그 오랜시간을 함께했던 인생의 동반자가 죽었다고한다.
부인....
말하기 힘든 애틋한 심정과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던 혈뇌의 입이 열린다.
"홍두는....?"
"도련님도 내상을 입고 쓰러졌습니다."
언제따라왔는지 귀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고 혈뇌의 고개가 귀영을 향한다.
"홍두가 내상을....?"
"예. 심하지는 않지만 내상을 입은 것이 분명합니다."
귀영의 말에 혈뇌가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자신의 입술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언제나 처럼 무언가를 생각할때면 항상 나타나는 습관.
왜 홍두가 내상을 입었는가?
자신의 입술을 건드리며 생각에 잠겼던 혈뇌의 두눈이 반짝인다.
혈왕궁에서 안전하게 있을 홍두가 내상을 입을 까닭이 없다.
그렇다면.....?
천산의 하늘을 가렸던 마안멸의 마기가 홍두의 것이었던가?
완성했구나....!
자신의 아들이 혈뇌의 주술과 마안의 환술을 모두 완성했다.
비록 대자재천의 광휘에 마안멸이 부숴졌지만 분명히 홍두가 환술을 완성했다.
그리고 한 많은 조상들의 그 일기도 아들에게 넘겼다.
혈뇌와 마안을 이을 아들이 있다면 이제 자신은 뒷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해야할 일을....
꼭 해야만 할 일을 하기만 하면 된다.
"귀영! 옹귀와 귀면을 모두 깨워라!"
"예....?"
짦게 울리는 음성에 고개를 드는 귀영의 눈에 하얀가면을 얼굴로 가져가는 혈뇌의 모습이 들어왔다.
* * * * *
피윳....! 피윳....!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목이 갈라지며 쓰러지는 열 명의 검객들과....
헉....! 헉....!
전신에 피칠을 한채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군자명의 모습.
대략 십장의 거리를 두고 자신들을 기다리는 열 명의 검객들이 쓰러지고 군자명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산길을 내려다본다.
또 다시 십 장(대략 삼십 미터 정도의 거리)정도의 거리에 모습을 보이는 열 명의 검객들이 눈에 들어오고 군자명의 얼굴에 짜증스러운 기색이 떠오른다.
차라리 한 번에 몰려오지....
앞선 동료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도 단 한 점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그들을 향해서 몸을 날리는 자신의 검에만 반응하는 것 같은 모습.
이 산길을 돌아 다시 내려가는 동안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마치 자연의 일부라도 되는 것처럼 끊임없이 나타나는 검객들과....
쉬지않고 검객들을 쓰러트리며 이동하는 동안 군자명은 전신을 뒤덮은 검상과 함께 서서히 두 다리가 무거워지고 검을 든 손이 느려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동귀어진의 차륜진....?
신녀의 곁에 바짝 붙어선 채 군자명의 모습을 지켜보던 무적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분명이 이 넓은 산을 내려가기전에 자신들을 막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천하를 상대로 그 마수를 드러낸다는 혈왕궁이 눈앞에 있는 신녀라는 먹이를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도육문.
한때 무림의 열여덟가문이라고 불렸던 그들도 언제 어떤 모습으로 자신들의 앞을 막을지 짐작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황당한 모습으로....?
십 장 간격으로 약에 취한 열 명의 검객이 한무리가 되서 자신들을 기다린다.
그리고 눈앞의 적을 베고 나면 또 다시 나타나는 검객들이 모습.
차라리 한 번에 모두 몰려온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한 번에 상대할 수 있다.
그런데....
쉬고 싶어도 쉴 수도 없고 끝없이 움직이며 검을 휘둘러야하는 군자명.
아니.... 그게 다가 아니다.
도대체 눈앞의 이 상대는 얼마나 될까?
과연 이 산을 다 내려갈동안 그들을 모두 쓰러뜨릴 수 있을까?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끝없이 나타나는 상대의 모습에 몸보다 먼저 의지가 흔들린다.
지치고 상처입은 몸과 약해진 의지로 인해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동귀어진의 차륜진.
과연 저 지독한 차륜진을 뚫고 자신들이 무사히 이 산맥을 벗어날 수 있을까?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무적이 쓰게 웃으며 자신의 곁에서 걷고 있는 신녀를 힐끗 돌아봤다.
오히려 자신보다 더 침착한 모습의 신녀가 눈에 들어온다.
세상을 초월한 것 같은 초연한 모습.
걱정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이렇게 망가진 몸을 하고 있는 자신이 그녀를 끝까지 지켜줄거라고 믿는 것일까?
자신의 눈길을 느낀듯 고개를 돌리는 신녀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리는 무적의 눈앞으로 갑자기 하늘의 해가 사라진 것처럼 짙은 그늘이 나타나는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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