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록-136화 (136/158)

애증 愛憎6

"이해할 수 없군요. 백골음마가 조 대협을 살해했는데 왜 조 대협께서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당신의 동생들부터 살해한 것입니까?"

어딘지 모르게 약간은 차갑게 들리는 군자명의 말에 무적이 두손을 짚으며 윗몸을 일으켜 바닥에 바로 앉는다.

"그날.... 내가 정말로 죽은 것인지 아니면 사경에 처한 건지 분간도 하기 힘들었던 그날.... 나는 분명히 동생들의 칼에 찔렸다."

"무슨 소리요? 당신은 분명히 백골음마가 당신을 죽였다고 하지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와서는 동생들의 칼에 찔렸다니....?"

무적이 가만히 군자명의 얼굴을 보면서 조용하게 다시 입을 연다.

"군교두.... 만약 자네가 그 검으로 토끼를 찌른다면 자네가 토끼를 죽인 것인가? 아니면 그 검이 토끼를 죽인 것일까?"

"그야 당연히 내가 토끼를 죽인 것이지 어떻게 내 검이 토끼를 죽인 것이란 말입니까?"

"내 동생들이 나를 죽인 것도 마찬가지일세...."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까? 조 대협의 동생들은 내 손에 들려있는 이 쇠붙이와는 다른 살아있는 사람들입니다. 엄연히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어찌 그들을 한낱 내 손에 들린 쇠붙이 따위와 비교한다는 말입니까? 지금 하신 말은 결국 조 대협은 동생들의 손에 살해 당했다는 말입니까?"

도대체 이 인간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군자명은 조무적이라는 인간과 함께 하는 순간부터 아니.... 그가 누군지를 알게 된  순간부터 한시도 자신의 머리속을 떠나지않던 궁금증이 몇 가지 있었다.

도대체 누가 조무적을 죽인 것이고....

조무적이 정말 죽었다 살아난 것이 맞는가하는 말도 안되는 의문과 함께....

왜 조무적은 자신의 동생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여야했나하는 커다란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적이.... 아니 그의 동생들이 살아돌아와서 해주지않는다면 결코 알 수 없는 그때의 이야기를 지금 묻고 있는 것이고....

눈앞의 이 인간은 이해하기 힘든 말로 자신의 의문을 피해가고 있다.

조무적의 동생들이.... 그 비범한 자들이 왜 그렇게 죽어야했는지에 대한 자신이 궁금증에 대해서....

"말했지않나.... 나를 죽인 것은 백골음마라고.... 내 동생들은 단지 백골음마의 손에 쥐어진 칼이었을 뿐이라네...."

"하지만 조 대협의 동생들은 조 대협에게 미리 자신들의 행동을 이야기할 수도.... 또 조 대협에게 도망가라고 해줄 수도 있지 않았습니까?"

"나를 살리고 싶었겠지.... 그들이 아니라 백골음마나.... 아니면 또 다른 자의 손에 내가 죽게된다면 그때는 정말로 죽을거라 생각해서 그 아이들이 손을 쓴 것이겠지...."

이 빌어먹을 인간이 여전히 알아듣기도 힘든 말만....

군자명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다시 한 번 무적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말입니다. 조 대협의 동생들이 조 대협을 살리기위해서 손을 쓴 것이라면.... 왜 조 대협은 그런 동생들을 죽인 것입니까? 그것도 그렇게 잔인하게....?"

"몰랐지.... 그때는 그 사실을 몰랐으니까...."

허탈한 음성으로 입을 연 무적이 고개를 하늘을 올려다봤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한 번만 더 내게 동생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절대로 그렇게 어리석은 짓은 하지않을 것을....

처연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는 무적이 모습에 군자명이 더이상 말을 던지지 못하고 가만히 무적을 보기만 한다.

그리고....

치이익....!

토끼고기를 감싼 진흙이 살짝 갈라지고 그 사이로 흘러내리는 고기의 기름에 나뭇가지의 불길이 세차게 솟구친다.

"다 굽혔다! 끄집어내라!"

방금까지 눈앞에서 보여줬던 처연한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또 다시 차갑게 나오는 무적의 말에 군자명이 입술을 삐쭉이며 불속의 토끼를 꺼집어냈다.

"뜨거울테니 좀 식으면 진흙을 벗겨!"

그리고 무적은 군자명에게 말을 하면서도 눈길은 신녀에게로 돌린다.

"깨워볼까요?"

조심스러운 군자명이 말에 무적이 고개를 끄덕이고....

아....!

마치 자신들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갑자기 머리를 들며 신녀의 뺨을 핥는 새끼호랑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 * * * *

진흙으로 지어진 낡은 집의 문이 열리고 역광을 받은 채 자신을 보는 노인의 입이 열린다.

"네가 아난타냐?"

따뜻한 한 마디의 말.

별다른 내용도 없이 그저 이름을 물어보는 것뿐인데 그 말에서 따뜻한 온정이 묻어나는 것이 느껴진다.

단 하룻밤이지만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불안감에 몸을 떨어야했던 어린소녀.

그 막연한 두려움속에서 밤을 보낸 어린 소녀의 귀에 들리는 낮선 노인이 음성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네...."

노인의 초첨없는 회색눈동자를 보며 어린 소녀가 조심스럽게 대답하고....

"네 아버지는?"

다시 묻는 노인의 말에 어린소녀가 침상을 향해 눈길을 돌린다.

어린소녀의 눈길을 따라 침상으로 다가간 노인이 시신을 가리고있는 얇은 홑이불을 들춰보고....

짧은 시간동안 말없이 시신을 내려다보던 노인이 다시 이불을 덮고 조용히 몸을 돌려  집밖으로 나가버린다.

그리고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부산스럽게 집안으로 들어오는 몇 명의 장정들.

호들갑스럽게 집으로 들어온 자들이 침상애 누워있는 시신을 챙겨나가고 몇 사람은 침상까지도 밖으로 옮긴다.

그리고 다시 들어오는 회색눈동자의 노인.

말없이 자신을 향해 다가와 살며시 내미는 노인의 손길에 어린소녀가 몇 번 쭈삣거리다가 작은 손을 들어 노인의 손을 잡는다.

"너도 가서 보자꾸나...."

노인의 손을 잡고 낡은 진흙집을 나서는 어린소녀의 얼굴에 뜨거운 태양빛이 비추고....

한참을 노인을 따라 걷던 소녀의 눈에 탁하고 더러운 오물로 가득한 물줄기가 흘러가는 넓은 강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강변에 놓여있는 높다란 장작더미와 함께....

장작더미의 꼭대기에 흰천에 싸인 채 눕혀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마지막 가시는 길이다. 잘 봐 두거라."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노인의 말이 귓가를 울리고 몇 사람의 손에 들린 횃불의 불길이 장작더미로 옮겨붙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순식간에 아버지의 시신을 삼켜버리는 커다란 불길.

어떤 슬픔도....

또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알 수 없는 서러운 눈물이 저절로 뺨을 따라 흘러내리고....

그렇게  멍하니 화장 火葬을 하는 장작더미를 보고있는 소녀의 귀에 이해하기 힘든 노인의 말소리가 들린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죽음이었던 적은 없지만.... 모든 인간은 죽음을 보며 산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인간도 죽게되겠지.... 아난타....! 너는 이 가여운 사람들을 위해서 해야만할 일이 많은 사람이다. 어떠냐? 나와 함께 가겠느냐?"

"할아버지는 누구세요?"

"나....? 내 이름은 타말이란다."

따뜻한 한 마디와 함께 초점없는 회색눈동자를 한 노인의 손이 어린소녀의 뺨에 닿는다.

따뜻해....

노인의 늙고 거친 손이 볼에 와서 닿지만 오히려 소녀는 따뜻함을 느낀다.

그런데....

갑자기 노인의 손길이 차가워지며 강물이 얼굴에 닿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따뜻함 속에서 갑자기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에 신녀의  두 눈이 열리고....

흑백이 또렷한 동그란 두 개의 눈동자가 눈에 들어온다.

아....?

동그란 눈동자와 함께 자신의 뺨을 핥는 새끼호랑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주위를 둘러보는 눈길에 자신을 내려다보는 무적과 군자명의 모습이 보인다.

"조 대협....?"

놀란 것처럼 자신을 부르는 신녀의 음성에 무적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리고....

"괜찮습니까?"

오히려 군자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예. 괜찮아요. 그런데 여기는....?"

의아한듯 사방을 둘러보는 신녀의 모습에 무적과 군자명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살짝 인상을 찡그리는 신녀.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속의 한 장면이 보인다.

수많은 짐승들을 죽이고.... 악귀처럼 피를 빨던 자신의 모습이 흐릿하게 떠오른다.

설마....?

자신이 빨아들였던 마안의 마기가 오히려 자신을 삼켜버렸던 것인가?

입속으로 느껴지는 역한 비린내와 함께 대기를 감싸고 있는 야릇한 사기가 느껴진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신녀의 눈길에 온 하늘을 가득 메운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고....

몸을 세워 자리에서 일어난 신녀가 두 손을 가슴앞으로 모으며 조그맣게 입을 연다.

".... 옴마니 사바하!"

그리고....

신녀의 미간을 통해 하늘로 솟구치는 한줄기 빛.

태양의 광휘 같은 찬란한 한줄기 빛이 하늘 높이 올라가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동시에....

캬아악....!

광할한 천산을 울리는 소름끼치는 비명과 함께 찬란한 빛에 부서져 사라지는 사악한 기운.

* * * * *

퍽!

묵직한 소리와 함께 칼집채로 휘두르는 금도의 칼질에 눈앞에 있는 상대의 다리가 부러진 듯 바닥으로 쓰러진다.

그리고....

헉....! 헉....!

몰아두었던 거친 숨을 몰아쉬며 금도가 주위를 둘러봤다.

자신의 칼과.... 자신과 함께하는 다섯 사람의 손에 쓰러져 바닥을 뒹구는 자들이 모습이 보인다.

하늘에  떠오른 그 붉은 눈과 함께 갑자기 돌변해버린 군웅들.

자신들을 따르겠다며 천산 깊숙한 곳으로 들어온 자들이 갑자기 미쳐서 날뛰기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검을 찌르고....

또 자신들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든다.

차마 죽일 수 없어서....

아니 무슨 이유인지도 모른 채 죽일 수 없어서 적당히 상처만 입히고 쓰러뜨렸자만....

게거품을 문 채 바닥을 기면서도 자신들을 향해 이빨을 드러낸다.

돌아버리겠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가종덕과 당풍호 그리고 독각대호등 자신들 네 사람은 저렇게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미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억지로 누르고는 있지만 이 터질듯이 치솟아 오르는 살심은....?

그리고 도대체 이 천산에 얼마나 많은 무림인들이 기어들어온 것인지....

처음 자신들과 동행했던 군웅들외에도 온산의 구석구석에서 처음보는 자들이 꾸역꾸역 밀려나온다.

어떡해야하나....?

답답한 마음에 힐끗 돌아보는 곁눈질에 가종덕이 기다란 나뭇가지 하나를 꺽어드는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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