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록-135화 (135/158)

애증 愛憎5

탈진인가?

별다른 상처나 내상은 없고 단순히 탈진한 것인가?

의식이 없이 누워있는 신녀와 의식은 있지만 고통을 참으며 잠이라도 자는 것 같은 무적의 모습을 보며 군자명이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어떡해야하나....

한사람은 업고.... 또 한 사람은 부축한 채로 산을 내려가기에는 이미 천산산맥의 너무 깊은 곳까지 들어와버렸다.

그렇다고 이렇게 마냥 있을 수도 없다.

이럴때 그 허약해빠진 제갈식이라도 있었더라면....

아니.... 보광장의 홍 소저라도 있었다면....

괜히 황무지에 남겨두고 온 두 사람이 생각난다.

* * * * *

"아....! 그만 좀 먹어요!"

날카로운 홍혜령의 고함소리에 제갈식이 입안 가득 음식을 넣은채로 그녀를 돌아본다.

"왜.... 에?"

입안 가득 넣은 음식때문에 제대로 나오지않는 말소리로 제갈식이 대답을 하고 홍혜령이 짜증스러운 듯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리고.... 그 모습에 빙그레 웃음을 지어보이는 모용호.

짜증스러운 얼굴로 제갈식에게 잔소리를 하는 모습에서조차도 제갈식을 향한 홍혜령의 애정이 느껴진다.

"홍 소저께서도 좀 드시지요?"

모용호의 말에 홍혜령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의 표시를 한다.

무적과 군자명이 신녀를 쫒아 사라지고 채 반나절이 지나지않아 이곳 황무지에 모습을 나타낸 벽란곡의 식구들.

그렇게 흑아를 앞세우고 달려온 벽란곡의 검객들이 만들어준 천막안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며 쉬고있는중이지만 정말이지 아무 걱정도 없는 것 같은 제갈식의 모습에 자신이 더 안달이 난다.

도대체가 저 인간은 걱정이라는 것도 없는가?

"오라버니.... 정말 신녀와 두 분 걱정은 안해요?"

"안해도 돼."

"무슨 소리예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제갈식의 말에 홍혜령의 눈이 커지고....

제갈식이 수저를 내리며 모용호를 돌아본다.

"모용 소가주님. 덕분에 어제 오늘 이틀동안 주린 배를 잘 채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그런데 왜 헤어진 일행분들을 걱정하지 않으시는지....?"

"제가 어슬프기는해도 천기 天氣를 조금 볼줄은 압니다. 어제 저녁 살펴본 천기에 의하면 자미궁을 보호하는 천강, 천기 그리고 천살의 삼성이 모두 어떤 위태로움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두 사람은 무사할거고 그렇다면 신녀도 별일이 없을 것입니다."

"천기....?"

자신보다 어린 나이에도 천기를 볼 수 있다는 제갈식의 말에 모용호가 깜짝 놀라고....

"그런데 자미궁을 보호하는 별은 천강,천기, 천살외에도 천괴성 天怪星도 있지않습니까?"

호기심이 동한 듯 사천강의 별에 대해서 물어본다.

"그게...."

모용호의 물음에 제갈식이 난처한 듯 우물쭈물 하더니 자신이 머리를 긁으며 옹알이하듯 작게 속삭인다.

"아무리 살펴봐도 무엇에 가려진 것처럼 천괴성은 보이지를 않아서...."

"천기는 개뿔!"

옹알이하듯 나오는 제갈식의 말뒤로 빽하고 소리치는 홍혜령의 음성만이 천막안을 울린다.

* * * * *

크르릉....

새끼호랑이의 낮은 울음소리에 한참동안 가부좌를 하고 앉아있던 군자명의 눈이 떠진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으르릉 거리는 새끼호랑이의 모습을 본 군자명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휴우....! 배고프다고 울지마라. 두 사람이 깨어나야 뭘 먹든지하지 지금은 아무것도 못하겠구나. 차라리 배가 고프면 네가 먹을 것을 좀 구해오던가?"

마치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장난스럽게 중얼거리는 군자명의 말에 새까호랑이가 동그란 눈을 하고 잠시동안 군자명을 바라본다.

그리고....

후다닥....!

빠르게 몸을 돌려 공터를 벗어나는 호랑이.

"응....? 뭐야? 저녀석이 내 말을 알아듣는 거야?"

황당한 얼굴로 호랑이가 사라진 숲을 바라보던 군자명이 피식 웃는다.

너무 힘든 일을 많이 겪다보니 별 괴상한 생각을....

군자명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바닥에 누워있는 두 사람을 내려다봤다.

깨울까....?

아서라.... 스스로 일어날때까지 기다리자.

무적과 신녀를 깨울까하고 생각했던 군자명이 그냥두기로 마음먹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온 하늘을 가득 덮고있는 흐릿한 사기.

누가 자꾸만 뒷머리를 건드리는 것만 같은 기분나쁜 사기가 하늘을 가득 매우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뭘까....?

설마 아직도 신녀가 저런 것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까?

살짝 눈살을 찌푸린 채 하늘을 올려다보는 군자명의 귀에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새끼호랑이가 숲을 헤치며 나오는 것이 보인다.

응....?

새끼호랑이의 입에 물려있는 토끼 한 마리.

깡총깡총 뛰듯이 다가온 새끼호랑이가 입에 문 토끼를 내려놓고 다시 숲속으로 달려간다.

멍....!

마치 자신의 말을 알아듣고 먹을 것을 구해온 것 같은 새끼호랑이의 모습에 군자명이 얼이 빠진 얼굴로 호랑이가 사라진 숲을 바라보고....

얼마지나지 않아 다시 새끼 호랑이가 토끼 한 마리를 물고 나타난다.

아무리 호랑이라고해도 아직 어린 새끼일뿐인 이녀석이 토끼를 잡아온다고....?

무언가 야릇한....

그리고 알 수 없는 찜찜한 기분과 함께 군자명이 호랑이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주고....

새끼호랑이가 누워있는 신녀의 머리맡으로 다가가 엎드린다.

응....?

불과 조금전까지 잡아먹을듯이 으르렁거리던 신녀의 곁으로....?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펴보는 신녀의 얼굴에....

아....!

천산으로 기어들어올때는 보지 못했던 기운.

신녀의 얼굴에서 관음보살의 미소처럼 평안하고 신령스러운 기운이 느껴진다.

제 정신이 돌아온 건가....?

"근데 이녀석아.... 이렇게 달랑 토끼만 잡아오면 내가 어떡하라고? 물도 없고 그릇도 없는데 이걸 어떻게 먹으라고 잡아온거냐?"

신녀의 모습에 약간은 마음이 놓인 군자명이 혼자 중얼거리듯 새끼호랑이를 향해 입을 열고....

"물 떠와!"

갑작스런 음성이 자신의 귓가를 울린다.

뭐야....?

깜짝 놀란 군자명이 무적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무적이 입이 다시 열린다.

"토끼가 있다면 근처에 물도 있을거야. 가서 물 좀 떠와."

"물통도 없는데....?"

얼떨결에 군자명이 무적의 말에 답하고 무적이 누운 채 가죽으로 만든 물주머니를 하나 던진다.

턱....!

군자명이 자신을 향하는 물주머니를 받아들고 뚱한 얼굴로 무적을 돌아본다.

"물주머니에는 마실 물을 담고 나무 밑둥 하나 잘라 물통을 만들어서 물 떠와."

이 인간이....?

마치 수하를 다루듯 나오는 무적의 말에 군자명이 인상을 찌푸리며 무적을 잠시 보다가 몸을 일으켜 사라진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떠 하늘을 올려다보는 무적.

눈에 들어오는 하늘 가득히 알 수 없는 사악한 기운이 느껴진다.

자신의 살심을 건드리는 사악한 기운.

솟구쳐오르는 살심을 누르며 무적이 조심스럽게 관음신공을 끌어올려본다.

윽....!

전신의 혈맥이 모두 끊어진 것 같은 통증.

도저히 더 이상 진기를 끌어올릴 수 없자 무적이 관음신공을 거둔다.

도대체 이몸으로 어떻게 그런 칼질을 할 수 있었을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자신의 칼질.

예당의 사지를 자를때도 그리고 신녀의 머리위에 떠있던 붉은 눈을 자를때도....

분명히 자신의 몸은 이렇게 엉망이었다.

초일의 주먹에 맞았을때 죽었어도 이상하지않을 자신의 상태.

그런데 그 칼질은....?

끙....!

자신의 상태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무적의 귀에 군자명의 목소리가 들리고....

한 손에는 카다란 나무 밑둥을 또 다른 한 손에는 멧돼지의 뒷다리 같은 커다란 넓적다리 하나를 들고 나타나는 군자명의 모습이 보인다.

"그건 또 뭐야?"

"우리 입만 입이 아니지않습니까? 저녀석도 먹어야지...."

투털거리듯 나오는 군자명의 말에 무적이 힐끗 새끼호랑이를 돌아보고 피식 웃는다.

신녀의 머리맡에 엎드린채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줄 아는 것처럼 동그란 눈을 뜨고 자신들을 보고있는 새끼호랑이의 모습.

"물은 떠 왔는데 이제 어떻게 하면 됩니까?"

"가져온 멧돼지고기는 호랑이새끼에게 던져줘. 그릳고 토끼배를 갈라 내장과 피를 빼."

짙은 혈향과 함께 토끼의 배가 갈라지고....

텀벙....! 텀벙....!

피를 뺀 토끼를 씻는 소리가 들린다.

"작은 구덩이를 파고 잔나무가지를 가져와 불을 피워."

하나하나 가르치는 것처럼 무적의 입이 다시 열리고....

군자명이 힐끗 무적을 째려본 후 얉은 구덩이를 파고 나뭇잎과 잔가지를 구해와 구덩이에 깔아둔다.

그리고 무적의 뇌음도와 자신의 칼을 서로 부딪치자....

작은 불꽃과 함께 나뭇잎으로 옮겨가는 불길.

천천히 나뭇잎을 태우던 불길이 나뭇가지로 옮겨붙고....

"나무 밑둥을 파면 젖어있는 진흙이 나올거야. 그 흙을 토끼몸에 발라."

또다시 입으로만 떠드는 무적이 말에 군자명이 투덜거리며 진흙을 퍼오고....

곧이어 토우처럼 잔뜩 진흙이 발라진 두 마리의 토끼가 생긴다.

"불에 넣어 구울까요?"

"그래."

타오르는 불길 속에 토끼고기를 넣고....

잠시 불길을 쳐다보던 군자명이 입을 연다.

"그런데 어떻게 죽지않고 살아있는 것입니까?"

"응....?"

"그동안 몇 번이나 묻고 싶었지만 묻지 못했습니다. 다른 뜻은 없고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것입니다. 조 대협께서는 어떻게 두 번이나 죽지않고 살아나실 수 있었던 것입니까?"

"두 번....?"

군자명의 물음에 무적이 낮게 중얼거렸다.

두 번은 아니다.

분명히 한 번은 죽었지만 두 번은 아니다.

아니.... 정말 죽기는 한 것일까?

정말 내가 동생들 손에 죽어서 그 도왕동부로 갔던 것일까?

아니면.... 죽지않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던 것일까?

"나도 몰라...."

정말 모르는 것처럼 힘없이 나오는 무적의 말에 군자명이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당시에 조 대협을 죽인 자는 누구입니까?"

"백골음마!"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오는 무적의 말에 군자명의 눈에 야릇한 빛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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