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록-125화 (125/158)

신녀와 마녀 神女와 魔女9

"할머니...."

신녀의 입에서 옹알이  하듯이 나즈막한 음성이 새어나오고....

멍하니 새끼호랑이를 쳐다본다.

한을 안고 죽어가던 할머니와....

그 할머니의 죽음에 망가져버린 아버지.

그리고....

괴로운 과거의 기억에 신녀가 머리를 흔들어본지만....

윽....!

또다시 머리속에 떠오르는 붉은 눈과 함께 ....

빠르게 신녀의  눈동자를  덮어버리는 검은 눈.

캬아악~~!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와 함께 신녀의 몸이 솟구쳐오르고....

눈앞으로 다가오는 숲을 뚫으며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변해버린 신녀의 모습이 두려운 것처럼 어미의 배에 찰싹 달라붙는 새끼 호랑이.

그렇게 신녀가 사라지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오지않는 어미의 젖을 빠는 새끼 호랑이의 귀가 쫑긋 거리고....

하늘에서 군자명이 떨어져 내린다.

또....?

신녀를 쫒는 내내 보게되는 짐승의 시체.

하나 같이 목의 경동맥이 뜯기고 피가 말라있다.

도대체가....

답답한 마음에 호랑이의 시체를 살피는 군자명의 눈에 겁에 질린 새끼의 눈동자가 보이고....

운좋게 살았네....

혼자서 중얼거리며 신녀가 뚫고 나간 숲을 향해 몸을 날린다.

그리고....

일각의 시간도 지나기전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군자명.

운이 좋은게 아니라....

살려줬어?

또다시 나타난 불청객의 모습에 새끼가 으르렁거리며 굳어버린 어미의 다리 사이로 숨고....

군자명이 야릇한 눈으로 새끼호랑이를 본다.

보이는 족족 목을 뜯고 피를 빨아버리는 그 귀신 같은 신녀가 이 새끼호랑이는 살려줬다고?

왜?

너무 작아서 빨아들일 피도 없어서....?

아니면 다른 이유가?

조심스럽게 다시 한 번 바닥을 살피는 군자명의 눈에 피를 빨기위해 바닥에 무릎을 댄 자국이 보인다.

그리고....

응?

분명히 젖을 빠는 새끼를 향해 돌아선 발자국.

역시 새끼를 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죽이지 않았다.

아니.... 죽이지 않은 것만이 아니라 잠시 동안이지만 새끼를 보고 있었다.

모든 동물의 새끼는 귀엽다.

설령 그것이 사나운 맹수의 새끼라 할지라도....

그리고 그 연약하고 귀여운 생명은 때때로 사람이나 또 다른 짐승의 모성애를 자극하기도 한다.

설마....?

신녀가 어미 잃은 이 새끼 호랑이가 측은해서....?

만약에 그렇다면....

귀신처럼 변해버린 신녀에게 한 점의 측은지심 惻恩之心이라도 남아있다면....

어쩌면 신녀를 제 정신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스윽....

어미의 다리사이에 웅크린 새끼를 향해 군자명이 손을 뻗고....

캬아앙!

그 작은 몸에도 불구하고 맹수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이빨을 드러내는 새끼호랑이의 뒷목이 군자명의 손에 들어온다.

"이 녀석이 사납기는...."

중얼거리며 새끼호랑이의 배를 쓰다듬어주는 군자명의 손길에 호랑이의 꼬리가 살랑거린다.

"어쩌면 네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꼬리를 살랑거리며 군자명의 손에 머리를 부비는 새끼호랑이를 품에 안고 군자명이 신녀가 뚫고 지나간 숲을 돌아본다.

그리고....

"가자. 이 녀석아!"

새끼에게 들으라는 것처럼 말하며 빠르게 몸을 날린다.

얼마나 산을 넘고 달렸을까?

하나의 산등성이를 돌아서던 군자명이 몸을 멈추고....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눈앞에 나타난 것을 쳐다봤다.

항아리.

사람의 발길이 닿지않는 이 거친 산등성이의 비탈진 경사면에 마치 바위처럼 웅크리고 있는 두 개의 항아리가 눈에 들어온다.

옹귀라니....?

황당한 눈으로 자신을 막아선 옹귀를 보던 군자명이 옆구리에 끼고 있던 호랑이를 내려놓고.....

살짝 엉덩이를 두드린다.

"여기 있으면 안되겠다. 그냥 가거라."

크르릉....!

엉덩이를 건드리는 손길에 낮게 으르릉 거리며....

떨어지지 않으려는 새끼호랑이를 밀어내고....

군자명이 천천히 몸을 돌린다.

자신을 죽음으로 까지 내몰뻔했던 옹귀.

그 천하의 마물이 또다시 자신의 앞길을 막아선 채 눈앞에 있다.

미치겠네....

후웁....!

속으로 중얼거리며 가볍게 숨을 들이쉰 군자명이....

타악!

강하게 발을 굴리며 왼쪽의 옹귀에게로 날아간다.

그리고....

티잉!

마치 튕겨져 올라오는 팽이처럼 옹귀가 빠르게 회전하며 떠오르고....

휘잉~~!

싸늘한 바람소리와 함께 군자명을 향한다.

자신을 향하는 두 개의 항아리사이로 군자명의 몸이 유령처럼 빠져나가며....

쩡!

강하게 찌르는 파검에 왼쪽의 항아리가 튕겨나간다.

하지만....

역시....

막아서는 모든 것을 부수는 자신이 파검에 밀리기는 해도....

부서지지는 않는 항아리에 군자명이 어금니를 꽉 깨문다.

빠르게 회전하는 항아리의 전사력이 자신의 검을 빗겨나게 하고....

한 번의 충돌에 밀리기는 했지만 부서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튕겨나가는 항아리를 쳐다보는 군자명의 옆으로 빠르게 날아오는 또 다른 항아리.

휘잉~~!

항아리가 다가 오기도 전에 빠르게 회전하는 주위의 공기가 자신의 몸을 압박한다.

군자명이 자신을 압박하는 공기의 힘에 거스러지 않고 자연스럽게 떠밀리며....

우우웅!

머리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무거운 검.

쿠웅!

요란스럽게 산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날아오던 항아리가 압경의 힘에 바닥으로 떨어지고....

땅속에 반쯤 묻히는 옹귀를 향해 군자명이 빠르게 몸을 날린다.

급소는 항아리의 주둥아리....!

땅바닥에 반쯤 쳐박힌 항아리의 주둥이를 향해 군자명이 검을 뻗는 순간,

휘잉~~!

강하게 자신에게 부딛쳐 오는 첫번째 옹귀.

빌어먹을....

더이상 검을 뻗지 못한 군자명이 검을 돌려 옹귀의 공격을 막고....

쩡!

쇳덩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옹귀의 전사력에 군자명이 뒤로 밀려난다.

그리고....

투웅....!

바닥에 반쯤 묻혀있던 옹귀가 다시 허공으로 떠오르고....

양쪽에서 군자명을 향해 날아오는 옹귀.

쩡!

또다시 옹귀의 공격을 검으로 막은 군자명이 뒤로 밀리고....

따라붙는 옹귀를 향해 빠르게 검을 뻗는다.

쩡!

검에 찔린 옹귀가 뒤로 밀리고....

쩡! 쩡! 쩡!

뒤로 밀리는 옹귀를 따라가며 계속해서 검을 찔러넣는 군자명.

과거  혈불의 하마공을 깨던 방식 그대로 한곳을 계속해서 파검으로 찌르는 군자명의 눈에....

밀리는 옹귀를 타넘어며 자신의 몸을 향해 날아오는 또다른 옹귀가 보인다.

이대도강 李代挑僵....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기로 작정한 듯 군자명이 이빨을 악문다.

그러나....

옹귀의 공격을 몸으로 막고 자신의 파검안에 있는 옹귀를 계속해서 공격하려던 군자명의 몸이....

부서질 것 같던 그 충격.

단 한 번의 충돌로 전신의 뼈는 물론이고 오장육부가 자리를 벗어나버리는 것 같은 그 충격.

그 무서운 충격을 기억하는 자신의 몸이....

따라가던 옹귀를 버려두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항아리를 향해 검을 뻗도록 만든다.

쩡!

또다시 쇳덩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리고....

이번에는 뒤로 밀려나는 군자명을 향해 스스로 주둥이를 보여주는 두 개의 항아리.

응....?

비스듬이 누운 채 스스로 고스란히 자신의 약점을 보여주는 옹귀의 모습에 군자명이 흠칫 놀라고....

"죽....인다!"

듣기 거북한 소리와 함께....

항아리의 주둥이로 부터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

물줄기인지 무엇인지 알 수도 없는 액체가 군자명을 향해 뿜어져 나오고....

슈욱!

빠르게 움직이는 군자명의 검에서 흐릿한 검막이 생기며 옹귀의 액체를 튕겨낸다.

치지직....!

검막에 튕겨 바닥으로 떨어지는 액체에서 역겨운 냄새와 함께 짙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마치 불을 붙인 것처럼 바닥의 잡초가 타들어간다.

독까지....?

주변의 흙과 풀까지 태워버리는 지독한 독액에 군자명이 섣불리 바닥으로 내려서지 못하고....

이쪽 저쪽으로 몸을 날린다.

그리고....

허공에서 운신하는 군자명을 향해 다시 돌진하는 옹귀.

휘잉~~!

휘잉~~!

살벌하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 속으로 군자명의 몸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반신영을 최대로 끌어올린 군자명이 한 항아리의 주둥이에 내려선다.

지금으로서는 옹귀를 상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

자신의 검으로 옹귀의 몸을 둘러싼 항아리를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면....

주둥이를 통해 직접 공격한다!

턱!

빠르게 항아리의 주둥이에 내려선 군자명이 검을 들려는 순간....

피잉!

더 빠르게 돌아가며 군자명을 튕겨내는 옹귀와....

항아리에서 떨어지는 군자명을 향해 날아오는 옹귀.

제기럴....

쉽지도 않네....

쩡!

날아오는 항아리를 검으로 막아내며 군자명이 다시 뒤로 몸을 날리고....

이번에는 허공에서 한 바퀴 돌아 주둥이를 아래로 향한 채 자신에게 날아오는 옹귀.

돌아버리겠네....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항아리의 힘을 이용해 허공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군자명과....

그런 군자명을 끊임없이 따라붙는 항아리.

그리고....

수풀 속에 몸을 감춘 채 초롱초롱한 눈으로 미친 놈처럼 날아다니는 군자명과 항아리를 신기한 듯 바라보는 새끼호랑이.

귀를 쫑긋거리며 널뛰는 것처럼 움직이는 한 사람과 두 개의 항아리를 보고 있는 새끼의 목덜미에....

처음부터 그곳에 있던 것 같은 억센 손 하나가 내려온다.

덥석!

꺄앙~~!

갑자기 자신의 목덜미를 붙드는 손길에 새끼가 놀라서 울고....

새끼의 울음소리에 흠칫 놀라 돌아보는 군자명의 눈에....

머리를 산발한 채 거지 같은 꼴을 한 무적의 모습이 들어온다.

"도와줄까?"

하악질 하는 새끼 호랑이에게  말하는 것처럼 무적이 중얼거리고....

군자명의 입술이 삐죽 하고 나온다.

저 미친 놈이....!

그리고....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히죽 웃는 무적의 모습이 보이고....

피윳!

칼을 휘두르고 몸을 날린 건가?

아니면 몸을 날리고 나서 칼을 휘두른 건가?

군자명이 스스로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무적의 움직임이 보이고...

날카로운 무적의 칼이 옹귀의 몸을 자른다.

쩡!

강하게 자신의 몸통을 때리는 충격에 한 개의 옹귀가 회전하는 축이 무너진 채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고....

군자명의 눈에 항아리의 주둥이가 들어온다.

그리고....

핏!

바람빠지는 것 같은 작은 소리와 함께 군자명의 검이 빠르게 항아리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고....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눈에....

피윳!

또다시 하늘을 가를 것 같은 칼의 움직임이 보인다.

아....!

허공이 갈라지다니....

빠르게 허공을 가르는 무적의 파천일식에 주위의 공기가 갈라진 것처럼 허공에 틈이 생긴다.

그리고....

쩡!

고막을 찢어놓을 것 같은 굉음과 함께....

허공에서 재주넘듯이 돌아가는 옹귀.

피윳!

다시 한 번 무적의 칼이 움직이고....

칼의 결을 따라 두 개의 구슬이 떠오르며 중심을 잡지 못하는 항아리의 주둥이를 향해 쏘아져 들어간다.

그와 함께....

꽝!

항아리 속을 울리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순간적으로 항아리의 표면으로 가는 실금이 보이고....

퍽!

깨지는 물독처럼 부서지며 쏫아져 나오는 액체와 괴상한 몰골을 한 시체 하나.

콸콸콸....!

자신의 수유일검에 머리가 뚫린 옹귀가 토해내는 액체소리에 정신이 번뜩 든 군자명이 멍한 눈으로 무적을 봤다.

이 인간이....

원래가 이렇게 엄청난 인간이었나....?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