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녀와 마녀 神女와 魔女7
* * * * *
온몸 가득 풍기는 짙은 혈향.
차가운 물방울이 사방으로 날려 온몸을 적시지만 이 짙은 혈향은 도대체가 사라질 생각을 않는다.
그리고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속에 보이던 모우들의 모습.
자신의 손길이었나....?
아니면.... 다른 무엇이었나?
지신의 눈앞에서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피를 뿌리며 쓰러지던 모우와....
그 모우의 핏줄기를 미친 것처럼 마셔대던.... 아니 단 한 방울의 피조차도 남기지않고 다 빨아먹으려던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정말 내가 맞는가....?
온몸의 짙은 혈향보다 저 진하게 느껴지는 입안의 거북한 핏내음.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인가?
그리고 여기는 어딘가?
법륜궁주는....?
조무적과 군자명은 또 어디에 있는가....?
복잡한 머리만큼이나 복잡한 심경으로 멍하니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고있는 신녀의 귀에....
폭포수의 떨어지는 물소리를 뚫고 옷자락 날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는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무적과 군자명의 모습.
높다란 폭포의 절벽을 뛰어내려와 바닥에 서는 두 사람의 모습에 신녀가 반가운 듯 몸을 일으키고....
안돼!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붉은 눈 하나와 함께 짙은 어둠이 눈앞으로 깔린다.
그리고....
"아난타.... 왜 도망가느냐? 내게로 오너라!"
머릿속을 울리는 괴이한 음성과 함께 신녀의 눈동자 주위로 검은 핏줄기 같은 것이 나타난다.
가볍게 절벽을 뛰어내리는 무적의 눈에 자신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신녀의 얼굴이 보인다.
산속의 수많은 짐승들을 죽였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평온한 얼굴.
그리고 자신과 군자명을 보자 반가운 건지....
아니면 이 깊은 산속에서 자신들을 만나 안심이 되는 건지....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들을 향해 몸을 돌리는 신녀의 입꼬리에 희미한 미소가 걸리는 것이 보인다.
제 정신이 돌아온 것인가?
그 귀신 같은 것을 극복해낸 것인가?
신녀의 평온한 얼굴에서 무적은 오히려 자신의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응....?
신녀를 향해 한 발을 떼려는 바로 그 순간....
갑작스럽게 변하는 신녀의 얼굴과 눈동자.
원래가 조금은 검게 보이는 신녀의 얼굴이 짙은 먹처럼 검어지고....
커다란 두 개의 눈동자 주위로 검은 핏줄기가 퍼져나온다.
그리고....
눈깜박할 사이에 두 눈동자의 흰부분을 삼켜버리는 검은 핏줄기.
새까맣게 반짝이는 두 개의 눈동자만이 무적의 눈에 들어온다.
정말 사람의 눈이 맞는지 의심이 들게하는 두 개의 눈동자와....
깔갈깔!
머릿속을 뒤흔드는 갑작스러운 교성과 함께 신녀의 어깨 위로 두 개의 검은 기운이 올라온다.
또....?
찰나의 순간에 갑자기 변해버리는 신녀의 모습에 무적과 군자명이 그녀를 향해 때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쳇!
신경질적인 혀차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몸에서 검과 도가 빠져 나온다.
신녀의 어깨위로 올라오던 검은 기운이 그 형체를 갖추고....
마치 날짐승의 날개처럼 보이는 커다란 형상을 하며 무적과 군자명을 향해 덮쳐간다.
그리고...
피윳!
핏!
자신들을 향하는 검은 날개를 향해 빠르게 움직이는 두 사람의 검과 도.
스윽....!
슥....!
빠르게 지나가는 도와 검의 기운에 검은 날개가 잘려나간다.
아니.... 연기처럼 흩어진다.
하지만....
여전히 빈 허공을 가른 것처럼 아무런 절삭감이 느껴지지 않는 검은 날개에 무적의 얼굴이 찌푸려지고....
빠르게 지나가는 검과 도의 기운에 흩어졌던 검은 날개가 다시 뭉쳐지며 자신들을 향한다.
돌아버리겠네....
차라리....
잘리지도 않는 이 연기 같은 사악한 기운이 아니라....
신녀를 공격한다면....
위험하기는 하지만 직접 신녀의 몸에 칼을 댄다면....
힐끗 무적과 군자명이 서로를 돌아본다.
짧은 순간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고....
자신들의 주위로 몰려오는 검은 기운을 잘라낸다.
그리고....
탁!
가볍게 바닥을 차는 소리와 함께 무적의 몸이 빠르게 신녀를 향해 쏘아져 나가고....
피윳!
검은 날개가 돋아난 것 같은 신녀의 어깨를 향해 빠르게 칼을 휘두른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깔깔깔!
사이 邪異한 웃음소리.
분명히 신녀의 입에서 나오는 웃음소리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전신의 기운을 자극하는 사이한 웃음소리와 함께....
엄청난 기운이 신녀의 어깨를 향하는 자신의 칼을 막아서는 것이 느껴진다.
쩡!
신녀의 검은 기운과는 또다른 엄청난 반탄력과 함께....
앞으로 나가던 무적이 몸이 오히려 뒤로 밀려난다.
그리고....
깔깔깔!
또다시 폭포수의 시끄러운 물소리를 뚫고 울려퍼지는 요사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리고....
신녀의 등을 타고 넘어오는 회색의 운무.
"마안! 여기는 우리에게 맞기고 돌아가라!"
회색의 운무속에서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고....
캬아악!
날카로운 괴성과 함께 신녀의 어깨에 돋아나 있던 날개가 떨어져나오며 군자명을 덮친다.
그리고 빠르게 몸을 돌려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신녀.
우웅....!
군자명의 검이 자신을 덮치는 신녀의 검은 날개를 향해 무거운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마치 무언가가 누르는 것처럼 바닥으로 깔리는 검은 기운.
"압경....?"
회색의 운무속에서 깜짝 놀란 것 같은 음성이 나오고....
파앗!
군자명이 발밑으로 깔리는 검은 기운을 넘어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신녀를 향해 몸을 날린다.
그리고....
무적을 밀어냈던 회색의 운무가 빠르게 방향을 틀어 군자명을 막아서고....
"군자명! 신녀를 쫒아라!"
차가운 말과 함께 무적의 머리위에서 천천히 칼이 내려오기 시작한다.
"둔도....?"
이번에도 회색의 운무에서 나즈막한 경악성이 터져 나오고....
군자명을 막아서던 회색의 운무가 무적의 도를 향해 돌아선다.
피윳!
피윳!
허공을 찢어발길듯이 울리는 파공성과 함께....
회색의 운무가 둔도의 도기에 날려 흩어지고....
피처럼 붉은 기운을 전신에 두른 일남일녀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리고....
무적과 혈영을 뒤로하고 신녀를 쫒아 폭포를 넘어가는 군자명의 뒷모습.
깔깔깔!
몰아치는 둔도의 칼바람속에서 요사스런 웃음이 터져 나오고....
일남일녀의 손에서 뻗어나오는 혈수와 소수가 둔도의 도기를 맞받아친다.
쩡! 쩡!
폭포의 굉음을 뚫고 요란한 쇳소리가 터져나오고....
혈영의 몸이 뒤로 밀린다.
그리고 지면을 향해 천천히 내려오던 무적의 칼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고....
피윳!
빠르게 사선을 그리는 칼을 따라 보름달이 떠오른다.
둥근 두 개의 보름달.
무적의 칼이 만든 보름달이 빠르게 일남일녀를 향해 날아가고....
쩌엉!
커다란 얼음에 균열이 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일남일녀의 한치 앞에서 멈춰서는 두 개의 달.
밝게 빛나는 만월도의 도기와 혈수 血手와 소수 炤手의 야릇한 기운이 허공에서 서로 얽힌 것처럼 멈춰서고....
쩌억!
주춤거리는 만월도의 도기를 뚫으며 무적을 향하는 혈수.
보름달 같은 도기를 찢어내며 피처럼 붉은 두 개의 손이 무적을 향하고....
흐릿한 붉은 기운을 흘리며 만월도의 도벽을 뚫고 들어오는 상대의 혈수가 무적의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또 다시 만월도를 펼치기위해 도를 당기던 무적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야릇한 표정이 떠오른다.
있어야 할 곳에 있고....
잘라야 할 것은 잘라낸다.
억지로 상대를 밀어내기위해 힘을 쓸 필요도....
상대의 힘을 피하기위해 요란스러운 움직임을 보일 필요도 없다.
자연스럽게 자신을 향하는 상대의 공격을 막아낸 후....
몸속을 돌고있는 내기를 칼로 보내고....
앞을 막아서는 것은 잘라낸다.
타말과 타미르의 대결에서 언뜻 느꼈던 간단한 무리 武理.
칼이 움직이는 결을 알고난 후 그 칼에 힘을 더해주면 된다.
짧은 찰나의 깨달음과 함께....
무적의 칼이 자신을 향하는 상대의 혈수 血手를 막는다.
쩡!
그리고....
빠르게 혈수의 기운을 뚫고 혈영을 향해 무적의 몸이 앞으로 쏘아져 나가고....
미끄러지듯이 혈영의 팔을 타고 올라가던 칼이 남자의 팔꿈치부근에 닿고....
서걱!
야릇한 파육음과 함께....
크윽....!
"칠십 삼호!"
고통스러운 신음과 째질 것 같은 여인의 음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빠르게 밀려나는 혈영의 몸에서 떨어져 나오는 팔뚝 하나와....
뿜어져 나오는 짙은 핏줄기와 함께 팔꿈치 아래가 잘려나간 자신의 오른팔을 고통스럽게 내려다보며 인상을 찡그리는 남자의 모습과 함께....
자신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오는 차가운 소수가 무적의 눈에 들어온다.
쩡!
재빨리 칼을 돌려 옆구리를 향하는 소수를 막아낸 무적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고....
"저 놈.... 항마력 降魔力을 익힌 놈이다."
어금니를 악물며 무겁게 뱉어내는 남자의 말에 여인이 흠칫 놀라서 무적을 돌아보고....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칼을 내려다보고 있는 무적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지겨운 현문의 떨거지들...."
혈마의 피와 정을 받아 평범한 무공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자신들이기에....
현문의 항마력과 척사력이 깃든 신공절학이나....
아니면 그나마 절정의 경지에 발을 들인 고수들만이 대등하게 자신들을 상대할 수 있기에....
지난 천 년의 세월동안 산속의 아홉 현문에서는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항마 降魔, 척사 斥邪의 기운이 깃들어 있는 그들의 신공절학을 조금씩 세상에 내보냈다.
언제라도 다시 세상에 나올 자신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그리고 오늘 그 항마력을 가진 상대를 만났다.
징그러운 자신들의 천적을....
무적은 멍하니 자신의 손에 들린 칼을 내려다봤다.
갑작스러운 신녀의 공격에 손에 들었던 환희불의 도.
그리고....
타말과 환희불의 대결에서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빠져들었던 또 다른 무의 바다.
있어야 할 곳에 있고....
잘라야 할 것은 자른다.
무작정 눈앞의 상대를 베어내기 위해서....
막아서는 모든 것을 부수듯 잘라내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공력을 잔뜩 넣은 채....
초식의 흐름에 따라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칼이 아니라....
초식의 굴레를 벗아나 가야 할 곳을 찾아갈 수 있는 칼.
억지스럽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칼이 잘라내야 할 상대를 만나는 순간....
공력이 일고 상대를 자를 수 있는 힘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타말의 마지막 초식.
자신의 구첩만월과 흡사해 보였던 그 초식의 비밀이 이제 어렴풋이 풀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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