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한 悔恨6
반짝!
움직이지 않는 듯 움직이는 손의 움직임과 함께 허공으로 반짝이는 검광이 살짝 떠오르고....
팟!
팟!
물이 가득찬 물주머니를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은 작은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윽,,,,!
야릇한 신음과 함께 비혈삭에 둘러싸여있는 군자명의 코 앞에 까지 날아왔던 두 노인이 휘청거리며 스쳐지니가고....
촤르륵....!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비혈삭의 쇠사슬과 함께 두 노인의 손에서 비수가 떨어져내린다.
갑자기 비수를 떨구며 주춤 거리는 두 노인의 모습에 깜짝 놀란 도당옥이 군자명의 몸앞으로 힘없이 흘러내리는 비혈삭의 쇠사슬을 밟으며 허공으로 뛰어오르고....
반짝!
군자명의 손에서 또 한 번 반짝이는 빛이 따오른다.
큭....!
희미한 신음과 함께 군자명의 머리를 뛰어 넘어며 바닥에 내려서는 도당옥.
....?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가볍게 바닥에 내려선 도당옥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군자명을 돌아보고....
군자명이 자신의 왼쪽 어깨에 힘없이 걸려있는 비혈삭을 벗겨낸다.
스쳐 지나간 비수와 함께 힘없이 아래로 내려온 쇠사슬이 군자명의 어깨에 걸쳐진 채 길게 늘어져 도당옥의 손목에까지 연결되어있고....
군자명의 손에서 쇠사슬이 벗겨져 바닥으로 떨어지자....
촤르륵....
무거운 쇠사슬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도당옥이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는다.
그리고....
푸악!
도당옥의 목을 뚫고 솟아오르는 핏줄기.
도당옥의 오른쪽 턱밑 경동맥을 뚫고 하늘로 솟구쳐오르는 뜨거운 핏줄기와 함께....
힘없이 뒤로 넘어지는 도당옥의 몸뚱아리가 군자명의 눈에 들어온다.
하아....!
가벼운 한숨과 함께 주위를 돌아보는 군자명의 눈길에 목을 움켜진 열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오는 핏줄기와 함께 바닥에 누운 채 경련하는 두 노인의 모습이 보인다.
수유일검을 펼치기위해 반신영으로 상대의 비혈삭을 피하며 도당옥과 두 노인이 최대한 자신의 곁으로 붙어주기를 기다렸고....
순간적으로 비혈삭에 갇혔다고 방심한 세 사람이 가까이 다가 온 바로 그 순간....
그 단 한 번의 기회에 수유일식을 펼쳤다.
빠르게 찌르는 쾌검이 두 노인의 목을 꿰뚫고.... 자신과의 거리를 두기위해 허공으로 뛰어오르던 도당옥의 목도 뚫어버렸다.
수유일식을 펼치기위해 뻗어나간 자신의 팔과 검의 길이....
적어도 수유일식을 펼치는 검의 범위 안에서는 세상의 그 무엇도 이 쾌검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상대의 천리비영보다 더 빠른 자신의 쾌검.
죽도록 고생해서 익혔지만 검왕삼검의 위력에 취해서 잊어버리고 있던 수유일식을 드디어 펼친 것이다.
병 주고.... 약 주고....
망할 흑우!
* * *
땅!
커다란 쇠망치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멈춰서 있던 무적의 몸이 움찔 거린다.
그리고....
살짝 상체를 돌리던 무적의 몸이....
마치 석상처럼 멈춰서며 굳어버린다.
꽉 쥔 두 주먹과 살벌하게 반짝이는 두 눈동자.
낮설게 느껴지는 그 모습에 제갈식이 동그란 눈을 한 채 뚫어질 듯 무적을 보고....
신녀와 타말이 걱정스런 얼굴로 황무지의 지평선 너머를 돌아본다.
그리고 잔뜩 긴장한 얼굴로 품속에서 봉황금침을 꺼내는 홍헤령.
한참동안 그렇게 석상처럼 굳어있던 무적의 몸이 몇 번 움찔 거리고....
꽉 쥔 두 주먹을 살며시 푼다.
그리고....
만약에 세상에 움직이면 안된다는 말도 안되는 법이라도 있다면....
그 법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법을 어기며 자랑하려는 숱하게 많은 인간들이 있는 것처럼....
석상처럼 굳어있는 무적의 몸에서 몇 개의 손가락만이 조금씩 꼼지락 거린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후우....!
잠시동안이지만 석상처럼 굳어있던 무적의 입에서 깊은 숨이 터져나오고....
살벌하게 빛나던 무서운 안광이 사라진다.
그리고....
"뭘봐?"
에....?
갑자기 자신을 향해 짧게 뱉어내는 무적의 말에 제갈식이 화들짝 놀란다.
어느새 무적의 코앞에서 뚫어져라 그의 눈을 보고있는 자신의 모습.
후다닥....!
차가운 무적의 말에 정신을 차린 제갈식이 황급히 몇 걸음 물러나고....
"제갈식!"
"아....! 또 왜요?"
또다시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무적의 음성에 제갈식이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마셔라!"
무적이 자신의 가죽 물주머니에 남아있는 물을 제갈식을 향해 내민다.
응....?
생뚱맞은 무적의 태도에 제갈식이 의아한 눈으로 물주머니를 잠시 보다가....
탁!
낚아채듯이 물주머니를 빼앗아 단숨에 들이킨다.
벌컥! 벌컥!
"캬아....! 나야 좋지만 이제 물이 없어서 조 대협은 어쩌실 건가요?"
마치 개구쟁이 꼬마가 약이라도 올리려는 것처럼 나오는 제갈식의 말에 무적이 감정없는 눈으로 그를 쳐다본다.
"물은 곧 생길 것이다."
"예....?"
"제갈식!"
"아 또....! 왜 자꾸 이름을 그렇게 불러요?"
"제갈식, 너는 내게 왜 군 교두를 혼자 놔두고 왔느냐고 물었지?"
"예. 왜 혼자 놔두고 왔어요?"
화라도 내는 것처럼 눈을 부라리는 제갈식의 모습에 무적이 고개를 돌려 눈앞으로 펼쳐진 황무지를 본다.
그리고....
"너는 하서회랑을 지나 천축까지 가야하는 이 멀고 험한 사막에서 과연 누가 우리의 앞길을 막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무적의 물음에 제갈식이 흠칫한다.
누가 우리 앞길을 막느냐고....?
몰라서 묻지는 않을 건데....
제갈식이 한쪽에 서있는 신녀와 타말을 한 번 돌아본 후....
"이 사막에서 우리를 막을 자들은 아마도 첫번째는 혈왕궁이 되겠지요. 그리고.... 군 대협을 따라오는 여섯 가문과...."
무적의 물음에 대답하던 제갈식이 말을 흐리며 무적을 본다.
"그리고 나를 쫒는 군마맹이겠지...."
"예."
"너는 그들 중 누가 우리에게 가장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그야.... 그 걸어다니는 시체들이 득실거리는 혈왕궁이...."
"나는 마도육문이 가장 위협이 된다고 생각한다."
"예....?"
"내가 무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는 생각하지마라. 근자에 내게 무림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려준 인물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혈왕문도.... 마도육문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요?"
"아마도 혈왕궁은 어디선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사막의 끝이 될지 아니면 바로 눈앞의 저 지평선 너머가 될지.... 나는 그것 까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앞길을 막아서는 혈왕궁을 뚫고 사막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모두 무사히 천축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혈왕궁을 만나보기도 전에 서로 뿔뿔히 찢어질까 그것이 더 두렵다."
"왜 우리가 찢어진다고 생각하십니까?"
초롱초롱한 눈빛을 한 채 자신에게 되묻는 제갈식의 모습에 무적의 얼굴에 옅은 웃음이 살짝 지나간다.
역시 이 어린 녀석은....
자신이 몇 마디만 던졌는데도 이 젋은 천재는 자신이 하려는 말을 모두 알아들은 것 같다.
하지만 내색하지않고 자신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이 말많은 녀석이 말을 참아가며 가만히 듣고만 있다니....
" 도당옥이라는 자가 내게 도망가겠다고 한 말은 너도 들었을 것이다. 도망이라.... 사실 이 도망이라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은 너도 잘 알 것이다. 내가 그들보다 강하다면 그들이 쉽게 도망갈 수 있겠느냐? 아니 그들이 내게서 도망갈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된다면 굳이 도망갈 필요가 있겠느냐?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도망가겠다고 했다. 천하의 마도육문 중 비마각의 가주라는 자가...."
"그들이 조 대협을 두려워해서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잖아요?"
"과연 그럴까?"
"내가 그 사람 속을 어떻게 알겠어요?"
"도당옥이 도망가겠다고 했던 말은 그가 내가 두려워서 한 말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목표로 하는 사람만 상대하겠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사실은 군 교두도 느꼈을 거고.... 그래서 군 교두는 우리에게 먼저 가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조 대협께서 비켜주지 않았다면 결국 그들 세 사람과 두 분이 함께 싸울 수도 있었잖아요? 왜 굳이 그들이 원하는대로...."
"과연 내가 그곳에 남아있었다면 그들이 우리와 싸웠을까? 아니다. 그들은 정말로 도망갔을 것이다. 그리고 나나 군 교두나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그들을 쫒았을 것이고.... 아마 군 교두가 그들을 쫒았겠지.... 그렇게 된다면 결국 내가 군 교두를 남겨두고 온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휴우.... 그래서요? 왜 그런 이야기를 저한테 해주시는 건데요?"
"너도 분명히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너라면 군 교두를 남겨두지 않고 어떻게 했겠느냐?"
"글쎄요.... 저라면 그들이 도망가도 쫒지 않았을 것 입니다. 어차피 우리가 그들을 노리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우리를 노린다면 저는 억지로 그들을 쫒지않고 군 대협과 함께 이 길로 들었을 것입니다. 지켜야 한다면 지키기만 하면 되는 일. 굳이 그들의 뜻에 흔들릴 필요까지는...."
"그렇지않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너처럼 그렇게 이성적이지는 못하다. 분명히 내가 됐던 군 교두가 됐던 우리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우리에게 등을 보이는 상대를 따라 갈 것이고.... 그때가 되면.... 결국 우리들은 모두 뿔뿔히 흩어진 채 그들을 상대해야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나는 너를 지켜줄 수가 없다."
"예....?"
"제갈식! 너는 홍 소저와 함께 여기서 돌아가라.... 어쩌면 우리는 이 사막을 넘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너와 홍 소저만이라도 살아서 돌아가라."
돌아가라는 무적의 말에 제갈식이 묘한 얼굴이 되어 버렸다.
자신이 지켜줄 수 없으니 돌아가라고....?
무슨 개뿔 같은 말도 안되는....
아니.... 그것보다 나를 지켜준다고....?
이 피에 미친 살귀가 나를....?
"왜 내가 조 대협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나는 조 대협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내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어요!"
빽하고 고함을 지르는 제갈식의 말에 무적의 얼굴에 복잡한 빛이 떠오른다.
반봉옥....
너를 닮은 이 어린 놈은 성질까지도 너란 놈과 비슷하구나....
자기 죽는 줄도 모르고....
"제갈식! 나는 정말로 네가 이 사막에서 죽는 것을 보고싶지 않다. 제발 그냥 돌아가라."
다시 한 번 나오는 무적의 말에 오히려 신녀와 타말의 눈에서 묘한 빛이 떠오른다.
진정으로 상대를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무적의 말.
도대체가 저 잔인한 자의 어디에 저런 마음이 숨어있었는가?
고작 며칠이나 같이 있었다고 저렇게까지 진정으로 제갈식을 걱정해준다는 말인가?
저것이.... 저런 진심이 저 인간의 주위에 있던 자들이 저 자를 믿는 이유인가?
두 사람은 어렴풋이 군자명으로부터 들었던 조무적과 그의 동료들 사이의 야릇한 관계가 생각났다.
상대에 대한 진심이라....
"싫어요!"
무적의 진심어린 걱정은 모르는 것처럼 단호한 제갈식의 말에 무적이 고개를 돌려버린다.
고집불통 같으니라고....
"제갈식! 떨어지지말고 따라와라!"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무적이 다시 발길을 떼고....
"그런데 군 교두님은 안 기다려요?"
"그는 천천히 우리 뒤를 따를 것이다."
"도 가주는....?"
"그들은 죽었다."
짧은 대답과 함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서 걷는 무적을 따르며 제갈식이 고개를 끄덕인다.
꽉 막힌 인간들 같으니....
뭐야.... 결국은 그들이 원하는대로 해주겠다는 거야?
* * *
온 몸을 태울 듯 내리쬐던 뜨거운 태양이 모습을 숨기고 어느새 어둠이 고개를 들고 주위를 기웃거린다.
그리고....
갑자기 떨어지는 기온.
사막의 날씨가 밤낮으로 기온차가 심하다고는 들었지만 언제 뜨거웠냐는 것처럼 내려가는 기온이 춥기보다는 오히려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땀이 식으며 추위에 몸을 추스리는 제갈식의 눈에 사막의 한쪽에서 반짝이는 불빛이 보인다.
"제갈식.... 내 옆에서 떨어지지마라."
희미한 불빛과 함께 무적의 음성이 들리고....
"누굴까요?"
신녀의 음성에 무적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글쎄요.... 장사꾼일지 아니면 유목민일지...."
중얼거리듯 나오는 무적의 말과 함께....
저 멀리서 희미한 불빛 속으로 조그맣게 보이는 빠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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