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록-108화 (108/158)

만불동 萬佛洞7

* * *

또 아무도 안나와....?

분명히 청마방의 제자들이 동굴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

그런데....

한식경 이상이나 기다렸지만 이번에도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미치겠네....

저 벽창호나.... 함께 있던 광마라는 미친 놈의 성질로 봐서는 자신들을 따라 들어온 저들을 절대로 그냥 둘 인간들이 아니다.

아니.... 그냥 두기는 커녕 산산히 조각내서 육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할 놈들이다.

하지만....

그 흔한 칼이 부딪치는 소리도....

고통스런 비명 소리도 하나 들리지 않는다.

저 구멍 몇 개 밖에 보이지 않는 동굴이 혹시 이 암석산뒤로 이어지기라도 한 건가?

정말 이러다 내가 미쳐버리지....

-- 주작이호! --

-- 예! 말씀하십시요. --

-- 우리도 들어간다. --

-- 네....? --

자신들도 들어간다는 말에 뚱해진 주작이호의 전음이 들리고....

곡도혼이 숨어있던 곳에서 몸을 일으킨다.

-- 모두 최대한 들키지않게....  그리고 빠르게 동굴로 진입해라! --

곡도혼의 말과 함께 복면을 한 주작단의 살수들이 연기처럼 나타나 동굴안으로 들어가고....

몸을 일으킨 곡도혼이 빠르게 몸을 날린다.

* * *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이놈 저놈 다 들어가는데 우리도 들어가봐야지...."

자신을 보며 입을 여는 가종덕을 향해 당풍호가 짜증스럽게 말하며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파앗!

빠르게 동굴을 향해 몸을 날리는 당풍호.

저 여우새끼가....?

자신에게는 의사도 묻지 않고 몸을 날리는 당풍호를 보며 가종덕이 인상을 구긴다.

하지만....

투털거리는 소리와 함께 몸을 날리는 가종덕.

휘익~~!

선풍구전행 旋風九轉行.

바람을 타고 허공에서 아홉 번 몸을 날릴 수 있다는 가종덕의 성명절기.

가종덕을 철각선풍개라 부르게 만든 절세의 경공술과 함께 당풍호의 등을 넘어서며 동굴이 입구에 가종덕이 내려서고....

"좀 빨리 안 움직일래?"

당풍호를 향해 꾸짓듯이 입을 열었다.

이 거지새끼가....

당풍호가 자신도 모르게 이빨을 악물며 품속에 손을 넣어 수리표 袖裏鏢를 움켜 쥐고....

"들어가보자."

흠칫한 표정으로 가종덕이 등을 돌리며 빠르게 동굴 안으로 들어간다.

망할놈....

궁시렁 거리며 당풍호가 움켜쥐었던 수리표를 놓으며 가종덕의 뒤를 따라 동굴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동굴로 한 발을 들이자말자 곧바로 눈에 들어오는 작은 석실.

중앙에 불상이 안치된 작은 석실이 보이고 석실의 벽면으로 뚫린 작은 통로가 눈에 뛴다.

이 통로를 통해서 동굴이 서로 연결된 것인가?

두 사람이 석실안을 한바퀴 둘러보고.... 작은 석실의 옆으로 통로처럼 난 공간을 통해 이어진 또다른 석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똑같은 모습을 한 똑같은 석실.

응....?

당풍호의 눈에 야릇한 빛이 떠오르고....

조심스럽게 자신들이 지나온 석실을 돌아본다.

똑같은 모양에 똑같은 불상과 똑같은 벽면의 장식.

고개를 갸웃거리던 당풍호가 다시 석실 옆의 좁은 통로를 지나 다음 석실로 들어가고....

아....!

또다시 눈앞에 나타나는 똑같은 모양의 석실.

이건....?

당풍호가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고....

마치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석실안에 좌정해있는 똑같은 불상의 미소가 보인다.

좋지않다!

"선풍개! 우리 돌아나가자."

"응?"

앞서가던 가종덕이 고개를 돌려 당풍호를 보며 왜그러냐는 눈을 하고....

"이 석실.... 기분이 별로 좋지않다. 우리는 돌아나가자."

"왜 그래? 천하의 표풍수가 이따위 석실이 무서워서 돌아가자고?"

"그래.... 이 석실 뭔가 기분 나쁘다. 그리고.... 우리보다 먼저 들어온 자들의 인기척도 전혀 들리지 않는다. 자세히 들어봐."

"인기척....?"

잔뜩 긴장한 당풍호의 모습에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낀 듯 가종덕이 공력을 끌어올려보고....

어....?

분명히 사방이 막힌 이 석실안에서라면 미약하게라도 들려야 할 발자국 소리나 몸을 움직이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아니.... 앞서간 자들의  인기척은 고사하고 마치 이 세상이 아닌 듯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않는 묘한 정적만이 흐른다.

이건 또 뭐야....?

"돌아나가자!"

잔뜩 긴장한 당풍호가 입을 열고....

"그래도 들어왔는데 조금 더 가보자. 혹시 이 석실이 기련산으로 연결된 건지도 모르잖아?"

무언가 아쉬운 듯 가종덕이 답한다.

이 거지새끼가 정말 더럽게 말도 안듣가는....

당풍호가 뚱한 눈으로 가종덕을 한 번 노려보고....

"알았다. 조금만 더 들어가보고 이상하면 돌아나오자."

앞서가는 가종덕의 뒤를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가종덕 모르게 살짝 손을 들어 석실의 벽면을 가볍게 긁어 놓는 당풍호.

풍 風.

좁은 통로로 이어진 벽면에 당풍호가 써놓은 글자 하나가 새겨진다.

두 사람이 쉬지않고 얼마나 많은 석실을 지났을까?

한참을 가는 동안 계속해서 똑같은 모습의 석실이 나타나고....

"당가 여우새끼야! 이 석실이 뭔가 이상하지 않으냐?"

그제서야 뭔가 이상함을 느낀 듯 가종덕이 당풍호를 돌아보며 짜증섞인 말을 뱉어낸다.

하아....!

이 둔해빠진 거지새끼가 이제와서야....

짜증섞인 가종덕의 말에 당풍호가 자신이 방금 빠져나온 석실을 돌아봤다.

그리고....

자신의 눈에 또렷히 들어오는 글자 하나.

풍 風.

이 많은 석실을 지나기 전 처음에 자신이 풍이라고 새겨놓은 글자가 보이고....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자신이 있는 석실의 벽면을 봤다.

하지만....

아무런 글자도.... 어떤 표시도 보이지 않는 깨끗한 석실의 벽면.

"다음 석실로 가보자."

두 사람이 다시 다음 석실을 향해 움직이고....

뒤를 돌아보는 당풍호의 눈에 조금전까지 자신이 있었던 석실의 벽면에 새겨진 글자가 보인다.

풍.

돌아버리겠네....

분명 조금전까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벽면에 처음 자신이 새겨놓았던 그 풍이라는 글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자신이 들어온 이 새로운 석실의 벽면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다.

하지만....

이 석실을 지나면 분명히 다시 저 풍이라는 자신의 이름과 같은 글자가 보일거고....

그렇게 끝도없는 미로 같은 이 석실안에서 자신들은 헤매게 될 것이다.

"아무래도 그놈한테 당한 것 같은데...."

"그놈이라니?"

"병서생 그새끼!"

아....!

이제서야 가종덕이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된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망할놈의 와룡장!

"그 허약해빠진 놈이 이곳에 미리진을 설치해놓은 것 같은데.... 골치 아프네."

"미리진....? 이 미친 놈이....!"

가종덕이 헝클어져 떡이진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듯이 움켜쥐었다.

구구미리진 九九迷籬陣.

열두가문 중에서도 천하제일의 병법가문이라고 숭상되는 제갈세가를.... 제갈세가로 불릴 수 있도록 해주는 몇 안되는 절진 絶陣 중의 하나.

분명히 사진 死陣이 아니라 생진 生陣임에는 틀림없지만 이 진법에는 단 하나의 생로 生路만이 있고 나머지 모든 진로 陣路는 미로 迷路로 구성되어있다.

한 발을 뗄 때마다 팔십한 개의 미로가 생겨나고.... 진속에 들어온 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미로속을 헤매게 하는 진법.

그렇게 진의 중심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점점 더 많은 미로가 생기며 빠져나올 수 없는 늪 같은 미로에 빠져버리고마는 천하의 악명높은 진법.

와룡장의 이 악명 높은 진법은 당장은 진의 효과로 인한 환각이나 강한 공격을 당하지는 않겠지만 누구라도 장시간 미로속에 갇혀있게 되면 결국은 탈진해서 쓰러질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이런 단순하고도 무서운 방법으로 과거 수많은 거마효웅을 가두었던 제갈세가의 흉악한 진법.

그렇지만 이 진법을 깰 수 있는 방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강한 힘.

엄청난 고수가 죽을힘을 다해 진속의 모든 미로를 부수고 나온다면 이 징그러운 진은 부숴진다.

하지만 그렇게 용을 쓰고 이 흉악한 진을 빠져나온 상대를....

"허허허....!"

"내가 미치지....!"

어이없는 웃음과 함께 당풍호와 가종덕이 서로를  돌아보고....

제자리에 주저앉아 버린다.

힘 빼지말고 기다리다보면 이 정신 나간 인간들이 구해주겠지....

* * * * *

절화음적 折花淫敵 향천양.

천하에 죽어마땅한 악인이 한둘이겠는가만은 이 향천양이라는 자는 정말이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죽이고 싶어하는 악인이었다.

오죽 사람들이 그를 싫어했으면 이 향천양이라는 자의 별호에는 좀처럼 쓰이지않는 음적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잔인하게 꽃을 꺽어버리는 음적.

나이와 용모를 가리지않고 눈에 뛰는 여인은 모두 겁탈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욕심을 채운후 여인의 전신을 난도질해서 죽여버리는 음적.

결국 보다못한 개방과 열두가문은 향천양을 무림의 공적으로 지목하고 다른 네 명의 악인과 함께 무림오흉으로 나눈후 척살령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천하무림인의 표적이 된 향천양은 몸을 숨기고....

오랜 시간 세상의 눈을 피해 도망다니다가 마침내 청마방에 몸을 의탁하게 된다.

청마방의 청마단주 향천양.

하지만....

청마방의 그늘아래 몸을 숨기고있던 이 음적은 청마방주의 명령으로 무적의 뒤를 쫒게되고....

급기야 이 만불동의 석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단주님! 이길도 지나왔던 길 같습니다."

수다스럽게 외치는 부하의 목소리에 향천양이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리 나가도 계속해서 나타나는 똑같은 모양의 석실.

도대체가 끝이 있기는 있는 것인지 알 수도 없이 이어지는 석실의 연속에 향천양은 미칠 것만 같았다.

앞으로 나가도....

발길을 돌려 뒤로 돌아가도 항상 자신들의 앞으로 나타나는 똑같은 석실.

미치겠네....

이제는 이 밀폐된 공간안에서 체력도 인내심도 모두 바닥이 날 것만 같다.

향천양이 끓어오르는 울화통을 참지 못하며 다시 발을 떼서 또다른 석실로 들어가고....

어....?

비좁은 통로를 빠져나오는 향천양의 앞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한 석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벽면을 촘촘히 채운 벽화와 석실의 중앙을 차지한 불상.

그리고....

마치 또다른 조각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등을 돌린 채 불상을 올려다 보고 있는 자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향천양은 뜬금없이 눈앞에 나타난 이 상대가 의심스럽기보다는 오히려 반갑기까지 했다.

이제 눈앞의 저 자를 잡아서 이 지겨운 석실을 빠져나간다.

"이봐!"

개미새끼 한마리 보이지 않던 석실에서 만난 상대가 마냥 반가워 큰 소리로 부르고....

불상을 올려다 보고 있던 상대가 등을 돌린다.

헝클어진 머리가 얼굴을 반정도 가리고....

허리춤에 아무렇게나 꽂혀있는 파란 칼 한 자루.

"광마....?"

옹알이 같은 소리와 함께 무적을 향해 다가가던 향천양이 우뚝 멈추어서고....

향천양을 뒤따라 통로를 빠져 나오던 청마단의 제자들이 향천양의 중얼거림에 그의 등을 돌아 우르러 몰려나온다.

그리고....

피윳!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무적의 허리에 꽂혀있던 칼이 뽑혀져 나오며 허공에 작은 사선을 만들어내고....

크악!

크아악!

향천양을 돌아 앞서 나오던 몇 명의 목이 잘려 허공으로 솟구치고....

뿜어져 올라오는 뜨거운 핏줄기를 뒤로하고 향천양이 자신이 지나온 좁은 통로를 향해 빠르게 몸을 돌린다.

하지만....

피윳!

또다시 날카로운 파공성이 들리고....

크아악!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석실안을 울리고....

두 다리가 잘리며 바닥에 엎어지는 향천양.

피윳!

피윳!

또다시 좁은 통로안에 몰려있는 청마단원들을 향해 무적의 칼이 몇 번 번뜩이고....

크아악!

크으윽....!

잘려진 목이 솟구쳐 올라가고 몸통이 반으로 갈라지는 청마단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끄으으....!

잘려져 나간 다리의 지독한 통증에 바닥을 꿈틀거리는 향천양의 얼굴로 뜨거운 핏물이 닿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바닥을 적시는 핏물사이로 보이는 부하들의 기다란 창자와 팔다리.

으으으....!

잘려진 두 다리의 고통도 잊은 듯 부들부들 떨고있는 향천양의 귀에 나즈막한 무적의 목소리가 들린다.

" 이곳까지 따라와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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