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록-107화 (107/158)

만불동 萬佛洞6

"이리로...."

제갈식이 불상안으로 들어가고 세 사람이 서로를 돌아본 후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간다.

탁....! 탁....!

일행이 모두 불상안으로 들어오고....

제갈식이 불상의 내부를 몇 번 두드리자 와불의 등이 다시 닫히고.... 이번에는 와불 내부의 바닥이 열린다.

드드득....!

육중한 소리와 함께 바닥이 갈라지듯 열리고....

어둠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밝은 빛이 두 눈을 자극한다.

기관 機關....?

군자명이 흠칫 놀라며 제갈식을 돌아보고....

"내려가시지요."

제갈식이 세 사람을 향해 방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일행이 천천히 계단을 밟으며 아래로 내려가고 계단이 끝나는 곳에 이르자 빈 방의 한가운데에 놓여져 있는 커다란 침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쿨럭....! 쿨럭....!

힘겨운 기침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리는 타말이 모습이 무적의 눈에 보인다.

"모셔왔어요."

제갈식이 타말을 향해 투정부리듯 중얼거리며 홍혜령에게 눈짓을 하고....

홍혜령이 빠르게 타말에게로 다가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아....!

살짝 놀라는 홍혜령과....

"어떻게 된 일입니까?"

타말을 향해 무적의 담담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사람이 무뚝뚝하기는...."

타말이 어이없다는 것처럼 무적을 향해 입을 열고....고개를 돌려 군자명을 본다.

"의외로군요.... 군 대협이 이곳까지 오실 줄은 몰랐는데...."

"다시 뵙게 되는군요."

군자명이 정중하게 포권해 보이고.... 타말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시는 것처럼 몸이 이모양이라서...."

둘이서 함께 오다니....

두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인가?

상처입은 호랑이 한 마리를 데려오라고 보냈더니 구름속에 숨어있던 용도 한 마리 데려온 건가?

그녀석 참....

타말이 제갈식을 힐끗 돌아봤다.

그리고....

"신녀께서는.....?"

무적의 말에 타말이 고개를 돌려 한 곳을 가리키고....

타말의 눈짓을 따라 고개를 돌리는 무적의 눈에 석실의 한쪽에 길게 쳐져있는 차일이 보인다.

"소저.... 저보다는 저곳에 계시는 분을 좀 봐주시겠소?"

힘겹게 열리는 타말의 말에 잠시 망설이던 홍혜령이 제갈식을 한 번 쳐다본 후 차일이 쳐진 석실로 들어간다.

"이렇게 와줘서 고맙네."

"대략 이야기는 들었지만 누구의 짓입니까?"

"그냥.... 내 업보일세. 그보다 목숨의 빛을 갚겠다고 했던 그날의 말 아직도 유효한가?"

"말씀하십시요."

승낙의 표시에 타말이 무적의 얼굴을 잠시 쳐다봤다.

그리고....

"신녀님을 천축까지 모셔다 줄 수 있겠는가? 아니.... 천축까지 갈 수 없다면 천산이라도 넘게 해줄 수는 없겠는가?"

애절한 눈빛.

숨기려해도 보일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심정이 비치는 타말의 눈빛이 무적의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천축까지라고....?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 그 먼길을....?

영영과 길평의 복수는....?

아니 내 원한은....?

빌어먹을!

"지금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승낙하는가?

무적의 말에 타말의 입가로 옅은 웃음이 떠올랐다.

"고맙네.... 나는 가지 않아도 되네. 신녀님만.... 신녀님만 무사히 천축까지 모셔다주면 된다네."

"죄송합니다. 저는 천축까지 갈 수가 없습니다."

뭐라고....?

승낙한 것이 아닌가?

"자네....?"

"신녀 혼자만 데리고 가는 것이라면 저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무슨 소린가?"

"맹노께서 함께 가시지 않는다면 길도 알지 못하는 그 먼길을 절대로 저 혼자 가지는 않겠다는 뜻입니다."

무적의 입에서 나오는 의외의 말에 타말은 멍한 눈으로.....

그리고 군자명은 반짝이는 눈으로 무적을 봤다.

이 자....?

무적의 얼굴을 보는 군자명의 눈에 추레한 늙은 얼굴이 하나 겹쳐져 보인다.

힘이 없어....

타인에게 짓밟히고....

친구를 믿기에 스스로를 불구덩이에 던져넣을 수 있었던 사람.

그랬던가....?

저런 기질 때문에....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을 거부하지않고 친구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저런 기질 때문에....

그들이 저 자를 믿고 그렇게 자신들을 희생할 수 있었던 것인가?

"아마도 그들 손에 죽은 동생들도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조무적은 동생들과 친구의 희생위에.... 그 복잡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그 역시도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곽도를 죽였을지도.... 곽도가 겪어야했을 그 끔찍한 고통만큼 그도 힘들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초혼산에서 두 사람을 묻어줄 당시 당 풍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세상의 일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닌 것을....

저 자가 어떤 자인지 알고싶다고....?

군자명! 네 눈앞에 있는 저 자는 피에 미친 살인귀도.... 한조각 인성조차 없는 인간말종도 아니다.

단지 끓어 오르는 화산 같은.... 아니 너무 뜨거운 가슴을 가졌기에 더 차가워 보일뿐....

군자명아! 군자명아!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주위의 동료들이 불의 不義하다고....

세상에 눈감고 귀막고 살았다니....

"조 대협.... 괜찮으시다면 맹노 대협은 제가 모시고 함께 가도 되겠습니까?"

뜬금없는 그의 말에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군자명을 향한다.

함께 가겠다고....?

"왜 함께 가겠다는 것이요?"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요...."

이것봐라....?

마주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제갈식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두 마리의 호랑이가 한통속이 된다고?

그것도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이 변방에서....

어줍잖은 의협심인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두 사람만의 무엇이 있는 것인가?

잠시 말없이 군자명을 보고만 있던 무적의 입이 열린다.

"도대체 군 교두께서는 왜 이렇게까지 나를 따르려고 하는 것이요?"

"말했지 않습니까? 저는 조 대협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고...."

"아직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소?"

"그렇습니다. 조금 더 아니.... 천축까지 가는 동안만이라도 조 대협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싶습니다."

단호한 군자명의 말에 무적이 입을 닫고 그의 얼굴을 가만히 봤다.

사각으로 각진 단단해 보이는 턱에 굳게 다문 입술.

얼굴의 중앙에 우뚝 서 있는 반듯한 코와 함께 얼핏 기개 氣槪있는 얼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집불통 같으니라고....!

초혼산에서부터 돌아가라는 말은 듣지도 않고 이곳까지 따라오더니 또 천축까지 따라오겠다고 한다.

뭐....?

맹노는 자신도 잘 안다고....?

"일어나서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군자명을 잠시 노려보던 무적이 타말을 향해 입을 열고....

타말이 힘겹게 몸을 움직여 두 발로 바닥을 디딘다.

"아직 움직이는데는 큰 불편이 없네."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타말이 바닥으로 내려서고....

신녀가 있는 석실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무적의 눈에 차일이 걷어올려지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차일을 걷어며 나오는 홍혜령이 보이고....

석실안의 네 사람을 찬찬히 둘러본 그녀의 입이 떨어진다.

"하루만 기다려줘요."

"하루....?"

제갈식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 홍례령이 손을 들어 차일뒤로 가려져있는 석실을 가리킨다.

"당신들이 신녀라고 부르는 저분 소저.... 하루만 기다려주시면 깨어나실 수 있어요."

* * * * *

곡도혼은 반나절이나 기다려도 도대체가 그 누구도 되돌아 나오지 않는 동굴을 바라보며 미칠 것만 같았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저 벽창호를 황도로 잡아가서 호랑이 같은 늙은이의 분노를 어떻게 피해야하나 하는 따위의 고민은 쓸데없는 고민일 뿐이었다.

이재보니 저 인간을 잡는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저 벽창호가 저렇게 강한 놈이었나....?

어떻게든 결과물을 만들기는 만들어야 하는데....

문득 여우 같은 동창태감의 얼굴이 떠오른다.

살살거리며 웃는 얼굴로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던 변태 같은 늙은 내시.

미쳐버리겠네....!

궁시렁거리며 고개를 흔들던 곡도혼이 갑자기 흠칫 놀란다.

살기?

자신을 향하는 살기는 아니지만 분명히 미약한 살기가 느껴졌다.

-- 뭐냐? --

빠르게 주작이호 朱雀二號를 향해 전음을 날리고....

-- 누군가 그들이 들어간 동굴로 향하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

-- 동굴로....? --

곡도혼이 안력을 돋구며 동굴의 주위를 살피자....

나즈막한 야산을 넘어 은밀하게 동굴로 향하는 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 누구지? --

-- 아무래도 그 광마라는 자를 노리는 청마방의 제자들인 것 같습니다. --

-- 청마방? 저들에게 들키지말고 잘 지켜봐라. --

-- 예. --

빠르게 동굴입구로 다다른 자들이 몸을 낮추고 주위를 살피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허리에 매어둔 도와 검을 뽑아들고....

조심스럽게 동굴안으로 들어가는 청마방의 제자들.

-- 들어가는데요? --

-- 나도 보인다 이 새끼야! 계속 지켜보기만 해! --

멀리서 동굴을 지켜보는 곡도혼의 눈에 대략 칠십 명은 될 것 같은 인원이 동굴로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 * *

"저것 봐.... 꼬리가 길지?"

멀찍이 떨어진 숲속에서 당풍호가 입을 열고....

"흠.... 한쪽은 청마방이고 다른 한쪽은 누구지?"

가종덕이 곡도혼이 숨어있는 곳을 보며 대답했다.

"내시!"

"내시....?"

의아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가종덕을 돌아보며 당풍호가 중얼거린다.

"턱밑에 한가닥의 수염도 보이지 않고 하늘하늘한 걸음걸이.... 누가봐도 황궁이나 왕부의 내시가 틀림없다."

"내시가 왜 이곳에.....?"

"잊었나? 군자명 그 인간이 금군의 교두라는 사실을?"

아....!

가종덕이 무언가 깨닫는 것이 있는 것처럼 짧은 탄성을 발한다.

"그런데 황도도 아니고 왜 내시가 이곳까지 군자명을 쫒아온거지?"

"글쎄...."

당풍호는 짐작가는 바가 있었지만 굳이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때 강동의 지부대인을 쥐패더니 그것이 문제가 된 것인가?

그런데 왜 금군이 아니고 내시인가?

내시라면 분명히 동창이 개입했다는 이야기인데....

"야! 선풍개.... 혹시 너희들 방주에게 부탁해서 저 벽창호가 어떤 인간인지 좀 알아볼 수 없을까?"

"응? 군 교두가 누군지 알아보라고....?"

그러고보니 조무적에게만 너무 신경쓰다 보니 그 교두에 대해서 너무 신경을 쓰지않았나?

검왕의 검을 휘두르고 다니는 교두라....

"알았어. 어....? 저 내시도 동굴로 들어가는데?"

"뭐?"

가종덕의 말에 암벽으로 된 산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당풍호의 눈에 동굴을 향해 몸을 날리는 곡도혼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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