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록-105화 (105/158)

만불동 萬佛洞4

* * * * *

다그닥....! 다그닥....!

갑자기 속도를 내며 빠르게 달리는 마차를 보며 당풍호가 얼굴을 찌푸렸다.

"저 인간이 왜 갑자기 속도를 올리지?"

"응....?"

당풍호의 말에 언제 내려왔는지 자신의 팔목에 내려앉아있는 커다란 매의 다리에 전서를 묶고 있던 가종덕이 고개를 돌려 당풍호를 쳐다봤다.

"몰라.... 저 정신나간 놈이 하는 짓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

"그런데 그건 뭐야?"

"아.... 이거?"

푸드득....!

가종덕의 손이 위로 올라가고 얌전하게 팔목에 앉아있던 한 마리의 매가 힘찬 날개짓과 함께 하늘로 날아오른다.

"우리 치매걸린 늙은 방주에게 보내는 전서응 傳書鷹이야."

"전서응?"

"아무래도 군마맹이야.... 뭐....  방주도 알고있겠지만 마도육문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보고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서...."

"보고....? 그래 잘했다."

망할 놈.... 빈둥거리면서도 자기 할 일은 다하네.

하긴 마도육문이 움직인다면 개방주에게 보고는 해야 하겠지....

그런데....

당 풍호가 멀어지는 마차에서 눈을 떼며 관도의 주위를 둘러본다.

분명히 한차례의 충돌후 청마방과 비마각의 인원이 물러간 것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는 다르게 또 다른 자들이 저 마차를 따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미약하지만 기척을 숨기며 마차를 따르는 자들의 은밀한 움직임.

은밀하게 움직이는 그들의 기척에서 고도의 수련을 쌓은 살수들 같은 기운이 느껴진다.

이번에는 또 어떤 새끼들이야....?

"어떻게 생각해?"

"뭐가?"

"저 두 인간들 말이야. 저 인간들 꼬리가 너무 길다고 생각되지 않아?"

"꼬리....?"

당 풍호의 말에 가종덕이 빠르게 달리는 마차를 자세히 살펴본다.

그리고....

"말꼬리 말고는 아무 꼬리도 안보이는데.... 저녀석들이 꼬리도 있어? 어쩐지 인간 같지도  않더라니...."

중얼거리는 가종덕의 말에 당풍호가 힐끗 그를 돌아봤다.

"그냥 계속 따라가자...."

도대체가 이 거지새끼는.....

* * *

마제사.

기련산맥의 몇갈래 지류중 한 곳에 위치한 이 절은 하늘에서 천마 天馬가 내려와 잠시 머물렀다가 올라갔다는 오랜 전설이 서려있는 천년고찰이다.

그리고....

무적은 마제사가 위치한 산 뒤로 보이는 눈으로 하얗게 덮여있는 높다란 기련의 산봉우리를 보며 영영의 모습을 떠올렸다.

"무적....! 나중에 우리가 나이들어 더 이상 일을 하기 힘들어지면.... 그때가 되면 죽기전에 우리 둘이서 꼭 여행은 한 번 가보자."

"여행?"

"그래! 나는 죽기전에 기련의 눈덮힌 설산을 꼭 한 번 보고싶어. 그리고 설산을 넘어서 천산으로 향하는 길에 보인다는 사막의 낙타. 무적.... 우리 낙타도 한 번 타보자? 어때?"

영영....

너는 없고 나혼자만 이렇게 설산을 올려다보는구나....

"이곳에 만불동이 어디있소?"

조금은 감상적인 생각에 빠져있던 무적의 귓가로 불쑥 튀어나오는 군자명의 말이 들리고....

무적이 고개를 돌려 제갈 식을 봤다.

앞서 걷던 제갈 식이 걸음을 멈추고....

두사람을 돌아보며 방긋이 웃고는 손가락을 들어 마제사를 가리켰다.

"저곳이 바로 만불동입니다."

제갈 식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나즈막한 산의 석벽을 바라보는 무적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진다.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마가 잠시 머물렀다가 떠났다는 자리.

그곳에 남겨진 커다란 말발굽의 흔적을 따라 암벽을 깍아 석벽을 만들고 석굴을 파서 사찰을 세운 곳이 바로 이 마제사라는 가람 伽藍이다.

하지만 기껏해야 스무 개 남짓한 동굴이 전부인 이곳에 무슨 만불동까지나.....?

제갈식이 뚱한 표정의 무적을 한 번 쳐다본 후 마제사 너머로 보이는 기련산을 돌아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신녀와 맹노 두 분을 기련산속 깊은 숲에 모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조 대협을 찾기위해 산을 떠나야되자 왠지 불안했습니다.왜 그런 것 있지 않습니까? 이유없이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이 생기는 그런 것. 노파심이랄까.... 아무튼 그래서 저는 두 분을 산에서 모시고 내려와 저 석실안에 거처할 곳을 만들고 모셨습니다. 그리고 저 동굴이 왜 만불동인지는 들어가 보시면 아시게 될 것입니다."

제갈식의 말이 끝나고.... 무적과 군자명이 멍한 눈으로 제갈식을 봤다.

참.... 더럽게 말 많다.

어떻게 된 인간이 한 번 입을 열었다 하면 누에고치에서 실타래 뽑아내듯이 저렇게 술술 나올 수가 있을까?

두 사람의 마음은 모르는 듯 제갈 식이 밝게 웃으며 마제사를 향해 오르고 석벽의 동굴앞에 놓여져있는 마나차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 중얼중얼....!"

알아들을 수도 없는 괴상한 주문과 함께 마나차를 한바퀴 돌리고....

"따라오세요."

힘찬 음성과 함께 씩싹하게 석벽의 동굴을 향해 걸어간다.

마제사의 입구에 기둥처럼 서있는 마나차를 한 번 쳐다본 후....

무적과 군자명이 서로를 돌아보며 쓰게 웃는다.

서역의 문자가 빽빽히 세겨진 체 기둥처럼 서있는 마나차를 한 바퀴 돌리며 주문을 외우면 불경 한권을 읽은 것과 같다는 마제사의 법보.

같이 해보자는 말도 없이 혼자서 마나차를 돌리고 또 주문을 외우고는 앞서 가버리는 제갈 식의 모습에 무적과 군자명은 기가 막혔다.

뭐 저런 인간이....?

* * * * *

중원을 가로지르는 장강과 운남을 향하는 커다란 강이 서로 수계쟁탈을 하는 넓은 강의 강심에 조그마한 조각배가 하나 떠있다.

그리고....

마치 지옥의 강을 건넌다는 저승의 뱃사공처럼 짙은 검은 색 옷으로 전신을 두른 체 노를 들고 있는 노인과....

노인이 앞에 좌정하고 앉아있는 또 다른 노인.

작은 조각배의 중앙에 좌정하고 있는 노인의 얼굴이 잔뜩 긴장한채로 노를 들고 서있는 검은 옷의 노인을 향하고....

노를 들고 서있던 노인의 입이 살짝 열린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를 못하겠구나. 그러니까 네 말은 누군가가 너희들 비마각을 향해 발톱을 세웠는데.... 그자가 환검을 썼다는 말이냐?"

"예. 틀림없는 환검이었습니다."

"그래서....?"

"환검을 쓰는 그자가 누군지 알기위해서 왔습니다."

"환검외에 다른 것은 없었느냐?"

"제가 물러나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섬광이었습니다."

"섬광....? 그 천장 天匠이라는 설 씨의 섬광 말이냐?"

"예."

"그렇다면 상대가 누군지 너도 이미 알고 있지않느냐?"

"하지만...."

앉아있는 노인이 말을 흐리고....

노를 든 노인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내가 알기로는 절대로 그분은 아니다."

"네?"

"그분은 지금 휴식기에 들었다. 깊은 잠에 든 그분이 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나갈리도 없고.... 만약 그분이라면 네가 살아 돌아올 수 있었겠느냐?"

"그렇다면....?"

"그래. 과거 너희들 가문과 설 씨의 얽힌 은원이 지금 그 모습을 보이는 것이겠지."

노를 든 노인의 말에 앉아있는 노인이 깊은 생각에 잠긴 듯 한 동안 아무런 대꾸도 없다.

그리고 잠시의 시간이 지난후....

"그렇다면  검마존 劍魔尊께서 다른 육문에 한가지만 이야기 해 주십시오."

"이야기....? 무슨 이야기 말이냐?"

"그자의 환검이 그분과는 상관이 없다고....."

"일겠다. 그렇게 해주마."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바위처럼 배위에 앉아있던 노인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노를 든 노인을 향해 깊숙이 허리를 숙여 보이고....

휘익!

강심의 조그만 배에 일체의 미동도 주지 않으며 허공으로 몸을 날려 빠르게 강을 건너는 노인.

깊은 눈빛으로 새처럼 훨훨 날아서 넓은 강을 건너는 노인의 모습을 보고 있던 조각배 위의 노인이 작게 중얼거린다.

"그분은 본시 검을 든 적도 없는 것을...."

* * * * *

작은 석실.

중앙에 불상이 안치되고 석굴의 벽면을 따라 다양한 조각들이 양각된 석실.

그리고 그 석실의 양옆으로 나있는 작은 통로를 따라 또다시 나타나는 똑 같은 모양의 석실.

만불동이라더니....!

마치 미로처럼 끝없이 이어지며 나타나는 석실의 모습에 무적이 놀라서 주위를 둘러본다.

똑 같은 모양에 똑 같은 부처를 모셔둔 석실.

이 현실적이지 못한 똑같은 모양의 석실을 몇 개나 지나온 건지도 모른 체 그렇게 세 사람이 제갈식의 뒤를 따르고....

"헉....! 헉....! 조금만 쉬었다 가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쓰러지는 제갈식을 향해 홍혜령이 빠르게 다가가 부축하며 맥을 짚어본다.

손가락 끝을 타고 전해지는 미약한 맥박과 싸늘해지는 몸.

전신의 피가 원활이 움직이지 못해 체온이 떨어지고 무리하게 먼길을 움직인 탓에 심장에 무리가 가서 가슴에 통증을 느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홍혜령이 급히 품속에서 몇 개의 침을 꺼내 제갈식의 목과 가슴에 꽂고....

반듯하게 눕힌 다음....

황급히 자신의 겉옷을 벗어 제갈식의 머리에 베게처럼 넣어준다.

그리고....

"죄송한데.... 오라버니 다리 좀 주물러주실래요?"

홍혜령의 말에 무적과 군자명이 서로를 돌아보고....

바닥에 주저앉으며 각기 한쪽 다리를 주물러주기 시작한다.

응....?

몇 번 제갈식의 다리를 주무르던 두 사람이 살짝 얼굴을 찌푸리고....

"제가 먼저...."

중얼거리듯 나오는 군자명의 말에 무적이 뒤로 물러서고 군자명이 제갈식의 양발목 족부태양경 足部太陽經을 감싸쥐듯이 잡았다.

그리고....

우웅....!

석실안을 울리는 야릇한 소리와 함께 군자명의 양손에서 푸른 기운이 일어나고...

누워있던 제갈식의 몸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마치 잉어처럼 퍼덕이는 제갈식의 움직임에 상체에 침을 놓고있던 홍혜령이 야릇한 눈으로 군자명을 돌아보며....

"얼마동안이나 그렇게 추궁과혈을 해주실 수 있나요?"

"글쎄요.... 두 식경 정도....?"

군자명의 말을 흐리며 무적을 돌아보고 무적이 고개를 끄덕인다.

홍혜령이 다시 한 번 두 사람을 번갈아 본 후....

"제가 몇 군데 침을 놓을 동안만이라도 오라버니에게 추궁과혈을 좀 해주세요."

군자명이 알겠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홍혜령이 품속에서 작은 침통을 하나 꺼낸다.

딸깍....!

침통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눈부신 금빛과 함께 몇 개의 금침이 그 모습을 보이고....

봉황금침 鳳凰金針....?

금침을 본 군자명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고 무적은 아무런 감흥도 없이 금침을 쳐다본다.

그리고....

홍혜령이 딱딱하게 굳은 군자명의 얼굴을 힐끗 돌아본 후 한 개의 금침을 꺼내 제갈식의 코밑 인중으로 가져간다.

"조금 힘들어도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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