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불동 萬佛洞2
* * * * *
구민보광.
무적이 구민차의 전면에 꽂혀있는 깃발을 멍하니 쳐다봤다.
소문으로만 듣던 구민차가 정말로 그 실체를 자신이 눈앞에서 보이고 있다.
천하에 군림하는 열두 가문이라....
무적이 천천히 마차의 앞으로 가서 구민보광의 깃발을 잡았다.
그리고....
뚝!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깃발을 뽑아서 부러뜨려버리는 무적.
"무슨 짓이예요?"
멀쩡한 깃발을.... 그것도 보광장의 상징과도 같은 구민기를 뽑아서 부러뜨리는 무적의 모습에 홍 혜령이 놀라서 고함을 지르고....
무적이 무심한 얼굴로 입을 연다.
"제갈 공자와 함께 우리를 따를 거라면 이 깃발은 떼놓고 따르시오."
무심하게 나오는 무적의 말에 홍 혜령은 황당한 얼굴로....
군 자명은 아무 생각없이 무적을 본다.
그리고 제갈 식은....
'구민기를 떼라고....? 이자....'
적어도 구민기가 꽂혀있다면 천하의 그 누구라도 구민차를 타고있는 자신들의 앞을 막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구민기를 뗐다면....
분명히 저 두 사람을 노리는 자들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들을 막는 자들이 온다면....
피에 미친 광마라....
기련산맥까지 가는 그동안만이라도 군마맹과 싸우며.... 자신의 앞을 막는 그들을 기다리며 이동하겠다는 것인가?
'이거 아무래도 고약한 인간에게 걸린 것 같은데....'
* * *
따각....! 따각....!
인적이 없는 조용한 관도를 따라 바닥을 때리는 말의 편자소리만이 조그맣게 울려퍼진다.
초혼산을 떠나 어느듯 다시 한중으로 든 무적의 일행은 서로간에 아무런 대화 한마디없이 말이 끄는 마차에 앉아만 있었다.
그런데....
마차의 말고삐를 잡은 무적이 마차를 세우고....
군 자명이 조용히 마차의 문을 열면서 나온다.
"누구요?"
뜬금없는 물음이 무적의 입에서 나오고....
"내게 볼일이 있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뜬금없는 물음에 역시 뜬금없는 대답을 하는 군 자명.
무적이 바닥에 내려선 군 자명을 보며 다시 묻는다.
"기다려야 하는 거요?"
군 자명이 고개를 돌려 무적을 보고.... 입가에 걸리는 야릇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젓는다.
"먼저 가십시요. 볼일을 본 후 곧 뒤따라 가겠습니다."
무적이 돌아서는 군 자명의 뒷등을 잠시 쳐다본 후 천천히 말고삐를 당긴다.
"천천히 가고 있겠소. 볼일은 다 보고 오시오."
따각....! 따각....!
바닥을 때리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마차가 떠나고....
군 자명이 관도를 따라 늘어선 울창한 숲을 노려본다.
군 자명을 내려두고 한참을 가던 마차가 다시 멈춰선다.
그리고 이번에는 무적이 마부석에서 내리고....
"잠시만 기다려주겠소?"
마차를 돌아보며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그와 함께....
마차의 창문이 열리며 홍 혜령의 얼굴이 불쑥 나오고....
"예."
낮은 음성과 함께 홍 혜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홍 혜령의 얼굴을 보던 무적이 천천히 몸을 돌려 발걸음을 떼고....
"광마 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두 인간이 다 피에 절었네...."
마차안에서 중얼거리는 제갈 식의 음성이 들린다.
저 인간이....
등을 돌려 발걸음을 떼는 무적의 얼굴이 살짝 찡그려졌다.
딱....! 딱....!
커다랗게 바닥을 울린리는 무적의 지팡이소리와 함께 무적이 관도 옆의 숲으로 들어가고....
피윳!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울창한 숲속의 나무뒤에서 몇 자루의 검이 무적을 향한다.
싸늘한 기운과 함께 차가운 검날이 무적을 향하고....
우웅....!
숲속의 공기를 진동시키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무적의 지팡이가 살짝 움직인다.
그리고....
빡!
돌깨지는 소리와 함께 자욱한 피보라 속에서 몇 사람의 머리가 터져나가고....
큭....!
동시에....
화악!
무적의 주위에 서있는 몇 그루의 나무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커다란 그물.
순식간에 자신을 덮쳐오는 그물속에서 무적의 지팡이가 움직이고....
틱! 틱!
찢어져나가는 그물위로 또다른 그물이 내려온다.
순식간에 몇겹의 그물속에 무적이 갇히고....
나무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자들과 멀리 떨어진 몇 그루 나무뒤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손에 커다란 활을 들고 바닥에 내려서는 자들.
그리고....
활을 든 자들이 빠르게 몸을 움직여 그물에 갇힌 무적을 둥글게 둘러싸고....
무적이 지팡이를 들어 그물을 들어올리려 해보지만....
그물의 끝에 달린 무거운 추가 바닥에 깊숙이 박힌 듯 그물이 들어올려지지 않고 오히려 더 엉망으로 몸을 휘감아버린다.
무적이 손에 들린 지팡이를 아래로 내리고 자신을 둘러서고 있는 자들을 돌아보고....
자신을 둘러싼 둥근 원의 한 쪽이 열리며 한 사람이 앞으로 나오는 것이 보인다.
세가닥 수염을 가늘게 기른 체 손에는 한자루의 커다란 활을 든 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광마가 절정의 고수라더니 별로 그렇지도 못한 것 같군.... 그 그물은 만년한철삭으로 만든 것이라 끊을 수 없을 거라네."
상대의 입을 통해 자신을 비웃는 것 같은 묘한 말이 나왔다.
"군마맹인가?"
전신을 옭아맨 그물 속에서 무적의 입이 열리고....
"군마맹....? 그래 우리는 청마방이라고 하지."
자신을 잡았다고 생각하는지 여유롭게 입을 여는 상대의 뒤로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가 하나 보인다.
관도를 따라 이어진 숲뒤로 보이는 산봉우리.
무적이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를 잠시 쳐다본후....
"너를 잡는다고 저 산속에 웅크리고 있는 자가 오지는 않겠지?"
응....?
무적의 담담한 말에 세가닥 수염을 기른 자가 흠칫 놀라고....
"죽여라!"
차가운 말과 함께 무적을 둘러싼 자들의 손에 들린 활이 무적을 향해 시위를 당긴다.
찌이익....!
강하게 당겨지는 활시위의 찢어지는 소리속에서....
* * *
타앗!
숲으로 들어온 군 자명이 빠르게 커다란 고목을 향해 날아가고....
나무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자가 뒤로 몸을 날린다.
휘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상대의 모습이 멀어지고 군 자명의 왼손이 살짝 움직인다.
피융!
숲 속을 울리는 야릇한 소리와 함께 몸을 날리던 자의 목이 떨어져 내리고....
몇 번을 움직이던 목없는 몸이 힘없이 쓰러진다.
동시에....
피윳....!
피윳....!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빠르게 군 자명을 향해 날아오는 수많은 비수.
군 자명이 살짝 발을 움직여 날아오는 비수를 피하고....
파릿한 비수 끝에 달려있는 쇠사슬이 군 자명의 몸을 휘감는다.
지겨워....
이미 몇차례나 경험한 똑같은 상대의 공격에 군 자명이 짜증스럽게 자신의 몸을 휘감는 쇠사슬을 강하게 당기고....
타앙!
맑은 음향과 함께 쇠사슬이 중간부분에서 힘없이 잘려나간다.
응....?
쇠사슬이 끊어지며 오히려 상대를 당기던 자신의 힘에 밀려 군 자명이 뒤로 주춤거리며 밀려난다.
그리고....
피윳!
피윳!
몸의 중심을 잡기위헤 버티는 군 자명의 몸을 덮치는 날카로운 비수.
갑자기 하늘의 해가 사라진 것처럼 새까맣게 군 자명을 덮치는 비수와....
스윽....
주춤거리던 군 자명의 검이 소나기처럼 떨어지는 비수를 향해 살짝 움직인다.
차차창....!
맑은 쇳소리와 함께 떨어져 내리던 비수가 튕겨나가고....
비수끝에 달린 굵은 쇠사슬이 군 자명의 몸에 휘감긴다.
촤르륵....!
한줄기 쇠사슬이 가슴을 감아오고....
얼굴을 향하는 쇠사슬을 검으로 막자 검과 함께 오른손까지 쇠사슬에 감긴다.
온몸을 감아오는 쇠사슬에 군 자명의 양팔과 상반신이 묶이고....
팽팽하게 당겨지는 쇠사슬과 함께 쇠사슬의 끝을 쥔 자들이 몸을 날린다.
패앵!
강하게 당겨지는 쇠사슬의 힘에 양다리에 힘을 주며 저항하는 군 자명.
천근추로 강하게 몸을 버티는 군 자명과 팽팽하게 당겨진 쇠사슬을 당기는 자들이 서로를 끌어오기 위해서 힘을 쓰고....
타앙!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이번에도 군 자명을 당기던 쇠사슬이 중간에서 터지며 튕겨날아간다.
그리고....
스윽....!
비틀거리는 군 자명의 곁으로 유령처럼 나타나는 자들.
피윳!
군 자명의 곁에 바짝 다가온 자들의 손에 들린 비수가 군 자명의 몸을 찢어놓을 것처럼 번뜩이고....
온몸이 사슬에 묶인 군 자명이 비수에 부딪치듯이 몸을 움직인다.
탕! 탕! 탕!
자신을 향하는 비수를 온몸을 감싼 쇠사슬로 막아내며 군 자명이 뒤로 물러나고....
비수를 쥔 자들이 뒤로 몸을 날리려는 군 자명을 향해 빠르게 따라붙는다.
쳇....!
빠르게 자신을 향하는 자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양팔을 움직일 수가 없는 군 자명이 두 다리를 들어 상대들을 향하는 순간....
피윳!
피윳!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또다시 날아오는 비수.
군 자명이 자신의 두다리를 노리는 비수를 피하고....
촤르륵....!
비수끝에 달려있는 쇠사슬이 이번에는 두 다리를 휘감는다.
아....!
두 팔과 상체를 감고있는 쇠사슬과 함께 두 다리마저 상대의 쇠사슬에 감긴 군 자명의 몸이 멈춰서고....
사방에서 군 자명을 향해 덮쳐오는 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 * *
몇 겹의 그물에 갇혀있는 무적을 향해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가 떨어지고....
파앙!
동시에....
우웅....!
공기가 진동하는 소리와 함께 무적을 옭아맨 그물이 물주머니처럼 부풀어 오른다.
약간의 틈이 생긴 그물 속에서 무적의 손목이 살짝 움직이고....
무적의 손에 들린 금이 간 지팡이가 부서져 나간다.
빠그작....!
대나무가 짓이겨져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고....
피융....!
숲 속을 울리는 날카로운 파공성.
아....!
무적을 향해 시위를 당긴 청마방의 무인들이 놀라서 눈을 부릎떠고....
무적이 주위로 멈춰 선 것처럼 떠있는 화살이 보인다.
자신들이 쏘아낸 화살이 마치 벽에 막힌 것처럼 허공에 떠있다.
그리고....
파악!
야릇한 소리가 숲속을 울리고....
사방으로 튕겨날아가는 화살사이로 날아오는 부서진 지팡이의 파편.
퍽!
퍽!
크윽....!
끅....!
괴로운 신음과 함께 온 몸을 관통하는 파편과 함께 무너지는 자들의 눈에 찢어지는 그물 사이로 반짝이는 무적의 칼이 보인다.
후다닥....!
파편의 공세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놀라서 뒤로 몸을 날리고....
피윳!
다시 한 번 무적의 손에 들린 칼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서걱....!
서걱....!
사방으로 그 크기를 넓혀가는 둥근 달과 함께 무라도 자르는 것 같은 소리가 숲을 울리고....
사방으로 잘려져 나가는 팔과 머리.
자욱하게 뿌려지는 피보라 속에서 무적이 조용히 주위를 둘러봤다.
살아있는 자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고....
숲을 뚫고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를 올려다본다.
차륜전인가....?
자신이 가면 다시 몸을 숨길 자들.
그렇게 자신의 앞을 막고 온갖 함정을 파고 술수를 쓸 것이다.
귀찮은 상대를 만났는데....
하지만....
세월이 얼마가 걸리던....
반드시 모두 찾아내서 죽인다.
산봉우리를 잠시동안 올려다보던 무적이 등을 돌렸다.
천천히 갈테니 따라와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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