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록-100화 (100/158)

쌍웅조우 雙雄遭遇9

"뭐해요? 나와서 안도와주고!"

마차를 돌아보며 여인이 큰 소리로 외치고....

마차의 앞문이 열리며 제갈 식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온다.

"나도 힘들어.... 혼자 좀 해...."

귀찮다는 것처럼 중얼거리는 제갈 식의 말에 여인이 입술을 삐죽이 내밀며 중얼거린다.

"하여간 말만 많지.... 도대체가 움직일 생각은...."

여인이 군 자명을 부축해서 마차로 들어와 눕히며....

"도와주지도 않을 거면 저리 좀 비켜요!"

빽하고 고함을 지르는 여인의 말에 제갈 식이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혜령아.... 혜령아.... 이 야박한 홍 혜령아! 나도 환자다. 너는 왜 세상의 모든 병자들은 다 돌봐 주면서도 유독 나한테만 항상 이런 식이냐?"

마치 투정이라도 부리는 것 같은 제갈 식이 말이 나오고....

"흥! 뜬금없이 찾아와 초혼산으로 가자고 조를때는 힘이 넘쳐나더니 이제는 환자라고요?"

뽀로통하게 되쏘아부치는 여인의 음성에 제갈 식이 고개를 설레 설레 저었다.

"기련산맥에서 임주까지 오는 동안 나는 죽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많이 지쳐버렸어. 생각해봐라 혜령아.... 너도 알다시피 몸도 성치않은 내가 그 먼길을 쉬지도 못하고 왔는데 당연히 지금 내게 움직일 기운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것 같으냐?"

마치 자신이 곧 죽을 환자라도 되는 것처럼 넋두리하는 말에 홍 혜령이 양볼을 뽈록하게 한채로 제갈 식을 째려봤다.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저 입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게 한 번 열렸다하면 닫힐 줄을 모르는지....

이번에는 여인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군 자명의 맥을 짚는다.

* * *

"저건 또 뭐야?"

곡 도혼이 황당한 얼굴로 주작단의 살수들을 돌아보고....

복면인 중 하나가 답답한 음성을 토해낸다.

"구민차 救民車가 왜....?"

곡 도혼이 눈만 껌벅거리는 복면인을 향해 인상을 찡그려보인 후 다시 마차를 돌아봤다.

내 말이 그 말이다.... 이 사람 죽이는 것만 아는 인간백정 같은 놈들아....

구민차.

세상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열두 가문 중에는 사람들이 홍씨세가라고도 부르는 보광장이라는 곳이 있다.

무림의 세력으로서는 드물게도 의술에 정통한 가문인 이 보광장이라는 곳은 스스로 자신들을 까마득한 옛날 세상에 그 모습을 보였던 편작 扁鵲의 후예라 자처하며 천 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천하구민의 기치를 내걸고 자신들의 의술을 아끼지 않고 세상에 베풀었다.

무공노수의 흑백을 불문하고.... 귀천 貴賤을 가리지 않으며.... 그렇게 모든 병들고 약한 자들을 돌봐준 가문.

신침칠십이식 神針七十二式이라는 기학 奇學과 다양한 내가기공으로 무장한 그들이었지만 다른 열두 가문과는 다르게 실제로 그 무공으로 무림에서 세를 다투는 일은 특별히 없었다.

무림의 이해에서 약간은 물러나 세상의 힘들고 병든 자들을 돌보는 가문.

그리고....

그 보광장의 상징과도 같은 구민차.

백성을 구하는 수레라는 말 그대로....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커다란 마차에 구민보광이라는 깃발을 달고  있는 마차.

그리고 보광장은 직계 자손들의 의술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올라서게 되면 이 구민차를 세상에 내보낸다.

가문의 기치인 구민을 위하여....

그리고 성장한 후손들은 자신들의  의술을 증명해보이기 위해서.... 보광장의 자식들은 대대로 구민차에 몸을 싣고 일정한 기간동안 외로이 주유천하 周遊天下를 하게 된다.

그렇게 오랜 세월 구민차는 병들고 지친 자들을 돌보고....

세상의 음지에서 도움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손을 내밀어줬다.

그리고 오랜 세월동안 자신을 희생해준 그 숭고하고 정의로운 보광장의 인술에 대한 예의로서 천하의 그 누구도 구민차만큼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강호의 불문율이 되었다.

아니.... 구민차만 건드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웬만해서는 구민차가 보이는 곳에서는 서로 칼을 겨누지도 않는다.

천 년이 넘는 세월동안 계속된 한 가문의 선행에 대한 강호인들의 존경의 표시.

그런데....

바로 그 구민차가 자신의 눈앞에 그 모습을 보였다.

저 벽창호가 운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더럽게 운이 없는 것인가?

분명히 구민차가 세상에 나왔다는 소문은 듣지도 못했는데 뜬금없이 이곳에서 구민차라니....?

"어떡하지요?"

"어떡하다니....? 설마 천하의 모든 무림인이 칼 들고 황궁으로 쳐들어 오기라도 바라는 거냐?"

복면인의 말에 곡 도혼이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저 벽창호를 데려오라고 했을 때....

그때 바로 세외로 도망갔어야 했는데....

"저 벽창호가 마차에서 내릴때까지 거리를 두고 추적한다!"

* * * * *

파란 빛이 서린 한 자루의 칼.

칼이라는 것이.... 날카롭게 날이 서면 그 자체로도 이미 사람을 두렵게 하기에 충분한 물건이다.

하물며 그 살벌한 칼이 타인의 손에 들려있다면 누구라도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래서....진 오용은 눈앞에서 파랗게 빛나는 칼을 만지는 상대가 두려워 고개도 들지 못하고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그러니까.... 권절삼요가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자기들 멋대로 그 광마라는 자를 찾아갔다는 말이냐?"

칼을 든 자.... 청살마도 靑殺魔刀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진 오용은 자신이 죽을 죄를 지은 것처럼 부르르 떨며 고개를 조아렸다.

"예...."

"한심한 인간들...."

백골문이나 만금대가 아니.... 백골음마나 만금대주가 자신들보다 못해서 광마에게 죽었을까?

잘한다.... 잘한다 해주었더니 아주 자신들 셋이 뭐라도 된줄 알고 광마를 찾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시체가 됐겠지....

"부질없는 호승심 따위에...."

청살마도는 낮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손안에 들린 청마도를 내려다봤다.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진 청마도.

전설속에나 등장하는 무림의 팔대신병 八大神兵에 버금간다는 칠대기병 七大奇兵중의 하나다.

고루, 혈삭, 괴검. 첩혈모 등과 함께 마도 魔刀라 불리는 기병.

이제 한 동안 피맛을 보지 못한 이 청마도가 광마라는 먹이의 목줄을 끊어놓을 것이다.

자신은 권절삼요처럼.... 아니  백골음마나 초 일처럼 그와 직접 부딪치지는 않을 것이다.

청마방의 모든 힘을 쏫아부어 광마가 지칠때까지....

자신의 청마도에 저항 할 수 없을때 까지 기다린 후....

천천히 광마의 전신을 저밀 것이다.

무인의 도리....?

웃기는 소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죽이고....

살아남는 자만이 강한 자다.

그리고 나는 강하다.

"청마단 靑魔團과 내외당의 모든 인원을 집결시켜라."

차가운 청살마도의 말에 진 오용이 흠칫놀란다.

드디어....

상처입은 맹수 사냥이 시작되는가?

* * * * *

온몸을 자극하는 뜨거운 기운에 군 자명이 눈을 떴다.

그리고....

똘망똘망한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군 자명이 눈살을 찌푸리며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고....

첨벙!

자신의 몸을 따라 떠올랐다 다시 떨어지는 물소리가 들린다.

그와 함께....

"어떠냐? 혜령아. 이 온천이라는 것이 너희 홍씨세가의 의술에 못지않은 효력이 있지않느냐?"

어딘가 모르게 으시대는 것 같은 목소리와 함께 뽀로퉁한 젊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흥! 어찌 우리 보잘 것 없는 보광장의 의술이 천지의 이치에 통달했다는 와룡가의 신산지모 神算知謨에 비할 수가 있겠어요?"

열두 가문....?

보광과 와룡이라는 말에 군 자명이 의생건을 쓴 여인을 돌아봤다.

어렴풋이 의식을 잃기전 보았던 깃발이 하나 떠오른다.

구민보광....?

설마 구민차?

"소저께서 저를 구해주신 것입니까?"

이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나오는 군 자명의 말에 홍 혜령이 대답한다.

"외상과 독상은 온천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해결했지만 내상은 아직 남아있어요. 천천히 요상하셔야 할 거예요."

군 자명이 홍 혜령과 제갈 식을 한 번 돌아본 후, 진기를 살짝 끌어올려본다.

윽....!

전신의 경혈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고생 좀 해야겠네....

씁쓸하게 웃으며 왼 팔목을 돌아보자....

응?

왼팔에 차고있던 마물이 보이지 않는다.

군 자명이 싸늘한 눈으로 두 사람을 돌아보고....

"이걸 찾으시는 것입니까?"

제갈 식이 비구 같은 모양의 쇠뭉치를 군 자명에게 건넨다.

군 자명이 묘한 눈으로 제갈 식을 보며 물건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왼 팔목에 쇠뭉치를 차는 군 자명의 귀에....

"설씨 입니까?"

생각지도 못했던 제갈 식의 말이 들렸다.

움찔....!

군 자명이 흠칫 놀라고....

황당한 눈으로 제갈 식을 봤다.

"그 섬광 閃光이라는 물건은 오래전 천수신장께서 처음 설계했다고 들었는데 정말로 만드시는 분이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 물건을 아시오?"

군 자명이 담담하게 묻고....

제갈 식이 씩씩하게 입을 연다.

"섬광.... 우리 가문에 그 섬광에 대한 기록이 조금 남아있습니다. 천수신장께서 목 계공 대협께 만약을 위해서 만들어주셨다고 기록 돼 있더군요. 정존 대협께서 그것을 사용하셨는지에 대한 것은 남아있지 않지만 아무튼 혈영과 실혼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만든 물건이라고...."

"그게 다요?"

군 자명 답지 않게 입밖으로 나오는 싸늘한 음성에....

"몇 가지가 더 있지만...."

제갈 식이 살짝 말끝을 흐리고....

홍 혜령이 야릇한 눈으로 제갈 식을 본다.

저 말 많은 제갈 오라버니가 말을 아껴....?

자신이 지금까지 경험한 제갈 식이라는 인간은 알고있는 모든 이야기를 가감없이 모두 뱉어내는 그런 사람이다.

남이 듣기 싫다고해도 끊임없이 떠들어서 상대를 피곤하게 만드는....

그런데 그 제갈 식이 말을 아껴....?

저 섬광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 하도록 합시다."

군 자명의 말에 제갈 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온천에서 몸을 뺀 군 자명이 천천히 걸음을 떼고....

"아직 움직이기에는 불편할 거에요."

홍 혜령이 군 자명을 만류한다.

"가야 할 곳이 있소."

담담한 말과 함께 군  자명이 다시 움직이려는 순간....

"제갈 오라버니를 데려다 준 후,  제가 모셔다 드리겠어요. 당분간은 저와 함께 있도록 해요."

홍 혜령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던 군 자명이 제갈 식을 돌아보고....

"어디까지 가시요?"

"저는 초혼산까지 갑니다."

군 자명의 물음에 제갈 식이 밝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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