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록-99화 (99/158)

쌍웅조우 雙雄遭遇8

담담하게 나오는 무적의 말에 세 노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그래야 하지.... 모름지기 남자라면 자신이 누군가 하는 것을 숨기고 살지는 않아야하지.... 그런데 이 무덤은 누구의 무덤인가?"

정말이지 처음보는 사이가 맞는지 의혹이 생길만큼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무적의 입가에 걸린 야릇한 미소가 더욱 짙어진다.

"내 아내와 친구의 무덤."

이번에도 역시 말꼬리를 잘라먹는 무적의 말과 별다른 신경도 쓰지않는 세 노인.

"아내와 친구....? 이런....! 어쩌다가 소중한 사람들을 잃게 된 건가?"

"아무래도 내가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을 확실히 끝내라고 피해준 모양이지...."

"피해줬다고....? 세상에 일을 끝내라고 죽어주는 사람도 있나?"

"그러게 말이야.... 굳이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그렇지....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인 것을.... 그런데 자네 손에 들린 그건 술인가?"

세 명의 노인은 마치 한 몸인 듯 서로 돌아가며 입을 열지만 오히려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왜 마시고 싶은가?"

그리고 노인들을 향해 이해하기 어려울만큼 자연스러운 무적의 대답이 나오고....

"아닐세. 내가 마시려는 것은 아니고.... 혹시 내가 무덤에 술 한잔 따라줘도 되겠나?"

노인의 입에서도 자연스러운 말이 흘러 나온다.

잠시 노인을 보던 무적이 술병을 건네고....

가운데 선 노인이 술병을 받아 무덤에 따른다.

가슴 앞으로 높게 뻗은 손에 들린 술병에서 무덤위로 술이 흘러 내리고....

"오....! 주향이 상당하군. 도대체 무슨 술인가?"

"몰라...."

"이런.... 이 좋은 술을 이름도 모르고 마시고 있었는가?"

"별로 중요하지도 않아."

"그래....? 그런데 지네는 한 잔 받지 않을 건가?"

"내게도....?"

"그래 어차피 죽은 사람에게 올리는 술인데 자네도 한 잔 받아야 하지 않겠나?"

무적이 술병을 든 노인을 보며 야릇하게 웃는다.

그리고....

"내가 죽은 사람으로 보이나?"

"벌써 죽지 않았나....?"

졸졸졸....!

차분하게 무적의 말을 받으며 노인이 무덤에 기대고 있는 무적의 발 앞에 술을 따랐다.

자신이 누워있는 바닥을 적시는 술을 보며 무적이 밝게 웃고....

"도대체 내가 죽었다는 것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건가?"

"어떻게 알았느냐고? 이런.... 자네는 지금 이렇게 우리를 보고있지 않은가?"

"하하하하!"

"허허허허!"

무적과 세 노인이 서로를 보며 재미있다는 것처럼 한참을 웃는다.

상대를 죽이겠다는 말을 저렇게 쉽게 하는 노인들과....

또 그말이 아주 재미있다는 것처럼 좋아하는 무적의 모습.

그리고....

"고맙군. 그런데말이야.... 원래가 죽은 사람을 보면 이렇게 술을 따라 주는가?"

"미안하잖아. 그리고 이제는 무덤을 돌봐줄 사람도 없을 건데...."

"그런 건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래....? 그런데 우리는 걱정이 되는 것을 어쩌나?"

무적이 세 노인을 찬찬히 훑어본다.

그리고....

"그렇게 걱정이 된다면 내가 묻는 말에 하나만 대답해주면 안될까?"

"묻는 말? 그래.... 죽어서도 궁금한 것이 도대체 뭔가?"

"어디로 가면.... 너희들을 모두 볼 수 있지?"

세 노인의 눈이 반짝인다.

그리고....

술병을 든 노인이 술병을 옆구리에 끼며 품속에서 장갑 한짝을 꺼내서 손에 낀다.

칙칙한 검은 빛이 감도는 얇은 가죽의 주위로 날카로운 쇳조각이 촘촘히 박혀있는 야릇한 모양의 장갑.

가운데 노인의 모습에 두 노인도 장갑을 꺼내서 끼고....

"그건 우리도 대답해주기 곤란한 질문이군.... 그런데 자네 말이야.... 일어나지 않고 계속 그렇게 무덤에 기댄 체 누워만 있을 건가?"

"내가 일어나면 너희들이 누워야 돼!"

차가운 말과 동시에 무적의 몸이 강시처럼 뻣뻣하게 일어나고....

빠르게 뻗어나오는 주먹과 함께 노인의 옆구리에 끼어져있던 술병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팡! 팡! 팡!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울리며....

무적의 얼굴을 때리는 강한 풍압과 함께 세 노인의 주먹이 무적을 향한다.

주먹보다 먼저 나오는 강한 권풍에 무적의 머리가 흩날리고....

우웅!

공기가 울리는 소리와 함께 무적의 지팡이가 사선을 그리며 움직인다.

퍽! 퍽! 퍽!

모래자루 치는 소리와 함께 세 노인의 몸이 뒤로 밀리고....

우웅!

다시 무적의 지팡이가 한 노인의 머리를 향한다.

흥!

싸늘한 콧웃음과 함께 노인이 두 주먹을 들어 무적의 지팡이를 막아가고....

빠자작....!

마른 호두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크윽....!

답답한 신음과 함께 노인의 손에 끼어져있던 장갑이 찢겨나가며 부서진 손마디의 뼈가 살을 뚫고 밖으로 튀어나온다.

그리고....

밀려나는 노인을 따라가는 무적의 지팡이와....

쨍그랑!

이제서야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술병의 요란한 소리가 들리고....

사방으로 뿜어져나가는 핏물과 함께 노인의 머리가 터져 나간다.

쉬익!

산산이 부서지며 터져나가는 노인의 머리와 동시에 무적의 등과 옆구리를 노리는 두 노인의 주먹이 날아오고....

턱!

머리가 터진 노인을 향해 앞으로 나갔던 무적의 발이 강하게 바닥을 차는 것과 동시에....

우웅!

팽이처럼 돌아가는 무적의 몸과 지팡이.

스윽!

밝은 대낮에 두 개의 달이 떠오르며 날아오는 주먹을 향하고....

퍽! 퍽!

묵직한 소리와 함께 두 개의 달이 사라진다.

그리고....

끄으윽....!

괴로운 신음과 함께 온몸의 뼈란 뼈는 모조리 부서진 듯 잘 개어놓은 이불처럼 접혀지는 노인과....

털썩!

부러진 두 팔을 늘어뜨린채로 맥없이 주저앉는 또다른 노인.

"이제 다시 물어보자.... 어디로 가면 너희들을 모두 만날 수 있지?"

* * *

딸꾹!

가 종덕의 딸꾹질 소리에 당 풍호가 힐끗 가 종덕을 돌아봤다.

"뭐 훔쳐 먹었어?"

이 여우새끼는....

가 종덕이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넌 저걸 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아?"

"나도 끔찍하다."

"그런데....?"

한 소리 하려던 가 종덕이 말을 멈췄다.

딱딱하게 굳어있는 당 풍호의 얼굴.

입으로 나오는 말과는 다르게 그도 자신만큼이나 놀란 것처럼 보인다.

하긴 누가 저런 걸 보고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두 노인의 온몸에 있는 뼈라는 뼈는 모두 잘게 부수고 있는 조 무적의 모습.

묻는 말에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상대의 뼈를 부수고 살을 저민다.

그리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두 노인.

"내 눈이 틀리지 않다면 저들은...."

"그래.... 권절삼요 拳絶三妖가 맞다."

가 종덕의 말에 당 풍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미치겠네.... 저 늙은이들이 죽지않고 기어나온 것도 기가 막힌데.... 어떻게 저렇게...."

죽지만 않았다면 이제는 절정의 경지에 들었을거라 여겨지는 전대의 고수.

하삭지방의 제왕이라고까지 불려지는 자들이 이 먼곳에서....

"조 무적이 잔인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건.... 너무 잔인해...."

신음처럼 나오는 당 풍호의 말에 가 종덕이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가.... 상대가 누구든 가리지를 않는다.

절정의 무공에 마두 魔頭라 불러도 무방할만큼 손속에 정이 없는 잔혹함.

거기에 더해서.... 천하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깊은 심기.

정말이지 가장 상대하기 거북한 재앙과도 같은 인간이다.

"그런데도.... 저렇게 잔인한 인간인데도 계속 지켜볼 거야?"

"그럼 어떡할 건데? 저 인간이 맺힌 한이 저렇게 깊은데...."

끔찍하다.

정말 저 인간이 저러다 둔도까지 휘두르며 미쳐서 날뛰면 그때는 어떡해야 하나....

* * * * *

관도를 따라 한참을 걷던 군 자명이 바닥에 쓰러져버린다.

제기랄....

온 몸이 아픈 정도가 아니라 기운이 하나도 없다.

억지로 일어서기위해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응....?

군 자명이 일어서려는 몸을 멈추고 관도에 엎드린채로 두 손바닥으로 땅바닥을 힘껏 눌렀다.

장심을 타고 전해지는 은은한 열기와 축축한 습기.

가까운 곳에 온천이....?

땅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은은한 열기와 습기가 멀지않은 곳에 온천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미약하지만 땅이 조금씩 울리는 것으로 봐서는 마차라도 한 대 오는 것 같기도 하다.

군 자명이 고개를 흔들었다.

마차가 오던 누가 오던 다른 것에는 신경쓰지 말자.

근처에 온천이 있다면 먼저 온천부터 찾아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자신의 몸을 맡길 곳도....

편히 쉬면서 상처를 돌볼 곳도 없다.

그런데....

천운인지 땅 속 깊은 곳에서 온천의 기운이 느껴진다.

온천이라는 것은 묘한 것이 되나서 알려지지 않은 공능이 제법 많다.

그중에서도 치유력 治癒力....

드물게 산중에서 늑대 같은 야생의 짐승들이 심한 상처를 입게 되면 온천을 찾아 온몸에 진흙을 묻히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을 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몇 차례 그런 행위를 되풀이하고 나면 상처가 아물고 몸이 회복된 짐승이 온천을 떠나는 것도 보게 된다.

도대체 온천의 어떤 성분이 상처입고 지친 몸을 낫게 해주는지는 모르지만 사람의 경우도 온천에 몸을 담구고 전신의 긴장을 풀어주게 되면 잔병뿐만이 아니라 심한 상처도 완화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래서....

군 자명은 지금 온몸의 기운이 없고 의식이 가물가물한 상태였지만....

젖 먹던 힘까지 모두 끄집어내서 몸을 일으켜 온천이 있을 법한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떨어지지 않는 왼 다리를 힘겹게 끌며 걷는다.

헉....! 헉....!

중독된 침점혈의 독은 뒤로 하더라도.... 옹귀의 몸통 공격에 전신의 근육과 뼈마디까지 모두 엉망이 된 건가?

왜 이렇게 걷는 것조차 힘이 든 것인가?

억지로 몇 걸음을 떼던 군 자명이 다시 주저앉는다.

그리고....

힘겹게 다시 일어나 몇 걸음을 움직이는 군 자명의 귀에....

"조심해요!"

날카로운 여인의 음성이 들리고....

이건 또 뭐야....?

멀쩡하던 땅바닥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자신의 얼굴을 때린다.

퍽!

군 자명이 힘없이 엎어지며 맨땅에 얼굴을 찢고....

의생건을 눌러 쓴 젊은 여인이 빠르게 날아와 군 자명을 안아 들었다.

흐릿한 군 자명의 눈에 아름다운 얼굴 하나와 그 얼굴의 뒤로 보이는 마차 한대가 들어온다.

구민....?

마차의 전면을 장식한 깃발에 커다랗게 적혀있는 구민보광 求民普光이라는 글자가 흐릿하게 변하며 군 자명의 두 눈이 감겨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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