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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마록-96화 (96/158)

쌍웅조우 雙雄遭遇5

헉....! 헉....!

가쁜 숨을 몰아쉬며 군 자명이 자신의 옆구리를 돌아봤다.

왼팔 아래로 자신의 옆구리에 박혀있는 비수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아이들의 장난감처럼 작은 손잡이를 한 앙증맞은 비수.

하지만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찔린 것인지....

숨도 쉬기 힘든 것은 둘째로 치고 온전신을 울리는 찌릿한 통증과 함께 기혈이 역류한다.

독인가....?

어이없다는 눈길로 꼬마를 보자 허리가 잘려져 죽은 꼬마가 아직도 자신의 오른팔에 메달리듯이 붙어있다.

익....!

짜증스럽게 꼬마의 손을 뜯어내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

오들오들 떨며 울고있는 두 아이에게 손짓을 한 후 천천히 일어나 등을 돌린다.

그리고....

덩그러니 멈춰 서있는 커다란 마차의 마부석에서 내려오는 마부가 눈에 들어온다.

방갓을 쓴 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마부가 방갓을 벗고....

탐스런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오는 위엄있는 얼굴이 나타난다.

하지만....

군 자명이 눈앞의 마부를 보던 눈길을 등뒤로 돌렸다.

왜 울음소리가....?

목이 째질 것처럼 울어재치던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는 군 자명의 눈에 생글거리며 일어서는 두 아이의 모습이 들어왔다.

뭐야....?

황당한 얼굴로 두 아이를 보는 군 자명의 귀에....

"놀랍군."

마부로 가장했던 노인의 입에서 감탄의 말이 나오고....

"그러게 말이야.... 동살 童殺이 실패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천진난만한 얼굴을 한 두 아이가 마부노인의 말을 받았다.

군 자명이 망치로 한대 맞은 것 같은 얼굴로 두 아이를 보고....

뚜두둑....! 뚜두둑....!

어긋난 뼈를 맞추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두 꼬마의 조그마한 몸이 점점 커지는 것이 보인다.

축골공 縮骨功....?

군 자명이 눈살을 살짝 찌푸리고....

"결국 우리가 직접 손을 쓰게 만드는군."

나직한 말과 함께 보통사람의 몸집으로 변한 아이들의 얼굴이 노인의 얼굴로 변한다.

역체변용술 易體變容術까지....?

큭큭큭....!

어린아이라고 경계하지 않았더니....

군 자명이 괴상한 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도대체 너희들은 누구지?"

"우리....? 모살 矛殺, 우리가 누구지?"

아이로 변신해 있었던 노인이 정말로 몰라서 묻는 것처럼 말하고....

"정신 나간 늙은이들 같으니라고.... 아이야, 노부는 모살이라고 한단다. 그리고.... 저 노망난 두 늙은이들은 유령이살 幽靈二殺이라고 하지. 마지막으로 네게 죽은 저 늙지도 못하는 늙은이는 동살이지.... 흔히들 우리 네 사람을 백살문의 사살이라고 부른단다. 너는 혹시 우리들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

"백살문....?"

군 자명이 평소의 그 답지않게 대화를 이어가려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아이야.... 너무 그렇게 애 쓰지 말거라. 네 몸에 박힌 비수에는 동살 늙은이가 즐겨 쓰는 칠점혈 七點血이라는 독이 발라져 있단다. 유혈목이라는 뱀의 피에서 뽑아낸 독이란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이 유혈목이라는 꽃뱀은 아주 지독한 두 개의 독을 지니고 있지. 그리고 너는 그 독에 중독되었고.... 아이야! 아마 너는.... 지금 칠점혈에 중독되서 온몸이 굳어가고 공력을 끌어올리기도 힘들 것이다. 그리고 네 왼발등도 비수에 관통돼 평소처럼 움직이기 힘들거고.... 우리가 이렇게 적당한 거리에서 기다리기만 해도 결국에 너는 죽게 될 것이다."

아이로 변신해 있었던 유령이살 중 한 노인의 말에 군 자명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진탕치는 공력을 안정시키기 위해 평소에는 하지 않던 구차한 짓까지 했는데....

오히려 시간을 끌 수록 자신에게 더 불리해진다는 노인의 말에 군 자명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아이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우리는 네가 죽을때까지 기다릴 인내심이 없구나."

모살이 마부석에서 한자루의 창을 꺼내 손에 쥐고....

"너처럼 뼈대가 굵은 아이의 뼈를 직접 부수며 손맛을 보는 것이야말로 우리 같이 할일없는 늙은이들에게는 그나마 남아있는 유일한 낙이란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으로 네게 직접 손을 쓸 수있는 기회를 주고자 한단다."

등 뒤의 유령이살이 모살이 하던 말을 이으며 두 손을 들어올린다.

그와 함께....

유령이살의 손에 달린 손톱이 갑자기 뺘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늘어나더니 손가락 하나는 될 것 같이 자라난다.

"아이야.... 이 절기는 유령조 幽靈爪라고 한단다."

마치 한광 寒光이 서린 칼날 같은 유령이살의 손톱이 군 자명의 눈에 들어오고....

슈욱....!

공기가 진동하는 소리와 함께 모살이 손에 들린 날카로운 창이 먼저 군 자명을 향해 날아온다.

빠르게 회전하는 삼각형으로 각진 창날의 주위로 회오리처럼 응집하는 기운이 느껴지고....

피윳!

군 자명의 검이 빠르게 모살의 창을 막는다.

쩡!

무거운 쇳소리와 함께 창의 힘에 밀려 허공으로 튕겨져 날아가는 군 자명과....

쇄액!

공기를 찢어 놓는 것 같은 소리를 동반하며 군 자명의 목을 향하는 유령이살의 손톱.

창의 힘에 튕겨져 허공으로 솟구친 군 자명의 몸이 뱅그르르 돌며 자신을 향하는 손을 향해 검을 뻗는다.

펑!

검과 부딪친 손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크윽!

괴로운 신음과 함께 노인의 기다란 손톱이 달린 손이 걸레처럼 너덜너덜하게 찢겨져 나간다.

"이살!"

놀란 외침과 함께 유령이살의 다른 한 노인이 몸을 틀어 군 자명의 옆구리를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찔러오고....

이살의 손을 부순 군 자명이 그대로 허공에 뜬채로 이번에는 자신의 옆구리를 노리는 손을 향해 검을 내려쳤다.

우웅....!

검을 향해 공기가 빨려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노인을 향해 내려오는 검과....

군 자명의 검을 무시하고 옆구리를 노리던 노인의 손이 벽에 막힌 듯 주춤 거린다.

그리고....

윽....!

마치 무거운 바위에 눌리기라도 한 것처럼 노인이 바닥으로 밀려 내려오고 두 손이 아래로 쳐진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듯이 커지는 노인의 두 눈.

"압경....?"

옹알이 같은 노인이 말과 함께 군 자명의 검이 노인의 앞으로 지나가고....

우두두둑....!

전신의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노인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진다.

탁!

빠르게 검을 휘두르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 군 자명이 오른발로 강하게 바닥을 차고....

다시 뛰어올라 손톱이 부러진 노인을 향해 몸을 날린다.

그리고....

피윳!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노인의 목을 향해 날아가는 군 자명의 검.

이익....!

눈앞에서 형제 같은 동료가 죽는 모습에 흥분한 노인이 너덜너덜해진 두 손을 뻗어 날아오는 검을 막으려하고....

스윽!

검이 지나가는 소리와 함께 잘려진 열 개의 손가락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고....

손가락과 함께 터져나오는 핏줄기 속으로 군 자명의 검이 다시 돌아오며.... 노인의 목으로 가는 혈선이 살짝 비친다.

"이 영악한 놈!"

잘려져나가는 손가락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모살의 분노에 찬 음성이 들리고....

군 자명의 등을 향해 강한 기운이 몰아친다.

동시에 노인의 목을 지나 되돌아온 군 자명의 검이 빠르게 뒤로 돌아가며 자신의 등을 노리는 강한 힘을 막아낸다.

쩌엉~~!

육중한 소리와 함께 창과 검이 서로 부딪치고....

갑자기 팽이처럼 회전하는 모살의 창.

빠르게 돌아가는 창의 회전력에 군 자명의 몸이 살짝 들어 올려진다.

그리고....

군 자명의 등 뒤로 나뭇가지가 부러지듯이 꺾여지며 흘러내리는 노인의 목이 보인다.

으아아!

분노한 모살의 창이 더 빠르게 회전하며 군 자명의 몸을 튕겨올리고....

퉁!

작은 소리와 함께 창에 튕겨서 허공으로 올라가는 군 자명의 모습과 함께.... 살짝 아래로 창을 당긴 모살이 빠르게 군 자명을 향해 창을 뻗었다.

슈욱!

강한 전사력을 담은 모살의 창이 막아서는 무엇이라도 뚫어낼 것처럼 군 자명의 몸을 향해 뻗어 올라가고....

창의 전사력에 떠밀려 팽이처럼 어지럽게 돌아가는 군 자명의 몸에서 조용히 검이 빠져나온다.

척!

서로 달라붙는 자석처럼 괴상한 소리와 함께 군 자명의 검이 모살의 창대에 붙고....

나뭇가지에 감겨서 또아리를 트는 뱀처럼 창대를 휘감으며 빠르게 아래로 내려온다.

아....!

깜짝 놀란 모살이 힘껏 창을 들어올려서 군 자명의 몸과 함께 던지고....

서걱!

무언가가 잘리는 소리와 함께 두 개의 손목이 팔에서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서늘한 감각속에 자신의 가슴을 향해 떨어지는 군 자명의 검이 보인다.

폭!

물이 가득 찬 물항아리에 빠르게 주먹을 넣었다 빼면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군 자명의 검이 모살의 가슴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고....

회전하는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굴러가는 군 자명.

털썩!

데구르르....!

몇 바퀴를 구르고 몸을 멈춘 군 자명의 눈에 허공으로 솟구쳤던 창이 떨어져 내리며 모살의 몸을 뚫는 것이 보인다.

퍽!

떨어져 내리던 창이 모살의 몸에 박히고....

순간적으로 모살의 몸이 움찔하더니....

곧이어 잠잠해진다.

하아....! 하아....!

군 자명이 바닥에 등을 붙이고 누운채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온몸이 부서지기라도 한 것처럼 꼼짝할 수도 없을만큼 격렬한 통증이 전신을 두드린다.

왼발의 은은한 통증과 함께 숨쉬기도 거북하게 만드는 왼쪽 옆구리의 통증.

그리고 퍼지는 독을 억누른 체 무리하게 공력을 쓴 탓에 기혈도 제 멋대로 날뛴다.

한심하게....

전신에 통증을 불러오는 상처에 군 자명이 스스로를 자책했다.

단순하게 아이를 앞세워 자신의 관심을 끈 후, 발등에 비수를 꽂아서 움직임을 둔화시킨다.

충분히 경계하고 막을 수 있는 평범한 암습이었지만.... 자신은 막지 못했다.

여인의 품속에 있는 아이가 걱정되서 정작 자신을 노리는 비수는 신경도 쓰지 못했다.

그리고....

그 동살이라는 자객.

어떻게 어린 아이의 몸으로 자신을 노릴 수 있었을까?

늙지도 못하는 늙은이라고....?

그건 또 무슨 소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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