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웅조우 雙雄遭遇4
* * * * *
"지금 장가표국이 자리 잡고있는 이 장원이 원래는 고 노인의 아들이 살던 곳 이었습니다. 그런데 고 노인의 아들이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이곳을 장 평에게 팔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후.... 그나마 남아있던 재산도 도박으로 모두 날리고 결국...."
"결국....?"
백리 단의 말을 듣고 있던 남궁 일평이 입술을 삐쭉히 내밀었다.
뒤에 따라 나올 말이 무엇인지는 능히 짐작이 되지만....
"병든 몸으로 구걸하다 굶어죽었습니다."
빌어먹을....
왜 항상 저렇게 결말이 나야 하는가?
정신차리고 다시 살아간다는 이야기는 없는 것인가?
"그런데 고 노인은 왜 아들이 굶어 죽을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나요?"
"당시 고 노인은 서안 西安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주위 사람들의 말로는 아들이 굶어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서안에 있는 딸에게 모든 재산을 넘겨주고 홀로 이곳으로 온 모양입니다. 그리고 표국의 하인으로 들어와 복수할 기회를 엿보다가....."
"아니.... 장 평이 이 집을 산 것 뿐인데 복수라니요?"
"그게...."
"괜찮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고 노인의 아들이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곳이 바로 장 평이 운영하던 도박장이라...."
장 평이 도박장을 운영했다는 말에 남궁 일평이 흠칫 놀란다.
아무리 파문제자라지만 어떻게 무애장에 몸 담았던 자가 도박장을....?
자신의 아버지가 장 평을 파문시키고 쫒아낸 것도....
한줌의 가치도 없는 인간과 친분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애장의 촉망받던 겸객이었던 남 혼이 이 먼곳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도....
그리고 고 노인이 복수를 위하여 살인을 한 것도 이제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기분이 더러운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가 더이상 해야할 일은 없겠지요?"
"예. 이공자님. 남 혼의 시신은 수습했으니 돌아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남겨진 저 미망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궁 일평의 말에 백리 단도 딱히 할말이 없었다.
여인을.... 그것도 남의 미망인을....
"인사는 하고 갑시다."
조용히 말하는 남궁 일평의 눈에 여인의 하얀 젖가슴이 살짝 스쳐지나간다.
정말 힘들고 난처한 일이 생기게 된다면 무애장으로 사람을 보내도록 하시오.
도울 수 있는 한은 반드시 와서 돕겠습니다.
마치 확약과 같은 말을 남기고 남궁 일평이 떠났다.
그리고....
아직 소복도 벗지 못한 여인이 슬픈 얼굴로 대청의 마루에 홀로 서 있었고....
"마님....!"
이제는 남아있는 사람도 몇 없는 넓은 장원에서 하인하나가 여인을 향해 다가왔다.
고 노인의 행동을 이야기 해줬던 바로 그 하인.
"시킨대로 했느냐?"
여인의 질문에 하인이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본 후 조그만 소리로 입을 연다.
"다른 시체를 하나 던져두고.... 어르신의 시체는 양지바른 곳에 묻어줬습니다."
"잘했네...."
힘없는 한 마디 말과 함께 여인이 하인에게서 등을 돌리고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아 벼루를 꺼내서 먹을 간다.
적당히 먹이 갈리고....
접혀진 종이를 꺼내 바르게 편 후....
천천히 종이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 주인께 올립니다.
.... 중략 ....
무애장에 직접 들어가는 것은 실패 했지만 한가닥 끈은 남겨뒀습니다. 향후 적당한 방법이 생기면 무애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시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막 씨의 상권은 아직 얻지 못했지만 유 총관을 대신할만한 사람을 남겨뒀습니다.
주인께서 모든 것을 이루시기를 기원하며....
한중에서 사상팔대의 고 홍란 올림. ---
고 홍란....?
유 홍란이 아니었던가?
* * * * *
군 자명의 눈에 관도의 중앙을 차지하고 오는 마차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걷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좁은 관도를 모두 차지한 것처럼 꽉 채우고 오는 마차의 행렬에 군 자명이 옆으로 살짝 비켜섰다.
기예단의 행렬인가?
형형색색으로 분장하고 마차를 호위하듯이 따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전형적인 기예단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황도에 있을 때는 곧잘 볼 수 있었던 기예단의 모습에 군 자명이 호기심을 느끼고 다가오는 행렬을 지켜봤다.
이런 시골에도 기예단이 오는구나....
어린시절 자신은 기예단이 오면 밥먹다가도 뛰어나가 마을의 꼬마들과 함께 기예단을 따라다니고는 했다.
그리고 그 시절 어린마음에 자신은 꼭 공을 굴리고 재주를 넘는 곡예사가 될 거라고 마음먹은 적도 있었다.
묘한 추억에 잠기는 군 자명의 눈에 기예단의 뒤를 따르는 꼬마들이 보였다.
시뻘게진 얼굴로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마차를 놓치지 않기위해 뛰어오는 꼬마들.
이 한적한 시골의 꼬마들에게 한없이 신기해보이는 기예단의 모습은 넋을 놓고 뒤따르게 하기에 충분할만큼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기예단을 어디까지고 따라가는 꼬마들의 모습에.... 이런 시골마을의 아이들이나 황도의 자신이나 다를 바가 없어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구쟁이처럼 활달한 세 명의 꼬마들이 분장한 곡예사의 흉내를 내며 따라가는 모습이 보이고....
마치 자신의 어린시절을 보는 것 같은 기분에 군 자명의 얼굴에 옅은 웃음이 떠올랐다.
분명히 저 아이들 중의 한 둘은 자신처럼 기예단의 곡예사가 될 거라는 마음을 먹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드물게 그 중 정말로 확고한 뜻을 세운 아이는 집을 나와 저 기예단의 뒤를 따를지도 모를 것이다.
그렇게 곡예사의 꿈을 이루거나 아니면.... 자신처럼 아버지에게 붙잡혀 반 죽거나....
아....!
어린 시절의 추억에 잠겨있던 군 자명이 깜짝 놀란다.
기예단의 뒤를 따르던 꼬마 하나가 돌부리에 걸린 듯 길가에 엎어지고....
파앗!
벼락 같이 몸을 날려 꼬마를 잡아 일으키는 군 자명.
"괜찮으냐?"
걱정스럽게 묻는 군 자명의 말에 꼬마아이가 울기 시작한다.
아아앙~~!
그리고 넘어진 아이의 무릎에서 피가 나는 것처럼 바지가 젖어 들어가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군 자명이 황급히 아이의 옷을 걷어보고....
"아정아....?"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겁에 질린 음성과 함께 젊은 여인 하나가 달려와 군 자명의 손에서 아이를 뺏어든다.
"그 손 놓으세요!"
차가운 여인의 말에 군 자명이 안쓰러운 얼굴로 아이를 잡은 손을 놓고....
"부인,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피윳!
군 자명의 말이 다 나오기도전에 야릇한 파공성이 들리고....
군 자명의 손에서 아이를 뺏어가던 젊은 여인의 손에서 한 자루 비수가 빠져나오며 군 자명의 발등을 찍는다.
퍽!
윽....?
묵직한 소리와 함께 군 자명의 발등을 관통하며 바닥에 꽂히는 비수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여인을 보는 군 자명과 빠르게 뒤로 몸을 빼는 젊은 여인.
비수가 발등을 둟는 순간, 검의 손잡이를 잡던 군 자명의 눈에 여인의 품속에 안겨있는 꼬마의 뒷모습이 보이고....
검을 뽑지도 못하고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여인을 보고만 있는 군 자명.
동시에....
마차의 양옆에서 걸어가던 기예단의 곡예사들이 갑자기 몸을 돌려 군 자명을 향해 덮쳐왔다.
어디에 감춰뒀던 것인지 보이지도 않던 검이 차가운 빛을 발하며 군 자명을 향하고....
싸늘하게 변하는 표정과 함께 군 자명의 검이 움직인다.
서걱! 서걱!
고기 자르는 소리와 함께 곡예사들의 머리가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고....
군 자명의 발등에 꽂혀있던 비수가 누가 뽑는 듯 저절로 튕겨나온다.
그와 동시에 몸을 빼는 젊은 여인을 향해 군 자명이 발을 떼려는 순간....
"멈춰!"
뿜어져 나오는 곡예사들의 핏줄기 속에서 여인의 날카로운 음성이 들리고....
군 자명의 눈에 품속의 꼬마아이에게 비수를 겨누는 여인의 모습이 들어온다.
그리고....
으아아앙!
경기라도 하는 것처럼 격하게 몸을 떨며 울음을 터트리는 꼬마아이와 바닥에 주저앉은 체 오들오들 떨며 우는 다른 아이들.
군 자명이 젊은 여인을 똑바로 쳐다보고....
"아이를 내려두고 그냥 가라. 너는 죽이지 않고 살려보내주마."
차갑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흥!
싸늘한 콧웃음과 함께 뒤로 몇 걸음 물러서는 젊은 여인.
"애를 내려놔!"
비수에 관통된 다리를 끌며 다시 한 번 군 자명의 차가운 말이 나오고....
타악!
강하게 발을 굴리며 빠르게 뒤로 몸을 날리는 여인.
피잇!
여인의 움직임과 함께 휘파람소리 같은 것이 들리고....
허공에서 몇 번 움직이던 여인의 목이 미끄러지듯이 흘러내린다.
푸악!
여인의 목을 뚫고 솟구치는 핏줄기와 함께 군 자명이 빠르게 몸을 날려 꼬마아이를 안아들고....
"이제 괜찮....!"
꼬마를 안아들며 입을 열던 군 자명이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갑자기 아이를 밀쳐낸다.
하지만....
군 자명의 오른 팔에 칡넝쿨처럼 매달리며 떨어지지 않는 꼬마아이.
왼손으로 꼬마아이를 떨쳐내려해도....
옥죄여오는 아이의 힘에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그리고....
언제 꽂힌 건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옆구리에 꽂혀있는 비수 하나.
숨도 쉬기 힘든 통증과 함께 왼손을 뻗어내기도 힘들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오른팔을 내려다보는 군 자명의 눈에 사악하게 웃고있는 꼬마아이의 얼굴이 들어오고....
꼬마아이의 손에 들린 또다른 비수 한자루가 파릿한 빛을 뿌려낸다.
이건 아이의 얼굴이 아니다!
꼬마아이의 웃음에 흠칫 놀란 군 자명의 왼손이 살짝 꼬마를 가리키고....
파악!
괴상한 소리와 함께 꼬마와 군 자명이 서로 떨어진다.
아니.... 서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꼬마아이의 하반신이 떨어져나가며....
후두둑....!
굵은 빗물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꼬마아이의 잘려진 허리 밑으로 창자와 핏줄기가 쏫아져 내린다.
털썩!
그리고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는 군 자명과....
힘없이 목이 꺽이는 꼬마아이와 바닥으로 떨어지는 작은 비수.
땡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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