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死商7
웃!
눈을 뜰 수도 없게하는 찬란한 빛이 사라지고....
타말의 눈에 힘없이 쓰러지는 신녀가 보인다.
"신녀님!"
놀란 타말이 빠르게 몸을 날리고....
쿨럭!
흔들리는 내기에 한웅큼의 피를 토하며 황급히 신녀를 안아드는 타말.
고작 몇 걸음을 움직였다고 몸이....?
부서질 것 같은 고통과 함께 전신의 혈맥이 모두 끊어지는 것 같다.
이몸으로 어떻게 혈영을....
당황스러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눈에....
빈 공간이 일그러지며 몇 개의 작은 깃발이 나타난다.
제갈 식....?
* * * * *
서탁에 단정하게 앉아서 몇 통의 서찰을 적고 있는 노인.
빠르게 편지를 쓰고 접어서 옆으로 치운 후, 다시 새로운 글을 쓴다.
그렇게 서탁에 수북하게 편지가 쌓이자 노인이 붓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두 손 가득 작게 접어놓은 편지를 들고 방문을 여는 노인.
꺄아악!
푸드득~~!
방문이 열리고 노인의 모습이 보이자 반갑게 울며 날개짓을 하는 많은 수의 매가 보인다.
피처럼 붉은 대막의 혈응.
"착한녀석들.... 수고 좀 하거라."
마치 자식에게 하는 것처럼 다정한 말과 함께 혈응의 부리를 일일이 만져주고....
작게 접은 편지를 혈응의 다리에 매달린 연통에 하나하나 집어넣는다.
그리고....
푸드득....! 푸드득....!
힘찬 날개짓과 함께 붉은 매가 하나 둘 하늘로 오르고....
잠시 동안 하늘로 올라가는 혈응의 모습을 지켜보던 노인이 다시 방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서탁옆의 책장에서 두꺼운 책 한권을 꺼내서 무엇인가를 적기 시작한다.
젊은 시절 아버지로부터 처음 받은 날부터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쓰고있는 일기.
그렇게 한자 한자 정성들여 일기를 적어가던 노인의 손이 갑자기 멈춰선다.
이건....?
당혹스러운 표정과 함께 노인이 벌떡 일어나 빠르게 방문을 연다.
방문을 열고 나오는 것과 동시에 마당을 가로질러 몸을 날리고....
자신이 머물던 작은 별채를 둘러싼 숲을 뚫으며 커다란 대청으로 뛰어 들어간다.
그리고....
"부인!"
다급한 고함소리와 함께 대청에 딸린 방문이 열리고....
아....!
노인이 방문을 열어놓은 체 순간적으로 그자리에 굳어버린다.
부서진 화장대의 거울과 쓰러져있는 여인.
"부인....?"
다시 노인의 입에서 놀란 외침이 나오고 빠르게 여인을 안아든다.
울컥....!
힘없이 들려지는 여인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터져 나오고....
"그 아이.... 그 아이를 잡아요...."
힘겨운 한마디와 함께 여인이 의식을 잃는다.
아....?
품속의 여인을 보는 노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자신의 아내가....
아니.... 마안의 얼굴이....?
그 화려하던 마안의 얼굴이 무수한 주름으로 뒤덮여있다.
피를 토하는 아내의 모습과 바닥에 널부러져있는 부서진 마경 魔鏡의 잔해.
마안의 상징과도 같은 마경과 주안술 朱顔術이 깨졌다.
섭혼마공의 기반이 되는 주안술이....
* * * * *
외롭개 솟아 있는 두 개의 봉분.
마치 가매장한 봉분처럼 무덤위를 덮고 있는 풀도.... 묘비도 보이지 않는다.
"이 무덤인가....?"
터져나오는 무언가를 억지로 참는 것 같은 무적의 말이 나오고....
당 풍호와 가 종덕이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완쪽이 조 대협의 부인이시오...."
당 풍호의 말에 무적이 영영의 무덤을 멍하니 봤다.
여기서 쉬고 있었나....?
길 평과 함께 잠들었어니 외롭지는 않겠구나....
"왜 여기에 묻어줬나?"
"특별한 이유는 없소.... 단지 초혼산을 올라가는 길목이고.... 왠지 아곳에서 조 대협을 기다릴 것 같아서...."
무적이 가만히 두 사람을 돌아보고....
당 풍호와 가 종덕이 미안한 것처럼 고개를 돌려버린다.
만약 자신들이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묘도 아니고.... 묘비도 하나 세워주지 못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지만....
"왜 나 때문에 이들이 죽었다고 한거지?"
"모르겠소. 단지 그런 기분이 들었소.... 당신에게 짐이 되지않을까? 그런 마음이 느꼈졌었소...."
무적이 당 풍호를 가만히 봤다.
자신에게 보이던 희미한 호의가 저거였나?
길 평과 영영의 죽음을 본 저 자가 내게 한 가닥 호의를 느꼈던 건가?
아니.... 어쩌면 동정일지도....
우습다.
왜 나 같은 놈에게....
"그대들은 왜 이곳까지 온건가?"
휴우....!
무적의 물음에 당 풍호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곽가장주의 시신을 검시했었소. 그리고 그 잔인한 손속에 분노했고.... 그렇게 조 대협의 뒤를 따르며 더 이상 살인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려고했소. 하지만...."
"하지만....?"
"어렴풋이 조 대협의 사정을 알게되고 .... 조 대협이 이곳으로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곳으로 오게 된 거요."
"지금도 내가 살인을 못하게 막고 싶은가?"
막고 싶다고 막아질까?
당 풍호가 무적의 얼굴을 보며 나지막하게 입을 연다.
"모르겠소...."
잠시 말을 멈추고 두 사람을 쳐다보던 무적이 이번에는 가 종덕에게 말을 건넨다.
"소 을목 어른께서는 잘 계시오?"
아....!
지금까지 자신들에게 하대를 하며 적대감을 보이던 무적이 예를 보인다.
은원이 확실한 성격이라더니....
풍개가 해주었던 말이 떠오른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는 아니다.
다만 은원에 대한 그 지랄맞은 성격이....
"잘 계십니다."
"혹시라도 뵙게되면 고맙다고 하더라고 전해주시겠소?"
"그렇게 하지요."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 수 있겠소?"
"부탁이요....?"
무적이 풀도 입히지 않은 붉은 봉분을 돌아봤다.
"소문 하나만 내주십시오. 광마가 이곳에.... 초혼산에 있다고...."
아....!
당 풍호와 가 종덕이 짧은 신음과 함께 서로를 돌아봤다.
* * * * *
남궁 일평이 손안에 들린 찻잔을 내리고 소복을 입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봤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가진 바 능력이 부족해서.... 부인의 한을 풀어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본가에 보낼 편지를 좀 쓰야 할것 같은데.... 지필묵을 좀 준비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예."
차분한 대답과 함께 여인이 나가고....
남궁 일평이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처음 이곳으로 와서 남 혼의 상처를 보는 순간 부터 알 수 있었다.
남 혼의 몸에 난 상처는 절대로 남 혼을 죽일 수 있는 자의 솜씨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백리 단도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면 능력도 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남 혼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일까?
막가장이 아닌 바로 이곳에 흉수가 있을 거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리고 그 흉수는....
자신을 이곳으로 불러들인 자.
바로 저 아름다운 여인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과 함께 떠오른 또 다른 의문.
그런데 왜 자신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인 것인가?
무애장이 이곳으로 오면 오히려 불편하지 않은가?
아니면....
막가장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무엇인가를 얻기위해서....?
어쨌던 남 혼의 죽음과 관련된 모든 것을 알기위해서는 막씨세가부터 가보기는 해야했고....
그렇게 두 사람은 남 혼의 시신에 남겨진 상흔에 대해서는 모른척 했다.
그런데....
남궁 일평은 눈앞으로 떠오르는 무적의 모습에 고개를 흔들었다.
도저히 자신이 어떻게 해 볼 수도 없는 엄청난 고수.
아마 남 혼도 그자에게 패했을 것이다.
그리고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아니.... 의식이 있었을 수도 있었는가?
아무튼 그렇게 운신하기도 힘든 상태에서 흉수의 칼을 맞았다.
평소의 남 혼이라면 절대로 맞을 수가 없는 상대의 칼을....
남궁 일평이 남 혼의 상처를 가만히 되짚어봤다.
오른쪽 목을 타고 내려온 검상이 가슴을 따라 왼쪽 옆구리까지 내려왔다.
오른손에 칼을 쥐고 바깥으로 당겼다면....
분명히 왼쪽 가슴까지 칼이 오게되면 칼자국이 엺어져야 한다.
사람의 팔이라는 것이 자신의 몸에서부터 멀어지게 되면 당연히 처음 칼을 찌른 곳에서부터도 멀어지게 되어있다.
그런데 남 혼의 상처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깊이다.
분명히 상흔으로 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힘의 안배를 하며 상대를 자를만한 자의 솜씨가 아니었다.
아니.... 그 정도의 고수라면 애당초 목의 경동맥을 건드린 순간 바로 칼을 거둘 것이다.
굳이 가슴아래 까지는....
그렇다면 의심할 수 있는 것은 왼손잡이다.
왼손에 칼을 들고 오른쪽 목에서 왼쪽가슴까지 자신의 몸안으로 당기면서 칼을 사용했다면....
어슬픈 솜씨로 움직이지 못하는 남 혼을 눕혀둔 체 칼을 썼다면 왼쪽 가슴까지 내려온 상처가 엺어지지 않을 것이다.
고기를 자르듯 일정한 깊이로....
첫날 봤던 남 혼의 상처가 말해주는 흉수에 대한 단서.
그리고 이곳에서 자신의 남편과 남 혼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저 여인밖에는....
이제 저 음탕해 보이는 미망인이 왼손잡이인지만 확인하면 된다.
백리 단이 막 씨와 장 평의 관계를 확인한후 돌아오면 그녀의 죄를 묻고 이 일을 끝낼 것이다.
왜 우리를 불러들였는지도....
남궁 일평이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하며 식어버린 찻잔을 다시 들었다.
그리고....
여인이 다시 들어왔다.
여인의 뒤를 따라 어린 여종이 지필묵 紙筆墨을 들고 들어오고....
남궁 일평이 붓과 종이를 받아든다.
"고맙구나. 가져온 것은 여기다 놓아두거라."
어린 여종이 먹과 벼루를 내려두고 물러가자 여인이 조용히 먹과 벼루를 챙긴다.
"먹을 갈아 드릴까요?"
"고맙습니다."
문인묵객 文人墨客이 글을 쓸 때는 대부분 따르는 서동이 먹을 갈고 붓을 씻어준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이 권력이 되는 세상.
그리고 권력의 속성이라는 것이 타인의 자유와 의지를 구속하는 것이라면....
글을 쓰는 권력자는 글만 쓰면 된다.
지금 남궁 일평이 여인에게 먹을 갈아달라고 할 수 있는 것처럼....
종이를 펼쳐놓은채로 붓을 든 남궁 일평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왜 저 여인은....?
자신을 유혹하는 것인가?
벼루에 먹을 갈기위해 몸을 숙이고 있는 여인의 하얀 가슴이 그 굴곡을 다 보여준다.
설마 자신을 유혹하기위해서 이 모든 일을 꾸민 것이란 말인가?
그리고....
오른손으로 먹을 간다.
왼손잡이가 아니다.
저 여인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군가?
이곳에서 저 여인외에 또 누가 있어.... 의식을 잃은 장 평과 남 혼을 살해 할 수 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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