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록-84화 (84/158)

사천강 四天降3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남궁 일평의 말에 여인이 그를 잠시 쳐다본 후 다시 입을 연다.

"예. 저희 아주버님은 아직 의식이 없으시고 다른 분들은...."

"모두 떠났나요?"

"네."

"죄송합니다. 힘드실 건데 자꾸 이것저것 물어봐서.... 장례는 어떡하실 건지....?"

물어봐야할 사항을 모두 물어본 남궁 일평이 미안한 듯 고개를 살짝 숙여보인다.

"어떡해야 할까요?"

그리고.... 그런 남궁 일평의 태도에 장 평의 아내가 도리어 의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되물었다.

"장례를 치르도록 하십시요. 그리고 뒷일은 저희들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꼭.... 꼭 제 남편과 남 혼 대협의 원한을...."

여인이 남궁 일평을 향해 절이라도 하는 것처럼 허리를 깊숙히 숙인다.

그리고....

여인의 숙여진 상체 옷깃사이로 뽀얗고 탐스러운 젖가슴이 그 모습을 살짝 드러낸다.

짧은 순간 남궁 일평의 눈빛이 반짝이고....

"걱정하지 마십시요. 그런데.... 그 의식이 없다는 아주버님 되시는 분도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네. 그렇게 하세요."

* * *

의식을 잃은 체 입으로 침을 흘리고 있는 장 표두를 내려다보는 남궁 일평의 얼굴이 엉망으로 찡그려진다.

"이건....?"

"도대체....그 막씨세가라는 곳에 누가 있는 것일까요?"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장 표두의 모습을 본 백리 단도 남궁 일평과 마찬가지로 잔뜩 찌푸린 얼굴로 놀라서 묻고....

"고수임에는 틀림없겠지만.... 너무 잔인해요...."

백리 단의 물음에 남궁 일평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조심스런 백리 단의 물음에 남궁 일평이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 표두란 자의 상태로 볼때 상대는 이미 상당한 경지에 이른 내가고수다.

몸의 다른 곳에는 단 하나의 상처도 없고 오로지 눈밑의 짙은 피멍만이 머리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짐작케 해준다.

단 일수에 상대를 백치로 만들어버리는 잔인한 성격과 깔끔한 수법.

그런데....

장 평과 남 혼.... 그리고 함께 갔던 표사들의 몸에 난 상처는 도저히 내가의 상승수법이 아니다.

마치 하류잡배.... 아니 뒷골목 건달처럼 힘으로 그어놓은 것 같은 상흔.

이만한 고수가 그렇게 엉망으로 칼을 쓴다고....?

말도 안되는....

"먼저 사건의 발단이 된 막씨세가라는 곳부터 가보죠. 일단 그곳부터 다녀온 후...."

가볍게 고개를 흔드는 남궁 일평의 눈에 아름다운 여인의 하얀 가슴이 살짝 떠오른다.

고작 여인의 가슴에 흔들리다니....

* * * * *

깍지를 낀 손을 머리 뒤로 하고 침상에 누워있던 군 자명의 고개가 살짝 들린다.

그리고....

군 자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침상을 내려온 후 한쪽에 놓여있는 비구처럼 생긴 쇠뭉치를 왼팔에 찬다.

살짝 손을 흔들어본 후 탁자 옆에 세워둔 자신의 검을 손에 들고....

방문을 열고 복도를 따라 걸어나간다.

몇 걸음을 떼고 복도의 끝에 위치한 일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의 앞에서 군 자명이 멈춰서고....

드디어 왔는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군 자명의 눈에 넓은 주루의 일층이 한가지 색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보인다.

잡티하나 없는 검은 색의 무복이 보여주는 싸늘함과 함께....

이층의 복도 끝에 선 자신을 올려다보는 수십 쌍의 눈길이 느껴진다.

후우....!

군 자명이 깊게 들이마신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계단으로 한발을 내 딛었다.

복도를 따라나와서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의 끝에 서는 군 자명의 모습에 두 노인이 얼굴이 살짝 찌푸려진다.

이질감....

대장간에서 느꼈던 그 알수없던 이질감이 다시 한 번 느껴진다.

뭘까....?

전신을 자극하는 알수없는 이질감에 인상을 찡그리는 두 노인의 눈에 상대가 계단을 향해 첫발을 떼는 것이 보이고....

좌수검 左手劒?

상대의 오른 손에 들린 검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군 자명이 첫번째 계단을 밟는 순간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한자루의 비수.

슈욱!

은은한 공기의 파동과 함께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이 얼굴을 건드린다.

군 자명의 고개가 살짝 움직이고....

꽝!

망치로 벽을 부수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군 자명을 빗겨간 비수가 객점의 이층 벽을 뚫고 들어간다.

슈욱!

또다시 들리는 파공성과 함께 이번에는 자신이 가슴을 향하는 한 자루의 비수가 눈에 들어오고....

군 자명이 살짝 한발을 떼며 가슴을 비틀어 비수를 피한다.

빡!

둔탁한 소리와 함께 비수가 객점을 지탱하는 커다란 대들보에 가서 박히고....

우르르....!

대들보를 뚫는 비수의 힘에 객점이 흔들린다.

그리고....

테엥!

야릇한 쇳소리와 함께 두자루의 비수끝에 달린 차가운 쇠사슬이 팽팽히 당겨진다.

마치 군 자명의 몸을 자르기위해 벌려진 가위 같은 모양의 쇠사슬.

눈앞의 쇠사슬을 치우기 전에는 군 자명이 몸을 움직이기도.... 아래층의 상대를 공격하기도 어려운 형세가 만들어지고....

파앗!

일층에서 기다리던 무인들이 두개의 쇠사슬에 갇힌 듯한 군 자명을 향해 빠르게 솟아오르고....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한 군 자명의 왼손이 살짝 움직인다.

쉿~~!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 노력해야 들을 수 있는 것 같은 작은 소리.

꿈결 같은 작고 야릇한 소리가 객점안을 울리고....

군 자명을 향해 솟구쳤던 무인들이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조용히 바닥으로 내려선다.

그리고 정적....

숨소리 하나 들리지않는 정적속에서 두 노인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군 자명을 올려다봤다.

저 왼손....

가볍게 움직인 저 왼손은 분명히 검을 뽑지 않았다.

그런데 팔뚝에 찬 비구에서 살짝 보이던 그 반짝임은....?

타앙!

갑자기 정적을 깨는 소리와 함께 팽팽하게 당겨져있던 쇠사슬이 터지듯이 잘려나간다.

그리고....

잘려진 얼음처럼 미끄러져 내리는 머리.

바닥에 내려섰던 무인들의 목에 가는 선이 생기며 미끄러지듯이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파앗!

뒤이어 솟구쳐올라오는 핏줄기.

꽈앙!

갑작스럽게 문을 뚫는 소리와 함께 객점 밖으로 튕기듯 나가는 두 노인과....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두 노인을 따라 몸을 날리는 군 자명.

피윳!

두 노인을 따라 객점 밖으로 몸을 날리는 군 자명의 귓전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한 자루의 비수가 자신을 향한다.

객점안에서 자신을 향해 날아오던 비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강맹한 기세가 느껴지고....

튕겨나가는 속도 그대로 군 자명의 왼손이 검집을 잡고 오른손으로 검을 뽑는다.

땅!

비수와 검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비수를 튕겨낸 군 자명의 몸이 바닥으로 내려서고....

군 자명의 두발이 바닥에 닿는 바로 그 순간....

피윳!

다시 한 자루의 비수가 날아오고....

쩌르릉!

괴상한 소리를 내며 군 자명의 검이 빠르게 비수를 막는다.

쩡!

군 자명의 검에 막힌 비수가 산산히 부서져 날아가고....

당황해하는 노인을 향해 군 자명의 왼손이 살짝 움직인다.

쉿!

다시 야릇한 소리가 들리고....

군 자명이 눈앞의 상대를 버려두고 몸을 돌려 한쪽에 있는 다른 노인을 향해 몸을 날린다.

뭐야....?

상대의 검과 부딪친 형제의 비수가 부서지고 얼음처럼 굳어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몸을 돌려 날아오는 상대의 무표정한 얼굴이....

빠르게 뒤로 물러서며 쇠사슬에 달린 비수를 군 자명을 향해 휘두르고....

자신이 날린 비수를 무시하고 날아오는 군 자명의 등뒤로 스르르 흘러내리는 형제의 머리가 보인다.

그리고....

윽....?

자신의 목을 건드리는 서늘한 느낌.

경험해본적이 없는 차가운 느낌과 함께....

의식이 끊어지며 눈앞으로 짙은 어둠이 내려온다.

착!

괴상한 소리와 함께 왼손의 비구에 무엇인가가 날아와 달라붙는 느낌이 든다.

마물 魔物....

군 자명이 자신의 왼손으로 돌아온 것을 내려다봤다.

짧은 시간동안 수많은 사람의 목을 자르고도 피한방울 묻히지 않은 마물.

하아....!

답답한 한숨과 함께 군 자명이 부서진 객점의 문을 돌아봤다.

잘하는 짓인지....

* * * * *

객점의 주인이 얼이 빠진 얼굴로 객점을 가득 채우고 있는 시체를 둘러봤다.

시체를 치울 수도 그렇다고 놔둘 수도 없다.

치우고 청소라도 하자니....

다시 올 무림인이 두렵고....

그냥 두자니....

이곳에서 더이상 살 수가 없다.

자신의 삶의 터전인 객점이....

멍하니 널부러진 시체를 보는 객점주인의 눈에 부서진 문을 밀치고 들어오는 포졸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

어떻게 포졸들이 이렇게 빨리....?

무림이 일에는 보여도 못 본 것처럼 관여하지도 않는 관에서 도대체 왜 이렇게 빨리 온 건가?

욱....!

목이 잘려나간 시체의 모습에 입을 막는 포졸들의 뒤로 묘하게 생긴 자가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수염하나 보이지 않는 하얀 얼굴에 하늘거리는 걸음걸이.

내시....?

"이 인간이 어디로 간다고 했는지 혹시 들은 것 없어?"

당혹스러워하는 객점주인을 향해 내시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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