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강 四天降
산적에게 잡혀 포대자루에 갇혀있던 놈을 기껏 구해줬더니....
조상 중에 말 못하고 죽은 귀신이라도 있는 것인지 조잘거리면서 한다는 짓이 자신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
멀쩡한 사람이라도 눈앞에서 저렇게 손을 흔드는 것은 해서는 안될 엄중한 실례이거늘....
하물며 앞못보는 장님의 눈앞에서 놀리는 것처럼 손을 흔드는 짓은....
"그 손목 잘라버리기 전에 치워!"
평소의 진중한 타말 답지않은 반응에 오히려 신녀가 놀란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며 등 뒤로 손을 숨기는 제갈 식.
"아....! 보이시는군요.... 눈동자가 없어도 보인다면.... 혹시....?"
"혹시 뭐?"
"전설속의 천안통 天眼通이라도 익히신 것입니까?"
불쑥 튀어나오는 천안통이라는 말에 타말과 신녀가 흠칫 놀란다.
정말 이놈 뭐야?
천안통을 알아보는 놈이 산적따위에게 잡혀....?
"쓸데없는 소리말고 왜 저 포대자루안에 들어가 있었던 거냐?"
"정말 모르겠습니다. 저 인간들이 배가 고파서 저를 잡아먹으려고 한 건지...."
"잡아.... 먹어?"
기가막히다는 것처럼 나오는 타말의 말에 제갈 식이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네."
타말은 당당하게 말하는 제갈 식을 멍하니 쳐다봤다.
분명히 죽다 살아난 놈이 맞는가....?
두려움도....
긴장감도 없다.
그리고 단번에 천안통을 알아봐....?
"그런데 두분은 어디까지 가시는지....?"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반짝이며 묻고있는 제갈 식의 모습에 타말의 미간이 엉망으로 찡그려졌다.
아무것도 없는 이 삭막한 땅에 저렇게 별다른 준비도 없는 복장으로 산적들의 손에 잡혀있었다.
사막을 넘을 생각도.... 아니 근처에 사람이 쉴 만한 장소도 없는 이곳에서 저런 도성에서나 입을 만한 평범한 복장이라....
그리고 자신의 천안통을 알아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는다.
좋지 않다....
타말이 신녀를 돌아보자 그녀도 자신과 같은 생각인듯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젊은 친구, 아무래도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인듯 하네."
타말이 제갈 식의 말을 끊고 몸을 돌린다.
그리고....
제갈 식을 뒤로하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신녀와 타말.
"이봐요....? 같이 가요!"
아직도 바닥을 기고있는 산적들을 힐끗 내려다본 제갈 식이 큰소리로 외치며 황급히 두 사람의 뒤를 따른다.
뭐가 저렇게 빨라....?
분명히 두사람이 발걸음을 떼고 자신도 곧바로 따랐다.
그런데....?
점점 멀어지는 두 사람의 모습.
몇 걸음 걷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잘 보이지도 않는다.
미치겠네....
딱히 경공을 쓰는 것 같지도 않은데....
제갈 식이 이빨을 악물었다.
그리고....
헉....! 헉....! 헉....!
얼마나 뛴 건가?
차 한잔 마실 시간도 안된 것 같은데....
빌어먹을....
급격하게 숨이 차오르고 눈앞으로 별이 보인다.
그리고....
어지러워....
휘청거리며 중심을 잡지 못한 제갈 식이 몇 걸음을 뒤뚱거리더니....
털썩!
결국 바닥에 쓰러져버리는 제갈 식.
사막의 거친 흙이 얼굴에 와닿는 느낌과 함께 제갈 식의 눈이 스르르 감긴다.
죽겠네....
"망할!"
거칠게 나오는 타말의 말에 신녀의 두눈이 빙긋이 웃는 것처럼 보인다.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같이 가요."
미안한 듯 살짝 고개를 숙이는 타말의 귀에 신녀의 작은 음성이 들린다.
"버려두면 정말 죽을지도 몰라요."
"네."
두 사람이 가볍게 몇 번 몸을 날리자 사막의 한가운데에 햇빛에 말라버린 개구리처럼 뻗어있는 제갈 식의 모습이 보인다.
비록 뜨거운 태양아래라고는 하지만.... 도대체 얼마나 걸었다고 이 모양으로....
타말이 가벼운 한숨과 함께 제갈 식을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응....?
자신의 손안에서 또렷하게 느껴지는 제갈 식의 뻣뻣하게 굳어있는 몸.
설마....?
벌써 죽지는 않았을 건데....
타말이 재빨리 제갈 식의 뒷목과 어깨를 주무르고 몇 군데 혈도를 건드려본다.
아....?
제갈 식의 혈도를 건드리다말고 당황한 얼굴로 신녀를 돌아보는 타말.
"왜요?"
"이 유생...."
선뜻 말을 잇지 못하는 타말의 모습에 신녀가 제갈 식의 맥문을 잡는다.
아....!
"맞습니까?"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여는 타말의 모습에 신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네. 신맥이 맞아요. 아마...."
신녀가 말을 다 잇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 봤다.
눈부신 태양빛에 가려 똑바로 보기도 힘든 하늘.
하지만 밤이라면....
천살성 天殺星의 지독한 살기 뒤에 몸을 숨긴 흐릿한 천기성 天機星의 빛이 보일 법도 하련만....
정말 세상의 인연이라는 것이....
신녀가 제갈 식의 얼굴을 가만히 봤다.
* * * * *
"아니.... 사람을 불렀으면 얼굴을 보여주기라도 해야지.... 명색이 천하제일대방의 방주씩이나 되는 분이 사람을 불러놓고.... 야....! 가 종덕!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투덜거리는 당 풍호의 모습에 가 종덕이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어쩌자고 저 인간을 또....
가 종덕이 억장이 무너질 것 같은 심정으로 당 풍호를 쳐다보며....
자신을 서안까지 오도록 만든.... 정말이지 꿈에서도 보기싫은 자신의 방주를 떠올렸다.
안 오면 죽인다고....?
기가 막혀서....
서안으로 와서 광마에 대한 이야가를 상세하게 보고하고 한가지 할 일이 있다는 개방주의 전갈에 남경의 주인이 바뀐 일을 핑계로 못간다고 버텼다.
내가 미치지도 않았는데 왜 서안까지....?
괜히 그곳까지 갔다가 늙어 죽을때가 되서 노망난 방주에게 붙잡히기라도 하면 개처럼 이곳저곳 뛰어다녀야 할 것이 불보듯 뻔한데....
그런데....
다음날 그렇게 버티고 있는 자신을 찾아온 용개 담 린.
망할 늙은이....
남경의 일은 자신이 알아보겠으니 서안으로 가라고....?
아니 뭐 먹을 게 있다고 천하제일대방의 용호풍운 龍虎風雲 사장로 중에서도 수좌 首座라는 용개가 직접 남경으로 오느냐고....!
그리고 뭐....?
남경의 주인이 바뀐 것은 자신이 알아본다고....?
그러면서 기껏 전해준다는 전갈이....
기가 막혀서....
안 오면 죽인다!
저 살벌한 글자 몇 자만 달랑 적혀있다.
천하의 개방주가 글을 모르는 것도 아닐건데....
사부님....!
어쩌자고 이 험한 세상에 저 하나 달랑 남겨두고 먼저 가셨습니까?
그리고....
눈 앞의 저 인간.
반갑기보다는 짜증이 먼저 난다.
어떻게된게 저새끼는 내가 있는 곳은 이렇게 잘알고 찾아오냐고....!
"너 도대체 며칠이나 기다렸다고 벌써 안달이야?"
가 종덕이 당 풍호를 향해 가소롭다는 듯이 입을 열고....
"안달이라니....? 선풍개! 하루나 이 지겨운 표국에 갖혀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거냐?"
당 풍호가 눈알을 부라리며 가 종덕에게 소리친다.
"하루? 고작 하루 기다렸다고 벌써 그렇게 지랄을 떠는 거야?"
"고작 하루라니....? 넌 얼마나 기다렸다고 그런 소리야?"
신경질적인 당 풍호의 말에 가 종덕이 손가락 두개를 펴 보인다.
"나는 무려...."
무려....?
당 풍호가 가 종덕의 손가락과 얼굴을 번갈아 쳐다본다.
설마 이십 일이나....?
"나는 무려 이틀이나 이곳에 갇혀있었다!"
자랑스럽게 뱉어내는 가 종덕의 말에 당 풍호가 할말을 잃은 듯 잠시동안 눈만 깜빡 거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당 풍호.
게을러터진 거지새끼!
참을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여우새끼!
서로가 고개를 돌린 체 몇 번 심호흡을 하던중 당 풍호가 불쑥 입을 연다.
"그런데.... 저녀석은 또 왜 저래?"
"누구....?"
아....!
세상 고민을 다 짊어진 것 같은 모습.
당당한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의자에 쭈르리고 앉듯이 엉덩이를 걸치고 있는 사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마 호길....?
서량의 패자라는 마씨세가의 소가주가 왜 저런 꼴로....?
장차 십 년이 될지 이십 년이 될지 모를 시간만 지난다면 열두 가문의 한곳을 이어받을 천외목장의 적장자.
아직 불혹이 되지않은 혈기왕성한 나이에 천하를 눈아래 두고 한창 기고만장해 있어야 할 저 인간이....?
비루먹은 강아지가 따로 없네....
두 사람이 서로를 돌아봤다.
"누가 때렸나?"
당 풍호의 말에 가 종덕이 고개를 흔든다.
"몰라...."
"한 번 물어볼까?"
뭐....?
누가 너 때리더냐고 물어본다고....?
동그란 눈으로 자신을 보는 가 종덕을 버려두고 한손에 찻주전자를 든 체 마 호길을 향하는 당 풍호와....
저 여우새끼가 이제 완전히 돌아버렸나....?
황급히 일어나 쫄랑쫄랑 당 풍호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는 가 종덕.
"마 대협, 혼자서 뭐하십니까? 같이 차나 한잔 할까요?"
갑작스런 음성에 마 호길이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고....
부드럽게 웃고 있는 겉늙은 얼굴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아....! 당 선배님...."
마 호길이 황급히 일어나 포권을 해 보이고....
당 풍호가 앉으라는 손짓과 함께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차를 따른다.
"마 대협.... 표정이 편치않아 보이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요?"
은근하게 묻는 당 풍호의 말에 다행이라는 듯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옆자리에 앉는 가 종덕.
당 풍호가 힐끗 가 종덕을 돌아다봤다.
이 새끼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야....?
그리고....
"마 대협.... 사해가 모두 동도라 했고.... 더구나 열두 가문은 비록 지역을 나눠 떨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본래가 한몸이나 다름없는데.... 어째서 고민을 함께 나누지않고 혼자서만 고생 하시는 거요?"
당 풍호가 노려보건 말건 자기 할 말은 다하는 가 종덕.
"일....? 제게 일이 있을 게...."
두 사람을 향해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말하는 마 호길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살짝 스쳐지나간다.
뭔가 있다!
일순간 먹이를 찾은 맹수의 그것처럼 두 사람의 눈빛이 반짝이고....
"도대체 천하의 어떤 가인 佳人이 있어 천하의 호한이라는 마 대협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흔들어 놓은 것일까?"
감탄하는 듯한 가 종덕의 말과....
"정말.... 그 가인이 어느 집안의 따님이요?"
호기심이 가득한 당 풍호의 은근한 말이 마 호길의 귓가를 어지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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