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마재현 狂魔再現4
이건 또 뭔가....?
불현듯 흐릿한 기억속의 장면이 하나 떠오른다.
자신의 앞에서 죽어가던 백골문의 당주.
아쉬움은 있어도 두려움은 보이지 않던 그 야릇한 모습.
뼈다귀 귀신의 망령인가....?
죽어버린 유 총관과 바닥을 기는 장가의 무인들을 돌아본 후 무적이 등을 돌린다.
"저들은 곧 깨어날테니 그냥 돌려보내주시오."
"채.... 반 대협! 대협께서는 어디로 가시는 것입니까?"
다급한 막 오생의 목소리가 등뒤를 울린다.
"말 먹이 주다말고 왔소. 마저 줘야지요...."
뒤도 돌아보지않고 가는 무적을 향해 막 오생이 깊숙이 허리를 숙인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 * * * *
불어오는 바람에 모래가 섞여 날아온다.
"드디어 사막 길에 들었군요...."
조용한 타말의 말에 신녀가 주위를 둘러봤다.
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사막이 아니라 거친 자갈과 황무지로 이루어진 넓은 사막이 눈에 들어왔다.
먼 옛날부터 천산의 남쪽에 자리한 이 사막을 통해 천축과 서역의 문물이 중원으로 들어오고....
중원의 비단이 이 길을 따라 서역과 천축으로 팔려나갔다.
그리고.... 이 거친 사막의 흙이 불어오는 바람에 날려 황하의 강물을 더욱 탁하게 만들고....
이 황무지에서 한을 남긴 체 죽어간 수많은 영웅과 가인의 눈물 또한 이 사막의 거친 흙에 뿌져져있다.
감숙의 끝까지 왔는가?
어찌됐던 상대는 이 기다란 감숙 땅을 지나는 동안 더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만약 여기서 사막을 따라 천산남로로 들려고 한다면 자신을 쫒는 상대는 하서회랑 곳곳에서 자신들의 발길을 막기위해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사막을 가로질러 기련산맥이나 용수산쪽으로 방향을 잡는다면....
과연 그때도 멀리서 지켜만 볼까?
아니면.... 자신들의 앞을 막을 것인가?
"계획대로 일단 기련산맥으로 들어가요."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왜 천산을 넘지 않으시려는 것입니까?"
막아서는 상대를 물리치며 억지로라도 천산을 넘을 수 있지 않는가?
그리고 천산만 넘게되면....
"아직은 돌아갈 때가 아니예요."
"예? 돌아갈 때가 아니라니요....?"
"네. 아직은...."
타말이 신녀를 돌아봤다.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아니.... 애당초 왜 갑자기 중원으로 들어온 것일까?
왜 혼자서 아무런 연고도.... 이유도 없는 중원행을....?
자신으로서는 알 수도 물어볼 수도 없다.
저 머릿속에 도대체 무슨 생각이 들어있는지....
더 이상 묻지 않고 앞서 걷는 타말을 보는 신녀의 두 눈동자가 반짝인다.
미안해요....
만약 내 생각을 안다면 궁주는 저를 죽이려할지도 몰라요....
아니....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저주는 하겠지요....
미안해요....
"그런데.... 신녀님...."
"왜요?"
"우리 산적을 만난 것 같은데요....?"
무슨....?
사막에서 산적이라니....?
황당한 타말의 말에 신녀가 고개를 들고 앞을 본다.
* * * * *
편지를 다 읽고 난 남궁 호경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진다.
손안의 편지.
한가지 사실 외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는 것 같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뭔가 꺼림직한 부분이 보인다.
남 혼이 왜 그곳까지 간 건가?
그리고....
들어보지도 못한 막씨세가라는 곳에서 무애장을 건드려....?
남 혼이 그 먼곳에서 죽은 것보다 더 이상한 대목이다.
뭘까....?
"이 편지를 누가 보냈다고....?"
"장 평의 부인이 보냈습니다."
장 평....?
몇 년전 자신의 형인 가주가 장 평이란 자를 파문시켰던 기억이 떠올랐다.
무능하고 욕심이 많던 자....
재능이 부족하고 능력이 따르지 않는 자는 오히려 오랜 시간이 걸려도 가르칠 수 있다.
아니.... 그 지닌바 재질이 부족하다면 검객의 자리를 주지않고 하급무사로라도 계속 무애장의 밥을 먹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인성이 따르지 못한다면....
적어도 자신들 무애장에서는 시기와 욕심이 앞서는 자들은 거두지 않는다.
그래서 하급무사에 불과한 문외제자일망정 장 평을 파문시킨 것인데....
"그런데 남 혼은 왜 섬서까지 간 것이냐?"
남궁 호경은 첫번째 의혹을 백리 단에게 직접 물었다.
그리고.... 남궁 호경의 말에 오히려 당황해하는 백리 단.
정말 몰라서....?
"가주님께서...."
"형님이....? 형님이 왜?"
"그 광마라는 자의 소문을 확인해보라고...."
광마....?
건망증인가?
잊고 있었네....
"아....! 맞다. 깜빡했구나....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혼자서 가지는 않은 것으로 아는데....?"
"예. 비류 혼의 검조 劍組가 모두 움직였습니다."
"검조가 다 같이 나갔는데.... 혼자서만 섬서로 가서 죽어....?"
무애장의 검객이 검조에서 혼자 떨어져 엉뚱한 곳에서 죽었다.
첫번째 의문이 풀릴듯 하더니 다시 오리무중으로 빠진다.
가주의 명을 받고 섬서로 떠난 비류 혼이 돌아오기 전에는 남 혼이 혼자서 그곳으로 간 이유를 알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가주의 명을 받고 나간 비류 혼에게 하던 일을 멈추고 다시 남창으로 돌아오라고 할 수도 없고....
남궁 호경이 손안의 편지를 다시 한 번 읽어봤다.
--- 백리 조장님께....
.... 중략 ....
결국 서로 표국을 운영하며 경쟁한다는 이유만으로 저 사악한 막씨가 저희 장가표국의 표사들과 제 남편. 그리고 급기야는 남 혼 대협에게마저 살수를 펼치기에 이르렀습니다. 졸지에 지켜줄 남편을 잃고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에 기댈 곳 없는 이 여인은 과거 많은 은혜를 베풀어주신 조장님께 이렇게 억울한 사연을 글로 적어 보내게 됐습니다. 부디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남 혼 대협과 제 남편의 한을 풀어주십시요.
섬서에서 홀로 남겨진 여인이 올립니다. ---
다시 봐도 여전히 꺼림직한 부분이 있다.
도대체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이 뭘까....?
"그래서.... 네 생각에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남 혼이.... 무애장의 검객이 죽은 일입니다. 그곳에 가서 흉수가 누군지....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기는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너 혼자....?"
덤덤하게 자신을 보는 남궁 호경의 표정에 백리 단이 흠칫한다.
설마.... 혼자 가보라는 것인가?
"혼자.... 가볼까요?"
"그럴 수야 있나.... 네놈 조원들 모두 데리고가라. 그리고.... 일평이도 함께 가라."
짖굿은 영감 같으니....
가만 누구라고....?
"이공자님도요?"
"그래.... 함께 가거라."
설마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 * * * *
또....?
타말이 황당한 얼굴로 신녀를 돌아봤다.
신녀도 이런 상황은 예상치 못했는지 곤혹스러운 표정이 된다.
하루동안 벌써 세번째나 만나게되는 산적무리.
이 사막길에서 비적을 만났다면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겠다.
그런데....
이번에도 산적이라니....?
말도 타지않고 두발로 버티고 선 산적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흉악한 모양새를 하고 손에 든 도끼를 흔들어 보이지만....
한심할 뿐이다.
산속에 쳐박혀 지나가는 사람이나 기다려야 할 산적이....
허접한 녹림의 힘이 이 먼곳까지 미칠 턱도 없는데 어떻게 산적이 몸을 숨길 수 있는 풀 한포기없는 이 황량한 사막에서 나타나는가?
아니.... 그것보다 도대체 누가 있어 우리의 발길을 늦추려는 것일까?
사막의 비적을 통제해서 사막길을 비우고....
산적이 산을 내려와 사막까지 오게 할 수 있는 자가 과연 누굴까?
혈왕궁 血王宮이라면.... 그들이라면 이런식으로 시간을 벌지는 않을 것이다.
차라리 자신들을 막기위해 직접 오면 직접 오지 이런 치졸한 수는....
정말이지 우리 앞에 누가 있는 것인가?
"이번에도 죽이지는 말고 적당히 상대하고 가요...."
신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 발을 내딛는 타말과....
죽여라!
뭔가에 홀린 듯 타말을 덮치는 산적들.
퍽!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주저앉는 산적들 사이로 타말이 빠르게 움직인다.
몇 번의 주먹질에 산적들이 모두 쓰러지고....
끄으으....!
괴로운 신음과 함께 흙바닥을 기는 산적들의 모습을 보며 타말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자들이 앞을 막아봐야 얼마나 시간을 번다고....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신녀에게 눈짓을 하고 몸을 돌리려는 타말의 귀에....
"으으읍....!"
목이라도 졸린 것 같은 답답한 신음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재빨리 고개를 돌리는 타말의 눈에.... 산적들의 손에서 떨어져 바닥을 뒹굴고 있던 가죽푸대 하나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인다.
이건 또 뭐지....?
야릇한 표정을 한 체 천천히 가죽푸대를 향해 다가간 타말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고....
부욱!
타말의 손에 가볍게 찢어지는 푸대자루의 가죽을 뚫고 나오는 얼굴하나.
뭐야....?
구겨진 유생건이 흘러내려 반쯤가린 얼굴과.... 유생건으로 가려진 얼굴아래로 보이는 입에 물려진 재갈이 커다랗게 다가온다.
그리고....
단단히 묶여있는 양손.
"으으읍....!"
다급하게 소리치는 것 같은 괴상한 음성과 함께 자루안에서 요동치는 격렬한 몸부림.
타말이 재빨리 입에 물린 재갈을 풀어주자....
"푸아! 감사합니다. 조금만 지체했더라면 아마 숨이 막혀 죽었을 것입니다. 생명을 구해주신 은헤 정말 감사합니다."
빠르게 뱉어내는 말과 함깨 타말의 눈앞으로 불쑥 내미는 양손.
굵은 동아줄에 단단히 묶인 양손이 눈에 들어온다.
"풀어달라고....?"
"예."
삐뚤어진 유생건을 쓴 자가 빙긋이 웃는다.
뭐야 이놈....?
타말이 묶인 손을 풀어주고....
허겁지겁 다리에 묶인 끈을 푸는 비뚤어진 유생건.
다리에 묶인 끈을 풀고 재빠르게 푸대자루에서 빠져나오더니 이번에는 유생건을 바로하고 의복을 둘러본다.
그리고....
"구명지은에 감사드립니다. 소생은 제갈 식이라고 합니다."
"제갈 식....?"
삼십은 되어 보이는 얼굴에 무공을 익힌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들어본 적이 없는 제갈 식이라는 이름.
"왜 저안에 들어가 있었나?"
타말의 손짓에 제갈 식이 자신이 빠져나온 푸대자루를 돌아봤다.
그리고 살짝 찡그려지는 얼굴.
"제가 왜 저 푸대자루안에 들어가요?"
잉....?
이녀석이 지금 뭐라는 거야?
"자네는 저곳에 들어가있다가 나온 것이 아닌가?"
"설마요.... 저는 저런 곳에 들어가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뭐야.... 이 새끼가 지금 나랑 말장난을....
"그럼 저 산적들이 자네를 저 푸대안에 짚어넣은 것인가?"
"예. 저는 정말로 저런 숨막히는 푸대자루안에 들어가는 것을 죽는 것 보다도 더 싫어합니다."
당당하게 뱉어내는 제갈 식의 말에 타말의 회색빛 눈동자가 반짝인다.
그리고 야릇하게 제갈 식을 보는 신녀의 눈길.
"그런가.... 그렇다면 저들이 왜 자네를 저 푸대자루속에 짚어넣은 것인가?"
평소의 타말답지않게 약간은 퉁명스러운 음성이 나오고....
"모르겠습니다. 저 인간들이....?"
수다스럽게 입을 열던 제갈 식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 타말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인다.
"혹시.... 보이시나요?"
엉뚱하게.... 아니 무례하게 나오는 제갈 식의 말에 타말의 얼굴이 형편없이 구겨진다.
아니... 어디서 이따위 무례한 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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