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마재현 狂魔再現2
노인의 눈에 듬성듬성한 야산의 숲으로 이어지는 발자국이 보였다.
숲으로 들어가....?
그렇게 사십보 정도 더 걷던 노인이 커다란 나무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몇 개의 잘려진 가지와 커다란 거목의 몸통을 살짝 그어놓은 것 같은 가느다란 자국이 눈에 들어온다.
문에 나있는 틈과 마찬가지로 아주 가늘게 그어진 흔적.
유심히 살피며 오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가느다란 흔적이 보이고....
노인이 고개를 돌려 일직선상에 있는 철방의 문을 확인하고....
다시 한 번 유심히 바닥을 살핀다.
문에서 이어지는 발자국 외에는 발자국은 커녕 잡초가 눌린 흔적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 이어지던 발자국에서조차 아무런 흔적이 없다.
이 발자국이 아닌가....?
그렇다면....
거목의 몸통을 그어놓은 가는 선을 다시 한 번 돌아본다.
철방의 문에서 여기까지....
이 먼 거리를 검사든.... 검기든 어떤 형태로든지 분명히 손을 썼다.
그리고....
손을 쓴 놈도 놈이지만.... 이곳에 있었던 자는 유령인가?
이 날카로운 공격을 받고도 아무런 흔적이 없다고....?
이런 것이 가능한가....?
사십보 이상을 이 미세한 흔적을 남기는 엄청난 공격과 유령처럼 기척도 없이 피할 수 있는 신법이라니....?
고개를 갸웃거리던 노인이 발자국을 따라 계속 숲으로 들어간다.
한참을 발자국을 따라 걷던 노인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찾았다!
철방에서부터 이어지던 발자국이 멈췄다.
그리고....
몸을 돌리고....
도약....?
발자국의 주인이 몸을 돌려 발끝을 살짝 굴린 흔적.
일반인이 본다면 도저히 볼 수 없는 얕은 발자국이 하나 보인다.
뒷꿈치 부분은 보이지않고 발바닥의 앞부분으로 살짝 찍어놓은 자국.
희미한 발자국에 살짝 미소가 보이던 노인의 얼굴이 갑자가 굳어져버린다.
이런 터무니없는....?
노인이 멍하니 철방을 돌아봤다.
이제는 제법 멀어져 조그맣게 보이는 철방.
백보 밖에서 몸을 날리는 상대와 백보 밖에서 쳐낸 검기가....?
정확하다고는 못해도 거의 중간 정도 되는 곳에서 서로 만났다.
그리고....
잘려져나간 작은 나뭇가지 몇 개와 아름드리 나무의 몸통에만 이 가느다란 흔적을 남기고....
사라져버렸다고....?
이런게 가능한가?
도대체 이곳에 있던 자가 누굴까?
파앗!
심각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던 노인이 갑자기 빠르게 몸을 날려 철방을 향한다.
"뭔지 알겠는가?"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노인의 말에 철방에 남아있던 노인이 고개를 돌려 활짝 열린 문을 잠시 쳐다봤다.
그리고.... 좌우로 가볍게 흔드는 머리.
"상관가의 늙은이들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내 눈에는 도저히 검사 劒絲나 검기 劒氣로는 보이지 않는데...."
"왜?"
노인이 손을 들어 문에 난 가는 틈을 재어본다.
겨우 한 뼘이 될 듯한 너비.
"일척이 되지않아. 그리고 검이라면 이 문이 잘렸거나 더 두텁고 넓은 흔적이 남았겠지...."
"그럼 뭐지....?"
"글쎄.... 지금으로서는 무엇인지...."
노인이 중얼거리며 손을 들어 불이꺼진 화로를 가리킨다.
발자국을 따랐던 노인이 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을 돌리자 화로 옆을 뒹구는 부서진 틀이 몇 개 눈에 들어온다.
처음 철방에 들어올때부터 봤던 물건들.
팔뚝만한 크기의 나무틀과....
둥근 원반 모양일 것으로 짐작되는 부서진 주물틀.
"여기서 뭘 만들었을까?"
"하나는 비구 같은데.... 다른 하나는...."
정말 여러가지로 사람 궁금하게 만드는 놈이다.
"그런데 어디까지 갔다 온거야?"
"백 보!"
노인의 짧은 말에 물어봤던 노인이 멍하니 쳐다본다.
"백 보....?"
검기인지 무엇인지 모를 것이 백 보까지....?
"아무래도 근처에 흩어져있는 애들을 모두 불러들여야 겠는데...."
두 노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도대체 도 명기를 죽인 놈이 누구야?
* * * * *
"많이 먹어라."
잘 익은 콩과 건초를 버무린 먹이를 부어주며 무적이 조그맣게 말했다.
히히잉~~!
그리고.... 마치 무적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좋다고 꼬리를 흔들며 달려드는 마사 馬舍안의 말들.
무적이 하나하나 말들의 갈기를 쓰다듬어주며 여물통에 먹이를 부어준다.
평화로운 일상.
자신도 이렇게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드물게 무적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보게.... 봉옥!"
갑자기 평화로운 일상을 깨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잔뜩 겁을 먹은 것처럼 두려움에 젖어있는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들리고....
마사의 문을 밀치며 황급히 달려오는 노인의 모습을 무적이 조용히 쳐다봤다.
"큰일났네...."
"무슨 일입니까?"
"그놈들이.... 그놈들이...."
그놈들....?
호들갑스런 노인의 음성에서 무슨일인지 짐작이 간다.
"그 장씨라는 자들이 왔습니까?"
제대로 대답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노인.
어제 일이 있었는데 하루 만에 왔다고....?
표사들을 옮길 시간도 안될건데....?
이건 너무 너무 빠르다.
"제가 한 번 가보겠습니다. 너무 놀라시지는 마시고.... 말먹이나 좀 더 챙겨주십시오."
"응....?"
얼떨결에 고개를 돌리는 노인이 눈에 커다란 통에 반쯤 남은 콩과 건초가 보인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천천히 마사를 빠져나가는 무적을 노인이 멍하니 쳐다본다.
반응이 너무 빠르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뒤에 누가 있는가?
* * *
으으윽....!
막가장의 담벼락을 돌아서자 맨 먼저 막 굉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힘겹게 뱉어내는 신음과 함께 주저앉아있는 막 굉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왼손으로 검상을 입은 오른 팔을 감싸 쥔 모습이 왠지 안쓰러워 보인다.
가문을 지키기위해.... 자식과 식솔을 지키기위해 검을 들었지만 능력이 부족해서 당할 수밖에 없는 비참한 심정.
그리고 부친을 지키려는 것처럼 검을 들고 앞을 막아선 막 오생의 모습과....
막가장의 정문앞에서 오십 명은 될듯항 사내들에게 둘러쌓인채로 떨고있는 막씨세가의 식솔들과 바닥에 쓰러져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무적이 막가장의 식솔들을 둘러싸고있는 자들을 천천히 훑어봤다.
형편없는 기도에 불량스러워 보이는 모습.
특히 맨 앞에 나와있는 비대한 몸에 탐욕스러운 표정의....
장 평이라는 자인가?
쓰레기들....
보잘것 없는 무공하나 믿고 타인에게 함부로 하는....
아니.... 다수의 힘을 믿고.... 패악을 저지르는 쓰레기들.
딱! 딱! 딱!
무적이 의식적으로 지팡이 소리를 내며 걸음을 뗀다.
"네놈들이 죄없는 선량한 우리 표사들을 해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이제는 무애장까지 욕보이다니.... 내 오늘 네놈들을 죽여 천하에 의로움이 존재한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줄 것이다!"
마치 모든 사람들이 들으라는 것처럼 외치는 장 평의 고함소리에 막씨세가의 사람들이 부들부들 떨고만 있다.
눈앞에서 번뜩이는 상대의 검.
금방이라도 자신들의 가슴으로 파고들 것만 같은 저 싸늘한 검이....
"네놈들이.... 네놈들이야말로...."
이를 갈며 막 오생이 입을 여는 순간....
막 오생의 팔을 잡는 손 하나.
"공자님...."
"유 총관...."
막씨세가의 총관이 분노에 몸을 떨고 있는 막 오생이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장 가주님.... 비록 우리 막씨세가가 해서는 안될 짓을 했다고는 하지만 세상에는 호생지덕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장 대협께서....아니.... 장 가주님께서 호생지덕을 베풀어 우리 막씨세가가 대를 잇도록만 해주신다면 저희 막씨세가는 전 재산을 다 바쳐서라도 가주님의 호생지덕에 보답하겠습니다."
상대의 손에 들린 칼이 두렵지도 않은가?
유 총관이 스스로 장 평에게 허리를 숙이며 가주일족의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하지만....
"내가 왜 무도한 너희들 막씨세가의 놈들을 살려줘야 하지? 호생지덕....? 웃기는 소리 하지마라! 지금까지 무애장은 단 한 번도 천하의 악인을 용서한 적도 또 용서하고 싶지도 않은 곳이다. 한 명의 악인을 죽이는 것이야말로 천하를 위해 호생지덕을 베푸는 일. 오늘 너희들은 무애장의 검 아래서 악행을 멈추게 될 것이다!"
"장 가주님! 제발.... 오늘 이후로 저희 막씨는 모든 재산을 버리고 이곳 섬안현을 떠나겠으니.... 제발 막씨의 대를 끊는 것만은...."
"유 총관! 무슨 짓이냐?"
주저앉아있던 막 굉이 큰 소리로 유 총관을 부르며 일어서기위해 바닥을 짚었다.
"가주님...."
"유 총관! 조상의 땅을 버리고 우리가 어디로 간다는 말이냐? 차라리 이곳에서 죽겠다. 유 총관은 비켜라!"
"가주님.... 어찌 목숨을 가벼이 여기십니까? 가주님과 공자님이 돌아가시면 어떻게 막씨세가가 세상에 있겠습니까? 이따위 집과 재산 따위는 줘 버리고.... 두분이 살아서.... 그렇게라도 살아서 막씨세가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되지 않겠습니까? 비록 가주님과 공자님이 무애장에 실수를 했다고는 하지만.... 잘못을 뉘우치고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면.... 그렇게 한다면 저 의롭다는 무애장이 어떻게 두분을 더이상 추궁하겠습니까?"
"유 총관.... 우리는.... 우리는...."
막 굉이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막 굉의 그런 모습에 야릇한 표정이 되는 장 평.
끝났다.
드디어 막씨의 재산과 기반을 모두 얻었다.
이미 상대는 더이상 버틸 능력도 저항할 의지도 없다.
이제 유 총관이 조금만 더 기름칠을 하면....
장 평이 고개를 들어 막씨세가의 현판을 올려다봤다.
이제 내 것이다....
남 혼은 얼굴을 찌푸린 체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분명히 표사들과 장 평의 동생이 서안에서 봉변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어떻게 천하표국 안에서 봉변을 당했는지.... 또 누구에게 얼마나 당했는지는 몰라도....
칼밥을 먹으며 살다보면 누구라도 당할 수 있는 일.
한데....
장 평은 굳이 자신에게 함께 가자고 졸랐다.
마치 자신이 이 일에 관여하기를 바라는 듯한 태도.
아니.... 애초에 자신의 자신들의 검조장 劍組長과 함께 섬서에 온 것은 또 어떻게 알고 자신에게 연락을 취한건가?
가보라는 비류 혼 검조장의 허락에 장가표국에 들렸던 것 뿐인데....
이건 마치 자신을 기다린 듯 하지 않는가?
그리고....
왜 이곳에서 무애장의 이름을 거론하는가?
무애장은 이곳에 막 씨가 살고있다는 것도 모르는데....?
아니.... 막 씨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왜....?
그리고....
결국 저 유 총관이라는 자의 입에서....
재산을 모두 넘기면 무애장이 눈감아 준다는 야릇한 말이 나왔다.
무애장이 그런 곳인가?
아니다.
내가 청춘을 바친 남창의 남궁세가는 결코 남의 것을 탐내는 그런 곳이 아니다.
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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