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회2
"그래.... 그렇게 양탄자를 구입해와서 파는 상로가 한순간에 모두 장 씨에게로 넘어가버렸지. 그리고 서역길에 밝은 표사들까지.... 사람의 인심이라는 것이...."
"그런 일을 당하고도 왜 막 씨는 저들과 계속 거래를 하는 것입니까?"
"내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 했지만 떠도는 소문이 있었네.... 그런 일을 당하자 당시 분노한 장주님이 장 씨를 찾아갔다고.... 그리고 정말 오랫만에 손에서 놓았던 검을 잡았다고 하더군...."
"그래서요?"
"막 씨의 검이 부러지고 장주님이 무릎을 꿇는 수모를 당했다고 들었네. 다시는 상인들을 빼내간 그일을 언급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리고 그일이 있은 후로도 지금까지 저렇게...."
"아니.... 왜 저런 나쁜 자들과 아직까지....?"
"나쁜 자들이 아닐세."
"네....?"
나쁜 자들이 아니라니....?
"만약 장 씨의 무리들이 나쁜 자들이라면 그들이 스스로 나쁜 짓을 한다는 것을 알고 약간이라도 죄책감을 느끼거나 자신들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변명이라도 했겠지.... 아니면 더이상 막가장의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않거나.... 그렇다네. 장 씨와 그 일족들은 나쁜 게 아닐세. 자신들이 나쁘다는 것도 모르는 것이지.... 당연히 사업을 확장하면서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서 그런 묘수를 썼다고.... 애당초 상인들을 확실하게 관리하지 못한 막 씨가 어리석었다고.... 그렇게 자신들은 막 씨보다 사업수완이 더 뛰어난 것이라고.... 그래서 지금도 저렇게 당당할 수가 있는 것이라네...."
무적이 멍하니 노인의 얼굴을 쳐다봤다.
나쁜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이라고....?
무슨 터무니없는 궤변을....
나쁜 것은 나쁜 것이다.
나쁘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행했다는 이유만으로로 나쁜 것이 아니라면 이 세상에서 나쁜 놈은 없다.
그리고....
나도.... 나쁜 놈이다.
몸속의 뼈가 부서져 장기를 찢어놓는 고통속에서 바닥을 긁던 곽 도와 반 봉옥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곳은.... 저승은 지낼만 하냐....?
너희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내가 원망스럽지는 않느냐....?
그리고 자신의 칼에 목이 잘려 나가던 수많은 상대의 모습도....
자신과 무슨 철천지 원한이 있다고.... 이유도 모른 체 자신의 칼에 죽어가던 그 많은 군마맹의 제자들.
모르니 나쁜 것이 아니라고....?
아니.... 몰라서 더 나쁜 것이다.
어쩌면 모르는 척 스스로 자신의 눈을 가리는 것인지도....
그리고.... 나쁜 놈인 내 눈에도 나쁘게 보이는 놈들은....
무적이 자리에서 일어나려하자 노인이 옷소매를 잡는다.
"무슨 짓인가?"
"네....?"
"지금 자네가 저들에게 바른 소리를 한다고 저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겠는가? 아니면 배신한 상인들이 돌아오겠는가? 오히려 자네만 개죽음을 당할 거네. 그리고 어쩌면 장주님과 공자님에게도 피해가...."
이 노인은....?
아....!
나쁜 놈이 아니라고....?
그런가....
나쁘다는 말로는 다 할 수가 없는 자들이라는 말인가?
나쁘다는 말보다 더 나쁜 말이 없으니 나쁘다는 정도로는 성이 차지를 않아서....
그리고.... 장주와 막 공자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다고....?
인생의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인가?
막 오생....!
출발하기전 울분을 참는 것처럼 꽉 쥐고 있던 그의 두 주먹이 떠오른다.
힘이 없어서.... 불의를 꾸짓을 수 있는 용기가 없어 고개를 숙이고 참을 수 밖에 없었던 막 오생의 비참함이 느껴진다.
빌어먹을....
장난이라도 호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냥 객점에 눌러앉아 장작이나 패고 허드레 일이나 하며 그렇게 죽은 듯이 살아야 했는데....
내게 시킬 일이 있다고....?
더러운 놈의.... 저주받은 팔자!
무적이 자신의 두 손바닥을 내려다본다.
다시 이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가....?
막 오생.... 만약에.... 만약에 내가 또다시 미쳐버린다면....
너는 나를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 * * * *
왁자지껄한 소리가 장원 밖에까지 퍼져 나온다.
그리고.... 군데군데 들리는 호탕한 웃음소리.
활짝 열린 장원의 대문 안으로 잘 차려진 음식상이 보이고....
넓은 대청의 커다란 의자에 앉아 웃고 떠드는 우 영춘의 모습이 보인다.
우 영춘....
척 광이 이빨을 악물며 장원의 대문을 향해 걸어간다.
그리고....
"척 보주님....?"
정문을 지키던 몇 몇 무사들이 자신을 보고 엉거주춤하게 허리를 숙여보이며 인사를 한다.
"그래.... 수고가 많구나...."
얼마전 까지만 해도 자신을 보면 바닥에 엎드리던 것들이....
척 광의 뒤를 따르던 갈 봉이 무사들에게 눈짓을 하고....
"현황보의 척 보주님께서 오셨습니다!"
정문을 지키는 무사의 고함소리에 장원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린다.
"보주님....?"
황급히 일어나 자신에게 허리를 숙이는 몇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도 자리를 지키고 앉아만 있다.
그리고....
거만하게 의자에 기대듯이 앉은 체 자신을 내려다보는 우 영춘과 그 곁에서 살살거리는 비룡무관의 관주.
우 영춘의 비위를 맞추기라도 하는 것처럼 옆에 찰싹 달라붙어 아부를 떠는 꼴이....
자신이 오면 버선발로 뛰어나오던 자들이 이제는....
"우가장에서 새로이 현판을 단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왔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우 영춘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인다.
"오.... 척 보주! 어서오시오. 아직 현판식의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준비한 술과 음식을 들면서 천천히 즐기시도록 하시오. 보자.... 어디 앉을만한 자리가...."
대청안의 많은 빈 자리를 두고도 자리를 찾는 것처럼 두리번 거리는 우 영춘의 모습에 척 광이 소맷속의 두 주먹을 꽉 쥐고....
"저는 그냥 여기에 앉으면 됩니다."
척 광이 마당에 놓여있는 식탁 앞의 의자를 당겨 앉는다.
"오....! 그렇게 하시겠소?"
앞으로 네 자리는 그곳이라는 것처럼 거만한 웃음과 함께 자신을 내려다보는 우 영춘.
그리고....
우 영춘의 곁에서 살살거리며 꿀발린 말만 해대는 비룡관주.
크크크....!
어쩌다 내가....
하지만 네놈의 그 건방진 꼴도 오늘로서 끝이다.... 우 영춘!
나를 겁박하던 도 명기도.... 비마각도 없이 네놈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애초에 내게 구걸하듯이 남경땅으로 기어들어왔던 네놈이....
끓어오르는 분노속에 장원을 둘러보는 척 광의 눈에 검을 들고 늘어선 체 호위를 서고있는 무인들이 보인다.
자신의 밥을 먹던 자신의 문도들....
겁에 질려 머리를 조아리던 자신에게 실망해....
아니.... 비막각의 이름에 겁을 먹고 우 영춘에게로 온 자들.
하지만....
갈 봉이 저들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다시 자신의 편에 설 것을 분명히 맹세했다고....
저들과....
곧 들이닥칠 남아있던 현황보의 문도들이 오늘 우 영춘 네 놈의 목을 딴다.
척 광이 탁자 아래의 주먹을 힘껏 쥔다.
높이.... 가장 높이 올랐을때 떨어뜨린다.
한창 잔치가 무르익고 몇 사람이 세 개의 현판을 가져온다.
그리고 우 영춘이 현판을 덮고 있던 붉은 천을 벗기자....
우가장.
화려한 금박을 입힌 커다란 현판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대문의 양쪽에 걸어둘 두 개의 작은 현판.
만마앙복.
남경제일.
"하하하하!"
"우가장 만세!"
"장주님 만세!"
통쾌한 우 영춘의 웃음소리와....
아부하는 만세소리.
그리고....
우당탕~~!
응....?
탁자를 뒤짚는 요란한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한곳을 향하고....
차앙!
부서지는 식탁과 함께 척 광이 검을 뽑아든다.
"우 영춘!"
척 광의 고함소리가 신호인가?
창! 창!
요란스러운 검음과 함께 검을 뽑아드는 현황보에서 우가장으로 옮겨 온 무인들과....
"뭐하는 짓이냐?"
고함을 지르며 같이 검을 뽑아 그들을 막아서는 우가장의 무인들.
갑작스럽게 현황보에서 몸을 의탁한 무인들과 우가장의 무인들이 검을 든 채로 서로 대치했다.
그리고.... 싸늘한 긴장이 감도는 상황에서 몸을 움직여 마당의 중앙으로 나오는 척 광.
"우 영춘.... 설마 네놈이 내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믿는 거냐?"
"척 광.... 네놈이....!"
우 영춘의 입에서 신음 같은 소리가 나오고....
피식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는 척 광의 눈에 두려움에 떠는 축하객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파랗게 질려있는 비룡관주의 얼굴과.... 망사로 얼굴을 가린 우 영춘의 딸 우 미랑의 모습도 보인다.
쓰레기 같은 것들....
"저 배은망덕한 우 영춘의 편에 설 놈들은 나와 칼을 맞대고.... 내 편에 설 자들은 내 뒤로 서라. 너희들이 저지른 작은 실수를 내 한 번은 눈감아주마!"
열화복심.
복심의 탈을 벗고 열화의 모습을 보이는 건가?
척 광의 일갈에 남경인근의 무관과 표국, 그리고 작은 세가와 상인들이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두리번 거린다.
이빨 빠진 호랑이 꼴이 된 줄 알았던 척 광이.... 그 척 광이 숨겨둔 날카로운 어금니를 보이다니....
그렇게 당황해 어쩔줄 몰라하는 축하객들과 슬그머니 우 영춘에게서 떨어지는 비룡무관의 관주.
와아아!
갑자기 팽팽한 우가장의 긴장을 깨는 소리와 함께 밖에서부터 담벼락으로 뛰어오르는 현황보 제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왔구나....
담벼락에 모습을 보인 제자들의 모습에 척 광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숫적인 우위를 점하자 이제야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척 광.
그리고....
아....!
현황보의 제자들이....!
여기저기서 놀라는 소리가 들리며 마당을 가득 채웠던 축하객들이 우르르 척 광의 뒤쪽으로 몰려오고....
"우 영춘! 자결할 기회를 주마! 치욕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스스로 죽어라!"
척 광의 말에 우 영춘이 말도 못하고 파랗게 질린 체 벌벌 떨고....
버러지 같은 놈.... 네놈 따위가 감히....
척 광의 눈에 파란 살기가 피어올랐다.
"쳐라!"
척 광의 짧은 한마디와 함께 담 위에서 뛰어내리는 현황보의 제자들과....
갑자기 등을 돌려 현황보의 동료들에게 검을 날리는 마당안에 있던 현황보의 무인들.
큭!
으악!
생각지도 못한 갑작스런 공격에 뛰어내리던 현황보의 제자들이 비명과 함께 쓰러진다.
응....?
분명히 자신의 편에 서겠다고 했던 자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는 척 광의 눈에 파릇한 검광이 번뜩이고....
불에 데인 듯 화끈한 열기가 전신을 휘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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