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록-73화 (73/158)

막씨세가3

막 오생이 격앙된 채로 자신에게 역정을 내는 막 굉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리고....

"아버지.... 채 철이라는 사람은 절대로 그런 자가 아닙니다. 비록 조금 잔인한 일면이 있다고는 하지만 은혜를 모르고 사람의 도리를 모르는 금수와 같은 그런 자는 절대로 아닙니다. 몇 년전 조가장에 머물 당시에도 그들의 어려운 일을 도와줬지만 그대가로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왜....?"

막 굉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설마 저 아이가 그 일 때문에....

막 굉의 눈치를 보며 주저하던 막 오생이 한숨과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휴우....! 아버지.... 언제까지 봉하현에 있는 장씨 일족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뭐....? 이놈이....!"

"아무리 그 무도한 장씨가 무애장의 제자였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이제는 파문당한 제자일 뿐입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그자들의...."

"닥쳐라!"

붉게 달아오른 막 굉의 얼굴에 막 오생이 말을 멈춘다.

"네놈이.... 이제는 네놈까지도 이 애비를 무시하는 것이냐?"

분노가 치밀어 올라 떨리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에 그런 것인지 심하게 떨리는 막 굉의 음성에 막 오생이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물러가라! 그리고.... 그자는 빠른 시일 안에 내보내도록 하거라!"

얼핏 야릇한 수치심이 느껴지는 막 굉의 고함소리에 막 오생이 조용히 절을 하고 물러난다.

막 오생이 나가고 막 굉이 아들이 머물렀던 자리를 멍하니 쳐다봤다.

이놈아.... 난들 장씨가 좋아서 그러겠느냐....

하지만....

너는 아직 그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

왜 세상이 그토록 열두 가문을 경외 敬畏하는지....

아무리 문외제자라고는 하지만 장 평은 틀림없이 무애장의 제자였던 자....

그와 척을 지고 검을 맞대는 것은 무애장에 등을 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파라고는 하지만....

세상을 지키는 열두 가문이라고는 하지만....

마주하는 자들에게는 더 없이 잔인한 그들을....

막 굉은 멍하니 자식의 빈 자리를 보며 밤이 깊어가는 것도 잊은 것처럼 그렇게 답답한 한숨만 쉬고 있었다.

* * *

잘 차려진 식탁 앞에서 무적이 말없이 막 오생을 쳐다봤다.

"왜 드시지를 않으시는 것입니까?"

"원래 아침을 이렇게 많이 드시오?"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반 대협께서...."

"내가요....?"

"그렇습니다. 반 대협께서 식사가 허술해하실까 싶어 좀 많이 준비했습니다."

무적이 다시 한 번 막 오생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봤다.

눈앞에 공손하게 앉아있는 이자가 자신의 수준을 가늠할 정도의 안목이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는 않는다.

아니.... 설령 자신의 경지를 가늠할 정도의 수준이 된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이용해 무엇인가를 할만큼 간담이 있어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자신이 누군지 안다면....

건방지지 않고 공손한 태도일망정 자신의 앞에 저렇게 편하게 앉아있지도 못 할 것이다.

아니.... 애당초 접근조차 못했을 것이다.

하물며 어불성설 집에 들인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누가 감히 피에 미쳤다는 자신을....

단순한 호의인가?

하지만 이 세상에서 단순한 호의로 처음 보는 절름발이를 자신의 집에 들일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무적이 피식 웃으며 젓가락을 들어 채소요리 몇 점을 집는다.

기다리면 알게 되겠지....

우물....! 우물....!

"내게 시킬 일이라는 것은 뭐요?"

"네....?"

"은 다섯 냥의 값만큼 내게 시킬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아....! 그게...."

막 오생이 당황한 듯 우물쭈물 하다가 입을 연다.

"당장은.... 부탁할 일이 없습니다. 그냥 편히 쉬시다가 일이 생기면 그때 부탁드리겠습니다."

일이 생기면....?

무적의 눈빛이 반짝인다.

"이곳은 당신의 집이요?"

"예. 이곳은 우리의 장원이고 상단은 여기서 조금만 가면 있습니다."

"상단....?"

막 오생이 무적을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혹시 섬안의 막씨 세가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잠시 생각하는 듯 머리를 갸웃거리던 무적이 고개를 젓는다.

"들어본적이 없소."

"그렇군요...."

막 오생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촌구석의 작은 가문....

이 대단한 자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내가 어리석지....

"막 형의 집안이 막씨세가로 불리는 곳이요?"

"예...."

"미안하오.... 내가 견문이 얕아 막 공자의 가문에 대해서 들어보지를 못했소."

"위로해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곳 섬서에서도 한중땅 한쪽 구석에 있는 작은 세가를 반 대협께서 어떻게 다 아시겠습니끼?"

"그런데 세가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보면 막 형 가문의 역사가 꽤 깊은 듯 합니다만...."

"다행이 아직 까지는 무림의 분란에 휩쓸리지 않아 가문의 명맥을 유지할 수는 있었습니다."

아직까지는....?

무적이 수저를 내리고 막 오생을 쳐다봤다.

"그말은 지금은 분란이 있다는 말이오?"

"아닙니다. 우리 막씨는 다른 가문과 다투며 세력을 넓히는 그런 곳은 아닙니다."

"그렇군요...."

무적이 다시 수저를 들고 이것저것 몇 가지 음식을 집는다.

그리고....

더 이상 생각이 없는 듯 수저를 내리고.... 무적이 막 오생을 보며 조용히 묻는다.

"막 형의 가문은 원래 상인의 가문이요?"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그럼 무가인가요?"

"원래는 무가였지만 가문을 유지하기 위해서 상단을 꾸리던 것이 이제는 오히려 상회의 일에 주력하게 된 것 뿐입니다."

"막 형의 그 상단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취급하시오?"

무적의 물음에 막 오생이 묘한 눈으로 무적을 본다.

설마....?

불현듯 지난 밤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만약 자신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온다면 어떻게 할거냐던 말.

하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막 오생이 스스로 그렇지 않을 것이라 위안을 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왜 그런 것을 물어보시는지....?"

"상회에서 내가 잘 하는 것이 있을지 몰라 그런거요."

잘 하는 것....?

막 오생이 무적을 조용히 쳐다본다.

어차피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자....

"별 다른 것은 없습니다. 관이 관리하는 차를 구입한 후 서안으로 들어오는 서역상인이나.... 천산남로의 사막 길을 따라 세워진 도시들에 파는 것이 주력입니다."

"천산남로....? 그곳은 멀고 험한 곳이 아니요?"

"보통 하서회랑의 네 개 도시로 갈 때는 천하표국의 표행에 동행합니다. 아무래도 그들은 무림맹의 조직이다보니 강도를 당할 일이 적어서...."

"차 말고 다른 것은 취급하지 않소?"

"인근 사천이나 호남등지로 가는 상행은 자잘한 것들이고.... 아무래도 서역상인을 상대로 한 차와 비단이 주력사업 입니다."

차라....

무적은 자신도 몇 번 이 차라는 물건에 손을 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 고약한 상품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차라는 것이 우습게도 상품일수록 보관이 어렵고 기존의 판매망을 뚫고 들어가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거래하는 작은 객점이나 벽지의 주루에서는 더더욱 고급의 상품은 취급할 여력도 없었다.

그렇다고 찾는 손님도 없는 그들에게 차를 강매할 수도 없고....

오죽하면 그 머리 좋은 반 봉옥조차도 삼 년동안 적자를 감수하며 거래처를 확장할 것이 아니라면 당분간은 차를 취급하지 말자고까지 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은 차를 포기했다.

그런데 눈앞의 이자는 차를 거래한다.

물론 관을 통해 나라와 직거래하기 때문에 밀매를 해야하는 자신들과 같은 위험부담은 없겠지만....

그리고....

사천으로도 간다고....?

통통한 얼굴에 나이어린 여승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일심....

다시 볼 수 있을까....?

"막 형의 가문에서 운영한다는 그 상단에 나도 한 번 가볼 수 있겠소?"

"상단에요....?"

"그렇소. 한 번 가보고 싶소."

* * * * *

땅! 땅! 땅!

커다랗게 울리는 망치소리가 고요한 평화를 깨운다.

인적이 드물고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절간처럼 고요한 대장간에서 울려 퍼지는 망치소리.

군 자명이 한참을 내려치던 망치를 내리고 얉게 펴진 철판을 들어 이리저리 돌려본다.

쇠로 만든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하얗게 빛나는 철판.

뚫어지게 철판을 살피던 군 자명이 원형의 철판을 작업대에 내려두고 밖으로 나간다.

군 자명이 나가고.... 차 한잔 마실 시간이 지났을까?

작업대위의 철판이 누군가가 건드리는 것처럼 살짝 움직인다.

누가 건드리지 않아도 스스로 살아있는 것처럼 들썩이는 철판.

둥근 철판의 테두리가 반짝이며 조금씩 떠오르고.... 다시 내려오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끼이익!

철방의 낡은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핑~~!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빠르게 문으로 날아가는 철판.

찰칵!

도망치듯이 나날아가던 철판이 군 자명의 손에 들린 쇠뭉치에 달라붙는다.

흠....

나직한 숨소리와 함께 군 자명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분명히 손에 들린 자철석에 끌려와 붙기는 하지만....

문밖에서 자철석을 들었을때는 날아오지 못했다.

뭐가 문제지....?

고작 열 걸음을 넘어섰을 뿐인데 돌아올 수 없다면....

자신이 공력을 사용해서 당겨야 한다.

처음 이 마물을 만든 조상은 분명히 일초의 무학도 익힌 적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 마물을 당길 내공도 회선시킬 능력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백 보 밖에서 돌아온다고 했다.

자신이 무엇을 실수한 것인가....?

번거럽네....

제대로 씻지도.... 쉬지도 못하고 만든 건데....

한참을 망설이듯 서있던 군 자명이 작업대 옆에 세워둔 자신의 검을 든다.

그리고....

서걱!

허공으로 던져진 자철석과 철판이 무 잘리듯 잘리고....

떨어지는 자철석의 조각이 다시 빠르게 붙는다.

찰칵!

군 자명이 손안으로 떨어진 자철석을 다시 주물통에 넣고 풀무질을 시작한다.

화르륵~~!

파랗게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몇 개의 화목과 갈탄을 넣고....

가죽주머니에서 은광이 번뜩이는 물건을 꺼내서 주물통에 넣는다.

그리고 커다란 기지개와 함께 머리를 눕히는 군 자명.

그들이 올 때가 됐을 건데....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