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안 魔眼3
"마안....?"
침중한 타말의 음성과 함께 요사스러운 웃음이 어둠속에서 울려퍼진다.
깔깔깔....!
정신을 사납게 하는 요사스러운 웃음과 함께 자신들을 중심으로 요란스럽게 돌아가는 어둠.
마치 어둠이라는 관념이 그 실체를 가진 것 인양 빠르게 움직이며 조여오다.
그리고....
"옴메 옴마흠....!"
갑자기 터져 나오는 신녀의 음성.
지금까지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않고 있던 신녀이 입이 열리고....
천상의 옥음처럼 신비한 음색과 함께 타말과 신녀를 둘러싼 짙은 어둠에 균열이 생긴다.
"아난타....!"
짙은 어둠만이 존재하는 허공에 홀로 존재하는 것처럼 떠있는 붉은 눈에서 짙은 혈광이 뿜어져 나오고....
갈라지는 어둠속으로 눈부신 태양 빛이 헤집고 들어온다.
그리고....
어둠을 뚫고 들어오는 찬란한 빛속에서....
신녀의 옥음에 맞서는 것 같은 사이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깔깔깔....!
옴마니 반야....!
지옥에서 올라오는 것 같은 사이한 웃음소리와 천상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맑고 신비한 음성이 서로 뒤섞이며 갈라지는 어둠속을 울리고....
윽....!
마치 머릿속에서 공명하는 것 같은 울림에 타말의 입에서 참기 힘든 신음이 나왔다.
어둠속을 뚫고 들어오는 빛과 그 빛을 막기위해 더욱 짙어지는 어둠.
그 신비로운 광경속에 구멍뚫린 어둠이 물이 꽉 찬 가죽푸대처럼 팽팽하게 부풀어오른다.
그리고....
후욱!
가쁘게 몰아쉬는 숨소리 같은 묘한 소리가 들리고....
어둠을 뚫고 들어오는 빛과 함께 천조각이 찢어지는 것처럼 찢겨져 나가는 어둠.
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감탄하는 타말의 눈에....
사라지는 어둠속에 화를 내는 것처럼 신녀를 노려보는 붉은 두 개의 눈동자가 보인다.
그리고....
흐릿한 여명을 받으며 자신을 향하는 두 사람의 모습.
전신을 휘감은 체 일렁이는 붉은 기운속에 자신을 향하는 일남일녀의 모습에.... 타말의 회색빛 눈동자가 살짝 빛난다.
혈영....?
깔깔깔!
자신을 향하던 여인의 입에서 갑작스럽게 교소가 터져나오고....
마안소 魔眼笑만큼은 아니어도 자신의 머릿속을 자극하는 혈영의 교소에 타말이 전신의 공력을 끌어올린다.
소혼공 笑魂功....!
그리고 상그러운 정신 속에 자신을 향하는 짙은 혈무.
시야를 가리는 짙은 혈무 속으로 두 개의 붉은 손이 살짝 보인다.
후웁....!
깊은 숨을 몰아마시며 빠르게 타말의 두 손이 혈무를 향하고....
파앙!
공 터지는 소리와 함께 서로의 손바닥이 부딪친다.
그리고....
흩어지는 혈무속에 비릿하게 웃는 사내의 미소와....
타말의 옆구리를 향하는 시리도록 차가운 하얀 손.
흥!
싸늘한 콧웃음과 함께 타말의 옷이 풍선처럼 부플어 오르고....
팡팡팡!
빠르게 휘두르는 손바닥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내가 밀려나간다.
그리고 사내를 밀어낸 타말의 두 손바닥이 방향을 바꿔 하얀손을 향하고....
파앙!
폭음 같은 소리와 함께 주루룩 뒤로 밀려나는 타말과 여인.
그리고....
밀리는 몸을 바로 잡으며 타말이 빠르게 신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옴마야.... 옴메....!
입속으로 옹알이 하듯이 흘러 나오는 신녀의 주문과....
노려보듯이 이글거리며 짙은 기운을 뿜어내는 커다란 두 개의 붉은 눈.
아직은 괜찮구나....
걱정스런 마음에 재빨리 돌아본 신녀의 모습에서 마안의 환술에 견뎌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조 무적을 치료하기 위해서 너무 많은 신력을 소모했지만 아직은 마안의 환술에 영향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
신녀에 대한 걱정이 조금은 가라앉고....
다시 혈영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타말의 눈에....
응....?
잠깐 한눈을 판 그 짧은 순간에 어느새 자신의 코앞으로 다가온 혈수 血手와 소수 炤手.
빠르게 타말의 옷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찌르릉!
공기가 진동하는 소리와 함께 튕겨나가는 혈영과 뒤로 한 발 물러서는 타말.
"짜증나네.... 저 철벽기 鐵壁氣는 도대체가 뚫을 수도 없는 거야?"
정말로 화라도 내는 것 같은 사내의 말에 여인이 웃는다.
"깔갈깔....! 설마 그렇기야 할려구.... 자꾸 두들겨봐. 그럼 깨질거야."
쳇....!
짜증 섞인 두털거림과 함께 다시 두 사람의 몸에서 짙은 혈무가 일어난다.
그리고 혈무 속에서 하늘거리는 붉고 하얀 두 개의 손.
조 무적에게 월광도를 주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후웁....!
짧은 생각과 함께 타말이 깊게 숨을 들이쉰다.
그리고 강하게 뻗어내는 두 손바닥에서....
옅은 황금색의 빛이 일렁이며 빠르게 혈무를 향하는 타말의 장력.
쩌엉!
꺄아악!
폭음과 함께 흩날리는 혈무 속에서 울리는 째지는 것 같은 비명.
혈무가 사라진 자리에 한쪽 손목을 움켜쥔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너....?"
떨어져 나간 여인의 손에 사내가 놀라고....
"저 가짜 봉사가 금륜장 金輪掌까지...."
이빨을 악물며 여인이 중얼거렸다.
떨어져 나간 손목에서 희미한 통증이 느껴진다.
아무런 통증도 느껴서는 안되는 자신들이....
게다가 떨어져 나간 손목이 복원되지도 않는다.
아무리 천축의 법력이라지만.... 자신들의 재생력까지 부수는 항마절기 降魔絶技라니....
오늘 여기가 우리가 죽는 자리구나....
어차피 자신들을 마안을 도와 신녀의 발길을 막는 역할.
설령 자신들이 여기서 죽더라도....
혈영이 서로를 돌아본다.
가벼운 눈짓의 교환과 함께....
혈영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떠오른다.
우린 오래 살았잖아....
짙은 혈무와 함께 부풀어 오르는 혈영의 몸.
그리고....
"혈영.... 돌아가라!"
갑작스럽게 혈영의 귓가를 울리는 탁한 소리.
폭혈공을 끌어올리던 혈영이 움찔 놀란다.
사람의 혼을 녹일 것 같던 마안의 목소리가 왜....?
그 몽환적인 교성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이렇게 쉰 것처럼 탁한 음성이....?
"마안....?"
놀라서 고개를 돌리는 혈영의 눈에 태양빛에 녹아내리는 것처럼 사라지는 두 개의 눈동자가 보인다.
그리고....
"갈깔깔....! 가짜 봉사. 다음에 보자!"
요사스런 웃음소리와 함께 연기처럼 사라지는 혈무.
멀어지는 혈무와 함께 타말이 신녀를 향한다.
"괜찮습니까?"
"다행히 마안의 본신이 멀리 떨어져있어 환술의 영향을 덜 받았어요...."
신녀의 입에서 천상의 옥음 같은 아름다운 음성이 흘러 나왔다.
결국....
어차피 봉인이 풀리자 드디어 신녀가 본신의 신기 神氣를 모두 개방했다.
희미하게 보이던 신녀의 칠색서기 七色瑞氣가 이제는 태양빛 아래에서도 또렷히 보인다.
봉인이 풀리고 신녀가 신기를 감출 수가 없다면 이제는 더 이상 마안의 눈을 피할 수는 없다.
마물의 천적이라는 신녀의 신기는 마안에게는 불나방의 눈에 보이는 불과 같은 것.
하지만....
이제 천산을 넘을때까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끊임없이 달려들 저 걸어다니는 시체와 감당하기 벅찬 마안의 환술을....
"일단 하서회랑까지만 가요...."
조용한 신녀의 말에 타말의 회색빛 눈이 커진다.
정면돌파....?
* * * * *
짹짹짹....!
새벽을 알리는 산새들의 노래소리와 함께 무적이 살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 입가에 떠오르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천천히 침상을 내려오는 무적.
황산에서 자신이 죽던.... 생각하기도 싫은 그날의 기억이후로 정말이지 오랫만에 편하게 숙면을 취했다.
꿈속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아니.... 자신의 죄책감을 자극하던 핏물을 뒤짚어 쓴 동생들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과의 다정했던 한 때의 모습.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던 그 좋던 시절의 꿈을 꾸었다.
복수를 마쳐서인가....?
너희들의 인생을 망친 그 해골뼈다귀를 죽였기에.... 너희들이 나를 용서해주는 건가?
죽음이라는 끝을 보게 한 나를....
아니면....
아니면.... 내 얄팍한 한가닥 이기심이 스스로 아픈 기억을 잊으려 하는 건가?
동생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다시 떠오르자 잠시동안 머물렀던 얼굴의 미소가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더이상 죄책감에 짓눌려 괴로워하지 않고 마음 한구석으로 몰아넣는다.
더이상 해줄 것도.... 용서를 구할 수도 없는 지책감에 스스로 괴로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식어버린 마음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나....?
열정도.... 희망도....
아니.... 살아야 할 어떤 의미도 없어져버린 이 식어버린 마음으로....
문득 신녀에게 살려달라고 했다는 맹노의 말이 떠오른다.
큭큭큭....!
살고 싶었나....?
정말 살고 싶었던 것이냐.... 조 무적?
스스로에게 반문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살고 싶다면.... 살고 싶다면.... 왜 살고 싶은 거냐?
단순한 인간의 본능이냐?
아니면....
아니면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남았느냐?
모르겠다....
무적이 천천히 지팡이를 짚고 밖으로 나왔다.
강하게 얼굴을 때리는 새벽의 찬 공기가 새삼스럽게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그래.... 어디 한 번 살아보자.
이 몸으로 왜 살아야 하는지.... 왜 살려달라고 했는지 다시 한 번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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