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안魔眼
* * * * *
뽀글....! 뽀글....!
하얀 액체 속에 몸을 담근 무적이 눈을 뜬다.
그리고....
흐릿한 액체를 비추는 햇빛과 함께 자신의 머리를 누르고 있는 맹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며칠동안이나 수도 없이 통속에 잠기기를 반복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알수없는 액체 속에 담겨있는데도 불구하고 처음처럼 호흡이 막히거나 괴롭다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경맥을 따라 흐르는 자신의 진기.
완벽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기의 흐름을 통제하며 진기를 돌려본다.
일주천....
정확히 전신의 진기를 일주천시킬 만큼의 시간이 지나고 머리를 누르던 맹노의 손길이 떨어진다.
푸우....!
첫날처럼 격렬하지는 않지만 참았던 숨을 뱉어내며 무적의 얼굴이 통 위로 올라온다.
그리고.... 표정없는 얼굴로 자신을 보고있는 맹노의 모습.
무적은 어렴풋이 자신이 잠들었다 깨어나기를 되풀이한 횟수가 백 번은 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루에 한 번....
아니.... 하루에 두 번씩 의식을 잃고 깨어나는 것을 되풀이 했더라도 최소한 두 달은 이곳에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그동안 자신을 치료 하기위해서 급격히 늙어버린 것 같은 맹노의 모습.
"고.... 맙소...."
꽉 잠겨 듣기 거북한 음성이 무적의 입을 통해 나왔다.
전신의 기능이 돌아오고 목이 트인 지금도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어딘지 불편하다.
마치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목의 통증과 거북함.
하지만 맹노의 지쳐보이는 모습에 저절로 고맙다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처음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던 바로 그 순간 가장 먼저 들었던 의혹.
어떻게 자신이 이들의 손에 있는가? 하는 따위의 의혹은 접어버렸다.
단지.... 생면부지의 남과 다름없는 자신을 위해 이토록 애쓰는 그들이 고마울 뿐이다.
그냥 죽도록 버려둬도 좋았을 것을....
힘겹게 열리는 자신의 고맙다는 말에 맹노의 얼굴에 조용한 미소가 떠오르는 것이 보인다.
저 미소는 어떤 의미일까....?
자신의 노력으로 내가 살아나 회복한 것에 대한 만족의 웃음인가?
아니면....
첨벙!
맹노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는 중에 다시 자신의 머리를 통속으로 밀어넣는 억센 손길이 느껴진다.
이런....!
그냥.... 몸을 담구라고 하지.... 꼭 이렇게....
하지만.... 불평할 틈도 없이 벼락 같은 기운이 전신을 자극하고 뒤이어 일어나는 몸속의 진기....
무적이 천천히 전신의 경맥을 따라 진기를 돌린다.
오직 한 곳.
거북한 통증이 느껴지는 오른쪽 무릎을 제외하고는 딱히 막히는 곳도 통증을 느끼는 곳도 없다.
전신의 경맥을 따라 진기가 한바퀴 돌고....
단전으로 몰리는 내력과 함께 일주천이 끝났다.
그런데....
어....?
왜 머리를 누르고 있는 손을 치우지 않고....?
찌릿....! 찌릿....!
의혹을 느낄 틈도 없이 또다시 전신을 울리는 뇌전 같은 기운이 몰려오고....
뭐지....?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강한 기운이 전신의 경맥을 자극한다.
그리고....
마치 자신의 것인 양 갑작스럽게 전신으로 퍼지는 강한 기운.
또....?
격렬하게 몸안을 도는 진기를 구결에 따라 경혈로 돌리고....
대주천이 이루어지며 숨을 멈춘 듯 움직이지도 않는 무적.
뽀글거리며 올라오던 물방울도 더 이상 올라오지 않는다.
마치 무아지경에 빠진 것처럼 조용히 누워있는 무적과....
무적을 내려다보는 맹노의 회색빛 눈동자에서 반짝하는 빛이 떠오른다.
그리고.... 맹노의 전신에서 피어나는 아지랑이 같은 기운.
맹노의 전신을 휘감은 신비로운 기운이 오른손을 따라 무적의 머리로 향한다.
묘한 떨림과 함께 통속의 액체에 작은 파문이 일고....
파앗!
액체를 뚫고 올라오는 빛과 손을 거두고 물러나는 맹노.
헉....! 헉....!
마치 자신이 통속의 액체에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격한 숨을 몰아쉬는 맹노와....
살아있는 것처럼 허공으로 떠오르는 통속의 액체.
잠시 통 밖으로 고개를 내밀듯이 떠올랐던 액체가 조용히 가라앉으며 다시 무적을 감싼다.
그리고....
푸른빛이 돌던 흰 액체가 무적의 코를 통해 빨려 들어가며 통안에는 투명하게 맑은 물만이 보인다.
성공인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통을 내려다보는 맹노의 눈에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는 무적의 모습이 들어왔다.
멈췄던 호흡을 시작하고 살며시 눈을 뜨자 맑은 물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눈부시다.
마치 물속이 아닌 듯 편안하게 몸을 일으키고....
첨벙....!
자신의 몸을 따라 떠올랐다가 떨어지는 물을 보며 무적이 입을 연다.
"도대체 제게 무엇을 하신 것 입니까?"
바늘로 살짝 찌르는 것 같은 목의 통증 외에는 아무런 불편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날아갈 것처럼 가벼운 몸.
전신의 세맥이 모두 뚫린 것처럼 온몸이 가볍고 활기가 느껴진다.
"신경쓰지말게. 그냥 치료만 한 걸세...."
자연스럽게 나오는 맹노의 하대가 전혀 거북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런가요....?"
담담한 말과 함께 무적이 통속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윽....!
짧은 신음과 함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리는 무적.
이건....?
무적이 당혹스러운 눈으로 맹노를 보고....
미간에 깊은 주름을 만들며 맹노가 입을 열었다.
"그 다리는 도저히 어쩔 수가...."
* * *
방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맨땅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침상위에 무적이 비스듬이 앉아있다.
그리고 벽에 등을 기대고 있는 무적의 시선이 향하는 의자.
무표정한 얼굴의 맹노가 조용히 앉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좁은 방안에서 두 사람이 앉아 서로를 의식하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는 않는다.
그렇게 묘한 분위기 속에서 한참을 앉아있던 두 사람의 눈길이 방문을 향하고....
끼이익....!
뒤틀린 나무가 밀리는 거북한 소리와 함게 문이 열리며 망사로 눈아래를 가린 신녀가 들어온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맹노와....
형편없이 일그러지는 무적의 얼굴.
무적의 눈이 신녀의 손에 들린 투박한 그릇에 고정된다.
저걸 .... 또 마시라고....?
무적으로서는 맹세코 저런 쓴 것은 먹어본적도....
아니.... 생각조차 해본 적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손에 들린 그릇을 자신의 앞으로 내미는 신녀.
죽겠네....
슬며시 맹노를 쳐다보자 맹노가 모른척 고개를 돌려버리고....
망할....
무적이 아무 말도 없이그릇을 받아 부어넣듯이 단숨에 마셔버린다.
윽....!
정말이지 어떻게 이런 맛이....?
너무 강렬한 쓴 맛에 액체를 삼키고 나서도 입안이 얼얼할 정도의 쓴맛이 가실 줄을 모른다.
죽겠네....
"등을 돌려보게."
담담한 맹노의 말에 무적이 등을 돌리고....
등에 닿는 맹노의 장심이 느껴진다.
그리고....
우욱!
격한 구역질과 함께 토해져 나오는 토사물.
핏덩이처럼 검붉은 덩어리가 무적의 입을 통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속으로부터 올라오는 쓴 맛에 인상을 쓰는 무적.
처먹이고 또 토하게 하는 건 뭐야....?
"엄살은...."
중얼거리며 등에서 손을 떼는 맹노와 웃는 듯 보이는 신녀의 두 눈동자.
"이제 몸속에 남아있던 독은 모두 제거됐네."
맹노의 말에 무적의 눈이 반짝인다.
약인 줄은 알았지만.... 설마 해독약일 줄이야....
손에 들린 그릇을 내려다보자 지독한 쓴맛이 다시 떠오른다.
도대체가 무슨 놈의 약이....
"좀 걸을까?"
걷자는 말에 무적이 맹노를 올려다봤다.
이 다리로....?
그리고....
굵은 지팡이 하나를 자신의 앞으로 내내미는 맹노.
보통의 지팡이보다 두 배 정도는 굵어보이는 지팡이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무적이 지팡이를 받아들며 일어서고....
끙....!
어색하고 불편한 걸음으로 앞서가는 맹노를 따라 움직이는 무적.
문을 열고 나오자 시원한 밤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그리고 쏫아질듯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
천천히 몸을 움직이는 자신을 돌아보며 맹노가 입을 연다.
"곧 익숙해질 거네."
익숙해진다고....?
차라리 공력을 써서 한쪽 다리로만 움직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계속 한쪽 다리에 공력을 넣으며 사는 것이 더 불편할걸세."
뭐야.... 이 양반이 남의 속마음도 볼 수 있는건가?
무적이 생각을 접고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며 맹노를 따라 걷는다.
조금씩 지팡이에 체중을 싣는 것이 익숙해질 즈음 숲 앞에 놓여있는 커다란 통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는 맑은 물만이 가득 차 있는 통....
"이 통속에 있던 것은 무엇입니까?"
"별거 아닐세...."
"별거 아닌데 제가 회복된 것 입니까?"
따지듯이 묻는 말에 맹노가 조용히 무적을 돌아본다.
저 눈은....?
정말 장님인가?
마치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맹노의 눈길이 무적에게는 신기롭게만 보일 뿐이다.
"혹시 공청석유가 뭔지는 들어봤는가?"
공청석유....?
"못 들어봤습니다."
"정말 모르나?"
"예."
"공청석유는 돌에 생기는 물일세."
"예....?"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를....
돌에 무슨 물이 생긴다고....?
"오랜 시간동안 천지간의 정화를 받은 돌에는 물이 생긴다고 하네. 그것이 천 년에 한방울이 생기는 것인지.... 백 년에 한방울이 생기는 것인지는 모르나 그렇게 생긴 물이 바위에 고이고 천지간의 정화가 쌓이게 되면 일반인을 물론이고 무림인이라면 누구라도 목숨을 거는 영약이 되지. 우리는 그 물을 공청석유라고 부른다네."
무적이 힐끗 나무통을 돌아본다.
"이 통을 채울만큼의 양이라면.... 엄청난 양이 아닌가요?"
"자네.... 미쳤나? 그 통을 채울만큼의 공청석유가 정말로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아니겠지?"
"예....?"
맹노가 손가락 세 개를 펴보인다.
"몇 방울만 떨어뜨린 걸세.... 그리고 그걸로 자네를 치료하는데는 충분했고...."
몇 방울로 죽은 시체나 다름없는 자신을 살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 귀한 것을 쓰면서....
"왜 저를 살려주신 것입니까?"
"응....?"
갑작스런 말에 맹노가 무적을 빤히 쳐다본다.
"왜 살려줬느냐고....? 살려달라고 했으니 살려줬지...."
살려달라고 헸다고....?
무슨 소리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려 걸어가는 맹노.
무적이 숲으로 들어가는 맹노를 말없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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