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舊怨4
* * * * *
물에 적신 천으로 정성스럽게 자신의 몸을 닦는 여인의 손길.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병자가 침상에 오래 누워있게 되면 욕창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오랜 침상생활을 하는 환자들의 몸을 자주 움직여줘서 자세를 바꾸고 몸도 닦아준다는 이야기는 들어봤다.
하지만....
그것도 친 혈육이나 부부는 돼야 가능한 이야기다.
자신과는 생면부지나 다름없는 저 여인이....
그리고 젊은 여인의 손길에 반응을 보이는 자신의 몸과....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것인지 자신의 반응에 떨리던 여인의 손길은 더 이상 느낄 수 없다.
돌겠네....
윽....!
갑자기 여인이 어디를 건드린 것인지 눈물이 날 것 같은 통증과 함께 자신도 모르게 상체가 들려진다.
그리고....
일어나 앉다시피한 자신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는 여인.
털썩!
거짓말처럼 일으켰던 상체가 다시 침상으로 넘어진다.
이 통증은 뭔가....?
왠만한 통증은 모두 사라진 지금에 와서 이 끔찍한 통증은....?
"흠.... 저 다리는 도저히 안되겠는데요?"
응....?
언제 와 있었지?
맹노의 음성에 신녀의 손이 빠르게 움직인다.
"알겠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가?
분명히 자신의 이야기가 틀림없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가만....?
분명히 다리라고 하지 않았었나....?
다리라는 말을 떠올리자 문득 오른쪽 다리가 생각났다.
부서졌던 것이 자신의 오른쪽 무릎이었던가?
온 신경을 오른쪽 다리로 가져가본다.
그리고 은은하게 느껴지는 통증.
희미하게라도 감각이 느껴지는 다른 곳과는 다르게 끔찍한 통증 외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다.
완전히 망가져 버린건가?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조용한 맹노의 음성이 들린다.
무엇을 시작한다고....?
궁금증을 느낄 틈도 없이 맹노가 자신을 들쳐 업는다.
윽....!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천정밖에 볼 수 없었던 자신의 눈에 방안의 전경이 들어온다.
맨땅위에 덩그러니 놓여져있는 조잡한 침상하나.
지금까지 저곳에 누워있었는가?
삐걱!
엉성하게 나무를 덧대서 만든 허술한 문이 열리며 자신을 업은 맹노가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울창한 숲.
빽빽한 숲의 나무를 베어내고 집을 지은 듯 집주위의 넓은 공터를 둘러싸고 있는 빽빽한 숲만이 보인다.
산 속인가....?
저벅! 저벅!
맹노의 발걸음소리와 함께 눈앞으로 다가오는 커다란 통이 하나 보였다.
아름드리 고목을 베어내고 반을 잘라 속을 파낸 것 같은 모습의 통.
어찌보면 마치 여물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 둘은 들어가고도 남을만한 통속에서 찰랑거리는 액체.
우유빛깔의 흰 액체 속에서 언뜻언뜻 떠오르는 푸른 빛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뭐지....?
여물통 속의 액체가 무엇인지 유심히 살피는 자신을 내려서 조심스럽게 통속에 눕히는 맹노.
찰랑찰랑....!
자신의 코 앞에서 찰랑거리는 액체와 함께 맹노의 손이 머리에 닿고....
웁!
뭐하는 짓이야?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자 벌려진 입안으로 진한 액체가 밀려들어온다.
뽀글....! 뽀글....!
움직이지도 숨을 쉴 수도 없는 답답함 속에서....
갑자기 정수리를 타고 들어오는 뜨거운 기운.
억....!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뜨거운 기운이 머리를 통해 경추를 타고 내려온다.
동시에 전신을 울리는 짜릿한 느낌이 한 순간에 발바닥의 용천혈까지 내려와 경혈을 자극한다.
그리고....
갑자기 사라지는 머리를 누르던 압력.
푸앗!
무적의 머리가 통 위로 올라오고....
쿨럭....! 쿨럭....!
격렬한 기침과 함께 무적이 폐에 찬 물을 뱉어낸다.
아....?
또렷히 느껴지는 전신의 감각과 함께 통의 테두리를 힘껏 움켜쥐고 있는 자신의 두 손이 보인다.
내가 움직였어....?
놀라서 고개를 들자 자신을 보고 있는 탈색된 두 개의 눈동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희미한 미소와 함께....
다시 한 번 자신의 머리를 누르는 맹노의 손.
첨벙! 첨벙!
숨도 쉴 수 없는 답답함에 몸부림을 치는 자신이 느껴진다.
그리고....
또 다시 느껴지는 벼락 같은 자극.
푸앗....!
헉....! 헉....!
격한 숨소리와 함께 자신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하다.
목이 뚫렸나....?
그리고 다시 머리를 누르는 맹노의 손길....
이런 미친....!
얼마나 물을 먹은 것인가?
한참을 통속에 잠겼다 나오기를 반복한 무적이 거친 숨을 몰아쉰다.
헉! 헉!
하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전신의 감각과 함께 통의 양쪽 테두리를 꽉 쥐고 있는 자신의 두 손.
움직일 수 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맹노를 올려다본다.
아....?
온 얼굴을 덮고 있는 굵은 땀방울과 갑자기 십 년은 더 늙어 보이는 맹노의 모습.
나를 치료하느라....?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단 한마디의 말도 나오지 않는다.
결국 목소리는 잃어버린 것인가....?
"오늘은 이만하자...."
자신에게 하대를 하는 맹노의 음성이 쉰 것처럼 탁하게 들린다.
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나를 치료해주는 것인가....?
* * * * *
불이 꺼진 어두운 철방.
화로를 달구는 불길과 망치질로 시끄러워야 할 철방이 싸늘하게 식어있다.
군 자명은 표정없는 얼굴로 어두운 철방 안을 돌아봤다.
거간꾼을 통해 구입한 버려진 철방.
한중으로 들어온 군 자명은 맨 먼저 외곽의 이 버려진 철방을 구입했다.
그리고 잡다한 물건을 구매하고....
이곳에서....
이곳에서 그들을 상대할 물건을 만든다.
삼백 년이나 지난 케케묵은 원한이지만 자신과 아버지는 한 번도 그 원한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자신의 조상들도....
그리고 그들을 상대하는 것이 흑우의 검이 되어서는 안된다.
반드시.... 반드시 삼백 년 전의 그 물건이라야만 한다.
군 자명이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리며 화로에 손을 얹어본다.
차갑게 식어있는 화로.
오래전 버려져 차갑게 식어있는 화로가 마치 자신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자신의 마음처럼 차가운 감촉 속에 쓰다듬듯이 손을 움직이던 군 자명이 천천히 허리의 검을 풀어 한쪽에 세워둔다.
그리고....
화섭자를 이용해 화로에 불을 붙이고 풀무질을 시작한다.
짚에서 화목으로 불이 옮겨 붙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식었던 화로에서 시뻘건 불길이 일어난다.
붉은 불길에 더 빠르게 풀무질을 하며 불길이 자리를 잡기를 기다리고....
드디어.... 붉게 타오르던 불길이 선홍빛으로 변한다.
불길이 자리를 잡자 천천히 일어나 철방을 벗어나는 군 자명.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들어오는 군 자명의 손에 무언가가 들려있다.
나무로 테두리를 만들고 모래로 속을 채운 틀과 몇 개의 철구.
화로의 불이 절정에 달하자 화목을 더 챙겨넣고 쇠를 녹이기 위한 주물 통에 철구를 넣고 화로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가는 군 자명.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단단한 쇠에서 물이 나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주물통안의 철구가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들어오는 군 자명의 어깨에 걸린 커다란 자루.
자루를 끌러 화목을 몇 개 꺼내서 화로에 넣는다.
다시 몇 개의 철구를 더 꺼내 주물 통에 넣고....
조용히 풀무질을 시작하는 군 자명.
한동안 계속되는 풀무질 속에서 화로의 불길이 푸른 빛을 띠기 시작하고....
풀무질을 하던 군 자명이 깍지를 끼고 몸을 눕힌다.
아무 생각없이 천정만 보는 것 같던 군 자명이 어울리지 않게 피식 웃는다.
내가 이이 저주받은 물건을 다시 만들게 될 줄이야....
황도의 집에는 자신이 만든 이 물건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가 만든 것도....
물론 완전히 그 형태를 갖춘 완성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흑우의 검과 함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반드시 이어져야만 하는 가문의 비밀.
그렇지만 정작 자신은 물론이고 아버지 조차도 이 물건을 사용할 일이 생길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적이 없었다.
강江과 하河를 사이에 두고 서로 평행선을 걸어야하는 그들과 마주할 날이 있으리라고는....
정말이지 이 물건을 사용하게 되는 날이 올줄은 몰랐다.
지난 삼백 년간 단 한 번도 쓰이지 않았던 물건.
삼백 년전 가문을 파멸로 이끌었던 이 저주받은 마물을....
부글부글....!
쇠가 녹아 쇳물이 끓는 쇠리와 함께 군 자명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끓어오르는 쇳물을 금형틀 속에 부어 넣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꽈지직!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부서지는 나무틀.
쇳물이 식을 시간이 지나자 군 자명이 틀을 부쉈다.
뜨겁게 달아오른 모래가 흩어지며 그 모습을 보이는 원형의 물건.
군 자명이 아직도 후끈한 열기를 뿜어내는 달아오른 원형의 물건을 집게로 집으며 망치를 든다.
땅! 땅!
망치질과 함께 불순물이 떨어져나가고.... 붉은 속살을 드러내는 원형의 쇳덩어리.
둥근 형태만 만들어진 쇳덩어리를 군 자명이 멍하니 본다.
아직도 수천 번의 담금질과 손질이 남은 투박한 형태.
치이익~~!
달아있는 쇳덩이를 찬물에 담근다.
달아있는 쇠가 식는 소리와 함께 솟구쳐 오르는 뜨거운 김.
그리고 반짝이는 군 자명의 눈빛.
너희들이 원하던 바로 그 마물이다....
아니.... 너희들이 그토록 원했던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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