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록-65화 (65/158)

구원舊怨2

* * * * *

퍽!

떡매치는 소리와 함께 집채만한 바위가 부서져 흩어진다.

모래처럼 바람에 날려 사라지는 바위의 잔해가 보이고....

조금 전까지 그 자리에 바위에 있었다는 것을 의심하게 만드는 빈 공터.

그리고....

담담하게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보는 초 일.

다르다.

분명히 그때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살아있는 생명이 아니라서.... 움직일 수가 없는 돌덩어리라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조 무적에게 마지막 주먹을 날렸을 때의 그 느낌....

저렇게 부서져 날리는 바위처럼 아무런 저항도 없이 무너지지 않았다.

뒤이어 나타난 그자들 때문에 시체를 확인 하지도 그 느낌을 곱씹어보지도 못했지만....

분명히 느꼈다.

아주 미약했지만 자신의 경력을 튕겨내던 그 느낌.

하아....!

내가 흥분 했었던가....?

초 일이 주먹을 내리고 하늘을 올려다 봤다.

하늘 높이 떠 있는 뭉개구름사이로 흐릿하게 조 무적의 모습이 떠오른다.

부서진 오른쪽 다리를 벌리고 주저앉은채로 칼을 치켜드는 모습.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져 입과 코를 통해 짙은 피를 토해내면서도....

귀신 같은 놈....

어떻게 그몸으로도.... 칼을 들 수가 있는지....

죽음에서 살아 돌아왔다고....?

과연 이번에도 살아서 돌아올 수 있겠느냐?

만약에.... 만약에.... 이번에도 살아 돌아올 수 있다면....

다시 돌아온다면....

초 일이 자신이 주먹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그래. 다시 한 번.... 다시 한 번.... 꼭 살아서 돌아와봐라....

* * * * *

흐릿한 눈길에 희미한 천정이 보인다.

나무인지.... 짚인지.... 듬성듬성한 지붕사이로 들어오는 옅은 햇빛이 침침한 눈을 자극한다.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지독한 눈의 통증.

그리고 똑바로 보이지도.... 볼 수도 없다.

왜 이렇지....?

그리고 오롯이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

물에 적신 천인가?

촉촉하고 차가운 무엇이 자신의 얼굴을 스치는 느낌이 들었다.

일어나려고 해도.... 몸을 움직여보려고 해도.... 움직일 수가 없다.

단지 얼굴을 닦는 손길에 얼굴을 맡겨 둘 뿐이다.

정성스럽게 얼굴을 닦아주던 손길이 멀어지는 기분이 들고....

첨벙!

웅웅거리며 울리는 귓전에 물통 속에 무엇인가를 넣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그리고 다시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

정성스럽게 목과 가슴 그리고 어깨를 닦는 손길에 무적이 힘겹게 고개를 돌려본다.

왜 이래....?

끊어지는 것 같은 통증과 함께 고개를 돌리기는 커녕 꼼짝도 할 수가 없다.

고개를 돌릴 수 없자 이번에는 무적이 힘겹게 눈동자를 굴려 자신의 몸을 닦아주고 있는 상대를 올려다봤다.

흐릿한 모습.

형태는 보이지만 누군지는....

또 다른 지옥인가?

죽어서 다시 지옥으로 온 건가?

하긴 그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데....

지옥에 가지 않는다면 그것도 우스운 일이지....

실없이 웃고 싶어지지만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복부를 닦으며 밑으로 내려가던 손길이 살짝 떨리는 것이 느껴진다.

어디를 닦는지 볼 수는 없지만 알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우습다.

목 아래의 내 몸이 있기는 있는 것인가?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인데도 불구하고 상대의 손길은  느낄 수 있다니....

삐걱!

움직이지도 입을 열지도 못하는 기막힌 상황에 무적이 멍하니 천정만 보고....

뒤틀린 나무가 밀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들어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흠....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이 놀랍군요."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던 정적을 깨는 늙어수레한 음성과 함께 자신의 몸을 닦아주는 손길이 멈춘다.

그리고 자신의 목을 받쳐 드는 손길.

자신이 몸을 닦아주던 손길보다는 억세게 느껴진다.

이 사람은 남자인가....?

그렇다면 자신의 몸을 닦아주던 그 손길은 여인의....?

누굴까....?

빠르게 머리 속을 스쳐지나가는 생각과 함께 목을 받쳐든 손길에서 무엇인가가 입술을 적시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혀를 타고 들어오는 이물질.

물인가?

아니면....

바짝 마른 입속으로 들어오는 액체에서 아무런 맛도 느낄 수가 없다.

그냥 무엇인가가 들어온다는 느낌만이....

아....!

그리고 몰려오는 졸음.

저절로 눈이 감긴다.

이렇게 잠이 들어도 괜찮은 건가?

* * * * *

수십 명의 사람들로 가득 찬 객점.

사람이 가득 찼다는 표현이 조금은 이상하지만 넓은 객점 안을 가득 매운 무복을 입은 사람들이 조용히 음식을 먹는다.

이 정도의 사람이 모여 있다면 시끄러울만도 하건만 음식을 먹는 소리만 조금씩 들릴 뿐 단 한마디의 음성도 밖으로 새어나오지는 않는다.

묘한 긴장감과 절제된 동작.

객점 안의 모든 사람들이 창가에 앉아있는 한 사람의 눈치를 보는 듯 긴장해 있고 또 그런 것에 익숙한 듯 조용히 식사만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풍겨져 나오는 몸에 벤 절제된 움직임.

덜컹~~!

조용하던 객점의 문이 열리는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입구을 향하고....

객점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면서도 전혀 흔들림이 없이 다시 문을 닫고 몸을 돌리는 사내의 모습이 보인다.

사내는 빠르게 객점 안으로 들어와 창가에 앉아있는 자를 향하고....

"드디어 그자가 산을 내려왔습니다."

허리를 숙여 입을 여는 사내의 말에 창밖으로 시선을 두고 있던 자가 고개를 돌린다.

도 명기....?

"세 사람이 함께 내려왔느냐?"

"아닙니다. 혼자서 내려왔습니다."

혼자서....?

이제서야 철각선풍개와 헤어진 건가?

껄끄러운 개방이 없다면....

"지금 어디에 있느냐?"

"촉로를 따라 한중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섬서로....?"

도 명기가 살짝 검미를 찌푸렸다.

왜 하필 섬서로....

이제는 잃어버린 자신들의 터전....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잃어버린 고향.

하지만....  섬서라도 상관없다.

내 물건에 손을 댄 자는 누구라도....

"식사 마쳤으면 모두 이동한다."

도 명기의 말에 객점 안에 있던 모든 자들이 빠르게 몸을 일으킨다.

"섬서로.... 간다."

* * * * *

천천히 눈을 떠본다.

밤인가....?

천정을 뚫고 들어오던.... 눈을 자극하던 그 아픈 빛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사방으로 깔리는 어둠.

그 짙은 어둠을 뚫고 희끗희끗 보이는 저 약한 빛은 달빛인가?

아니면....?

윽....!

이곳이 어딜까하는 생각중에 급작스럽게 다가오는 통증과 함께 뚜렷이 느껴지는 감각.

내가 옆으로 몸을 움직였나?

조용히 눈을 감고 목 아래의 몸을 움직여본다.

여전히 움직일 수는 없지만 야릇하게 느껴지는 손끝의 감각.

흠....!

감각이 살아나는 것인가?

삐걱!

손가락이라도 움직여보려고 있는 힘을 다 짜내는 무적의 귀에 낡은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부서질 것 같은 고통과 함께 자신의 목을 받쳐드는 손길.

아니.... 목만 받치는 것이 아니라 등을 들어 올리는 느낌과 함께 전신을 두드리는 끔찍한 고통이 느껴진다.

망할.... 누구를 죽이려고....

"호오....? 벌써 감각이 돌아오는 것인가?"

무적의 귀에 낮설지않은 늙어수레한 음성이 들린다.

귀에 익은 익숙한 음성은 아니지만 분명히 어디선가 한 번 쯤은 들어본 것 같은 음성인데....?

누워있는 동안 여러 번 들어서 그런 느낌이 드는 건가?

갑자기 상대의 손이 얼굴로 다가오고 입술에 닿는 사기그릇의 질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입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액체.

욱....!

뱉어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지만 뱉어낼 힘도 없이 그냥 삼킨다.

아니.... 삼키는 것이 아니라 뱉어낼 힘이 없어 상대가 부어 넣는대로 그냥 밀려들어가는 건지도....

분간 할 수도 없는 묘한 느낌 속에서 세상에서 처음 맛보는 쓰디쓴 액체.

이 더러운 맛은 도대체 뭘까....?

슬며시 눈을 떠 상대를 본다.

전날보다는 조금 나아진 자신의 시야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 비친다.

두관처럼 머리에 감아놓은 천으로 만든....

모자?

눈동자를 조금 내리자....

....!

탈색된 하얀 눈동자가 보인다.

무슨....?

놀란 마음에 눈동자를 조금 움직이자 상대의 얼굴이 비로소 온전히 눈에 들어온다.

맹노....?

전날 우연히 만났던 맹노의 모습에 무적이 멍해진다.

어떻게 맹노가....?

"내가 보이시오?"

자신에게 말을 거는 맹노의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다.

어떻게 자신이 눈을 뜬 것을 알 수가 있는가?

정말 장님이 맞기는 한 건지....

하지만 궁금한 것은 궁금한 것일 뿐....

입을 열어 말을 하려고 해도 입이 열리지 않는다.

아니.... 입은 열리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성대도 망가져버린 것인가?

가만히 눈을 깜빡이자 맹노의 웃는 모습이 보인다.

"많이 좋아졌소. 처음엔 시체인줄 알았는데...."

이게 시체나 다름없지....

말은 고사하고 손가락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눈동자만 굴리는 이몸이 시체보다 나을 게 뭐가 있다고....

속으로 중걸거리는 중에 또 다른 누군가가 방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얼굴.

이 여인이....?

망사에 가려져 두 개의 검은 눈동자만 보이는 얼굴이 자신을 내려다본다.

신비롭게 반짝이는 초롱초롱한 두 눈동자.

저 눈동자가 발가벗은 자신의 몸을 보고....

저 손길이 내 몸의 구석구석을 닦아줬다고....?

왠지 묘한 기분이 든다.

생면부지의 남과 다름없는 자신을....?

"아직은.... 조금 더 회복한 후에야 대법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여인이 손짓으로 무엇인가를 묻고 맹노가 답하는 건가....?

그런데 대법이라니....?

무슨 대법을....?

궁금증에 또르르 눈을 굴리는 자신을 여인이 가만히 본다.

그리고....

자신의 미간에 살며시 닿는 여인의 손가락 하나.

뭐야....?

저절로 눈이 감기며 어둠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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