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록-52화 (52/158)

초혼산8

가 종덕이 당 풍호애게 눈길을 돌려 군 자명을 말려달라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응?

괜찮다는 것처럼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당 풍호의 모습에 기가 질려 버리는 가 종덕.

저 철없는 교두와 원수라도 진 건가?

저렇게 개죽음을 당하도록....

하지만 이어지는 당 풍호의 말에 가 종덕은 얼이 빠져버린다.

"군교두! 그자는 무림십흉중에서도 따로이 오흉으로 불리는 무림의 공적이요. 백도무림인이라면 누구라도 저들을 죽여도 된다는 척살령이 떨어진...."

뭐야....?

말리기는 커녕 싸움을 부추겨....

이 여우새끼가 정말 차도살인借刀殺人이라도 하려는 거야?

배 성환을 보고있던 군 자명의 무심한 눈이 가 종덕을 향한다.

"죽여도 되는 거요?"

흠칫!

세사람이 함께 초혼산까지 오면서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차가운 표정과 말투.

군 자명의 급변한 모습에 가 종덕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고맙소."

"지랄을 떠는군...."

상대의 황당한 짓거리에 배 성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설마 자신의 목을 치는 것이 닭모가지 비틀 듯 쉽다고 생각하는 거란 말인가?

물론 저 철각선풍개라면 쉽게 승부를 장담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저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인간들이....?

"이 새끼들이 사람을 뭘로 보고!"

격한 감정에 분노의 일갈과 함께 군 자명을 향하는 배 성환의 대월극.

기다란 대월극의 날이 군 자명의 목을 향해 빠르고 날카롭게 날아간다.

파란 빛이 일렁이며 주위의 공기를 얼려버릴 것 같은 한기.

그리고....

스윽!

마치 움직이는 소리라도 들리는 것처럼 한발을 살짝 떼는 군 자명의 목 옆으로 대월극이 빠르게 지나간다.

흥!

싸늘한 콧웃음과 함께 대월극을 피한 군 자명의 눈에 비릿한 배 성환의 미소가 들어오고....

피윳!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찔러가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군 자명이 됫목을 노리며 당겨지는 대월극.

역참단두逆斬斷頭.

배 성환의 대월극은 극의 전체에 날이 서 있다.

그래서 상대의 몸을 비껴간 대월극을 회수하기위해 당기게 되면 찌르는 것과 같은 효용이 생긴다.

쉽게 상대의 무기를 피했다고 방심하는 순간 돌아오며 뒷목을 자르는 대월극의 절기인 역참단두.

하지만....

응?

배 성환이 살짝 놀란다.

빠르게 당겨져야 할 자신의 대월극이 천근은 되는 것처럼 무겁다.

무슨....?

그리고....

어느새 대월극의 자루를 잡은 체 자신의 앞에 서있는 상대의 모습.

아!

깜짝 놀라 다시 대월극을 밀어내려는 순간....

빡!

큭!

옆구리의 갈비뼈가 모두 부서지는 것 같은 고통.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에 배 성환의 손에서 대월극이 떨어진다.

그리고....

땅!

경쾌한 쇳소리와 함께 배 성환의 머리에 떨어지는 대월극의 자루.

입으로 게거품을 뿜어내며 쓰러지는 배 성환을 향해 다시 군 자명이 손에 들린 대월극을 높이 치켜든다.

죽여도 된다.

이 자는 백도무림에서 공적으로 척살령이 내려진 자.

죽이자....

하지만 쉽게 내려오지 못하고 허공에 멈춰서 있는 대월극.

하아!

번뜩이는 눈으로 배 성환을 내려다보던 군 자명이 가벼운 한숨과 함께 대월극을 숲속으로 던져버린다.

빌어먹을....

차마 쓰러진 상대에게까지 살수를 펼치지는 못하는 군 자명의 성품.

"입 닫아!.... 벌레 들어간다."

아....!

나직한 당 풍호의 말에 가 종덕이 떡 벌어진 입을 닫았다.

저 인간....

눈 앞으로 날아오는 대월극을 가볍게 한 발을 떼면서 피했다.

그것도 상대의 무기가 뿜어내는 경력에 상하지 않을 딱 그 정도의 간극을 두고 피해냈다.

그리고 상대의 무기에 바짝 붙어 긴 무기의 효용을 상쇄한다.

엄청난 용기에 믿을 수 없는 안력, 그리고 가벼운 몸놀림.

자신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차라리 현문의 신공절학처럼 대월극을 튕겨내버렸다면 현문의 신공이니 그럴수도.... 라고 하겠다.

아니 대월극의 기세를 뚫고 빠르게 움직여 상대를 제압했다면 신풍귀견神風鬼見의 신법은 열두 가문에도.... 자신들 개방에도 있다고 또 그러려니 할 수 있다.

하지만 딱 상대의 속도에 맞춰서 조금의 불필요한 동작도 없이 간결하게 상대의 움직임을  제압한다는 것은....

그렇다면 적어도 저 대월극의 움직임 정도는 손안에 있다는 이야기다.

저 자가 마음먹고 전력으로 움직인다면 과연 얼마나 빠를까?

이건 상대가 얼마나 강한가 하는 것과 직결하는 문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상대가 얼마나 빠를지 예측조차 할 수가 없다.

금군의 교두라고....?

미치겠네.

그리고 검을 쥔 왼손을 들어올려 상대의 옆구리를 가격한 수법은?

검을 뽑지도 않고 단순히 손에 쥔 검의 손잡이로 한 방에 상대를 제압해버렸다.

그것도 일류를 상회한다는 혈극 배 성환을....

가 종덕이 당 풍호를 돌아봤다.

도대체가 저 괴물같은 인간은 누구냐는 의문을 담은 눈길에 당 풍호도 말뚱말뚱 눈만 깜빡거린다.

전날 한 번 본적이 있었지만 저 실전적인 수법은....

문득 당 풍호는 무공에 있어 경험이라는 한마디가 떠올랐다.

군문에서 흑우의 검을 상대할 수 있는 고수는 당연히 없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가진 바 능력을 다 펼쳐보지도 못하던 군 자명이 의도치않게 등 무결이라는 고수를 만났다.

천하에 얼마 없다는 괴물같은 절정고수를....

아마도 그 한 번의 겨룸에서 군 자명은 많은 것을 얻었을 것이다.

자신의 검을 막을 수 있는 상대.

전력을 다해 상대해야할 고수와의 싸움은 모르기는 몰라도 군 자명을 조금은 성장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성장이 저렇듯 가장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군 자명에 대해서 깊은 생각에 잠겼던 당 풍호가 갑자기 깜짝 놀라며 눈길을 돌렸다.

분명히 두려울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내색하지않고 꼿꼿이 서 있는 길 평과 영영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하아....!

조 무적이라....

친구의 모습에서 그 사람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평범한 일반인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람의 몸이 찢겨져 나가고 살벌한 무림인들이 서로 각을 세우고 싸우는 모습.

그리고 저 두 남녀는 분명히 평범한 일반인이다.

두려움에 몸이 떨려 주저앉을 법도 하건만....

가 종덕이 몸을 돌려 길 평을 향해 입을 열었다.

"길 대인, 저는 개방의 가 종덕이라는 사람입니다. 저희들이 제때에 오지 못해서 험한 꼴을 당하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가 종덕의 인사에 길 평이 흠칫 하며 마주 포권을 한다.

"정말 감사합니다. 경황이 없어서 인사가 늦었습니다. 가 대협이 아니었다면 오늘 저희들이 큰 봉변을 당할뻔 했습니다."

길 평의 침착한 모습에 가 종덕의 눈에 살짝 이채가 떠오른다.

이 상황에서 놀라지도 않아....?

"아닙니다. 저희들이 좀 더 빨리 움직이지 못해서...."

가 종덕이 씁쓸하게 웃으며 바닥에 널부러진 함 노인의 시체조각을 내려다봤다.

찢어진 옷가지만 없다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려운 참혹한 시체.

"길 대인.... 다름이 아니라 대인의 친구분이신 조 대협께서 지금 군마맹이라는 곳과 은원이 얽힌 듯 합니다. 아무래도 이곳에 있는 것은 두분의 신변에 위험이 따를 수도 있을 것 같으니 저희와 함께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가 종덕의 말에 길 평이 게거품을 물고 바닥에 쓰러져있는 배 성환을 힐끗 돌아봤다.

천하의인의 상징인 개방이 저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주겠다고 한다.

어릴적 춥고 배고픈 그 힘든 시절에 자신은 항상 그런 꿈을 가지고 있었다.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개 밥을 훔쳐 먹고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무적과 서로 부둥켜 안고 추위와 싸우던 그 시절....

지나가던 개방의 한 고인이 자신과 무적을 거두어 개방의 제자로 키운다는 터무니 없는 꿈을....

기연이라는 이름의 무지개처럼 잡히지도 않는 허망한 꿈을 꾸었다.

그런데 다 늙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지금에 와서....

크크크....

웬지 허망한 웃음이 난다.

이 망할 놈의 인생....

어릴적 그렇게 힘들 때는 보이지도 않더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희들도 몇 가지 챙길 것은 챙겨야하니 오늘은 그냥 가시고 내일 일찍 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대신해 갑자기 영영이 입을 연다.

영영....?

길 평이 고개를 돌려 영영의 얼굴을 한 번 본 후 다시 가 종덕에게로 고개를 돌려 머리를 살짝 숙여보이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가 종덕이 두 사람을 향해 나직히 대답을 했다.

군 자명의 일행이 함 노인의 시체를 수습하고 배 성환을 짐짝처럼 들고 내려가는 것을 보며 영영이 입을 연다.

"길 대가, 저들은 어떤 자들입니끼?"

"저들? 개방은 천하의 정을 수호하는 의인들의 집단으로 저만한 재주를 가졌으면서도 스스로 호의호식하는 생활을 버리고 무강요, 무소유의 원칙을 지키며 타인의 것을 탐내지 않고 세상의 모든 힘든 자들을 돌보는 진정한 의협인들이지...."

"세상의 모든 힘든 자들을....?"

영영의 나즈막한 중얼거림에 길 평은 왠지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딱히 뭐라고 말하기 힘든 야릇함.

"그런데 우리가 정말 힘들때 남편을 죽이고 형제를 죽여야했던 그 힘든 시기에 저들은 어디에 있었나요?"

응?

길 평이 무슨 소리냐는 듯 영영을 보며 입을 연다.

"그야.... 이 넓은 천하에서 어떻게 그들이 세상전부를 다 볼 수 있었겠나?"

"그렇지요. 그들이라고 이 넓은 세상을  다 볼 수는 없었겠지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우리가 여기있는 것을 알고 찾아온 것 일까요?"

"제수씨.... 무슨....?"

어딘지 모르게 슬픈 얼굴을 한 영영이 길 평을 똑바로 봤다.

"우리가 힘들때.... 저들의 도움이 꼭 필요할 때 저들은 우리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들이 이 깊은 산 속까지 찾아와 우리를 돕겠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야...."

영영의 말에 입을 열어 대답하려던 길 평이 입을 닫아버린다.

영영이 몰라서 묻는 말이 아니다.

"그래요.... 길 대가. 저들은 무적 때문에 우리를 찾아 온 것입니다. 그 뼈다귀밖에 없는 인간처럼 무적과 싸우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무적을 이용하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우리가 필요해서...."

길 평이 가만히 영영을 본다.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무적과는 다른 형태로 치열한 삶을 살아온 고통스러운 흔적이 영영에게서 흐릿하게 보인다.

"그래서 어쩌려고?"

길 평을 돌아보는 영영의 두 눈에 두려움과 함께 한 줄기 단호함이 살짝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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