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록-44화 (44/158)

당문비사3

당 풍호가 괴상한 표정으로 군 자명을 돌아보며 입을 연다.

"구결도 없이 도인술로 진기를 움직이는 법을 익히게 한 후 그렇게 흑우는 당가를 떠났소. 그리고 그가 떠날때 아주 묘한 말을 남겼소. 억지로 익힐 필요도 암혼의 비기를 끄집어낼 필요도 없다고.... 피를 통해 이어지는 암혼의 비기는 언제나 주인을 지켜준다고.... 거지 같은 흑우의 말에 혹한 당가의 선조들은 정말로 기뻐했지만 결국 십 년도 못가서 흑우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소. 그리고 그 사기꾼을 찾아 천하를 헤맸지만 흑우는 천하의 어디에도 없었고.... 군 교두. 도대체가 지난 삼백 년 세월동안 단 한 번도 당문의 가주가 무림에서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가문에 칩거하듯이 틀어박혀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아시오? 그 이유는 바로 그놈의 암혼정에 잡아먹혀버려서 거의 반 폐인의 상태로 살아야 했으니.... 게다가 더 끔찍한 것은 가문의 가주가 아들을 낳게 되면 그 암혼정이 다시 아들에게로 전해진다는 것이요. 멀쩡하던 아들이 적당한 나이가 되면 다시 암혼정에 잡아먹히고.... 그렇게 암혼정은 우리 당가에 대대로 전해져오는거요! 빌어먹을 놈의 흑우의 저주!"

"자식에게 전해진다고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 군 자명의 얼굴을 보며 당 풍호가 인상을 쓴다.

"믿기지 않지요?"

"아....네. 무슨 유전되는 병도 아니고 무공이 피를 통해 이어지다니....?"

이 인간이 사람을 놀리나?

군 자명은 당 풍호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괴이난측한 일이 수시로 벌어지는 무림이라지만 어떻게 저절로 피를 통해 무공이 이어진다는 말인가?

그것도 자신의 의사로 펼쳐내지도 못하고 사람을 폐인으로 만드는....

휴우....!

당 풍호가 깊은 한숨을 뱉어내며 길바닥의 돌을 힘껏 차서 날려보냈다.

"막상 당하는 나도 믿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믿겠소. 하지만...."

갑자기 말을 이어가던 당 풍호가 뭔지모를 야릇한 기분을 느낀 것처럼 고개를 돌려 마부를 쳐다봤다.

똘망똘망.

별로 크지도 않은 눈을 있는데로 치켜뜨고 두 사람을 쫄레쫄레 따라오고있는 마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당 풍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던 군 자명도 흠칫했다.

이 사람....?

딱히 표현하기 힘든 위화감.

무엇인가가 생각 날 것도 같은데....

그게 정확히 뭔지는 알 수가 없다.

살짝 눈살을 찌푸리는 군 자명의 모습을 힐끗 돌아 본 후 당 풍호가 다시 마부를 쳐다봤다.

낮선 손님을 태우고 악양까지 먼길을 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만난 혈불의 일행.

말의 목이 잘리고 마차가 산산조각이 났다.

아니.... 그것보다 자신들을 죽이려던 마귀 같은 승려들과 엄청난 신위를 보여준 자신의 암기술.

그리고....

칼이 들어가지 않는 상대를 죽이던 군 자명의 믿을 수 없는 검법.

그 모든 것을 봤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자신들을 태우고 악양행을 시작했다.

이자.... 정말 마부인가?

당 풍호가 눈앞의 마부를 자세히 살폈다.

별로 특이해보이지 않는 평범한 얼굴과 체형.

아니 자세히 보니 조금은 얄미워 보이는 얼굴인 것도 같다.

당 풍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모두 들었소?"

"네? 무슨 말씀이신지?"

커다랗게 뜬 눈에 의아한 빛을 담고 마부가 되묻는다.

"내가 누군지.... 사천의 우리 가문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하는 것 말이요."

"아....! 그런 말씀을 나누셧습니까? 전 마차를 어떻게 구입해야할지 고민하느라 두분의 말씀은 듣지도 못했습니다."

능청스러운....

당 풍호가 살짝 인상을 찡그린다.

두눈을 동그랗게 뜨고 얼굴을 바짝 들이밀어 자신들의 말을 모두 들은 것이 틀림없는데도 불구하고 눈앞에서 시치미를 떼는 상대.

하지만 못 들었다는데야....

"그런가요....?"

무의식중에 마부라고 상대를 무시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말투가 살짝 바뀐다.

어차피 하루정도는 더 걸어야 악양에 닫는다.

그동안 상대를 자세히 살펴보면 누군지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흑우가 다녀가고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가문의 조상들은 흑우가 우리에게 저주를 내렸다는 것을 깨닫게 됐소. 삼백 년 전 당 룡이 비참하게 죽을때 아무도 도와주지 못했던 우리 당문에 대한 저주.... 뭐 그때부터 우리 당가에서는 흑우의 저주를 벗어나기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방법이 없었소. 급기야 백 년 전에는 암혼정을 물려받은 조상 한 분이 스스로 거세를 하며 후손을 보지않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쓰게 됐소."

다시 이어지는 당 풍호의 말에 군 자명이 멍해져 버렸다.

스스로 절손까지 하면서 암혼정의 저주에서 벗어나려 하다니....

정말이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무림의 비사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당 대협은....?"

그렇게 후사를 보지 않고 절손한 당문에서 어떻게 암혼정이 당 풍호에게 전해진 것인가?

당 풍호가 마치 울 것 같은 얼굴로 군 자명을 보며 소리쳤다.

"사람 미치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분의 조카에게서.... 아니 우리 아버지에게서 다시 암혼정이 나타났소.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엥....?

군 자명이 얼이 빠져서 당 풍호의 얼굴을 쳐다봤다.

후손을 보지 않자 사촌에게서 다시 암혼정이 나타나다니....?

설마 이 인간이 내가 무림의 깊은 일을 알지못한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결국 피를 통해 어어진다는 흑우의 말은 직계의 피가 아니더라도 당가의 누구에게라도 나타날 수가 있다는 말이었소. 그리고 그렇게 이어진 암혼정이 이번에는 내게로...."

해학적이고 태산이 무너져도 눈도 깜짝하지 않을 것 같았던 당 풍호도 자신과 가문에 얽힌 이 무섭고도 기이한 일에는 도저히 무심할 수가 없었는지 다소 답답해 보였다.

아니 화병이 나서 울화통이 터진 것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당 대협의 영존께서는....?"

"우리 아버지라고 별다른 뽀족한 수가 있었겠습니까? 암혼정에 먹히고.... 가주가 된 후에도 무림에 얼굴을 보이지 않고 그렇게 칩거해 계실 수 밖에.... 그리고 그 빌어먹을 암혼정이 이번에는 내게로.... 아니 왜 형님이 아니라 이번에는 내게로 온거란 말이요?"

마치 따지듯한 당 풍호의 말에 군 자명이 멍청하게 눈만 껌벅거린다.

"저야.... 모르지요...."

빌어먹을....!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리는 당 풍호의 모습에 군 자명이 슬며시 화제를 돌린다.

"당 대협은 그 조 무적이라는 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아시고 계시지요?"

"조 무적?"

갑작스럽게 나온 조 무적이라는 이름에 신경질적으로 변했던 당 풍호의 얼굴에도 호기심이 떠오른다.

조 무적.

가 종덕의 말에 의하면 분명히 휘촌의 흑상이었던 조 무적은 죽었다.

그렇다면 조 무적의 이름을 쓰며 조 무적의 복수를 하고있는 지금의 조 무적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 조 무적이라는 자는 말이요...."

당 풍호가 입을 열어 자신이 알고있는 조 무적에 대한 이야기를 군 자명에게 자세히 들려줬다.

"그러니까.... 그  피에 미친 자가 본래 죽은 조 무적이라는 자의 복수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렇소.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지금의 조 무적은 죽은 자의 이름을 빌려쓰고 있는 자요."

군 자명이 깊은 생각에 잠긴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발밑을 보며 걷다가 다시 입을 연다.

"그런데 당 대협은 저와 함께 있었으면서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것입니까?"

당 풍호가 고개를 돌려 군 자명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연다.

"혹시 이런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천하의 모든 비밀은 개방에 있다는...."

"개방요?"

생각지도 못한 개방이라는 말에 군 자명이 깜짝 놀란다.

하지만 곧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군 자명.

개방을 정점으로 열두 가문이 모인 것이 바로 무림맹이다.

오랜 옛날 혈마를 막기 위하여 만들어진 무림맹.

그렇게 만들어진 무림맹은 대대로 개방의 방주에게 맹주위가 전해지고 열두 가문에서 장로의 직함을 받는다.

그리고 유사시에 맹주나 장로들의 발의에 열두 가문이 동의하게되면 천하정도의 가장 강한 세력인 무림맹이 그 실체를 보이고 세상에 나오게 된다.

결국 천 년이 넘는 세월을 이어온 열두 가문과 개방의 끈끈한 결속이....

"그럼 조 무적이 지금 악양에 있다는 것도 개방에서 연락해준 것입니까?"

"그렇소. 조 무적은 악양에서 백골문을 멸문 시킨 후 지금 개방의 악양분타에 있소."

"악양분타에....?"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설마 조 무적이 개방의 사람이라는 말이오?"

"아니요. 심한 부상을 당한 조 무적을 개방에서 구해준 모양이요."

"심한 부상을 당해요?"

눈이 휘둥그래지는 군 자명의 모습에 당 풍호가 쓴 웃음을 짓는다.

"아마 백골문의 문주와 싸우는 과정에서 당한 상처이지 싶은데 자세한 것은 나도 모르고 개방의 악양분타에 가봐야 알 것 같소."

"그렇단 말이지요....?"

군 자명의 얼굴에서 조 무적에 대한 적의보다는 오히려 약간은 궁금해하는 기색이 보이자 당 풍호의 기분이 묘해졌다.

처음에는 조 무적의 잔인한 손속에 분노해서 강호에 나왔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조금은 상대에 대한 호기심과 은근히 걱정하는 기색까지 보이지 않는가?

"군교두께서는 그 자를 보게되면 어쩌실 작정이시오?"

"글쎄요....?"

약간은 모호한 군 자명의 태도가 확실히 당 풍호에게는 이채롭게 다가온다.

글쎄요라고....?

그를 잡겠다고 나온 것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심중에 변화가 생긴 것인가?

왜?

도대체 무엇때문에 저 고집불통의 마음에 변화가 온 것인가?

"그를 잡으려고 하시던 것이 아니오?"

당 풍호의 은근한 물음에 군 자명이 씁쓸하게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타인에게 패악을 저지른다는 이유만으로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 다섯의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망쳐버렸다.

그리고 자신에게 살수를 펼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말의 정도 없이 차갑게 상대를 죽여버린 자신이나 비록 그 방법이 다소 잔인할지라도 피의 빛을 갚는 조 무적이 서로 다른 것이 뭐가 있겠는가?

과연 내게 그자를 탓할 자격이 있을까?

그냥 그 자의 얼굴이나 한 번 보고 싶을 뿐이다.

과연 그렇게 잔인한 살수를 펼치는 그의 속마음이 어떤 것인지....

마음속에 맺힌 무엇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살인을 즐기는 혈귀일 뿐인지....

일단 만나보고 상대의 의중을 봐야....

"당 대협! 그 개방의 악양분타라는 곳에 저도 가볼 수 있겠소?"

"당연히 가실 수 있지요."

당 풍호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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