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문비사2
천생무인이라는 말이 있다.
태생적으로 타고난 기질이 무인으로서 어울리는 사람을 일컫는 이 말은 지금 군 자명에게 딱 어울려보인다.
강한 기질과 오랜 고련을 통해 완성된 단단한 체격.
그리고 약간은 거만해 보일 법도 한 오연한 기상.
무인치고는 약간은 작은 키의 군 자명이지만 무인의 기질은 모두 갖추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검을 익힌 후 처음 접해봤을 등 무결이라는 절정고수에게도 굴하지않는 강한 정신력과 무공에 대한 호기심.
군문이 아니라 무림세가에서 태어났더라면....
약간은 아쉬운 마음을 속으로 삭이며 당 풍호가 친구에게 내밀 듯 편하게 오른 손을 내밀고....
자신의 앞으로 불쑥 내미는 당 풍호의 손목을 군 자명이 슬며시 잡는다.
당 풍호의 손목을 잡은 체 가만히 눈을 감고 전신의 기를 끌어올리는 군 자명.
손목을 타고 올라가던 군 자명의 진기가 곡지혈에서 잠시 멈추더니 경추혈을 타고 돌아 다시 당 풍호의 용천혈을 향해 빠르게 몰려간다.
별다른 거부감도 저항도 없이 자연스럽게 경맥을 따라 돌아다니던 군 자명의 진기가 이번에는 당 풍호의 좌반신으로 향한다.
그리고....
응?
슬며시 자신의 진기에 섞이는 끈끈한 기운.
아니.... 섞이는 것이 아니라 둘러싸서 빨아들이는 기분이 든다.
마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슴처럼 자신의 진기가 움직이도 못하고....
갑자기 강한 힘으로 당기는 당 풍호의 끈적한 기운에 몸속의 진기까지 빨려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무슨 수작을....?
당혹스럽게 눈을 떠서 당 풍호를 쳐다보자 괴로운 듯 잔뜩 찡그려지는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이건....?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이번에는 강하게 자신을 밀쳐내는 엄청난 기운이 느껴진다.
펑!
크윽....!
쿠당탕!
쇠가죽으로 만든 북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마차를 부수며 튕겨나가는 군 자명.
그리고....
푸악!
꽝!
한줄기 피를 토하며 마차의 맞은편 벽을 뚫고 반대방향으로 밀려나가는 당 풍호.
이건....?
깜짝 놀라 튕겨나가는 몸을 재주넘듯이 돌리는 군 자명의 눈에 밀려쓰러지는 당 풍호의 왼손을 통해 뻗어나오는 야릇한 기운이 보이고....
검은 실 같은 가느다란 기운이 그 실체를 드러내며 스멀스멀 허공을 뒤덮더니....
흑우黑雨!
하늘에서 떨어져내리는 검은 비처럼 자신의 전신을 향해 덮치듯이 쏫아져내리는 싸늘한 기운이 전신을 감싸온다.
"파검식!"
예사롭지않은 기운에 언제 뽑아들었는지 군 자명의 검이 허공에서 부르르 떨고....
꽝!
세워둔 기둥이 떠는 것처럼 바르르 떠는 군 자명의 검과 하늘을 뒤덮은 검은 비가 허공에서 충돌하는 소리가 들리고....
사방으로 퍼지는 압력과 함께 바닥을 굴러가는 군 자명과 충격의 여파에 산산이 부서져버리는 마차.
푸히힝~~!
군 자명의 눈에 괴로움에 찬 말의 울음소리와 함께 튕겨나가 땅에 쳐박히는 마부의 모습이 얼핏 보인다.
그리고....
멈춰선 것처럼 허공에 머물던 검은 비가 다시 아래를 향한다.
퍽!
퍽!
퍽!
한여름날의 소나기가 맨땅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피어오르는 흙먼지.
데굴데굴....!
공굴러가는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구르던 군 자명이 검으로 바닥을 찍으며 굴러가는 몸을 고정시킨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전방을 주시하고....
관도의 흙바닥은 물론이고 엉망으로 부서진 마차의 잔해까지도 굵은 침으로 찔러놓은 것처럼 커다란 구멍이 수도 없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비산하는 먼지를 덮어쓴채로 눈만 빼꼼이 내놓은 마부와 관도의 한쪽 구석에서 검붉은 피를 토해내는 당 풍호.
"암혼정....?"
분명히 전설처럼 회자되는 암혼정의 모습이다.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멍하니 당 풍호를 보며 군 자명이 몸을 일으켰다.
검왕을 흑우라고 불리게 한 바로 그 절기.
천하제일의 암기술이라고 불러야할지 절세의 기공이라고 불러야할지 모를 엄청난 무공에 군 자명이 넑을 잃어버렸다.
무적오식無適五式은 흑우의 은혜로 자신들의 가문으로 전해졌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암혼정이 어디로 전해졌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검왕이후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두 가지 무공이 모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괴상한 인연으로 맺어진 자신과 당 풍호를 통해서....
군 자명이 심호흡을 하며 전신의 진기를 돌려본다.
다행이 완전하지 않은 암혼정을 파검식이 어느 정도는 막은 듯 별다른 내상은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완전하지도 않은 것 같은 암혼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검이 밀린다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만약 완벽한 암혼정이었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기가막힌 심정으로 군 자명이 빠르게 몸을 날려 당 풍호를 부축했다.
"당 대협, 괜찮으시오?"
"군교두의 눈에는 내가 괜찮아보이시오?"
입으로 검붉은 피를 토해내면서도 아무렇지도않게 뱉어내는 당 풍호 특유의 해학적인 말에 군 자명이 웃지도 못하고 눈만 깜빡거렸다.
벽창호 같은 인간....
도대체가 고지식한 군 자명이 기가막혀 당 풍호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당 풍호의 속마음은 모른 체 멍하니 당 풍호를 쳐다보는 군 자명.
그의 상세를 치료하기위해 내가요상술內家療傷術을 쓰자니 저 미친 것 같은 암혼정이 두렵고 그냥 두려니 당 풍호의 꼴이....
"휴우....! 당 대협께서는 암혼정을 익히시다 이렇게 된거요?"
"익혀요? 차라리 그렇게 된 거라면 덜 억울하지요. 이 망할 놈의 암혼정은...."
고개를 설레설레 젖는 당 풍호를 놓아둔채로 이번에는 군 자명이 마부에게로 향했다.
"괜찮소?"
"나으리.... 이게 도대체...."
황망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마부를 보며 군 자명이 쓴 웃음을 지었다.
멀쩡한 마차 한대를 괴상한 서역의 중들이 부셔놓더니 이번에는 자신들이....
"조금만 더가면 악양이니 그곳에 가서 다시 마차를 한대 구입해주겠소."
"감사합니다. 나으리."
군 자명에게 깊숙이 머리를 숙이면서도 마부는 기가 막혔다.
산산조각난 마차와 놀라서 달아나버린 말.
무슨 마차와 원한이라도 맺든 인간들인지....
타는 족족 마차가 부서져 버린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마차만 골라서 부수는 귀신들과....
마부의 중얼거림에 군 자명이 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적당히 몸을 추스리고 힘겹게 일어나 발걸음을 떼는 당 풍호에게 군 자명이 묻는다.
"익힌 것이 아니라면 그 암혼정이 어떻게 당 대협의 몸속에 있는것이요?"
당 풍호가 군 자명을 돌아보며 피식 웃는다.
"저주지요. 흑우의 저주."
"저주?"
"망할놈의 흑우!"
"그러지말고 좀 자세히 이야기 해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당 풍호가 멍한 눈을 들어 하늘의 뭉게구름을 봤다.
빌어먹을 날씨 한 번 우라지게 좋네.
"삼백 년전 흑우가 우리 당가를 찾아왔소. 천하제일인의 방문에 잔뜩 긴장한 가문의 조상들에게 흑우가 웃으며 받은 것을 돌려주기위해서 왔다고 했소. 그리고 당시 가문의 조상들로서는 뜬금없는 흑우의 그 말에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소. 자신들이 그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는가? 자신의 앞을 막는 자는 아무도 살려주지않았던 이 잔인한 자가 왜 사천까지....? 군 교두, 군 교두라도 그런 상황이 된다면 두렵지 않겠소?"
군 자명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지만 흑우는 단 한 번 자신의 앞을 막은 자를 살려준 적이 있었다.
자신이 아버지에게 들었던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던 조상과 흑우의 인연이 살짝 떠올랐다.
무적오식을 자신들의 가문에 전해주게 된 그 인연....
그리고 원수를 두고도 그냥 보고만 있도록 만든 흑우와의 약속.
"아무튼 가문의 모든 식구들이 암기를 챙겨서 나오고 잔뜩 긴장한 그 순간에.... 흑우가 말했소. 암혼정을 돌려주기위해서 왔다고...."
"암혼정을 돌려주다니요?"
군 자명이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암혼정은 흑우의 성명절기가 아니었나?
"자세한 것은 말하기가 좀 그렇고.... 아무튼 본래 당가의 절기인 암혼정을 다시 당가로 돌려주겠다며 그가 찾아왔다고 했소."
"놀랍군요. 자신의 성명절기나 다름없는 것을 돌려준다며 당가로 찾아갔다니...."
당 풍호가 야릇한 눈으로 군 자명을 돌아봤다.
"흑우의 성명절기는 검법이 아닌가요? 그의 별호가 엄연히 검왕인데...."
"그런가요....? 하지만 세상은 그를 흑우라 부르지 않았나요?"
이 인간이 쓸데없는 고집은....
"아무튼 그가 암혼정을 전해준 후 우리 당가에는 혈마의 저주에 흑우의 저주가 더해졌소."
"혈마의 저주?"
"모르시는가요? 까마득한 옛날 혈마가 죽을 당시 정존正尊과 함께 그곳에 있었던 열여덟 가문에 저주를 내렸소. 대를 이어 불행해질거라고.... 빌어먹을.... 그따위 거지 같은 저주나...."
투덜거리는 당 풍호를 군 자명이 야릇한 눈으로 봤다.
대를 이어 불행해진다고....?
"혈마의 저주는 그렇다치고 흑우의 저주라는 것은 또 뭡니까?"
당 풍호가 울기라도 할 것 같은 얼굴로 군 자명을 보며 입을 연다.
"흑우의 저주.... 어디서 그런 거지 같은....! 당시 흑우가 우리 가문에 들려서 암혼정을 전해준 방법은 구결이나 비급이 아니었소. 바로 격체전공隔體傳功. 아예 암혼정을 통채로 몸안에 밀어넣어 버린거요."
"예....?"
군 자명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원래가 괴이한 무림이라지만 무공을 통채로 몸속에 밀어넣어준다고....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괴상한 이야기가 아닌가?
"아무튼 그렇게 암혼정을 돌려주자 당시 조상들은 진심으로 흑우에게 고마워했다고 했소. 그런데.... 빌어먹을!"
"무슨 일이 생긴거요?"
"도대체가 어떻게 된 것이 그 망할 놈의 암혼정을 도저히 펼칠 수가 없었오. 아니 암혼정을 시전하는 것은 고사하고 불쑥불쑥 나타나는 그 괴이한 기운에 그나마 익히고 있던 무공도 사용할 수가 없게 되버린거요. 통제할 수도 펼칠 수도 없는.... 아니 생명을 위협하는 천하제일의 무공. 이게 저주가 아니면 뭐요?"
"예?"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격체전공으로 암혼정을 몸안에 밀어넣는 것도 괴상한데 그렇게 전수한 무공을 펼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다고....?
"도대체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하겠습니다. 좀 자세히 이야기 해주시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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